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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연재/낚시 꽁트 씁새(234)-나의 집은 어디인가?
낚시 꽁트 씁새

연재/낚시 꽁트 씁새(234)


 

나의 집은 어디인가?

 

 

박준걸 artellar@hanmail.net

 

 

“인자 그만허구 치워유!”
보다 못한 씁새의 아내가 거실바닥에 퍼질러 앉아 낚시도구를 만지고 있는 씁새를 보며 소리쳤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꺼내 와서는 점심 때 지나고 저녁 때가 다 되가는디, 여즉지 조물딱이문 워쩐대유? 청소는 누가 할껴?”
그야말로 거실 한가득 씁새의 낚시도구로 가득 차있었다. 소파에 일렬로 나란히 세워진 낚싯대들, 바닥에 줄 세워진 찌들, 베란다 쪽으로 널브러진 낚싯줄들, 텔레비전 앞으로 정렬되어 있는 릴들, 그리고 잡다한 낚시용 물품들이 발 디딜 틈조차 주지 않으려는 듯 거실에 가득했다. 씁새가 쏟아놓은 낚시용품에 한동안 호기심을 보이던 고양이들도 이제는 따듯한 거실을 빼앗긴 불만스러운 얼굴로 주방 쪽 김치냉장고 위로 피신해 있었다.
“새해가 되었는디, 인자 새로이 준비해야 허는겨.”
씁새가 릴에 기름을 칠하며 대답했다.
“그눔의 준비는 노바닥 허문서 새삼시럽게 뭔 준비를 혀유? 괜히 연휴라구 집안 청소라두 허라니께 허기 싫어서 끄집어 낸 거지 뭐여유?”
사실 그랬다. 아내가 입버릇처럼 달고 있었던 집안청소가 죽기보다 싫었던 것이다. 베란다 물청소도 해야 하고, 고양이들 화장실도 청소해야 하고, 베란다 가득한 화초들 손도 봐야 하고, 방방마다 청소해야 하고, 거실도 치워야 하며 주방도 정리해야만 한다. 올해도 낚시 편히 다니려면 연례행사로 집안 대청소 한번쯤은 해 줘야만 했다.
“오늘만 휴일이 아니잖여? 내일두 휴일인디, 낼 허문 될 것인디….”
“잘두 허시겄수. 오늘은 바다낚시장비 꺼냈으니께, 내일은 민물낚시장비 꺼낼 거 아녀유?”
씁새의 가슴이 뜨끔했다.
“언능 치워유!”

 


뒷머리를 벅벅 긁고 있는 씁새를 본 씁새의 아내가 주방 쪽으로 뒤돌아서며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씁새의 고통스러운 오후를 알리는 전화가 씁새의 아내에게 전해져왔다.
“그려. 그려? 응… 그려. 그려? 아! 그려. 그려, 그려. 알았어, 그려!”
휴대폰을 끈 씁새의 아내가 씁새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매우 사악한 눈빛으로 말했다.
“언능 치우셔유. 우덜 집이서 오늘 반상회 헌다니께 거실 비워야 혀유. 그러구 당신은 워디 낚시가게라두 댕겨오셔유. 여자덜 떠드는디 괜시럽게 집에 우두커니 있어봐야 뭐 허겄슈? 30분 후에 모두들 온다니께 언능 치워유!”

