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자본주의의 지구적 확산은 자연을 능동적 행위자로 바라보는 토착 세계관들의 소멸을 가져왔다. 그 결과 오늘날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는 서구 합리주의적 인식체계가 매개하지 않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200여 년 전, 비글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지금의 라플라타(La Plata) 유역에 닿은 찰스 다윈 또한 그러했다. 훗날 진화론으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연속성을 주장한 그였으나, 23세이던 당시에는 인간에 의한 자연의 지배와 둘 사이의 존재론적 간극에 대해 무비판적이었다.
그는 팜파스(Pampas) 평원과 파라나강 수변의 저개발을 가리켜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이 ‘신의 선물을 내다버린 격’이라며 비하했고, 오랫동안 자연과 유기적 관계를 맺어 온 라플라타 유역의 원주민들을 ‘야만인’으로 치부했다. 그는 50년 안에 파타고니아 네그로강 이북의 원주민들이 아르헨티나 토벌대에 의해 절멸할 것이라 예견했으며, 실제로 오늘날 주류 아르헨티나인의 자화상에서 토착 유산의 흔적을 확인하기란 어렵게 되었다.
일정 마지막 날 낚은 22kg 골든도라도. 세계 기록 25kg도 2006년 이곳에서 나왔다.
댐에서 5분 거리 군용 막사를 개조한 숙소.
살토그란데댐 방류량이 조과를 좌우한다. 수문이 열리면 활성도가 치솟아 곳곳에서 보일링이 발생한다.
북미와 유럽 낚시인들의 최고 스포츠 대상어를 찾아서
나는 10년 넘게 세계의 유명 루어낚시 대상어들을 추적하며, 그들이 토착 우주관 내에서 지니는 역할과 인간과 맺는 관계에 대해 연구해왔다. 라플라타강에는 골든도라도(Salminus brasiliensis)라는 이름의 금빛 초대형 카라신목 육식어가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100년도 더 전에 영국 정치인 존 힐이 라플라타 지류들을 탐사하며 골든도라도를 낚은 경험을 책으로 엮었다. 그만큼 골든도라도는 유럽과 북미 낚시인 사이에 최고의 스포츠 대상어로 정평이 나 있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도라도를 낚아본 이들의 경험담을 흔히 접할 수 있었고, 이를 참조해 적절한 장비(스피너베이트, 크랭크베이트, 4호 PE 합사, 80파운드 인장강도의 와이어 리더, 300번대 베이트캐스팅 릴, 배스용 XXH급 낚시대)를 구비했다.
존 힐이 책에 공들여 묘사한 낚시 명소 살토그란데(Salto Grande) 폭포는 1974년 이후 길이 3km에 달하는 거대한 수력발전댐이 들어서 수몰되었지만, 아직도 우기를 맞아 소상하는 도라도가 우글거린다고 했다. 현재 댐 수문 앞은 어느 낚시 전문 여행사가 우루과이 정부로부터 어업권을 취득해 독점적으로 관리 중이다. 사장 패트릭과는 SNS를 통해 오랫동안 연락해온 사이였기에 성수기임에도 흔쾌히 예약이 성사되었다.
모든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토착 세계관 속 골든도라도에 대한 정보는 끝내 발견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정복자들을 신대륙으로 이끈 전설의 황금도시 ‘도라도’가 함축하는 식민주의적·합리주의적 시각을 벗어나, 이 물고기와 보다 대등한 관계로 마주하고 싶었다.
금괴를 연상시킨 13kg짜리 도라도
12월 16일,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서 패트릭이 보낸 운전사와 만나 우루과이강으로 향하며, 다윈이 영국에 비해 ‘흥미롭지 못하다’고 폄하했던 동부 팜파스 평원을 감상했다. 천편일률적인 풍경이 4시간 가까이 이어졌고, 간간이 차가 파라나강을 건너는 동안에도 밋밋하고 혼탁한 강의 모습이 큰 감흥을 전해주지 않았다.
어느덧 도착한 콩코르디아 국경검문소에 패트릭이 마중 나와 있었다. 말할 때 상대를 똑바로 쳐다보는 그의 눈에 열정과 정직함이 묻어났다. 그가 안내한 숙소는 고위 장교용 막사를 개조한 호텔로, 살토그란데 댐이 내려다보이는 부지에 자연 용천수가 솟는 노천탕을 갖추고 있었다. 벨벳 소파가 놓인 응접실에서는 미국 조지아 출신의 중년 부부 캐서린과 래리가 일정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낚시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는 사이, 네 가지 접시로 구성된 정찬이 나왔다. 열대우림 야영에 익숙한 나에게는 낯선 호사였다.
