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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조홍식의 History of Tackle] 현대적인 주요 낚시 태클의 기원 (40회) 베이트캐스팅릴의 발달을 이끈 빅게임 - 저명인사들과 릴의 발전
2026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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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조홍식의 History of Tackle]


현대적인 주요 낚시 태클의 기원 (40회)


베이트캐스팅릴의 발달을 이끈 빅게임

- 저명인사들과 릴의 발전


조홍식

편집위원, 이학박사. 「루어낚시 첫걸음」, 「루어낚시 100문1000답」 저자. 유튜브 조박사의 피싱랩 진행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낚시책을 썼다. 중학교 시절 서울릴 출조를 따라나서며 루어낚시에 깊이 빠져들었다. 9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 지깅 보급과 바다루어낚시 개척에 앞장섰다. 지금은 미지의 물고기를 찾아 세계 각국을 동분서주하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베이트캐스팅릴은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의 최신형 릴에 갖추어진 기능을 채워갔다. 레벨와인더, 안티리버스, 스타드랙 등등 열정적인 앵글러에 의해 고안되고 장인들의 손길을 거쳐 릴에 적용되었다. 그런데, 당시에 낚시를 취미로 즐기며 릴에 새로운 기능을 첨가할 정도의 앵글러라면 경제적 여유를 가진 사회 저명인사가 대부분, 릴은 아직 부자의 기호품이었던 시대였다.



릴에 여러 가지 기능적 요소를 첨가하는 데 가장 공을 들인 낚시 장르라면 거대한 참치나 새치를 대상으로 하는 빅게임을 빼놓을 수가 없다. 여기에 사용하는 릴은 주먹만 한 크기의 민물용 릴과 달리 그 크기가 어마어마한 대형 트롤링릴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앵글러라면 예나 지금이나 ‘거대한 물고기를 낚는 꿈’을 가지고 있는 게 당연지사. 도구의 개량이 가장 빨랐다.

19세기 말까지 인간이 낚시로 100파운드(약 45kg)가 넘는 물고기를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고 있었다. 당시의 태클, 즉 나무로 만든 낚싯대, 다이렉트 릴, 천연섬유로 만든 낚싯줄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885년에 W.H.우드(W. H. Wood)가 플로리다에서 100파운드급 타폰(Atlantic Tarpon)을 낚은 조행기가 포레스트앤드스트림(Forrest and Stream) 잡지에 실리면서 전 세계 낚시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거대한 은빛 몸체를 뽐내며 수면에서 도약하는 타폰을 직접 낚고자 하는 꾼들이 플로리다로 모였는데, 바로 이 타폰낚시가 빅게임이란 장르를 만들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낚시 도중 릴이 망가지거나 앵글러의 손가락이 부러지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대어를 상대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춘 릴의 개발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사용하던 릴은 물고기가 차고 나가면 스풀이 역회전하면서 핸들도 빠르게 역회전했다. 스풀의 역회전을 늦추기 위해서는 릴 뒤편에 부착한 가죽 패드를 이용해 스풀을 눌러 마찰로 저항을 주는 것이 전부, 빠르게 역회전하는 핸들을 다시 붙잡으려다가 부딪쳐 골절상을 입는 피해가 속출했다. 외부마찰이 아닌 내부마찰을 이용해 스풀 역회전을 제어하는 기능 즉, 기초적인 드랙은 1902년 에드워드폼호프(Edward vom Hofe)가 만든 릴에 등장했다.



1890년, 플로리다주 사라소타(Sarasota)의 숙소 앞에서 타폰 조과를 자랑하는 낚시인들.

(A tarpon fishing party in front of the Belle Haven Inn in downtown Sarasota in 1890)


낚은 타폰 앞에서 기념촬영 한 낚시인들. 타폰 낚시가 미국의 빅게임 붐을 일으킨 원동력이 되었다. 1903년 사진.

(Leffinwell and Warren celebrate their catch of tarpon Sarasota, 1903)



타폰(Atlantic Tarpon)낚시가 빅게임으로 발전

19세기 말 비슷한 시기인 1898년에 찰스F.홀더(Charles Fredrick Holder) 박사가 캘리포니아의 카탈리나섬에서 183파운드(약 83kg)의 당시로써 기록적인 참다랑어를 낚았고, 빅게임 동호회인 ‘튜나클럽(Tuna Club)’을 설립했다.

이 클럽은 낚시 기술 개발과 규칙의 정립 등 이후 30년 동안 빅게임 장르의 중심 역할을 했다. 튜나클럽의 회원은 학자, 정치가, 재벌 등 사회적인 저명인사가 대부분이었는데, 고가의 비용부담도 주저함 없이 새로운 낚시 기술 개발과 태클의 개량을 주도하였다.

