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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낚시 꽁트 씁새(228)-나는 낚시꾼이다.
낚시 꽁트 씁새

낚시 꽁트 씁새(227)


 

나는 낚시꾼이다.

 

박준걸 artellar@hanmail.net

 

“또 한바탕 벌리신 거유? 그저 시간만 나면 거실 바닥에 죄다 늘어놓고 그놈의 먼지는 누가 닦으라는겨?”
딸과 함께 마트에 다녀온 마누라의 잔소리가 문이 열림과 동시에 쏟아져 내렸다. 마누라가 마트에서 돌아오기 이전에 낚시장비 정리를 끝내자고 했건만, 낚시꾼 살림살이가 그리 만만치는 않았던 것이다.
“내… 내가 치우면 되잖여…”
씁새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번 주에도 또 낚시 가는 거야?”
딸마저도 도끼눈을 뜨고 물었다.
“좁은 거실에 아빠 물건 때문에 앉을 자리가 없네!”
딸아이가 키득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아직도 거실에는 줄을 매다 만 낚싯대들과 종류별로 나누어야 할 찌들과 소품들이 가득했다. 그늘에서 졸고 있던 고양이마저 뛰어 나와 늘어진 낚싯줄을 물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아까 동그리찌를 굴리며 놀다가 씁새에게 된통 혼나고는 구석으로 숨어있었던 터였다. 자신을 가장 예뻐하는 주인들이 오자 힘을 얻은 모양이었다.
“월레? 세탁기에 빨래가 그대루 아녀? 세탁기 다 돌았으문 베란다에 널라구 했잖여유?”
주방 쪽에서 마누라의 질책이 한 움큼 또 날아들었다.
“어… 그… 그려? 그… 잘못 들었지… 그… 그랬나?”
“못살아, 진짜. 당췌 도움이 돼야 말이지! 낚시 갔다 오면 세탁거리만 한보따리 앵길 줄만 알지, 집안일 하나 손대는 게 없어요.”
세탁기의 문이 요란하게 닫히고 바구니에 가득한 빨래를 들고 거실로 나오며 마누라가 또다시 도끼눈을 부라렸다.
“이것 좀 치워봐유. 가뜩이나 좁아터진 거실에 이렇게 깔아 놓으문 우치키 사람이 댕기라는겨?”
마누라가 낚시가방을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베란다에 아이스박스는 다 말랐으문 치우라구 했슈 안했슈? 안적두 여기 널부러져 있음 우짜는겨유?”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마누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씁새의 신경을 파고들었고, 씁새의 손은 네 칸 대 낚싯대의 초리에 줄마저 매지 못할 정도로 부들거리고 있었다.
“그게… 인자… 이것 다 허구 치울라구 혔는디.”
씁새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적두 고양이 화장실 안 치우구 뭐하는겨? 베란다 청소두 해 달라니께 원제 할라는겨유?”
“금방 할 거라니께…”

 


씁새가 주섬주섬 장비들을 챙겨 넣으며 대답했다. 지난주에 격포로 농어낚시를 다녀오고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처박아 두었던 장비들을 꺼내어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저 배낚시 다녀왔으니까 배낚시용 장비만 손질하면 그만이겠지만, 낚시꾼이란 것이 그렇게 체신머리 없이 딱딱 재놓고 살지 못하는 법이다.
배낚시 장비 꺼내 정리하다 보면 다른 장비가 궁금해지고, 또다시 소품들마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민물장비, 바다장비에 소품들까지 모두 꺼내어 정리해야 흡족해 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모든 낚싯대에 새 줄 매고, 찌 갈아 달고, 구명조끼의 주머니에 장비 달려있는 것 확인하고… 그 절차가 심히 복잡하고 고단해지기 일쑤였다.


