[해외낚시]
정말 많이 기다렸던 대회다. 이번 대회는 원래 7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대회가 기상악화로 연기된 지 무려 3개월이나 지나 개최됐다.
올해로 20회째를 맞는 국제스포츠피싱 오도열도 구레컵은 한국과 일본의 벵에돔낚시인들 매년 승부를 겨루는 대회이다. 순수하게 한일 낚시인 간 겨루는 친선대회로 일본 측에서는 유명 찌낚시 명인도 참가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올해부터는 홍콩과 대만 선수도 참가하게돼 명실공히 ‘아시아 선수권 대회’의 틀을 갖추게 됐다.

결승전 경기를 마친 후 참가 선수들이 모두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이번 대회에는 한국 일본 홍콩 3개국 선수가 참가했다.
예상 못한 변수에 후쿠오카공항에서 8시간 고립(?)
지난 10월 2일 새벽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필자, 김영훈, 박시언, 신재수 씨가 김해공항에 집결해 함께 후쿠오카로 넘어갔다. 제주도에서는 강정근, 오준호 씨가 역시 전날 비행기를 타고 후쿠오카에 도착해 있었다. 한국 선수단의 인솔자인 민병진 회장님은 대마도에 거주하는 터라 쓰시마공항에서 역시 비행기를 타고 후쿠오카공항으로 넘어올 예정이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들은 대다수가 유경험자들이었고 이 중 신재수 씨는 첫 국제대회 참가였다. 용인에 사는 신재수 씨는 수시로 용인과 통영을 오르내리며 전지훈련을 해왔다.
그동안 한국 선수단이 후쿠오카로 갈 때는 늘 부산항에서 출항하는 크루즈 선박을 이용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동 시간을 줄여볼 심산으로 비용이 더 들더라도 항공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항공편 이용은 장단점이 분명했다. 일단 이동 시간이 짧아 몸이 덜 피곤했다. 그러나 수하물 중량 제한 때문에 추가 요금을 많이 지불해야 했다. 1인당 15kg까지만 무료 탑재가 가능하다보니 로드 케이스도 가벼운 걸로 챙겼고 밑밥통과 쿨러까지만 챙겨야 했다. 그 바람에 일본에 가서 먹을 밑반찬은 아예 챙기지 못했다.
아침 8시30분 쯤 무사히 후쿠오카공항에 도착. 제주도에서 전날 미리 온 강정근, 오준오 씨과 만나 인사한 뒤 들뜬 마음으로 짐을 하나하나 챙겼다. 이제 렌터카를 타고 히라도항으로 이동, 늦은 오후에 갯바위로 나가 현지 적응 훈련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준결승에서 4짜 벵에돔을 낚은 필자. 아쉽게도 이케나가 유지 명인에게 패해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케나가 유지 명인이 한국 선수단이 선물로 가져간 인생 기포기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결승전 참가자들이 경기가 끝난 후 각자의 조과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민병진 회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김영훈 씨의 표정이 굳어진 것이다. 알고 보니 대마도 현지 기상 악화로 민병진 회장이 탈 비행기가 뜨지 못했다. 대기 순서도 밀려 오후 2시 비행기가 예약됐다는 설명이었다.
결국 현지 적응 훈련은 물 건너갔고 우리는 망연자실 공항 로비에 죽치고 않아 무려 8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배고프면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공항 인근 낚시점에 들러 필요한 소품도 구입했다. 현지 적응은 둘째 치고 통역을 맡은 민병진 회장이 못 온다면 출항지인 히라도까지 못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오후 4시를 넘겨 민병진 회장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마치 전쟁 때 헤어진 가족을 만난 것처럼 너무 반가운 순간이었다. 서둘러 예약한 렌터카를 타고 출발. 이왕 늦은 김에 천천히 이동하며 맛집도 들르고 큰 낚시점에서 제대로 된 쇼핑도 즐겼다.
밤늦게 출항지에 있는 마루긴 민숙에 짐을 풀었다.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일본의 7인승 밴 차량은 정말 다시는 타고 싶지 않은 최악의 자동차였다. 뒷좌석은 시트 속 철근이 엉덩이에 닿으며 찔러대기까지 했다. 일본의 중저가 승합차에 비해 우리나라 차들은 정말 좋은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타 대물 승부로 가토 명인 꺾고 준결승 진출
밤늦게 숙소를 찾아온 일본 선수단의 후쿠즈미 회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경기에 쓸 밑밥과 미끼도 챙겨 주셨다. 자기 전에 밑밥부터 비비고 장비 점검까지 마치고 나니 잘 시간이 거의 없었다. 새벽 3시경에 전야제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자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내다가 조 추첨이 열리는 회관으로 향했다. 1년 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다들 상기된 표정으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나도 구면인 선수와 인사하고 처음 보는 홍콩 선수와도 간단히 인사했다. 그런데 대만 선수들이 보이지 않아 의아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예정대로 7월에 대회를 개최했으면 참가했을 텐데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불참한 것이다. 결국 이번 대회에는 홍콩 선수단만 새롭게 참석해 한국, 일본, 홍콩 3개국 대회가 되었다.
경기 방식은 4명씩 6개조가 돼 각 조 1위 6명이 준결승에 진출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2위를 거둔 각 조 선수 중 중량 우선으로 1, 2, 3위를 가려 와일드카드로 준결승에 합류시켰다. 이렇게 총 9명이 3개 조로 나뉘어 준결승을 치른 후 각 조 1위 3명+와일드 카드 1명 등 총 4명이 결승에 진출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대회의 베이스캠프였던 마루긴 어업센터.

