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는 소양강 탁수 저감 대책을 주제로 인제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그동안 수십 년 동안 많은 탁수 저감 대책이 있었으나 효과가 없었고, 하천은 여전히 탁수로 훼손되고 있으며 소양호에서는 녹조현상까지 심해지고 있다. 탁수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하천에서 수생태계 건강성을 악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다.
토양 침식이 돌틈을 메워 저서동물 서식처 파괴
토양 침식으로 발생하는 탁수와 유사는 하천 바닥에 쌓여 자갈을 덮어 돌틈을 메우고 저서동물의 서식처를 없앤다. 물벌레라고 부르는 곤충의 유생들과 연체동물은 돌틈에 살면서 돌 표면의 부착조류를 긁어 먹는데 돌 표면과 틈에 토사가 쌓이면 서식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어류는 물벌레를 먹이로 살아가며 돌틈에 알을 낳아 붙이는데 돌틈이 토사로 메워지면 먹이도 없어지고 산란장도 없어지니 토사로 덮인 모래 하천은 동물이 사라진 죽음의 하천으로 변해 간다.
하천을 휩쓸고 간 탁수는 호수로 흘러들어 녹조현상의 원인이 된다. 탁수가 녹조현상을 일으키는 이유는 녹조현상의 원인인 인 성분이 많기 때문이다. 가축 분뇨로 만들어지는 퇴비는 동물이 배설한 인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작물의 영양소 요구에 비해 인이 과다상태다. 인은 더 이상 분해되는 물질이 아니므로 퇴비를 부숙할 수록 함량은 높아진다.
인은 토양 입자의 표면에 잘 흡착하므로 밭에서 발생하는 탁수는 인의 농도가 거의 생활하수에 가깝다. 인은 호수에서 녹조현상을 일으키는 핵심요소이므로 토사에 흡착된 인이 호수에서 서서히 용출되면 비온 뒤 2주 정도 지나 녹조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동안 청정호수로 알려진 소양호에서도 근래 녹조현상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유역에서 유출되는 인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주요 근원은 퇴비로 보고 있다.
탁수로 인해 호소의 경제적 가치 하락
탁수로 인한 피해는 하천 수생태계 훼손과 소양호의 녹조현상뿐 아니라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하락과 경제적 피해로도 이어진다. 소양강 상류 내린천과 인북천의 탁도가 높아지고 탁수 기간이 길어지며 하상에 흙이 증가하자 관광객이 줄어들어 주변의 민박집과 상점들이 쇠락하고 있다면서 20년 전의 청정하천과 번성하던 관광사업을 추억하고 있다. 탁수가 발생하는 지역은 양구군과 홍천군이고 피해지역은 인제읍이니 상하류간 지역갈등으로도 증폭되고 있다.
한강 상류의 탁수가 심해지기 시작한 것은 거의 30년 전인 1995년경부터이다. 그전에는 큰 비가 내려도 소양강은 맑았고, 탁도도 낮고 발생 기간도 짧았다. 그러다가 농촌 트랙터 보급이 증가하면서 토양 교란이 증가하여 탁수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소양강 상류의 3개의 주요 지천 가운데 내린천과 인북천 두 곳은 지금도 비만 오면 탁수가 흐르는데 탁도가 높고 탁수 기간이 과거보다 길어져 하천에 토사가 쌓이고 수생태계의 건강성이 악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 토론회에서 탁수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임야 불법경작이었다. 지적도상 임야인데 현장에서는 밭으로 이용하고 있는 사례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국유림인 경우도 있고 사유림인 경우도 있는데 국유림마저 이렇게 훼손되고 밭으로 개간되어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는 반응이었다. 주택을 짓거나 공장을 지으면서 국유림을 점거했다면 당장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촌에서는 임야를 밭으로 만든 불법경작 사례가 부지기수로 많은데도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양강 상류 홍천군의 국유림 불법 경작지 사례(사진 김범철).
밭 경계에서 산림을 채토하며 밭을 넓히는 불법경작.