잔소리를 쏟아대던 마누라가 베란다에 물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충 정리를 끝낸 씁새가 장비들을 서재로 옮기고는 멀뚱하게 거실에 서 있었다.
“뭐해유?”
“뭐… 헐거… 없는겨?”
“다 했슈!”
“그… 그렇구먼…”
 이쯤 되면 낚시꾼은 천덕꾸러기일 수밖에 없었다.
“저녁 해야 허는디, 파허구 두부를 잊어버리구 안 사왔으니께, 요 앞이 수퍼에서 사와유.”
“그… 그려…”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폭풍처럼 쏟아지는 마누라의 잔소리를 피할 기회인 것이다.
“아빠, 올 때 메로나.”
화장실에서 나온 딸아이가 씁새에게 말했다.
“흐미! 사타구니가 떨려서 못 앉아 있겄네!”
아파트 현관을 나온 씁새가 몸을 부르르 떨고는 중얼거렸다.
“얼씨구? 이건 무슨 개짓거리여?”
슈퍼를 가기 위해 단지를 걸어 나오던 씁새의 눈에 아이들 놀이터의 벤치에 처량하게 앉아있는 호이장놈을 본 것이었다.
“씨벌눔이 만나는 인사가 아주 지랄맞어.”
호이장놈이 다리를 꼬며 말했다.
"뭐여? 우째 나온겨?“
씁새가 호이장의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말두 마라. 예미랄… 우째 집구석이 지옥불에 앉아있는 느낌이여. 낚시보따리 풀었다가 뒤지게 혼나고 쫓겨 나왔다.”
호이장놈이 한숨을 폭 쉬며 대답했다.
“얼씨구? 니놈두여? 내두 낚시장비 정리허다가 쿠사리만 먹다가 나왔다.”
씁새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년이문 환갑인디, 안적두 마누라들헌티 기죽어 살아야 허다니 죽을 맛이여. 아예 낚시보따리 싸들구 낚시터에서 평생 살라고 하드라.”
“그려두 말여, 몇 년 전까지는 곧잘 낚시허는디 따라 댕기구 그라드만, 여편네덜이 인자는 따라 댕길 생각을 허덜 안혀. 요즘은 낚시터마다 여조사덜이 부쩍 늘었는디 말여.”
씁새가 입맛을 쩍 다시며 말했다.
“사는 게 각박해지구 살림살이가 줄어드니께 그러는 거여. 우덜이야 주구장창 낚시나 해대던 놈덜이니께 그렇지만, 마누라덜이야 어찌 그려? 애덜 시집장가 보내야지… 노후준비두 허야는디 모아놓은 돈두 없지… 먹구 사는 것두 걱정인디 무신 낚시를 쫓아 댕기겄어? 있는 놈덜이나 그러겄지.”
“우찌된 게 IMF 때보다 더 혀.”
씁새가 침을 탁 뱉었다.


“뭐 혀?”
그들 앞을 버티고 서며 총무놈이 물었다.
“이 부루조아 새끼는 뭐여?”
씁새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박 사장네서 신상 입구 오는겨, 불쌍한 인민들아.”
총무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시방 입고 있는 그 옷이 신상이여?”
“그려.”

 


“지랄두 풍년이여. 옷이냐구 새벽 세시에 의류수거함에서 몰래 주워 입고 온 개뿔떼기 같은 것을 걸치구 신상이여?”
씁새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낚시는 뽀대여. 천민놈들.”
“꺼져! 낚시할라구 탈북한 부르조아 새끼야.”
“고향이 논산이여, 호국의 요람. 근디… 뭔 일들이여?”
회원놈도 벤치에 앉으며 물었다.
“뭐긴 뭐겄냐… 모처럼 휴일에 낚시 안 가고 장비나 정리할라다가 잔소리 듣는 불쌍한 낚시꾼이지.”
호이장놈이 한숨을 폭 쉬며 말했다.
“낚시꾼은 우찌됐든 간에 집구석에서는 천덕꾸러기여…”
이번엔 씁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니께 이번 주도 가자 했잖여!”
총무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개눔아! 한 달에 두 번만 가기루 약조를 했는디, 그 약조마저 깨면 그야말로 쫓겨나는겨! 우리 마누라 얘기가 내가 낚시한다고 처들인 돈을 나라에 기부했으문 대운하를 왕복 십이차선을 뚫었을 것이라고 하드만.”
씁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옳은 소리여. 우덜이 낚시 댕긴다구 쓴 돈 따져보문 그 돈이루 평생 먹고 남을 괴기를 사고도 남을껴.”
“그걸 아는 놈이 낚시를 댕겨?”
“그려서 낚시 댕기는 내가 미친놈이라구 노바닥 얘기허잖여?”
“인류의 수렵행위를 부정하는 이교도 자식!”
“시끄러워! 담 주에 낚시 워디루 갈껴?”
되도 않는 얘기를 내뱉던 씁새가 소리를 질렀다.
“격포. 민어낚시.”
총무놈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부루조아 새끼…”
호이장놈이 총무놈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랄은 담 주에 허도록 허고, 저녁시간 다 되으니께 어여들 들어가 봐. 천덕꾸러기 낚시꾼이래두 배는 채워야 할 것 아녀?”
씁새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며 말했다.
“그려, 어여 들어가서 마누라의 나머지 잔소리나 들어야겄네.”
호이장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며 씁새의 마음 한 구석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 천덕꾸러기로 변하며 늙어가는 낚시꾼의 심정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중늙은이의 갑갑한 일상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볼일 보고 밑을 안 닦은 듯 한 찜찜함이 집으로 들어가는 내내 씁새의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찜찜함이 현실이 된 것은 현관문을 열고서야 밝혀졌다.
“아빠! 내 메로나…”
빈손으로 털레털레 들어오는 씁새를 보고 딸아이가 실망 어린 얼굴로 말했다.
“파하구 두부 사오랬드니 워디서 뭘 하다 그냥 들어온대유? 우치키 심부름 하나 지대루 허덜 안해유? 그저 낚시 갈 때만 제정신인 거 같어.”
마누라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현관으로 나왔다.
“내… 다시 가서… 사오까?”
“냅둬유. 내가 다녀 올라니께. 우치키 휴일날 하루 집안일두 지대루 안 도와주는겨?”
마누라가 현관문을 소리 나게 닫고는 사라졌다.
“예미…”
중늙은이에 천덕꾸러기에 그저 할 줄 아는 것은 낚시밖에 없는 씁새가 현관 앞에 조용히 서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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