식사 후 숙소에서 1km 떨어진 선착장에서 첫 낚시에 나섰다. 현지 가이드들은 며칠 전 상류 브라질 쪽에서 내린 폭우에 대비해 생미끼까지 공수해 두었지만, 나는 루어낚시를 청했다. 가이드 후안은 바다용 폽퍼로 수문이 쏟아 붓는, 물기둥이 굽이치는 강 우안의 현무암 지대를 공략하자고 권했다. 후안의 예상대로 돌무더기 곳곳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 폽퍼를 뒤쫓으며 수면을 갈랐으나 탁한 물 때문인지 입질로 이어지진 않았다.
한 시간가량 애태우자 후안이 스피너베이트로 수문 앞 깊은 수심을 공략해보자고 말했다. 그가 우측 수문 턱밑에 배를 대는 순간을 노려, 미국인 루어 제작자 커밋 아담스가 오로지 이곳을 위해 만든 특제 5온스 스피너베이트를 물살에 태웠다. 두 번째 시도 만에 수면 근처에서 명료한 입질을 받아냈으나, 곧이어 녀석이 공중제비를 하며 바늘을 털어냈다.
금괴를 연상시키는 작은 도라도였다.
같은 방법으로 엇비슷한 씨알을 두어 마리 더 놓쳤고, 마침내 네 번째 입질 만에 13kg이 넘는 제법 우람한 녀석을 걸어 골든도라도의 세계적 명성을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폭발력은 시클리드목의 피콕배스나 농어목의 바라문디·파푸안배스 등 여타 유명 스포츠 대상어에는 못 미쳤다. 그러나 지구력은 탁월해 배 가까이 끌려온 뒤에도 수 분간 물살을 타며 버텼다.
뱃전에 들어 올려진 뒤에도 양턱을 거푸 여닫으며 저항했는데, 그 안에는 작고 예리한 삼각형 이빨이 한 줄씩 나 있었다. 온통 뼈로 된 입 안에는 바늘이 파고들 연한 살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금빛으로만 보였던 몸통에는 미세한 검은 반점이 빼곡하게 즐비했다.
숙소 주변에 출몰한 카피바라 무리. 겨울엔 호텔 노천탕에서 몸을 녹인다.
트롤링으로 잡은 수루빔메기. 급류를 즐기며 어식을 한다. 성체는 2m까지 성장한다.
“그란데(크다)!” 오랜 저항 끝에 떠오른 대형 골든도라도. 바늘털이와 지구력이 일품이다.
정원에 사는 아르헨티나 흑백테구. 온순하다는 평과 달리 사람에게 돌진했다.
존 힐의 1932년 세계 기록과 동일 크기의 도라도를 낚다
이튿날부터는(12월 17~18일) 수문이 닫히며 수위가 급감했고 물도 더욱 혼탁해졌다. 방수로 인근은 수심이 깊어 고기의 밀집도가 높았지만, 조금만 벗어나도 수심이 3m 내외로 얕아지고 입질도 뜸해졌다. 어쩔 수 없이 배는 하루 종일 수문 코앞만을 오갔다. 게다가 대물들은 웬일인지 입을 꾹 닫아버렸다. 나는 금세 도라도 낚시에 싫증이 났다.
대신 라플라타강 수계의 또 다른 대형어 수루빔메기(Pseudoplatystoma corruscans)를 한번 낚아보고 싶어, 후안의 조언대로 대형 크랭크베이트를 배로 끌고 다니는 트롤링 기법을 시도했다.
30분도 채 되지 않아 뱃전에 기대 꾸벅꾸벅 졸던 중 엉겁결에 입질을 받았다. 수루빔은 메기보다는 상어에 가까운 생김새였고, 도라도 못지않은 날렵함으로 한참 강심을 누볐다가 결국엔 허연 배를 드러내며 끌려와 꺽꺽 숨을 내쉬었다.
사진을 찍을 때 보니 가슴지느러미 안쪽에 꼬챙이 같은 가시를 숨기고 있었고, 끈적끈적한 점액에서는 쾨쾨한 냄새가 났다. 두 갈래로 갈라진 꼬리지느러미에는 피라냐인지 도라도인지 모를 무언가에 뜯긴 상처가 나 있었다. 녀석을 돌려보낸 뒤 우리도 일찌감치 선착장으로 배를 돌렸다. 우루과이강에서의 내 할 일을 그것으로 마쳤다고 생각했다.