후쿠오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의 기념촬영.

결승전을 치를 갯바위에 선수들이 하선하고 있다.
조추첨 결과 나는 2조에 편성되어 홍콩 선수, 일본의 막내 선수 그리고 강적 가토 명인과 한 조가 되었다. 1차전은 어이없게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홍콩 선수에게 130g 차이로 지고 말았다. 이번 대회는 나름 자신이 있었던 터라 큰 놈만 노렸는데 어이없이 져버려 맨붕이 왔다. 소식을 들은 김영훈 씨가 “나머지 두 게임을 모두 이기고 중량이 앞서면 되니 대물 위주로 노려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가장 얕봤던 선수한테 지고 나니 앞으로 카토 명인과 또 한 명의 일본 선수를 무조건 이겨야 하는 부담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2차전 직전 예상 못한 비보(?)가 전해졌다. 한국 선수단의 인솔자인 민병진 회장님이 낚시 도중 넘어져 머리가 찢어졌고 결국 병원에 실려 갔다. 다행히 응급조치를 받고 퇴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안도가 되었다. 그 전까지는 마음도 무겁고 선수단 전체 분위기도 다운돼 착잡했었다.
이런 와중에 두 번째 경기에서 일본의 막내 선수를 이겨 다행히 1승을 추가, 남은 건 가토 명인과의 3차전이었다. 어차피 여기서 지면 아무 것도 안 되기에 대물 승부를 보기 위해 장타를 쳤다. 내가 먼 거리를 공략하자 가토 명인이 “거기는 고기가 없으니 가까이 노리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낚시하면 현지인한테 100% 진다는 얘기에 더욱 오기가 생겼다.
그 결과 내 방식이 보기 좋게 먹혔다. 거는 족족 4짜를 넘겼고 5짜도 올라왔다. 나중에 중량을 재보니 가토 명인의 두 배였다. 가토 명인을 꺾어서 너무도 기뻤고 가토 명인은 한국에서 온 무명 선수에게 일격을 당한 충격 때문인지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결국 나는 조 2위 중 최고의 성적으로 준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다. 1차전에서 날 이기고 역시 준결승에 진출한 홍콩 선수가 기뻐하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아쉽게도 나를 제외한 한국 선수단은 모두 준결승 진출에 실패해 이튿날 자유낚시(대물낚시)에 도전해야 했다.
숙소에 돌아오니 민병진 회장님이 멀쩡히 앉아 계셨다. 두피를 몇 바늘 꿰매는 것으로 치료를 마쳤다고 했다. 그만하길 다행이었다. 이틀 째 만찬 장소로 이동해 재밌는 시간을 가졌고 준결승 참가 번호도 배정 받았다. 각국 선수들의 축하를 받으며 벅찬 하루를 보냈다.