임야 불법경작으로 토양 유실 증가
임야와 접한 밭 소유자에게 임야 개간은 매우 큰 유혹이다. 우선 산을 파내어 개간하면 밭이 넓어진다. 그리고 산을 파낸 흙은 밭에 덮어 주는 객토용으로 이용된다. 경사진 밭을 오래 경작하면 고운 입자의 표토가 유실되어 몇 해 지나면 토양의 지력이 떨어진다. 이때 새 흙을 퇴비와 섞어 덮어 주면 포토와 양분이 공급되고 흙이 부드러워 작물이 잘 자란다.
객토를 하려면 어디선가 새 흙을 구해야 하는데 바로 옆의 산에서 파내면 해결되니 밭의 경계가 점차 임야로 파고드는 것이다. 과거에는 지적 측량을 하지 않으면 임야를 경작하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정부에서 굳이 비용을 들여가면서 밭과 임야의 경계를 측량하려 하지 않았으니 조금씩 임야를 개간하여 밭을 넓히면 은밀히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항공사진과 전자지적도를 겹쳐서 대조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모든 불법경작이 밝혀진 것이다.
하천부지 불법경작도 흔하다. 지적도상 하천 너비에 비해 현재의 하천은 절반도 안 되게 좁혀진 곳이 수없이 많다. 하천부지 점유는 임야 불법경작보다 사례가 더 많아 전국의 소하천에서 흔한 상례라고 보아야 한다. 좁혀진 하천에서 폭우 시 수변 침식이 쉽게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고 탁수를 가중시킨다. 임야와 하천부지 불법경작이 많은 곳에서는 전체 경작지 면적의 20% 이상에 이르기도 하니 지적도를 무시하고 토지를 변형하는 행위가 얼마나 흔히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경작지 전수조사 후에도 대다수 불법경작 방치 중
불법경작이 탁수발생의 주요 원인의 하나로 지목되는 이유는 정상의 밭보다 토양 침식이 더 심하기 때문이다. 임야는 대부분 경사도가 큰 지형인데 이곳에 밭을 만들면 경사도가 크기 때문에 강우 시 토양이 더 많이 침식되고 퇴비도 더 많이 유실된다. 경사도에 따른 토양침식량을 예측하는 모델에 따르면 평탄한 경사도 1%의 밭에 비하여 5%인 밭은 20배, 10%인 밭은 50배, 15%인 밭은 100배 더 많은 토사를 유출시킨다. 경사도가 토양 침식량에 큰 영향을 주는 주요 인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강 상류인 강원도에서는 경사도 15% 이상인 밭이 전체면적의 28%에 이른다고 하니 경사가 큰 밭들이 토양 침식량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임야 불법 경작지는 대개 경사가 큰 곳이기 때문에 불법 경작지의 면적은 20%일지라도 토양 침식량은 대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 침식되는 토사는 표면에 퇴비와 비료에 기인하는 인을 흡착하고 있기 때문에 경사가 큰 밭은 인의 유출량도 커서 호수 녹조현상으로 이어진다.
밭의 경사도 뿐아니라 트랙터의 보급 증가로 밭떼기의 크기가 커진 것도 탁수 증가의 원인이 된다. 지적도상으로는 소유주가 여러 개로 나뉜 작은 밭들을 한 사람이 임대하여 대규모로 경작하는 사례가 많다. 밭을 잘게 나누어 계단식 경작지를 만들면 토양 침식을 그나마 줄일 수 있지만 트랙터가 작업하기 위해서는 계단과 구거가 불편하기 때문에 계단과 구거 하천을 뭉개버리고 밭떼기를 크게 만들어 경사면을 트랙터가 오르내리면서 밭갈이를 하는 것이 침식을 증가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임야를 침범한 밭의 일부는 과거 지적도 작성 시 오류로 인하여 지적불일치가 발생한 곳도 있다고는 하는데 전혀 지적도와 맞지 않는 엉뚱한 경작지도 많고 면적도 지적도상 면적보다 월등히 커서 명백하게 불법경작인 곳이 수없이 많다. 이미 항공사진으로 전수 조사되어 있는데도 이를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불법경작을 바로잡아 하천생태계를 살리고 녹조현상도 줄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