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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씁 새(189)_대물은 없다(하)
낚시 꽁트 씁새

대물은 없다(하)

 

“안 돼.”
둔산낚시점 총무이자 이번 낚시대회 총책임자인 장 총무의 의지는 단호했다.
“여기 초청장두 가져왔는디, 뭣이가 안 된다는겨? 낚시인들의 축제의 장에 삼가 모십니다. 그려서 이렇게 삼가 달려왔는디, 우째서 삼가 안 된다는겨?”
씁새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이 썩을 씁새! 그 초청장이 우째 네놈 손에 들어갔는지 모르겄지만, 니놈허고 개차반낚시회는 초청자 명단에 없다, 이 말이여! 그니께 어여 사라져. 초대 받덜 못한 불청객이 어디 와서 행패여? 자리 추첨허고 규정 설명허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니께 자네는 다른 저수지루 가서 고요히 밴대나 잡어.”
장 총무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그려? 안 된다 이 말이지? 증말루 안 된다 이 말이지?”
씁새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리고는 본부석 앞에 모여 있는 대회 참가자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존경시런 낚시인 여러분, 고요히 혀고 지 말 좀 들어보셔유.”
갑자기 씁새가 소리치자 웅성거리던 참가자들이 조용해졌다.
“지가유, 시방 주최 측이루 나와 있는 이 밴대종자… 아니, 장 총무허고 예전에 조금 일이 있었슈. 그니께 10여 년 전에 이 밴대종자가 이렇게 낚시대회를 열었거든유? 그런디 이 썩을 밴대종자가 워디 대회 장소라구 데려간 곳이 그야말루 밴대새끼만 판을 치는 몹쓸 저수지였다 이거여유. 게다가 뭔 놈의 낚시터 수심이 애새끼 발모가지 차는 웅덩이 수준이었다 이거지유. 찌가 서덜 않는겨. 이 썩을 장 총무놈 물건처럼 말여유.”
씁새의 너스레가 이어지자 참가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씨부럴 씁새! 이게 워디서 행패여. 조동아리 안 닥칠껴?”
장 총무가 본부석 자리에서 뛰쳐나와 씁새를 말리고 나섰다.
“그니께 우덜 참가시킬껴. 아님 니놈 시든 부랄까정 얘기허게 내비둘껴?”
“개늠의…”
장총 무의 눈이 불똥이 떨어질 듯 이글거렸다.
“혀서, 지가 이 장 총무헌티 밴대종자라구 별명을…”
“닥쳐! 이 개늠의 씁새야.”
장총무가 씁새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고 나섰다.
“이 든적시런 놈이 뒤지는 날은 국경일루 정해야 할 것이여.”
장총무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리고는 본부석으로 돌아가 주최 측의 사람들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좌우간, 니놈은 고요히 뒤지지는 않을 것이다. 밤길이 무섭덜 않은겨?”
호이장놈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썩을 밴대종자가 삼가 모신다구 혀놓구 삼가 와주니께, 삼가 퇴짜를 놓고 지랄이여.”
씁새가 침을 찍 뱉었다.

“좋아. 니덜 개차반낚시회두 참가허는 것으루 했으니께 지랄은 이쯤 허자고. 대신 니덜 낚시회서 참가헐 수 있는 인원은 두 명이여.”
장 총무가 인상을 부득부득 쓰며 돌아와 말했다.
“예미럴! 우덜이 호이장허고, 총무놈허고 내허고 세 명인디, 우째 두 명만 참가헌다는겨?”
“지랄 말어. 생각 같아서는 당장 내쫓고 싶지만, 참가명단에 결원이 생긴 게 딱 두 명이여. 그니께 한 사람은 참가 못혀.”
“이 씨부랄 밴대종자.”
씁새가 본부석으로 돌아가는 장 총무의 등을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대회 규정은 개인별로 집계를 허는디, 붕어든, 잉어든, 두 종류의 괴기의 총 합계 길이로 승부를 가리겄습니다. 시간은 오후 4시까정으루 허고, 그 안에 두 종류의 괴기 중 삼십 센티 이상을 잡았을 때, 참가선수덜 등 뒤에 있는 주최 측 심판에게 잡았다고 이야기허시면 지덜이 달려가서 계측을 허고, 계측헌 고기는 본부석에 마련된 통에 보관허겄습니다. 개인 보관은 무효이니께 잘 유념허시고, 삼십 센티 이상의 붕어나 잉어를 잡으시면, 우덜이 즉시 마이크로 어느 선수가 잡았는지, 현재 총 길이는 얼맨지 소상히 중계허겄습니다.-

