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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연재 I 낚시 꽁트 씁새(237)-선천적 얼간이들
낚시 꽁트 씁새

연재 I 낚시 꽁트 씁새(237)

 

 

선천적 얼간이들

 

 

박준걸 artellar@hanmail.net

 

한바탕 맹추위가 휩쓸고 지나간 다음이었다. 그나마 날씨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코끝으로 들어오는 겨울바람은 매섭기만 했다. 새벽의 한기가 그들의 몸으로 맹렬하게 파고들었다.
“오지게 추운 날씨여.”
총무놈이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솔직허니 이런 날씨에 낚시를 가겄다는 놈덜은 우덜뿐일 거여. 따시헌 집구석에 처박혀 있덜 못하고 이 추위에 뭔 짓거리여? 그것두 저 먼 남쪽나라 갯바우서 모진 바람 맞으문서 낚싯대를 휘두르겄다고?”
회원놈이 쉬지 않고 투덜대는 중이었다.
“지랄을 칼라로 떨고 있구먼. 그랄라문 당장이라두 집이루 기어 들어가!”
씁새가 벌컥 화를 냈다.
“이미 낚시가방 짊어지고 나왔는디 우쩌란겨?”
“그라문 아구리 닥치구 고요히 낚시를 가던가! 이 씨불넘이 조동아리루 낚시 댕길 모냥이여!”
씁새가 회원놈의 옆구리를 걷어차며 말했다.
“썩어빠진 천한 민중들 같으니!”
총무놈이 이죽거렸다.

“시끄러워, 이 부루조아 자식아! 니놈 때미 정은이가 핵을 만들구 지랄을 하는겨!”
씁새가 이번엔 총무놈에게 소리를 질렀다.
“천박스런 백성들, 내가 이번에 전동릴 신상을 샀거등. 열기 잡으러 갈라고. 그런데 네놈들 따위 천박스러운 민중들에게 휩쓸려 결국 갯바위로 올라서는겨.”
총무놈이 지지 않고 떠들었다.
“아마도 정은이가 이 빌어먹을 반동자식을 처형하려고 핵을 만든 걸 거여!”
“추워 뒤지겄는디, 이 호이장놈은 왜 안 오는겨?”
회원놈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아파트 지하주차장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하주차장 입구에서 터덜거리며 걸어오는 호이장놈의 모습이 보였다.
“월레? 저 인간은 차는 안 가져오구 우째 맨몸이루 터덜거리구 오는겨?”
“옘병. 좃돼버렸어. 차가 퍼져가지구 움직이덜 안혀. 날씨가 추우니께 차가 뒤져가는개벼!”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쉰 호이장놈이 말했다.
“차가 뒤져간다구? 젠장. 총으로 차를 쏴서 고통 없이 보내줘야겄구먼!”
씁새가 길길이 날뛰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라문 우쩔껴? 내 차는 국민적 소형차라서 우덜 짐까정 다 못 타는디?”
회원놈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러자 모두의 눈이 신형 레저차량을 구입한 총무놈에게 쏠렸다.
“마님이 쓰신대여!”
총무놈이 먼 산을 보며 대답했다.
“쓰잘데기 없는 부루조아 새끼. 내는 쳐다보덜 말어. 어언 20여 년 전 대청댐 비니루 귀신때미 차를 박살내….”
“닥쳐, 이 뚜벅이 자식아!”
호이장놈이 씁새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예미랄! 이 새벽에 차를 렌트하기도 어렵고….”
회원놈이 애꿎은 낚시가방을 걷어찼다.
“있다! 있어!”
씁새가 휴대전화를 꺼내며 소리쳤다.
“누구? 누가 있는겨?”
호이장놈이 씁새에게 바짝 붙으며 물었다.
“박격포! 이놈이 차가 두 대여! 신형 빤빤한 승합차허구 또 뭣인가가 있댔구먼. 자재 중개업허는 놈이니께 차두 두 대나 가지구 있내벼!”
씁새가 서둘러 전화를 걸었고, 몇 번의 신호가 간 후에 박격포가 전화를 받았다.
“격포여? 그려. 시방 우덜이 낚시를 갈라는디, 호이장 차가 뒤져부렀네? 그려서 자네 차를 이용 좀 허문 우치키 좋을까 싶어서 전화 넣은겨. 그려, 그려! 암만, 그려. 옳지, 그려!”

