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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낚시꾼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낚시 꽁트 씁새

낚시꾼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씁새가 다시 시계를 보았다. 이미 시간은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씨벌. 존나 처밟으란 말여! 내가 뒤지는 꼴 보지 않을라면.”
그렇지 않아도 씁새의 성화에 땀을 삐질거리며 운전하고 있는 호이장놈에게 씁새가 소리쳤다.
“니놈이 처맞아 뒤지는 것이 우덜 소원이여. 쓰벌눔아!”
호이장놈이 탄식처럼 대답했다.
“그러게 왜 낚시를 간겨? 오늘 같은 날은 집구석에 처 박혀있어야지. 니놈때미 우덜까정 제수씨헌티 덤이루 욕 처먹게 생겼잖여.”
뒷좌석에서 총무놈이 빈정거렸다.
“예정대루라면 5시 무렵이문 낚시 끝내구 고속도로를 타겠거니 했지. 그라문 넉넉히 저녁 8시문 집에 들어갈 것인디….”
씁새가 얼굴을 쥐어짜며 말했다.
“쓰벌눔이 지놈 마누라 무서운 건 알아가지구… 그러게 왜 그냥 돌아가재니께 방파제서 학공치 잡겄다구 낚싯대를 펴구 지랄이여? 그만 가자구 혀두 지랄하문서 낚싯대 휘두른 놈이 누구여?”
총무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라문 낚시꾼이 방파제에 떼루 몰린 학공치 보구서 그냥 발길을 돌릴껴? 그걸 보구서 눈알이 뒤집히덜 않을 꾼이 워디 있는가?”
“지랄 말어. 눈알 뒤집히는 것은 니놈뿐이여. 그나저나 오늘 씁새, 니놈은 제삿날이다. 모두덜 씁새 사망 축의금이나 준비해둬.”
총무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개눔의 자식…”
씁새가 얼굴을 한껏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사이로 노기를 가득 품고 도끼눈을 한 마누라의 얼굴이 문득 문득 떠올랐다.
“예미럴… 그눔의 학공치만 아니었어두… 제기럴… 인자 뒤졌다.”
씁새가 울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오늘이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기일이었다. 장인어른의 기일이 공교롭게도 평일에 걸려 몇 년간 마누라 혼자만 처갓집에 다녀오게 했었지만, 이번에는 토요일에 기일이 걸려 씁새의 마누라가 며칠 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당부한 터였다.
“이번에는 꼭 가야 혀. 3년 만에 제사에 참석하는 거니께 알아서 혀! 괜히 낚시 간다고 얼렁뚱땅 넘어갈라면 가만 안 둘껴. 낚싯대를 죄다 분지를 테니께.”
그러나 금요일 저녁에 거제도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사태는 최악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거제 동부낚시점 장 사장이 감생이가 지천으로 널렸다는 말만 안했어도, 갯바위에 서서 신발짝으로 두들겨 잡을 정도로 감생이가 물 반 고기 반이라는 허풍만 치지 않았어도 이 지경으로 틀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놈의 성포리 방파제에 학공치만 몰리지 않았더라도….