“예미!”
가위 바위 보에서 지는 바람에 낚싯대를 펼치지도 못한 씁새가 대회장인 저수지를 빠져나와 저수지 상류의 논 쪽으로 걸어가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수지 위에서는 대회 규정을 알리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왔다.

- 에또, 낭중에 계측과 잡은 선수가 일치허는지를 심사허기 위해서 잡은 괴기는 선수가 싸인헌 꼬리표를 달아서 본부석 통에 보관했다가, 대회가 끝나문 참가선수들과 함께 재검측을 헐 것이니께 그때 선수 여러분께서 공정히 확인허시문 될 것입니다.

“넨장맞을… 대충 허문 될 것이지 뭔 괴기를 잡자마자 그때그때 수거혀서 싸인을 허구 지랄여?”
불만이 가득한 씁새가 중얼거렸다. 저수지를 빙 둘러 주최 측에서 마련한 번호표가 꽂혀있었다. 대회의 규정은 이랬다. 붕어와 잉어만 계측하는 것으로 하고, 두 종 고기의 합계 길이가 가장 긴 선수가 이긴 것으로 하되, 잡은 고기가 계측 후 남에게 건네지는 꼼수를 막기 위해 잡자마자 주최 측에서 계측하고 꼬리표를 붙여 본부석에 보관하였다가 나중에 대회가 끝난 후 모든 선수가 집합한 후 다시 그 고기들을 계측하여 최종 우승을 가린다는 것이다. 일견 번잡스러울 수 있으나, 잡자마자 어느 선수가 얼마의 길이를 잡아서 총 합계 길이가 얼마라는 중계가 실시간으로 나오게 되므로 선수들의 투지를 불태우는 효과도 노린 것이다.

본부석 뒤에는 낚은 고기를 보관할 커다란 붉은 플라스틱 통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할 일 없어진 씁새가 산 위로 올라가 약초라도 뜯어볼까 하는 중이었다.
“할머니 뭐 허신대유?”
저수지 상류의 논이 끝나는 곳의 작은 밭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할머니를 발견한 씁새가 다가가며 물었다. 흘깃 씁새를 돌아본 할머니가 다시 묵묵히 호미질에 열중했다.
“고추 모종내는 거여유?”
씁새가 다가가 물었다.
“낚시허러 온겨?”

할머니가 뜬금없이 물었다. 허리가 굽다 못해 땅에 닿을 듯 꼬부라진 할머니의 얼굴에는 시골 촌로의 생활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그… 그게 아니구유, 지는 그냥 귀경 나왔슈.”
씁새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딱히 자신의 지금의 처지가 낚시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지랄… 남의 논배미 죄다 뭉개구 깨춤 추는 놈들이 오늘은 아조 단체루 나와서 지랄옘병이여…”
할머니의 말에서 가득 꽂혀있는 가시가 보였다.
“그… 그렇지유. 뭐 낚시헌다고 저수지 돌아댕기문서 논두렁 조지는 놈덜이 한둘인가유?”
씁새가 뻘쭘하게 대답했다.
“지난번에 비 왔을 적이 낚시허는 놈덜이 우덜 논빼미를 죄다 조져 놓은겨. 우덜 할아버지가 물꼬 보러 간다구 나갔다가 무너진 논빼미 잘못 밟구서는 허리 다쳐서 안방서 자리 보전허는 중이여. 썩을 놈의 종자덜. 낚시 왔으문 괴기나 잡아갈 것이지, 우쩌자구 넘의 논빼미 절단 내서 사람을 잡을라구 지랄여?”
할머니가 호미를 땅에 박으며 말했다.
“그… 그렇군유. 썩을놈의 종자덜이구먼유. 좀 진중허니 다니문 워디 덧나남유?”
씁새가 나지막히 대답했다.
“한둘 돌아댕기는 것은 그러덜 않는디, 저 지랄루 대회헌다구 우르르 몰려와서는 이리 뛰구 저리 뛰문서 넘의 밭뙤기부텀 논빼미까정 죄다 뭉개잖여. 마이크루 괴기 잡는 거 우찌허라구 떠들문서 우째 넘의 재산 망가트리지 말라구 떠들지는 않는겨? 오살을 맞을 놈덜. 우리 영감 허리 다친 건 원 놈이 보상허는겨? 저 지랄루 단체루 와서 북닥거리는 놈덜 보문 아조 부애가 난다니께.”
할머니가 손을 탈탈 털고 일어서서 저수지의 본부석을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뽑은 풀포기 몇 개를 들고 밭머리로 걸어가는 할머니의 등이 휠대로 휘어있었다.