예선전 포인트 교체 도중 이케나가 유지 명인과 강정근 선수, 필자가 등대섬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각 조별 예선전 성적표.

마루긴민숙 앞 항구에 정박 중인 낚싯배들.
이케나가 유지 명인 밑밥술에 경외감 느껴
대회 마지막 날. 준결승과 결승전이 모두 치러지는 날이었다. 준결승은 첫 경기부터 긴장이 됐다. 하필 일본 최고의 토너먼터 중 한 명인 이케나가 유지 명인과 한 조가 됐기 때문이다.
오도열도의 등대가 있는 여에 함께 내려 포인트를 둘러봤다. 강한 맞조류와 본류가 흐르고 있었다. 이케나가 유지 명인도 좀 불편해 보이는지 여 꼭대기로 올라가 다른 포인트를 찾았으나 여의치 않아 그냥 강행하기로 했다.
이케나가 유지 명인을 이기려면 어지간한 사이즈로는 어림없기에 강한 조류를 직공해 대물을 노렸다. 그 결과 너무 큰 녀석들이 물어 목줄이 계속 터졌고 결국 이케나가 유지 명인에 밀려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그러나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케나가 유지 명인과 나란히 서서 낚시하는 기회를 잡았다는 점만으로도 큰 영광이었다.
소문대로 이케나가 유지 명인의 감각은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 쉴 새 없이 날아가는 속사포 밑밥은 마치 헬기에서 쏘아대는 기관총 같았다. 입질 지점이 아니더라도 사방팔방 밑밥을 날리며 각 구간별 조류의 흐름, 방향, 벵에돔과 잡어 반응 등을 수시로 체크하는 모습을 보고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결승전은 일본 선수 2명, 홍콩 선수 1명이 진출했다. 결승 진출이 유력했던 이케나가 유지 명인은 준결승전에서 몸 컨디션 난조를 표하며 휴식을 취하는 바람에 홍콩 선수가 결승에 진출했다. 내 판단에는 충분히 결승전에 올라갈 수 있음에도 불구, 이번에는 일부러 한국이나 홍콩 선수에게 결승행을 양보하려는 계산으로 읽혔다.

자유낚시 대회에서 대물 1, 2, 3등을 차지한 선수들.
한국에서도 정기적 국제대회 개최 바람 커
아무튼 결승전 결과 우승은 일본 선수단의 후지모토 유이치로 선수에게 돌아갔다. 후지모토 유이치로 선수는 일본의 유명 여성 찌낚시인 미도리 씨의 남편이기도 하다. 후지모토 유이치로 씨는 나처럼 초장타를 날리는 기법을 구사해 우승을 거머쥐었다. 2위는 일본의 사토시 선수, 3위는 홍콩의 가오준지예 선수, 4위는 역시 홍콩의 추샤오헝 선수가 차지했다.
이번 대회 특징은 룰을 조금씩 바꿔서 외국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려한 점이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무제한 마릿수로 승부를 내던 것을 5마리, 7마리, 10마리 식으로 제한을 두어 중량을 계측하는 방식을 사용한 점이다. 현지 일본 선수단에 비해 마릿수에서 밀리던 외국 선수들에게는 다소 유리해진 룰이었다. 특히 나처럼 대물 낚시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이번 바뀐 룰이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시상식도 마쳤다. 선수들과 인사하며 아쉬운 폐회식을 즐겼다. 항상 그렇지만 대회가 끝나면 늘 아쉽고 다시 가면 꼭 우승할 것 같은 기대감에 부푼다. 이제 한국의 남해바다로 돌아가 가을 감성돔, 벵에돔과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에서도 여러 나라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승부를 벌이는 스포츠피싱이 정기적으로 열리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부쩍 들었다.

김영훈(왼쪽), 이케나가 유지, 강정근(맨 오른쪽) 선수가 속한 예선전 조편성.

박시언(왼쪽) 선수와 우승을 차지했던 후지모토 선수가 속한 예선 조편성.

예선전을 치룬 저녁 본선조 추첨후 만찬자리를 가졌다.

히라도로 향하던 도중 찾아간 유명 우동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