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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씁 새(180)_악처일기
낚시 꽁트 씁새

 

악처일기

 

 

“또 가유?”
거실 가득, 낚시장비를 늘어놓고 끙끙거리는 씁새를 보고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던 씁새의 아내가 물었다.
“초평지서 괴기가 미친 듯이 나온대는겨. 한동안 못 갔으니께 이번에는 지대루 타작을 할 참이여.”
씁새가 낚싯줄을 묶으며 대답했다.
“물괴기가 발이 달렸대유? 지 죽을 줄 모르구 기어 나오게?”
씁새의 아내가 입을 댓발 내밀며 말했다.
“기어 나오남? 지랭이 물고 나오는 거이지?”
씁새가 아내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킁킁거렸다.
“웬만허문 이번에는 낚시 가덜 말지유? 서울서 애덜두 내려온다는디…”
“죄다 커서 낼모레문 시집갈 놈덜인디, 뭔 소리여? 애덜 내려오문 자네가 저녁 같이 먹고 심야 영화라두 보구 오문 되겄구먼.”
“애덜이 지 엄마허구 저녁이나 먹자구 내려오간유?”
씁새의 아내가 장봐온 꾸러미를 식탁에 집어던지듯 내려놓았다.
“애덜두 오구, 내는 낚시두 가구… 시상은 다 그런겨. 다 커버린 놈덜, 원제까지 끼구 살 거여?”
씁새가 바늘을 묶으며 말했다.
“애덜 끼구 살라구 그라는가? 허구헌날 물괴기나 잡으러 다니니께 숨차서 허는 소리지…”
씁새의 아내가 눈을 하얗게 흘기며 중얼거렸다.
“이건 또 뭐여?”
씁새의 아내가 식탁 위에 놓인 비닐봉지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그것이 이번 낚시서 괴기덜 타작헐 비장의 떡밥이여. 건드리지 말구 내비둬.”
씁새가 대답했다.
시커멓고 우중충한 가루가 담긴 커다란 비닐봉지를 흔들어 보던 씁새의 아내가 다시 식탁 위에 비닐봉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장바구니의 물건을 정리하던 씁새의 아내가 다시 비닐봉지로 눈을 가져갔다. 거실에 쪼그리고 앉아 채비를 만지는 씁새와 식탁의 비닐봉지를 번갈아 보던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려서? 증말루 그 비장의 떡밥을 맹길었다는겨?”
승합차의 뒷좌석에 낚시장비를 싣던 호이장놈이 물었다.
“그렇다니께. 붕어 구신이라고 소문난 장창선이가 우째서 낚시만 가문 괴기를 그렇게 잘 잡아 오는 줄 아는가? 바로 그놈이 쓰는 떡밥이 비법이었다 이거여. 혀서 내가 지난주에 장창선이를 만나서 술 사주문서 그 비법을 배웠다 이거여.”
씁새가 킬킬거리며 대답했다.
“확실헌겨?”
총무놈이 승합차에 오르며 물었다.
“쓰벌눔! 네놈은 인생 자체를 속구만 산겨? 장창선이 얘기를 들으니께 일리가 있더라 이거여. 장창선이 쓰벌눔헌티 비싼 술 처멕이문서 알아낸 비법이루 만든 떡밥이니께 효과는 확실헐거여. 냄새두 고소허니 낚시점에서 파는 떡밥허고는 차원이 틀려.”
씁새가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그라문 우덜은 떡밥은 안 살라니께 알아서 혀. 인원수에 맞게 많이 만들어 온겨?”
승합차를 운전하며 호이장놈이 물었다.
“걱정은 붙들어 매둬. 대형 비닐봉지루 가득허니 만들었으니께. 우덜이 1박2일 쓰구두 남을껴.”
씁새가 어둠이 흩어지는 창밖을 보며 씩 웃었다.
“근디… 총무야! 우째 속이 안 좋은겨?”
한참을 졸던 씁새가 뒷좌석의 총무놈을 돌아보며 물었다.
“우째 그랴?”
“니놈 방구 냄새가 몇 십 년 썩은 퇴비냄새라서 그라는겨.”
“빌어먹을 놈! 내는 방구 안 뀌었구, 똥두 안 마려우니께 걱정 허덜 말어.”
“그라문 언놈이 방구 쏴 붙인겨?”
씁새가 코를 막고 물었다.
“그라구 보니께 웬 퀴퀴헌 냄새가 나는디? 호이장아! 접때 바다낚시 다녀오구선 고물차 청소 안 한 거 아녀?”
회원놈이 코를 막으며 말했다.
“이누무 고물차가 수명이 다 됐는개벼. 인자는 냄새까지 나네 그려.”
총무놈도 창문을 열며 말했다.
“아닌디? 바다낚시 다녀와서 물청소혔는디? 그라구 차가 고물이라구 똥내가 나덜은 안 혀.”
호이장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라문 이 근처 어디에 돼지농장이라두 있는겨? 우째 이리 꾸리꾸리헌 냄새가 나는겨?”
씁새가 밝아오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건너편 골창이루 들어갈라고? 지난번 비 때문에 잡목덜이 수몰되야서 대물 노릴 만헐거여. 그저께두 서울 김사장 패덜이 와서는 월척이루 그득허니 잡아갔으니께. 이참에 씁새두 월척 한 수 허야지? 낚시경력 40년이 넘는다문서 월척 한 마리 잡덜 못 했다지?”
보트를 운전하며 박씨가 킬킬 웃었다.
“박사장님은 우치키 그리 심허게 말씀을 허신대유? 지가 월척을 잡을 줄 몰라서 못 잡았겄슈? 그저 물이 좋고, 자연을 귀경허는 것이 좋으니께 괴기 욕심이 없었던 것이지유.”
“말솜씨루 자네를 이겨낼 인물이 어디 흔허겄는가?”
박씨가 껄껄 웃었다.
“예미… 좌우간 이번에 40여 년간 귀경 못 헌 월척을 몰아서 끌어 낼라니께 기대해 보셔유. 초평지 월척을 죄다 도륙낼껴!”
씁새가 저수지에 가득한 물을 노려보며 큰소리쳤다.
“내는 시내에 결혼식 보러 가니께 밤늦게나 돌아올껴. 낼 아침에 데불러 올 것이니께 그리 알어.”
관리인 박씨가 일행을 내려주고는 보트를 돌려 나가며 말했다.
“자~ 자~ 우선 씁새가 만들어 온 비장의 떡밥을 보자구. 대체 우치키 떡밥을 만들기에 장창선이가 그리 괴기를 잘 잡는지.”
대충 낚시장비를 정리하자 호이장놈이 씁새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려! 비장의 떡밥부텀 귀경허자고.”
회원놈과 총무놈까지 잔뜩 몸이 단 표정으로 씁새에게 다가왔다.
“숨죽이고 잘 봐둬. 이것이 번데기가루, 어분, 그리고 마늘가루, 옥수수가루 등등이 황금비율로 조화를 이루었다는 그 비법 떡밥이여!”