해질녘에는 한 무리의 카피바라가 숙소 근처를 배회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나직이 꽥 소리를 지르며 물가로 물러났다. 이윽고 노천탕이 있는 정원에 난데없이 1m는 족히 될 테구 도마뱀이 나타나 어린아이들에게 달려드는 소동이 벌어졌다. 나 역시 야밤에 생수를 가지러 응접실로 가다가 계단에 웅크린 솥뚜껑만 한 두꺼비를 밟을 뻔해 혼비백산했다. 골든도라도와 수루빔은 물론, 이 두 동물 모두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에는 등장하지 않는 존재들이었다. 다윈이 ‘흥미롭지 않다’고 쓴 이 저지대가 사실은 생명력으로 넘쳤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12월 19일, 수위가 점차 줄면서 연안 곳곳에 그동안 몰랐던 현무암 암초가 드러났다. 오전에 드디어 수문이 다시 열리자 작은 도라도들이 들뜬 듯 수면을 들끓게 했다. 첫날처럼 스피너베이트로 수문 근처를 노렸고, 첫 캐스팅에 30파운드급 근사한 씨알이 올라와 큰 녀석들이 강바닥에 몰려 있음을 짐작했다.
다섯 번째 시도였을까? 투척 후 20초를 셌는데도 채비가 바닥에 닿지 않는 듯해 릴을 감아보니 낚싯줄이 제멋대로 왼쪽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앗, 이미 물고 있구나!’ 황급히 여유줄을 회수하는데 무언가가 낚싯대를 강바닥에 내리꽂을 듯이 채 가버렸다. 나름 용을 써봤지만 이미 물에 처박힌 대 끝은 조금도 들어 올릴 수 없었다.
키를 잡고 있던 브루노에게 큰 놈이라고 알리고 몇 분간 버티자, 도라도는 제풀에 지쳐 금빛 광채를 뿜으며 떠올랐다.
오랜만에 "그란데!"를 외치며 방방 뛰는 후안. 브루노는 보가그립으로 녀석을 턱밑까지 들쳐 올리며 외쳤다. “48파운드(22킬로그램)!” 존 힐이 1932년에 낚은 세계 기록과 같은 크기였다. 그 고기를 마지막으로 나는 미련 없이 우루과이강을 뒤로했다.
탐험의 목적은 원점 복귀 후 그곳을 달리 보는 것
조과만 보면 이번 여행은 성공이었다. 48파운드짜리 대물 도라도, 귀하다는 수루빔메기와도 조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성 대 자연, 인간 대 자연 같은 이항 대립을 전제로 한 서구 합리주의에 비판적임에도, 나와 자연 사이의 관계를 새로이 이해할 범주와 개념을 고안해내는 데에는 미치지 못했다.
도라도 안에서 ‘낚시 대상어’ 이상의 본래적 가치를 발굴하지 못했고,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도 유럽 정복자들이 붙인 ‘황금’ 이외의 적절한 비유를 떠올리지 못했다. 시인 토머스 엘리엇은 ‘탐험의 목적은 원점으로 돌아왔을 때 그곳을 달리 보는 것’이라 했다. 이번 여행은 그 의미에서 실패와 다름없었다.
여행 후 우연찮게 접한 <뉴욕타임스> 기사는 놀라운 사실을 전했다. 우루과이강에서 낚시하며 살던 차나(Chaná) 부족이 박해로 인해 100년도 더 전에 소멸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몰몬교 전도사 블라스 하이메는 어린 시절 부족의 기억 전달자였던 어머니로부터 몰래 배운 차나어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용기를 내어 처음 모국어를 내뱉었을 때는 이미 환갑이었다. 이렇게 세상에 알려진 차나인들의 물활론적 우주관 속에서 인간과 동물은 티후이넴(Tihuinem)이라는 신의 자손이자 형제였다.
물속 세계에서는 악한 피라냐 무리와 맞서 여러 물고기가 연합해 전쟁을 벌여왔으며, 골든도라도와 수루빔메기는 그들을 이끄는 대장이었다. 동물을 수동적 기계가 아닌, 인간과 여러모로 동등한 인격체로 인식하는 차나인들의 세계관을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알았더라면, 나는 라플라타강과 그곳 생명체들을 얼마나 다르게 경험했을까. 이제부터 나의 낚시, 그리고 그 의미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불빛에 모여든 곤충을 노리는 쿠루루두꺼비. 성체는 무게는 2kg에 달한다.
숙소에서는 매일 아침 뷔페 조식이 차려졌다.
강력한 턱으로 먹잇감을 찢는 골든도라도. 반나절이면 새 루어도 너덜너덜해진다.
텍사스에서 온 캐서린과 래리 부부. 함께한 시간만큼 정이 깊어졌다.
수문 앞에서 도라도를 낚은 캐서린. 하루 10마리는 거뜬한 어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