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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조홍식의 History of Tackle] 현대적인 주요 낚시 태클의 기원(37회) 아메리칸 베이트캐스팅릴의 등장(1) - KENTUCKY Style
2026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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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조홍식의 History of Tackle]

현대적인 주요 낚시 태클의 기원(37회)


아메리칸 베이트캐스팅릴의 등장(1)

- KENTUCKY Style Reel


조홍식

편집위원, 이학박사. 「루어낚시 첫걸음」, 「루어낚시 100문1000답」 저자. 유튜브 조박사의 피싱랩 진행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낚시책을 썼다. 중학교 시절 서울릴 출조를 따라나서며 루어낚시에 깊이 빠져들었다. 9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 지깅 보급과 바다루어낚시 개척에 앞장섰다. 지금은 미지의 물고기를 찾아 세계 각국을 동분서주하고 있다.



본격적인 베이트캐스팅릴은 당연하게도 미국에서 탄생하였다. 낚시도구의 역사 안에서 이 사실은 미국의 앵글러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자 자신들이야말로 ‘베이트캐스팅릴의 원조’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멀티플라이어(Multiplier)는 탄생한 고향에서는 진화를 멈추었지만,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수출되어 미국인들의 손에 의해 한 단계 진보된 베이트캐스팅릴로 거듭났다.



1820년대부터 등장한 최초의 켄터키 릴인 Snyder 릴.(luresnreels.com 제공)


1885년 제조된 B.F. MEEK No.2. 보석세공 및 시계제조업자였던 B.F. Meek이 만든 대표적인 켄터키 릴이다.(luresnreels.com 제공)



상업적으로 제품화된 최초의 낚시용 릴은 잘 알려진 바와같이 영국에서 탄생한 ‘멀티플라이어(Multiplier, 2023년 1월호 게재)’로 이 릴은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과 귀족의 취미생활이 조화되어 만들어진 고가의 사치품이었다. 18세기 후반에 독립을 선언한 미국은 19세기로 넘어오면서 이민자가 더욱 늘어났고, 공산품의 수입도 비례하여 증가하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미국은 산업의 발전도 진행되어 값비싼 수입품을 미국방식으로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는 낚시도구도 해당했는데, 미국의 낚시도구, 특히 미국제 릴에 있어서 원조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켄터키 릴(KENTUCKY Style Reel)’이다. 켄터키주의 금속장인들 특히, 시계 제작이나 은세공업자들이 릴 제작에 나서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1820년을 전후해서 등장한 ‘스나이더(Snyder) 릴’이 최초의 켄터키 릴로 영국에서 수입한 멀티플라이어 윈치(Multiplier winch)를 기본모델로 이를 개량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릴이 바로 배스 낚시용 베이트캐스팅릴의 원조이다. 스나이더의 뒤를 이어 미크(Meek), 밀란(Milan), 탈보(Talbot) 등등 제조자의 이름을 딴 릴이 속속 등장하면서 켄터키 릴은 완성되었다.



B.F.MEEK & SONS BLUEGRASS No.3. 핸들과 스풀이 단순히 기어로 물려있을 뿐인 구조이지만, 몸체는 저먼실버, 손잡이는 상아(象牙)로 만든 고급 모델이다.


1886년 판 B.F. MEEK 카탈로그. 저먼실버로 만든 제품으로 가격은 크기별 18~30달러 수준.


1910년대 말에 생산된 MEEK No.2. 좁고 얕은 스풀로 보아 캐스팅 경기용 모델인 듯 하다.



미국판 멀티플라이어, 켄터키 릴

최초의 켄터키 릴은 켄터키주 파리스(Paris, Kentucky)의 은세공 장인인 조지 스나이더(George Snyder) 씨가 만든 릴로 영국의 멀티플라이어처럼 황동(brass) 재질에 간단한 기어 물림을 한 형태였다. 이후, 등장한 켄터키 릴은 황동이 아닌 양은(洋銀)으로 만든 것이 주류가 되었다. ‘저먼실버(german silver)’라고도 부르는 양은은 알루미늄과 혼동하기도 하지만 원래는 구리, 아연, 니켈의 합금으로 진짜 은처럼 광택이 있고 녹도 슬지 않는다.

더욱이 제작자가 대부분 은세공 장인이다 보니 완성된 릴은 매끄러운 회전은 물론, 번쩍이는 광택과 깔끔한 마무리에 정밀한 장식이 더해져 아름다움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성능을 말하자면 아직 현대적인 릴에는 한참 모자라는 모습을 보였는데, 스풀과 핸들이 기어로 물려있을 뿐 클러치도 없고 역회전 방지도 당연히 없는, 요즘 기준으로 말하자면 ‘다이렉트 릴’에 지나지 않았다.

19세기가 끝날 무렵, 켄터키 릴의 가격은 대당 20~30달러로 당시로써는 상당히 높게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제작공정이 대부분 수작업으로 거의 수공예품 수준이다 보니 그랬을 것으로 짐작한다. 가장 미국적인 릴이었지만 가격은 미국적이지 않았던 것도 잠시,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에 들어서자 수공업 종사자들은 차례로 큰 회사에 의해 흡수, 도태되기 시작했고 대량생산 공장에서 만들어진 베이트캐스팅릴은 대당 가격이 2~6달러였다.



Blue Grass No.33의 1889년 신문광고.

알루미늄으로 만들고 장식을 없앤 중저가 켄터키 릴로 가격은 12달러. 같은 디자인에 저먼실버로 만든 모델은 조금 더 비싼 14.5달러. 특급배달은 2달러 추가.



짧았던 켄터키 릴의 전성기

18세기에 영국에서 탄생해 미국에 전해진 멀티플라이어는 미국인들의 손에 의해 켄터키 릴로 거듭나서 베이트캐스팅릴로 진화를 시작했고, 다시 기호품에서 생활용품으로 대량생산, 대량소비되는 대중적인 현대의 베이트캐스팅릴로 완성되었다. 그 뿌리에 켄터키 릴이 있었다.

미국의 앵글러에게 있어서 켄터키 릴에 대한 자부심은 상당한 수준이며 켄터키 릴을 다루는 전문서적도 존재할 정도이다. 또한, 릴 수집가들에게는 인기도 높아 고가로 거래되곤 한다.

켄터키 릴이 만들어지던 시대에 미국에는 켄터키주에만도 수많은 릴 제조업체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외의 지역에서도 많은 수의 베이트캐스팅릴 제작 업체가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헤돈(Heddon), 플루거(Pfluger), 셰익스피어(Shakespeare) 등 대형 종합 조구업체가 창업하면서 미국의 낚시 시장은 거대화되기 시작했다.

18~19세기, 귀족이나 부호들의 사치스러운 취미생활 위주였던 영국의 낚시 시장과 달리 미국의 낚시 시장은 서민의 여가생활을 위한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공산품으로서의 생활낚시 도구 위주로 빠르게 변모해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에서 발명된 멀티플라이어는 고향인 영국에서는 인기가 없어 차차 사라져갔고 그 자리는 플라이릴이나 새로 발명된 스피닝릴이 대신했다. 영국에서부터 수십만 리, 대서양을 건넌 ‘멀티플라이어’는 미국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베이트캐스팅릴’이 되었다.



1992년에 초판 발간된 ‘Fishing reel makers of KENTUCKY’. 저자가 수집하고 확인한 켄터키 릴 제조자들이 수록되어 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인 1940년 Pfluger 카탈로그. 베이트캐스팅릴의 대당 가격은 2~6달러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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