 


씁새가 아이스박스에서 큼직한 검은 비닐봉지를 꺼냈다.
“뭐여? 근디 웬 냄새가 이리 나는겨?”
호이장놈이 코를 막으며 말했다.
“월레? 이 떡밥이 썩은겨? 어제 만든 것인디… 썩을 리가 없는디?”
씁새가 검은 봉지를 벗기고 투명 비닐봉지를 꺼냈다.
“뭣이여? 이거이 비법 떡밥이란겨?”
“오잉? 뭣이가 이리 색깔이 드러워?”
“비법 떡밥은 이런 든적시런 냄새두 나는겨?”
드디어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비장의 떡밥을 보며 저마다 한 마디씩 떠들어댔다.
“이… 이건…?”
씁새가 꾸리꾸리한 냄새를 가득 뿜어내는 비닐봉지를 쳐들며 놀라 소리쳤다.
“염병!”
“비법떡밥이 청국장인겨?”
“물괴기덜이 청국장에 환장을 헌다구 장창선이가 일러준겨?”
씁새가 들고 있는 봉지에 담긴 것은 더도 덜도 아닌 청국장이었다. 굳은 청국장을 곱게 부숴서 담아놓은 비닐봉지. 그 봉지 안에서 청국장 특유의 꾸리꾸리한 냄새가 진동하며 새어 나오는 중이었다.
“이거이… 우… 우치키 된겨…”
씁새가 말을 잊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이런 옘병헐 일이 우찌 벌어진겨? 비법 떡밥을 맹길었다구 우덜더러 미끼는 아무 것두 준비허덜 말라구 설레발치더만, 우덜 또 좃된겨?”
총무놈이 길길이 날뛰며 말했다.
“우치키… 저 청국장에서 온전한 콩 조각이라두 건져서 미끼루 쓰문 안 될라나?”
회원놈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문딩이 똥구녕에서 콩나물 대가리 빼먹는 소리 그만 혀! 물괴기덜이 열쳤다구 소금덩어리 콩을 주워 먹겄다구 뎀비겄어?”
호이장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망연자실하여 주저앉은 씁새의 뇌리에 얼핏 스쳐가는 모습이 있었다. 새벽에 낚시장비를 챙길 때, 어제 저녁만 해도 입이 댓발 나와 투덜대던 아내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것저것 챙겨주던 친절한 모습, 그리고 아이스박스에 비장의 떡밥을 조심스레 넣어주던 모습, 그때 어쩐지 아내의 눈빛이 음흉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이… 이… 여편네!”
벌떡 일어난 씁새가 하늘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씁새의 목소리는 골짜기에 가로막혀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이 씨불. 오늘 낚시 좃 됐다. 박씨두 결혼식에 간다더니 전화두 안 받는구먼. 당장 쓸 떡밥두 없는디… 배라두 있어야 나가서 떡밥이라두 사오든지 허지.”
계속해서 관리인 박씨의 집으로 전화를 걸던 총무놈이 풀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 골짜기서 오도가도 못 허고 낚시 공치게 생겼구먼. 이 씁새놈은 평생 도움이 안 되는 놈이여.”
호이장놈도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어느새 씁새의 눈에서는 분노의 눈물이 한 줄기 흐르고 있었다.

“아까부텀 그 봉다리는 우째 계속 쳐다본대유?”
어둠침침한 초평지 골짜기에서 패거리들이 망연자실하여 쓰러져 있을 시각, 씁새의 집에 놀러온 총무놈의 아내와 회원놈의 아내, 호이장놈의 아내가 씁새의 아내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녀의 손에는 문제의 떡밥 봉지가 들려있었다.
“이것이 든적시런 낚시꾼덜 때려잡는 비장의 떡밥이래유.”
씁새의 아내가 깔깔 웃었다.
“우째 괴기를 때려잡지 않고 낚시꾼을 때려 잡는대유?”
“그럴 일이 있지유. 지금쯤 몇 사람 쓰러졌을 거구먼유. 오도가도 못허는 초평지 산골짜기에서, 오호호호!”(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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