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 조과? 테크닉?
왜 팁런을 하는가?
김진현 기자 kjh@darakwon.co.kr
에깅과 마찬가지로 팁런 역시 일본에서 건너온 무늬오징어낚시 조법으로 낚싯배에서 하는 일종의 선상낚시다. 팁런이란 ‘초릿대’를 뜻하는 팁(Tip)과 ‘입질, 달린다’는 뜻의 런(Run)을 조합한 단어이다. 말 그대로 달리는 배에서 초리로 입질을 파악하는 에깅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어부들이 배를 타고 에기를 이용해 무늬오징어 조업을 하는 것을 시초로 팁런이 발전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끌낚용 낚싯대에 에기를 매달아 바닥으로 가라앉힌 후 연안 주변을 천천히 훑고 다니는 식으로 무늬오징어를 낚았다. 주로 큰 무늬오징어들이 가을과 겨울에 이런 형태의 끌낚 조법에 잘 낚였는데 이것을 모티브로 일본의 낚시인들이 팁런으로 발전시켰다.
팁런이 에깅보다 쉽다
팁런의 장점은 우선 배낚시가 가지고 있는 장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 연안에서 먼 곳을 노릴 수 있고 암초가 많은 깊은 곳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무늬오징어의 활성이 좋지 않거나 베이트가 부족한 상황에서 무늬오징어가 연안으로 붙지 않을 때 효과적이다.
이런 장점이 부각되어 팁런이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을 당시만 해도 팁런은 무조건 추운 날, 깊은 곳을 노린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팁런의 시즌은 연중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에 무늬오징어가 연안으로 잘 접근하지 않을 때도 가능하며 산란철인 초여름에도 연안에서 멀리 떨어진 해초·암초밭을 팁런으로 노리면 큰 무늬오징어를 낚을 수 있다.
또 하나의 장점은 너무나 쉽다는 것이다. 무늬오징어의 활성이 좋을 때는 가라앉는 에기의 자세만 잘 잡아주어도 입질을 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팁런이 도입되면서 기존의 선상 에깅과 혼합이 되어 제대로 된 팁런이라고 할 수 있는 낚시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선상 에깅의 캐스팅과 팁런이 뒤섞여 어중간한 기법이 되는 바람에 낚시가 더 어려워졌다.
더구나 초반에는 팁런 전용 장비들이 없으면 엉터리 팁런이라고 말하는 등 팁런에 대해 잘 이해 못하고 받아들인 낚시인들이 많아 입문자들에게 더 큰 혼동을 주었다. 현재 일본에서는 전용 장비를 쓰지 않아도 팁런 에기만 사용하면 팁런으로 받아들이며, 낚시의 테크닉보다는 선장이 배를 운용하는 방식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팁런은 조류나 바람에 배를 흘려 무늬오징어가 있을만한 물골이나 암초밭을 훑는 과정이 중요한데 이 때문에 무엇보다 선장의 실력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들 수 있는 장점은 연안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조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낚이는 씨알도 크고 마릿수도 많다. 연안에서는 무늬오징어 떼를 만난다 하더라고 킬로 오버를 30~40마리씩 낚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팁런은 가능하다. 특히 11월을 전후로 무늬오징어가 모이는 자리를 찾는다면 대박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조과를 거둘 수 있다. 일본인들 역시 무늬오징어를 많이 낚기 위해 시작한 기법이 바로 팁런이다.
싱커와 헤드가 일체형인 팁런 전용 에기
우리나라 팁런이 일본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한국과 일본은 낚시터 환경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점을 오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에는 팁런이 상륙한 지 3~4년이어서 그 이해가 조금 부족하고 이 조법의 핵심인 낚싯배 운항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선장이 적다는 것이 문제다.
포인트에 대한 차이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팁런이 이루어지는 수심은 대부분 10~25m이지만 일본의 경우 15~40m가 주를 이룬다. 시기와 지역에 따라서는 수심 60~100m에서도 팁런이 이루어진다. 국내에도 깊은 수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짧은 경험으로 인해 다양한 포인트 개발이 늦고 에깅만 전문적으로 하는 낚싯배들이 적기 때문에 다양한 곳을 탐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팁런의 핵심은 앞서 말했듯 조류나 바람에 배를 흘리며 포인트 위를 지나가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낚싯배가 포인트에 진입하면 배를 멈춘 뒤 흘리기 시작하고 수심과 물밑 지형을 안내하며 에기를 내리라는 신호를 준다. 그와 동시에 곧바로 엔진의 시동을 끈다. 흐르던 배가 포인트를 벗어나면 다시 채비를 올리고 포인트의 위쪽으로 되돌아가 다시 배를 흘리는 식으로 낚시한다. 그러나 남해안의 경우 섬 주위를 벗어나면 바로 사질대나 뻘로 이루어진 바닥이 나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일본에서처럼 낚싯배를 흘리며 팁런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드문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배의 엔진을 켜고 섬 주위를 돌면서 팁런 에기로 바닥을 노린다.
반대로 일본과 바닥 지형이 유사한 동해안이나 제주도의 경우는 조류에 배를 멀리 흘리는 팁런이 가능하다. 국내에서도 팁런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 바로 제주도다. 조류의 흐름에 따라 배를 멀리까지 흘릴 곳이 많고 무늬오징어도 많아 팁런을 즐기는 낚시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고무적인 사실은 2년 전부터 남해의 거제와 통영에서도 먼 바다의 섬을 위주로 배를 흘리는 팁런이 유행해 큰 씨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으로 굳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11월 전후로 1kg이 넘는 대형 무늬오징어들을 마릿수로 낚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시즌을 기다리는 마니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난 해 11월에 국도로 팁런 출조를 해 대박 조과를 거둔 통영의 정노원씨. 팁런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마릿수 조과에 있다.
팁런에 대한 오해
에깅과 마찬가지로 팁런이 일본에서 건너온 장르다보니 많은 정보에 대해 잘못 해석하고 받아들여진 부분이 많다. 팁런이 처음 선을 보였을 때만해도 팁런(TIP-RUN)이 깊은 곳을 노린다고 해서 딥런(DEEP-RUN)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선상에서 연안으로 캐스팅을 하는 방식을 버리지 못해 무거운 팁런 에기를 달고 캐스팅을 하기도 일쑤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팁런 장비 역시 해마다 진화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베이트 전용 장비가 무조건 필요하다고 소개했지만 최근에는 스피닝 장비를 더 많이 사용하는 추세다. 베이트릴 장비의 경우 채비를 내리고 올리기 편할 뿐이지 별다른 조작이 필요 없는 팁런에서는 스피닝릴에 비해 큰 장점을 찾을 수 없으며 무겁다.
팁런 에기 역시 헤드가 일체형이 좋은 가, 분리형이 좋은 가, 추를 다는 것이 좋은 가 등등으로 말이 많았지만 이것 역시 본인 스타일대로 사용하면 그만이다. 에기의 자세가 수평으로 잘 유지만 한다면 어떤 것을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것이 팁런 마니아들의 공통된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