토요일 새벽, 호이장과 총무놈을 불러 모은 씁새는 필히 오후 8시까지는 돌아오겠다고 마누라에게 사정사정을 하여 거제도로 떠나오게 된 것이다.
“만약! 이를 어기고 낚시에 빠져서 시간을 엄수치 못할 경우에는 향후 6개월간 낚시 출조를 봉인하도록 서약함”이라는 각서까지 써놓고 말이다.
장 사장 말대로 굵직한 감생이 네 마리에 때글때글한 노래미까지 다섯 마리를 잡았건만 낚시꾼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지라, 4시에 갯바위에서 철수하고는 돌아오는 길에 가조 연륙교를 지나오다가 성포리 방파제에 늘어선 꾼들을 보게 된 것이다. 잠깐 무슨 일인지 보고 가자고 했던 것이 떼로 몰린 학공치를 본 순간 틀어지고 말았다.. 잠깐만 해보자고 한 것이 두 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것이었다.
결국 4시에 철수하여 3시간이면 집에 도착해서 8시경에는 옷 갈아입고 처갓집으로 출발할 것이라는 계획은 흔하디 흔한 낚시꾼의 헛공약으로 끝나고 말았다. 8시가 넘어서야 고속도로에 올라선 호이장의 승합차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한 도로 위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예미럴! 우리나라는 땅덩어리는 좁아터졌는디, 자동차는 지랄나게 많이 맹길어 놨어. 이게 고속도로여? 골목길두 이것보담은 널널할껴! 좌우간 이번 대선에서 자동차 생산을 당분간 중단시키겄다는 공약을 내지르는 후보헌티 투표할껴!”
씁새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드디어는 씁새가 미쳤구먼. 에또… 인자 씁새놈은 향후 6개월간 낚시금지니께, 내일 일요일은 씁새 빼고 낚시 가능헌 우덜끼리 비인 쪽이루 출조해보자구. 그짝이루 우럭이 제철이라니께 배낚시나 한번 해 보는 게 우뗘?”
총무놈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암만! 시끄럽고 사고치는 놈 없이 고요허니 참이루 즐겁고 유쾌시런 낚시가 되겄구먼.”
호이장놈이 맞장구를 쳤다.
“개눔아! 니놈은 입 닥치고 발모가지가 바숴지도록 밟으란 말여. 지랄 같은 똥차라서 나가덜두 않는구만.”
씁새가 호이장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씁새의 가슴은 불안과 회한, 공포가 가득했다.
“그래봤자 이미 늦은겨. 8시는 이미 지나갔고, 11시가 다 되어가는디 인자 도착해야 뭣을 할껴?”
총무놈이 이죽거렸다. 불 켜진 집보다 불 꺼진 집이 더 많은 아파트가 적막에 쌓여 있었다. 마치 씁새의 불안과 공포, 좌절감처럼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악마의 무게로 쏟아져 들어오는 듯했다.
“그럴 리는 없겄지만, 만약 내일 아침까정 살아 있으문 전화라두 혀. 그나저나 향후 6개월간 니놈 얼굴 못 보게 되었구먼. 삼가 명복을 비는 바여.”

호이장놈과 총무놈이 씁새의 아파트 입구에서 내려주며 말했다.
놈들이 떠나자 또다시 불안과 공포가 씁새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씨벌… 인자 내는 뒤지는겨… 6개월 낚시금지… 부러진 낚싯대…’
씁새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5층 씁새의 집은 이미 불이 꺼져 어두운 베란다 창이 가로등 불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마누라는 자는 것일까? 아니면 혼자서 처갓집으로 가서 안 돌아온 것일까?’
차라리 후자이길 빌었다. 그러나 씁새와 같이 가지 않는 이상은 마누라 혼자 처갓집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씁새의 휴대폰에 수없이 찍힌 마누라의 전화번호가 오후 11시에는 집 전화번호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11시에 찍힌 집 전화번호는 ‘오냐! 너 두고 보자. 네놈 헛공약 때문에 나도 제사에 못 갔다. 이제 네놈을 요절내주마’라는 뜻일 것이다. 혼자 처갓집으로 갔다면 마누라의 휴대전화 번호이거나 처갓집 전화번호가 찍혀야 할 것이니까. 씁새의 두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1층. 무거운 낚시가방과 아이스박스, 그리고 낚시가방을 둘러멘 씁새가 들어섰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당당허게 집이루 들어가?… 아녀… 그것은 죽자고 호랑이 아가리에 대가리를 디미는겨.’

