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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씁 새(189)_대물은 없다(상)
낚시 꽁트 씁새
대물은 없다(상)

 

 

“별일 없으셨슈?”
낚시점 문을 열고 머리만 들이민 채 씁새가 물었다.
“으…헉!”
열심히 진열장을 정리하던 박 사장이 흠칫 놀랐다.
“뭔 유별시런 짓을 허구 계셨남유? 왜 그리 놀라신대유?”
씁새가 여전히 머리만 들이민 채 물었다.
“유별시런 짓거리는 또 뭐여? 들어올라면 어여 들어오구 나갈라문 어여 나가! 볼썽사납게 대가리만 디밀구 뭔 짓거리여?”
박 사장이 진열장을 닦던 걸레를 내던지며 말했다.
“그라문 세월에 지친 다리나 쉴 겸 들어갈까유?”
씁새가 배시시 웃으며 낚시점으로 들어왔다.
“우째 패거리덜은 냅두구 혼자서 돌아댕기는겨? 왕따 당헌겨?”
“누가 지를 왕따 시켜유? 왕따는 지가 시키는 거지유.”
-씨이불넘… 조동아리는 세월이 지나도 늙덜 안 혀.-
박 사장이 씁새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국경일이라구 공휴일이니께 다들 집이서 낮거리 허는 개비지유.”
씁새가 벽에 걸린 채비들을 만지며 건성 대답했다.
“지랄맞은 놈! 말을 해두 그따구루 혀. 그라는 너는 우째 낮거리 안 허구 놀러 나온겨?”
“했슈!”
-개늠의 자식!-
박 사장이 다시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란디… 우째 골방이 텅 비었구먼유? 여기서 노바닥 고도리 잡음서 집문서 따먹기 허든 성님덜은 워디 갔대유? 죄다 집문서 날리구 사라진겨유?”
씁새가 골방을 기웃거리며 물었다. 사시사철 고도리꾼으로 북적이던 골방이 훤하게 비어있었다.
“그 양반덜이라구 노바닥 고도리만 치간디? 때 되문 낚시두 댕기구 그라는 것이지.”
“화투패 내리치던 손이루 괴기를 잡으러 가셨대유? 붕어새끼덜이 청단이루, 잉어새끼덜이 홍단이루 보이겄는디? 워디루 낚시 가셨대유?”
씁새가 낚시점 중앙의 테이블에 앉으며 물었다.
“안적 간 것은 아니고, 낚시 갈라고 모여서 회의헌대잖여. 시방 워디서 전략회의 중일 것이여.”
“전략회의?”
순간 씁새의 머릿속으로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고도리 성님덜이 낚시 간다고 움직이는 것은 뭔 커다란 낚시대회가 있을 적에만 움직이는디? 상금두 푸짐혀야 움직이는 양반덜이 전략회의라 함은… 워디서 낚시대회 있어유?”
“몰러!”
박 사장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씁새에게 낚시대회를 일러 준다는 것은 그 낚시대회를 망치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박 사장이다.
10여 년 전, 둔산낚시회 총무가 낚시대회 한번 열었다가 밴대만 줄창 잡아내던 씁새에게 밴대종자라고 놀림을 받고 상욕을 얻어먹은 후에 천하의 앙숙이 되질 않나, 5년 전에 열린 낚시대회에서는 동네 어린애한테 돈 주고 붕어 사다가 계측시간에 내놓았다가 매 맞아 죽을 뻔하질 않나, 대전지역 낚시점 연합낚시대회에서는 잉어 수염을 잘라서는 붕어라고 우겨대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질 않나, 그야말로 낚시대회가 열리면 대형 사고를 치는 놈인지라 낚시대회 기피인물 제1호로 낙인찍힌 놈이 씁새였다.

 