이후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가는 듯했다. 박격포가 득달같이 달려오기로 하였고, 오히려 호이장의 낡아빠진 승합차보다는 박격포의 신형 승합차에 탑승하여 쾌적한 낚시를 다녀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오는 차가 보였다.
“뭐여? 도라꾸 아녀? 설마… 박격포는 아니겄지?”
“박격포가 도라꾸 타고 댕기겄냐? 엊저녁에 일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오는 주민이겄지.”
그러나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 법이다. 1톤짜리 고물 트럭 한 대가 그들 앞에서 서더니 창문을 열고 박격포의 얼굴이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째 차가 퍼졌다, 그쵸? 그라문 아수운대루 이 차라두 타구 가야 한다, 그쵸?”
“얼레? 이건 무신 개차반이여? 자네 삐까시런 차는 우쩌구 이 도라꾸는 뭐여?”
이제는 폐차를 해도 당연할 듯싶은 낡은 1톤 트럭을 보며 씁새가 물었다.
“그 차가 그제 고장이 났다, 그쵸? 그래서 화요일에 찾아온다, 그쵸?”
온몸에 맥이 풀리는 듯했다. 보기에도 안쓰러운 1톤 트럭이라니. 그러나 낚시 가자고 집을 나온 몸인지라,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라문 어쩔 수 없으니께 박격포 도라꾸에 타. 앞에 박격포하고 한 놈이 타고, 세 놈은 짐칸에 타는겨.”
씁새가 트럭의 짐칸에 장비를 올리며 말했다.
“뒤질라구 환장을 한겨? 도라꾸 짐칸에 사람이 타문 불법이란 거 몰러?”
회원놈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안 보이게 천막 뒤집어쓰고 가!”
애초에 낚시를 포기하는 것이 옳았다. 처음 출발을 할 때에는 그저 몸을 가리고 숨기느라 뒤집어 쓴 천막이 추위를 막아주는 듯싶었다. 하지만, 갈수록 칼바람이 파고 들어왔고, 문제는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전해오는 바닥의 충격이었다.
“어욱. 뒤지겄다.”
“커윽. 운전 똑바루 못헐껴?”
이놈 저놈 욕설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온몸으로 전해오는 충격과 고통은 허리 쪽으로 뭉쳐가며 당장이라도 허리가 부러질 듯 아파오고 있었다.
“스톱! 차 세워! 박격포 이 개눔아 차 세워!”
결국 고속도로 쉼터에 차를 세우고는 뒷좌석의 세 놈이 허리를 움켜쥐고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다.
“짐칸은 아프다, 그쵸. 그러면 조수석을 30분마다 바꾼다, 그쵸.”
박격포가 수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지랄 말어! 내는 허리 디스크가 있는 몸이여. 짐칸에 탔다가는 니놈덜은 시체를 데리구 낚시를 가게 될거여!”
여태껏 조수석에 앉아 달려 온 호이장놈이 조수석 문을 꼭 붙잡고 말했다.
“시체 따위 두렵덜 않으니께 비켜! 그러구 운전두 번갈아 가문서 혀! 이대루 가다가는 죄다 허리 병자들만 맹길어 내구, 온 동네에 쌩과부들 창궐헐 판이여!”
씁새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결국 회원놈이 운전을 하고 조수석에는 씁새가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30분 후에 짐칸에 있는 총무놈과 호이장놈이 그들과 교대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씁새의 안중에는 그따위 약속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밟어!”

 

30분이 지나자 짐칸에서 세 놈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으나 씁새의 얼굴에는 비열한 웃음만 떠오를 뿐이었다.
“30분이 지났는디?”
운전을 하고 있던 회원놈이 씁새를 보며 말했다.
“약속은 깨지라고 있는겨!”
씁새가 비장하게 속삭이고는 짐칸 쪽으로 돌아서더니 소리를 질렀다.
“고요히 혀! 우덜 차 뒤에 고속도로 순찰대 붙었단 말여! 천막 단단히 쓰구 숨소리도 내덜 말어!”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비명 소리와 천하에 듣기 어려운 욕설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새는 조수석을 양보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뼈마디까지 찌르는 짐칸 바닥의 냉기와 고물 트럭이 요동칠 때마다 허리로 전해오는 고통을 또다시 감수하기란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고물 트럭은 갖은 욕설과 신음소리를 짐칸 가득히 싣고서 장장 7시간을 달려 거제대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이 개호로 씁새야! 도저히 못 견디겄다! 경찰 나리들. 여기 불법이루 짐칸에 타고 가는 종자덜이 있슈! 내 좀 잡아가유!”
견디다 못한 호이장놈이 천막을 걷어내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미 고속도로는 끝나 있었고 아침 태양이 그들을 비추는 중이었다.
“당장 세우지 않으면 씁새, 네놈의 머리통을 감생이 밑밥으로 던져주마!”
아픈 허리 때문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짐칸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총무놈이 끙끙거리며 외쳤다. 역시 호이장놈도 박격포도 짐칸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소리만 질러대는 중이었다.
“조졌다. 회원놈아… 거제도 터미널루 차를 몰아라.”
씁새가 아침 태양에 붉게 물든 얼굴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대루 가다가는 증말루 생과부덜 맹길겄지?”
회원놈도 체념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전서 떠나올 때 바닥에 뭣이라두 깔구 왔으문 좀 괜찮았을라나?”
회원놈이 웅얼거리듯 물었다.
“본디부텀 불법이루 떠나온 놈덜이여.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구 왔어두 이라문 안 되는겨. 고요히 입 닥치구 버스 타구 되돌아가자구.”
트럭이 거제도 터미널로 들어섰고, 짐칸에서는 병색이 완연한 낚시복장의 병자들이 허리를 붙잡고 애처로운 신음소리를 지르며 내려섰다.
“그러문 낚시는 끝이다, 그쵸? 그럼 왔다가 간다, 그쵸? 내 차 조수석에 누군 타야 한다, 그쵸?”
박격포가 허리를 움켜쥔 채 트럭의 운전석에 오르며 말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대꾸하지 않은 채, 터미널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거제도 터미널 대합실에는 한동안 낚시복장을 한 환자들이 널브러져 슬픈 신음소리를 연발하다가 홀연히 대전행 버스를 타고 사라졌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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