그랬다. 오늘이 반상회를 가장한 동네 여자들 수다 떠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씁새의 집에서 반상회를 한다고 얘기를 들었지만,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은 시간 30분. 미친 듯이 치우고 집을 빠져 나가기엔 너무 빠듯했다. 부랴부랴 박스에 이것저것 챙겨 넣고 가방마다 정리 안 된 릴대 쑤셔 넣고, 옷가지들 둘둘 말아 배낭에 넣어 낚시방으로 쓰는 골방으로 집어넣자마자 씁새의 집 초인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쪄! 우쪄! 언능 방이루 들어가유!”
씁새의 아내가 아직도 잠옷 바람인 씁새를 골방으로 몰아넣으며 말했다. 순식간에 동네 똥개 몰리듯 잠옷 바람의 씁새가 골방으로 쑤셔 넣어지고 동네 아낙들의 목소리가 거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상아 아빠는 워디 갔대?”
“휴일이니께 낚시가게에 놀러간 모냥이여. 어여들 들어와.”
“고양이덜이 많이 컸네.”
“겨울이라는디 우째 날씨가 봄날이여.”
“없는 사람덜헌티는 조은겨. 날씨 추우문 난방비 때미 없는 사람덜은 죽어나가는겨.”
“춘생이네는 둔산이루 이사갔다드먼 연락두 엄써.”
골방으로 쫓겨난 씁새는 영락없이 동네 여자들 이야기나 하염없이 듣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여자들이 생각하기에 남자들의 얘기란 게 별 시덥지 않겠지만, 남자들이 여자들 얘기 듣기에도 별 시덥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꼬박꼬박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비좁은 골방에서 꼬부리고 잠을 자기에는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 집에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마치 죄인처럼 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순간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거실로 나가 여자들 틈에서 히히덕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문득, 호이장놈에게 전화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 수다는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고, 이대로 저녁시간을 훌쩍 넘어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씁새는 자신의 휴대폰을 거실의 텔레비전 앞에 놓아두고 들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미럴!
오도 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거실의 아낙네들이 물러날 때만을 기다려야 할 모양이었다. 골방의 창밖으로 어스름하게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할 때까지 씁새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하염없이 골방 벽이나 쳐다보다가 어쩌지도 못하는 낚시찌나 만지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스멀스멀 잠이 쏟아지는 씁새의 귀에 하필 그 여자의 말이 들려왔다.
“낚시 쫓아가문 여자덜은 우치키 오줌 누는겨? 접때 테레비서 보니께 여자덜이 남자덜허구 배타고 낚시허든디, 우치키 오줌을 누는겨? 배 바닥에 누는겨? 아니문 참는겨? 얘기 들어 보니께 대여섯 시간은 배에서 꼼짝을 못하구 낚시헌다든디, 우치키 해결하는겨?”
순간, 씁새의 방광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낚시장비 정리한다고 정신이 팔려 있던 때부터 지금까지 몇 시간을 화장실을 못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덜은 병 쪼가리만 있어도 해결되는디, 여자덜은 요강이라도 주는겨?”
거실에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낭자하게 피어올랐고, 씁새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피어올랐다.
-예… 예미랄. 오줌보가 한계여. 터질 지경이다….
씁새가 중요부위를 부여잡고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상황으로 보아서는 거실에 모인 아낙들이 저녁식사까지 배달해서 씁새의 집에서 해결하며 수다를 떨 기세였다. 요즘의 아파트들은 화장실을 거실과 분리시켜 현관 입구에 설치하지만, 씁새의 아파트는 완벽한 구식 아파트여서 거실에 붙어 있는 구조였다. 따라서 화장실을 가려면 거실을 가로질러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잠옷 차림으로 여자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한참을 끙끙거리던 씁새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자신에게 요의를 깨우쳐 준 아낙이 얘기한 그 방법이었다. 빈 페트병에 소변을 보고는 창밖으로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더니 그렇게 굴러다니던 페트병 조각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생각다 못해 아이스박스에 소변을 보고는 아낙들이 가버린 후에 깨끗이 닦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아이스박스마저 공교롭게도 베란다에서 뽀드득 말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고기를 담아올 때 쓰려고 챙겨두었던 흔하디흔한 지퍼백도 보이질 않았다.
방법은 딱 한가지였다. 씁새의 집이 3층. 골방 창문을 열면 아름드리 벚꽃나무가 아파트에 기대어 줄지어 서있다. 저 나무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씁새가 잠옷 차림이라는 것이다. 다시 집으로 들어 올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지만, 그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터져버릴 것 같은, 슬슬 비어져 나오기 시작하는 방광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참다못한 씁새가 낚시용 검정색 우의를 잠옷 위에 뒤집어썼다.
창문을 열자 아름드리 벚꽃나무가 튼실한 가지를 뽐내며 서있었다. 최대한 괄약근에 힘을 주고는 굵은 가지에 발을 얹었다. 아마도 홍도로 낚시 갔을 때 직벽을 타본 이후로 이토록 후들거리며 아래로 내려가 보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설 연휴로 주민들이 여행을 떠난 듯 많은 집들의 불이 꺼져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검은 우의를 뒤집어 쓴 씁새의 몰골에 나무를 타고 내리는 모습을 본 주민들의 신고전화가 빗발쳤을 것이다. 어쩌면 아름드리나무와 어두운 저녁시간 때문에 다행히 들키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겨우 땅으로 내려서자 더 이상 참지 못하는 방광이 입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
“얼레? 여기서 뭐허신대유? 연휴인디 낚시 안 가셨슈?”
겨우 진정하고 어둑한 담 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파트 경비원이었다.
“아… 아… 예, 예.”
사색이 다 된 씁새가 겨우 대답했다.
“비두… 안 오는디…?”
경비원이 어느새 캄캄해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라문… 수고 허셔유….”

경비원이 씁새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쳐다보고는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은 빌어먹을 저녁시간이었다. 경비원이 사라지자 아파트 앞 슈퍼의 호객소리가 터져 나왔고, 장을 보고는 비닐봉지를 들고 오가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주민들의 모습이 뜸한 틈을 타 해결하려 했지만 느닷없이 아파트 길목이 부산스러워진 것이었다. 이제는 어쩌지 못하는 씁새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얼굴로 제일 한산한 아파트 끝동 쪽으로 어기적거리며 내달렸다. 그리고 또다시 익숙한 목소리에 괄약근은 힘을 놓아버렸고, 방광은 제 세상을 만난 듯 힘차게 입을 벌렸다.
“워디 가셔유? 연휸디 낚시 안 가셨슈? 다 저녁때 집이 안 가시구 워디 가시는겨유? 집이 가셔서 마나님허구 언능 요 앞 슈퍼에 가보셔유. 신년 대박세일헌다구 혀서 난리두 아녀유. 온 동네 사람덜이 죄다 뛰쳐나와서는 장 보느라구 난리두 아닌디?”
슈퍼 앞에서 부동산을 하고 있는 정씨였다.
“월레? 뭔 패션이 그려유? 비 와유? 우째 비옷을 껴 입구 댕겨유?”
정씨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씁새의 아래위를 쳐다보며 말했다. 씁새는 발목이 따듯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씁새의 주위로 아파트 주민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그의 요상스러운 옷차림을 힐끗 거렸지만, 왠지 씁새는 행복해지고 있었다.
더구나 밤이었다. 더더구나 비옷이었다. 누구도 그의 하체가 풍성하게 젖어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아파트 화단으로 냉큼 들어갔기에 맨발이라는 것도 모를 것이다. 다만, 늦게야 씁새의 아파트 바로 옆동에 호이장놈이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리 멀리까지 소변보겠다고 뛰어오다 실수하는 일은 없었을 것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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