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인 주요 낚시 태클의 기원(33회)
일본 오모리제작소(OHMORI S.S., 大森製作所)의
스피닝릴 제조기술
조홍식 편집위원, 이학박사. 「루어낚시 첫걸음」, 「루어낚시 100문1000답」 저자. 유튜브 조박사의 피싱랩 진행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낚시책을 썼다. 중학교 시절 서울릴 출조를 따라나서며 루어낚시에 깊이 빠져들었다. 9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 지깅 보급과 바다루어낚시 개척에 앞장섰다. 지금은 미지의 물고기를 찾아 세계 각국을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 7월호에 언급한 일본의 오모리제작소(OHMORI S.S., 大森製作所)의 스피닝릴, 통칭 ‘다이아몬드 릴(DIAMOND REEL)’은 1966년에 최초로 스피닝릴 전용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새로운 기어시스템, 일명 ‘하이포이드페이스기어’를 개발해서 오늘날의 스피닝릴이 있게 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그 회사의 자신만만했던 스피닝릴 제조에 대한 기술력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1979년 아웃스풀 스피닝릴이 대세가 된 시대에 등장한 최후의 인스풀 스피닝릴 COMET GS.
20세기에 들어서자마자 영국에서 처음 발명한 스피닝릴은 몇 차례 큰 변화를 거치며 오늘날의 형태와 기능으로 완성되어왔다. 세월을 거치며 큰 변화를 가져온 스피닝릴을 3가지만 들어보자면, 1930년대에 풀베일(full bail)을 갖추고 등장한 영국 하디(Hardy)의 스피닝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낚시계를 점령해 스피닝릴을 대중화한 프랑스 미첼(Mitchell)의 스피닝릴 그리고 1960년대 후반에 스피닝릴 전용 기어를 개발한 일본 오모리제작소(大森製作所)의 스피닝릴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모리제작소가 개발한 스피닝릴 전용 기어는 순식간에 퍼져 당시의 고급 스피닝릴인 스웨덴 ABU나 프랑스 미첼을 눌렀고 결국 ‘일본제품만이 살아남게 만드는 결정타를 날린 것은 아닌가?’라는 약간의 망상이 첨가된 상상을 하기도 한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신기술 개발
1952년에 일본 사이타마(埼玉)현에서 창업한 오모리제작소는 1960년대부터 당시 최고의 스피닝릴이라고 여겨지던 스웨덴의 ABU 카디날 시리즈, 프랑스의 미첼 시리즈와 당당히 경쟁했다. 물론 자사 브랜드인 ‘다이아몬드 릴(DIAMOND REEL)’이라는 마크가 아니라 미국의 셰익스피어(Shakespeare), 플루거(Pflueger) 등의 마크를 달고 있었지만 말이다.
오모리제작소는 세계최초의 스피닝릴 전용 기어시스템인 ‘하이포이드페이스기어’의 개발만이 아니라 스테인리스 메인기어 축, 나사식 핸들, 볼베어링의 최소화, 라인롤러, 다중 드랙와셔 등 릴 설계에 있어서 실용성을 더해 가격 대비 성능이 최고 수준이었다. 그 외에도 1980년에 세상에 내놓은 리어드랙 시스템이 부착된 스피닝릴로 다시 한 번 스피닝릴 시장을 들었다 놓기도 했다. 이 ‘마이콘(MICON)’이란 이름의 릴 덕분에 전 세계의 스피닝릴에는 모두 다 리어드랙이 부착되기도 했다.
오모리제작소는 1960년대 후반부터 스피닝릴 제조에 있어서 자신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구축한 스피닝릴의 주류에서 일부러 벗어나 시대가 지난 구식 스피닝릴을 만들어 판매하는 엉뚱한 일탈도 했다.
1966년에 나온 오모리제작소의 기념비적인 스피닝릴 MICRO7DX. 특허출원을 뜻하는 PAT. PEND 표기도 쓰여 있다.
기술력을 뽐내려 내놓은 모델 2가지
첫 번째 예는 1976년에 생산한 ‘프로라인No.101(Pro Line No.101)’ 모델. 스피닝릴 전용 기어시스템을 새로 개발하고 나서 1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될 웜기어로 구동되는 스피닝릴을 내놨다. 웜기어로 구동하는 스피닝릴은 유럽제 스피닝릴의 최상위 플래그십 모델에 주로 사용되던 것으로 제조가 까다롭고 불량률이 높아 기술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부드러운 릴링감을 만들어내지 못해 가격이 비쌌다. 오모리제작소는 다른 회사와 비교되는 스피닝릴 제조기술 수준을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예는 1979년에 발표한 '코메트G1(COMET G1)'과 'GS'. 이미 아웃스풀 형태의 스피닝릴이 자리 잡은 상황에서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인스풀 형태의 스피닝릴을 내놨다.