죽을상이 된 씁새가 1층 계단으로 올랐다.
“쿵!”
“떠헉! 으흐흑!”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르던 씁새가 아이스박스가 난간을 치며 소리를 내자 비명을 질렀다. 간이 콩알만해지며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씁새가 동태를 살폈다. 큰소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집에서도 기척이 없어 보였다.
아이스박스는 어깨를 잡아 뺄 듯 엄청난 무게로 눌러왔고 손에 든 낚시가방은 손마디마디에 박혀왔다. 낚시가방은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질 듯 온몸을 휘청거리게 했다. 벽이나 난간에 부딪히게 하지 않으려고 도구들을 몸으로 바짝 붙이다보니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 같았다.
‘니이미… 우째 갯바우 낚시보다 집이루 올라가는 것이 더 힘들구먼. 씨이불. 씨이불.’
2층. 아직도 잠을 자지 않는 듯, 203호 현관 아래 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이 집은 얼마나 행복할까… 이 시간에 소파에 길게 누워 텔레비전이라두 보고 있겄지… 내는 뭐여… 이 무거운 짐을 지고 도적놈처럼 발걸음 죽이며 이 고생을 허야 하다니…’ 씁새의 눈에 핑그르 눈물이 돋았다.
3층.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온 아파트를 울리는 듯했다. 이제는 들고 멘 짐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집 현관을 열고 들어서야 하는 공포가 더욱 무거워졌다.
4층. 이제 한 층만 더 오르면 되건만, 가슴의 고동이 파도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가슴에서 고동치는 심장소리가 아파트를 울리는 듯했다. 문득,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워졌고, 낚시라는 짓거리를 배운 자신의 인생이 처참해지기 시작했다.
5층. 드디어 자신의 집 현관에 선 씁새의 심장은 아예 터질 듯 고동치고 있었다. ‘그냥 이 현관 앞에 쭈구리구 밤을 새우는 것은 우뗘? 그라문 아침에 마누라가 내다보구서 측은히 여겨 주실지도….’
마침내 결심한 씁새가 열쇠를 꺼냈다. 끼이익… 현관 손잡이가 조심스럽게 돌아가고 어두운 실내가 복도의 불빛으로 환해졌다가 이내 어둠에 싸였다. 현관에 잠시 선 씁새가 두 귀를 최대한 세워서 집안의 모든 소리를 살폈다. 조용했다.
무거운 공기가 방안 가득했고, 짙은 어둠이 마치 벽돌이라도 쌓은 듯 두꺼워 보였다. 최대한 조용히, 숨소리마저 죽인 씁새가 짐들을 현관 구석에 내려놓았다. 거실의 시계가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발걸음을 죽인 씁새가 발꿈치를 들고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 손잡이를 잡은 씁새의 머릿속에는 어두운 침대위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무시무시한 안광을 쏘아내는 마누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낚시꾼 씁새는 사라졌다. 아니여! 안적 기회는 있다. 마누라 앞에 무릎 꿇고 비는겨. 제대루 차 타고 오다가 호이장놈이 사고를 냈다고 헐까? 그건 내일 아침이면 들통 날 것이고… 태풍이 불어서 우덜 데릴러 배가 안 왔다고 핑계를 대볼까? 그것두 일기예보 보문 들통 날 것인디… 그저 무릎 꿇고 비는겨… 젠장! 씁새의 낚시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얼굴에 수심을 잔뜩 드리우고, 최대한 비굴하고 처량한 표정으로 가다듬은 씁새가 안방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나 안방에는 고요히 잠든 마누라의 숨소리만 가득했다. 씁새의 비굴한 표정이 흐트러지고 가슴 깊은 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조용히… 고귀하신 마누라님께서 행여 잠에서 깨어나실까봐 공손히 안방 문을 닫은 씁새가 비어져 나오는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옷을 벗었다. 대충 얼굴과 손발을 씻은 씁새가 거실에 홑이불을 깔고 누웠다. 아직도 두근거리는 가슴과 긴장과 공포로 쪼그라든 몸이 서서히 펴지며 씁새가 깊은 잠으로 빠져 들었다.

문득 눈을 뜬 씁새의 귀에 주방 쪽에서 도마 소리가 들렸다. 마누라의 아침 준비가 한창인 모양이었다. 이미 거실에는 햇볕이 가득했다. 미안하고 죄송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범벅이 된 씁새가 부스스 일어났다. 그때 갑자기 얼굴 왼쪽 뺨으로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뺨에 손을 가져다대자 얼얼한 기운이 스쳤다.
‘이… 이건 뭐지? 꿈에 나뭇가지에 뺨을 세게 부딪치는 꿈을 꾸었는디… 이건 뭐지?’
쓰리고 아픈 통증으로 욱신거리는 뺨을 어루만지며 씁새가 주방 쪽을 바라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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