1907년에 스풀이 역회전할 때 핸들이 돌아가지 않는 안티리버스 기능이 최초로 개발되어 역회전하는 릴의 핸들에 손을 부딪쳐 다치는 낚시인이 더는 없게 되었다. 이를 더욱 개량한 형태의 릴이, 1911년에 줄리어스폼호프주니어(Julius vom Hofe Jr.)가 튜나클럽 회원인 윌리엄C.보션(William C. Boschen)의 아이디어로 만든 ‘보션(B-Ocean) 릴’. 완전한 클러치 기능이 달린 안티리버스와 파이팅 도중 드랙 장력을 조절할 수 있는 스타드랙이 장치되었다. 보션은 줄리어스주니어가 만든 릴을 이용해 315파운드(약 143kg)에 달하는 황새치를 낚아 스타드랙 릴이 성공적임을 입증했다.



의 시을 알린 Charles Frederick Holder 박사의 참다랑어 기념사진. 1898년.


1909년, 튜나클럽 창립 맴버 사진. 좌로부터, Dr. Macomber, E. L. Doran, Clifford Scudder, 설립자 Charles F. Holder, Fritch Dewey.

(워싱턴대학교 Freshwater and Marine Image Bank 소장)



릴의 발전은 사회적 저명인사와 기술자의 합작품

이러한 빅게임 초창기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미국의 소설가 제인그레이(Zane Grey)다. 그는 서부극 장르의 소설가로 유명했는데, 그의 작품은 100편이 넘게 영화화, 텔레비전 드라마로 각색되는 등 미국 최초의 백만장자 소설가로 이름을 올렸다. 또한, 그는 엄청난 낚시꾼으로도 유명했다. 튜나클럽 회원이었고 대형 범선을 구매해 낚시용으로 철저히 개조, 최초로 낚시용 모선(mother ship)이란 개념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레이는 자신만의 빅게임을 위해 당시 유명 제조업체들에 자신이 원하는 사양, 더 많은 권사량의 초대형 릴을 주문 제작하였다. 당시는 합성섬유 낚싯줄이 개발되기 이전의 시대로 천연섬유로 만든 낚싯줄은 매우 굵어서 릴이 거대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대어와의 파이팅에 효과적인 로드홀더와 짐벌을 갖춘 낚시용 의자 제작 등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에 옮겼다.



1936년 호주 버마구이(Bermagui)에서 청새치(Striped Marlin)를 낚은 Zane Grey.


영화화된 Zane Grey의 소설은 100편이 넘는다. 1925년 영화화된 소설을 알리는 포스터.



그레이의 주문을 받아 생산된 릴은 당시의 영국과 미국의 몇몇 릴 메이커에서 그의 이름을 붙였는데, 영국의 왕실 납품업체 하디브라더스(Hardy Bros.), 캘리포니아의 릴 메이커 ‘코발로프스키(KOVALOVSKY)’의 제품에 ‘제인그레이 모델’이 있었다. 그레이는 주문 제작한 그 초대형 릴을 이용해 참다랑어, 새치, 상어 등 1,000파운드(약 450kg)가 넘는 물고기를 낚은 최초의 인물이었다. 더욱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낚시 참고서적을 여럿 출판하여 스포츠피싱이란 개념의 대중화에 이바지했으며, 미국 연안만이 아니라 폴리네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 낚시 명소들을 널리 알렸다.


백만장자 소설가 제인그레이(Zane Grey)의 낚시에 대한 열정

1920~30년대를 기점으로 빅게임 장르가 정립되면서 전 세계 각지에서 더 큰 물고기를 낚는 데 필요한 낚시 기술발전에 진전이 있었다. 2단 변속 기어가 설치된 릴, 자동차 브레이크 기술을 이용한 레버드랙 릴, 롤러가이드 등장, 파이팅체어 개발 등이 순식간에 이어졌다.

앵글러의 열정이 릴을 비롯한 낚시도구의 발전을 이끌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대중화와는 동떨어져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실제로 1930년대 세계적으로 대공황 시기에 제인그레이가 사용한 릴의 가격은 US1,000달러 수준, 요즘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2만 달러가 넘는 초고가 릴이었다. 

릴이 처음 만들어진 영국에서 귀족 위주로 또 산업혁명으로 부를 축적한 신흥부호들에 의해 릴의 개발이 주도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릴의 개발은 일부 유복한 사회적 저명인사와 기술자의 합작품이었다.

1940년대 들어서 빅게임을 통한 릴의 개발이 정점을 찍었고 가격이 저렴한 빅게임용 대량생산 제품의 릴도 등장했다. ‘인간 대 대어’의 낭만적인 모습을 즐기려는 찰라,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도 참전하면서 릴의 개발은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종전 이후, 낚시의 패러다임도 크게 바뀌고 고가의 수제품 빅게임용 릴은 하나둘 사라져갔다.



1930년대 HARDY의 트롤링릴, Zane Grey 모델.


캘리포니아의 유명 릴 메이커 ‘코발로프스키(KOVALOVSKY)’의 Zane Grey 모델. 최초로 레버드랙이 장치된 릴이었다. 1930년대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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