“그라덜 말구 얘기해봐유! 5짜 붕어루다가 상금을 독식해 버릴라니께.”
씁새가 비실비실 웃으며 말했다.
“5짜? 예미… 씁새가 낚시경력 40여 년에 그 흔한 월척 한 마리 못 잡았다는 사실은 낚시계에 소문난 사실인디, 뭔 5짜여? 접때처럼 강준치 30센티짜리 잡아가지구 붕어 월척이라고 바락바락 우길껴?”
“왜 또 그러신대유? 그것이 붕어가 아님 뭐여유? 자꾸 강준치라구 우기시는디, 그놈의 저수지가 물이 말라서니 붕어덜이 못 먹구 못 입어서 배짝 말르는 바람에 강준치처럼 보였던 거지유. 붕어라니께유!”
씁새가 바락바락 소리쳤다.
“호이장놈이 그라드만. 대청댐 밑에서 루어루다 잡은 것이라구. 붕어두 루어루 잡는겨?”
박 사장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씨이불넘의 호이장!”
씁새가 테이블을 탕 내리치며 이를 갈았다.
“그니께 낚시대회는 애저녁에 물 건너갔으니께 자네는 개차반낚시회 패거리덜 허구 호젓시러운 저수지서 루어루다가 붕어나 잡어. 자네를 반기는 낚시대회는 없을 것이니께.”
“그라덜 말구 실토해 보셔유. 지가 누누이 얘기 드리지만 시상에 조용히 고요시럽게 낚시 댕기는 사람이 워디 있겄슈? 그랄라문 머리 박박 깎고 속세를 등지는 것이 더 나슨 일이지유. 대체루 낚시대회든 친구덜끼리 가는 낚시든 간에 호탕시럽고 떠들썩해야 허는 겨유. 잔치란 원이가 소문이 나구 시끌벅적혀야 지대루 된 잔치여유.”
씁새가 박 사장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지랄말어. 니놈이 나타나문 시끌벅적한 잔치가 아니라 아수라장이 되니께 그라는겨.”
박 사장이 다가오는 씁새쪽으로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그려유? 그렇단 말이지유? 그니께 박 사장님이 지가 무서워서 낚시대회를 워디서 원제 허는지 안 알려주시겄다…?”
자그맣게 되뇌던 씁새가 갑자기 골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골방은 왜 들어가구 그랴? 어여 나와!”
박 사장이 골방으로 들어가는 씁새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골방으로 들어온 씁새가 다짜고짜 화투판으로 쓰이는 모포를 털었다.
“뭣이여? 기껏 청소해놨는디, 왜 먼지는 날리구 지랄여?”
쫓아온 박 사장이 날리는 먼지를 쫓느라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가만 있어 보셔유.”
원하는 것이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구석에 놓인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했다.
“뭐여? 뭐허는 짓이여?”
느닷없는 씁새의 행동에 놀란 박 사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깨끗허니 비우셨네유? 청소두 참이루 알뜰허게 허셨네유?”
불퉁맞게 대답한 씁새가 방 가운데에 앉아 방 안을 휘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문소리가 들리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계셔유?”
“어… 어서 오셔유.”
손님이 들어오자 박 사장이 손님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저기… 깻묵허구유, 낚시바늘허구, 지랭이 줌 주셔유.”
손님의 주문에 따라 물건을 챙기면서도 박 사장의 머릿속에는 골방에서 하고 있는 씁새의 짓거리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놈이 뭔 짓을 하려구 골방이루 처 들어간겨?-
“그라구유, 케미허구 찌 몇 개 보여주셔유.”
물건을 챙겨주자 손님이 다시 주문했다. 골방에서는 무슨 짓을 하는지 가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케미는 몇 미리루?”
씁새의 짓거리가 궁금한 박 사장이 눈은 골방을 쫓으며 물었다.
“3미리루 주셔유.”
골방에서는 간간히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렸고, 씁새의 목소리는 새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손님이 주문한 물건을 건네주던 순간이었다.
“그렇구먼유! 이번 토요일에 양화지서 낚시대회가 열린다는구먼유? 상금이 푸짐허구먼유?”
씁새의 득의양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헉!”
놀란 박사장이 골방으로 뛰었다.
“우… 우… 우치키 그걸 알아낸겨?”
골방의 중앙에 앉아 웃고 있는 씁새의 손에는 이번 낚시대회 주최 측에서 보내온 초대장이 들려있었고, 녀석의 발 앞에는 고도리패들이 공용으로 물건을 놓아두는 종이상자가 놓여있었다. 필시 초대장을 받은 고도리패들 중 한 명이 가져가지 않고 놓아둔 것일 터였다.

“씁새! 그건 안 되여! 니놈은 거기 참석허문 안 되는겨!”
박 사장이 골방으로 들어서려고 신발을 벗으며 소리쳤다.
“여기… 월매래유?”
박 사장의 등 뒤에서 손님이 물었다.
“그… 그게…”
손님과 씁새를 번갈아 보며 박 사장이 말을 더듬었다.
“어여 손님이나 챙겨 드려유.”
씁새가 초대장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안녕히 가셔유.”
박 사장이 손님에게 인사를 건넨 후 돌아섰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는 사악한 미소를 머금은 씁새가 서 있었다.
“니놈은 그 낚시대회에 참석혀 봤자, 욕만 처먹을 것이여! 아서, 가면 안 되여!”
박 사장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째서유? 노바닥 사고치니께 참석허덜 말라, 이거여유?”
“그게 말이다… 에또… 그 낚시대회 주최 측의 하나가 저기 둔산낚시점이여.”
“근디유? 아까 보니께 둔산낚시점허구 몇 군데 더 있드만유.”
“그것이… 그 낚시대회 총 책임자가 니놈허구 절천지 웬수를 진 놈이다 이거여.”
박 사장이 한숨을 폭 쉬며 말했다.
“그게 누군디유?”
“둔산낚시점 총무… 니놈이 밴대새끼라구 욕을 바가지루 퍼붓던 그놈… 장가놈이여.”
“오호라! 그 밴대구신이 이 낚시대회 책임자여유? 오호라! 이 썩을 놈의 밴대종자!”
씁새의 눈이 쨍 빛을 발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참석해야지유. 개차반낚시회 모두 끌고 가서 지대루 실력을 보여줄 참이구먼유! 그 씨불놈이 애새끼 발모가지 차는 저수지루 끌구 가서 밴대만 실컷 잡게 했던 악몽을 되돌려줄 참이여유! 지달려라, 밴대종자!”
씁새가 호탕하게 웃으며 낚시점 문을 박차고 나갔다.
“저 인간 말종 씁새놈이… 씁새 패거리덜 헌티는 소문 내덜 말아달라구 장가가 신신부탁을 혔는디… 예미… 이번 낚시대회두 조진 거 같다.”
박 사장이 테이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박 사장의 눈에는 낚시점 유리창을 통해 길거리를 신나게 뛰어가는 악마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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