“뭔 소리여? 괴기가 없다니? 누가 괴기통 관리헌겨?”
“지두 구신이 곡할 노릇여유. 우째 잔 괴기는 죄다 냅두구 큰 놈이루 몽땅 사라졌는가유? 어디 안 가구 지가 여기 괴기통에 붙어있었는디유?”
장총무가 얼굴이 흙빛이 되어가며 대답했다.
“내가 잡은 잉어 팔십 센티짜리 워디 간겨? 저 짝이 장건우 선수가 사십팔 센티 붕어 잡았다구 중계허더만, 그 괴기는 또 워디 있는겨? 주최 측 농간이여?”
“밴대종자라드만, 잡은 괴기 빼돌리구 밴대루 채울라는겨? 대회가 사기 아녀?”
“내 괴기 워디 간겨? 붕어, 잉어 잡은 거 합쳐서 백이십사센티라구 중계허고 괴기 낼름 가져 가더만, 워디루 빼돌린겨? 내 괴기 워디 있는겨?”
선수들의 고함소리와 주최 측의 고함소리가 대회장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었다.
오후 4시가 되어 대회가 끝나자 모인 선수들과 주최 측은 황당한 사태에 직면했던 것이다. 종일토록 잡아내며 중계하고 보관했던 고기들 중에 가장 큰 고기들이 몽땅 사라진 것이다. 붉은 물통에는 40cm 이하의 고기들 몇 마리만 꼬리표를 단 채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1, 2위를 다투던 대물들은 몽땅 증발한 것이다.
선수들의 악다구니는 높아지고, 주최 측은 이 황망한 사태에 땀만 흘릴 뿐이건만, 씁새는 멀리 떨어진 풀밭에 앉아 매우 순진하고 정말 순박한 얼굴로, 이 세상에 없을 가장 온화한 표정으로 맑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일촉즉발의 사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뭐래유?”
밭일에서 돌아온 할머니가 옹색한 부엌의 구석에 놓인 물통을 들여다보고는 놀라 소리쳤다.
“뭔 일여?”
방 안에서 할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허드렛물을 받아놓는 커다란 플라스틱 물통 안에 큼직한 잉어들과 붕어들이 가득 들어 퍼덕이고 있었다.
“이 괴기를 누가 놓구 갔남유?”
할머니가 자신의 팔 길이만한 잉어를 쳐다보며 물었다.
“몰러. 아깨 누군가 와서는 부엌에서 첨벙거리드만, 누구냐구 물었더니 방에다 대구 할머니허구 이 괴기덜 푹 과서 드시문 허리가 쉬이 나슬 것이라고 말허드만. 방에 누워 있느라구 그 사람 얼굴은 못 봤어. 그러구 무너진 논빼미 보상허는 것이라구 허든디? 그 괴기가 논빼미 보상헌다구 놓구 간 모냥이여.”
“그게 아닌디유?”
할머니가 아궁이 위에 밥그릇으로 눌러놓은 5만원 지폐 두 장을 집어 들며 조그맣게 대답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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