이 스피닝릴은 로터의 관성 제어와 균형에 특화가 되어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스피닝릴 성능을 말할 때, 로터가 가벼울수록 회전할 때 관성이 없을수록 좋다고 말한다. 또한, 회전할 때 밸런스가 잘 맞아 진동이 없어야 좋은 스피닝릴이다. 스피닝릴은 베일암의 한쪽에 라인롤러가 부착된 구조상, 반대편에 카운터밸런스(균형추)를 달아 균형을 잡고 진동을 없앤다. 그런데 추를 달면 로터가 무거워지므로 관성 제어에는 역효과가 난다.
유럽제 고급 스피닝릴인 ABU 카디날은 로터 한쪽을 두껍게 만들어 밸런스를 잡았고, 미첼은 납추를 달아 밸런스를 잡았다. 그런데, 코메트G1은 카운터밸런스 없이 로터에 설치되는 부품의 배치만으로 절묘하게 회전 밸런스를 잡았다. 최소형 모델인 GS는 최소한으로 로터 바닥을 두껍게 설계해 균형을 잡았다. 덕분에 코메트G1은 225g, GS는 175g이라는 당시 세계에서 제일 가벼운 스피닝릴이 되었다. 코메트는 다이아몬드 릴이 가장 다이아몬드 릴다웠던 시기, 오모리제작소 전성시대의 제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이 코메트 스피닝릴은 일본의 빈티지 릴 수집가 사이에서 수집 열기가 과열되기도 했다. 인스풀 스피닝릴 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에 등장한 최후의 인스풀 스피닝릴이라는 점, 인스풀 스피닝릴만 존재하던 과거와 달리 신기술로 만들어진 인스풀 타입이라는 점에 낚시도구 비평가들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과열을 부추겼던 것 같다. 발매 당시의 정가는 4,700엔으로 1970~80년대의 스피닝릴로 최상위는 아니더라도 2~3번째 등급 정도는 됐는데, 이런 제품이 과대평가되어 중고품 경매에서 5만엔을 호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1980년에 등장한 MI-CON. 이 릴의 등장으로 전 세계 스피닝릴이 모두 리어드랙화 되었다.
웜기어로 구동되는 Pro Line No.101. 새로운 기어시스템을 개발하고 10년이 흐른 1976년에 마치 기술력을 자랑하듯 시대를 역행한 모델을 출시했다.
오모리제작소가 특허권을 행사했다면?
오모리제작소는 1990년대 초반에 릴 제조에 개성을 잃고 헤매다가 망했다고 7월호에 적었다. 스피닝릴 전용 기어시스템을 개발해 놓고 특허권도 설정하지 않았던 걸까? 당시에 제조된 스피닝릴의 몸통에는 분명 PAT.PEND 표시가 있으니 특허권 설정은 되어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그 특허가 어떤 것에 대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당연히 새로운 기어시스템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다른 제조사들이 오모리제작소가 발명한 기어시스템을 사용해 릴을 제조했음에도 특허분쟁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스피닝릴의 역사는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특허권 분쟁이 끊이질 않았는데 오모리제작소의 특허에 대해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일본의 릴 전문가에게 의견을 물어본 일이 있었다. 그의 대답에는 “오모리제작소만이 아니라 다른 회사들도 나름대로 새로운 기어시스템을 발전시키려고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당시는 업계 전체의 발전을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될 시스템에 대해 특허로 다른 회사를 기소하는 행위 따위는 굳이 하지 않았다”라고 덧붙었다.
대답은 모호했지만,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이 유럽인들과는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스피닝릴을 처음 발명한 ‘일링워스(Illingworth)’가 특허권을 이용해 다른 업체에서는 스피닝릴을 아예 만들지 못하게 했던 30년간, ‘하디’가 풀베일의 특허를 통해 1950년대까지 최고급 스피닝릴의 왕자로 군림했던 일처럼 오모리제작소도 특허를 통해 싸고 좋은 스피닝릴을 1980년대 말까지 한 20년간 혼자서만 만들어 팔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좌측부터 아웃스풀 스피닝릴인 Tackle Auto(1977년), Tackle Auto를 카본수지 보디로 변형한 Career(1985년), Tackle Auto를 거꾸로 인스풀로 변형한 COMET(1979년).
회전밸런스를 위해 납추를 이용한 MITCHELL(좌), 부속 배치만으로 균형을 잡은 COMET(중앙), 로터 일부를 두껍게 만든 ABU 카디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