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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씁 새(179)_마당 깊은 집
낚시 꽁트 씁새

씁 새

 

세 칸 대 찌에 매달린 찌불이 피라미라가 줄을 건드린 듯 조그맣게 흔들렸다. 바람이 한줄기 지나가고 후텁지근한 땅기운이 다시 피어올랐다.
“그러게 바다루 가자니께…”
입이 댓 발 나온 호이장놈이 투덜거렸다.
“옘병… 이 한여름에 절절 끓는 갯바우서 쪄 죽을 일 있는겨? 그저 한여름에 댐 낚시가 최고인겨. 그만 툴툴거리구 낚싯대나 던져.”
총무놈이 떡밥을 뭉치며 대답했다.
“고약시런 놈! 몇 시간째 살림망에는 구구리새끼 한 마리만 한가로이 노닐구 있구만, 그딴 소리를 하는겨?”
“문제는 그것이 아녀! 애시당초 아방궁이루 들어가자니께, 우쩌자구 이 골짜기루 들어온겨? 그려두 만만시러운 곳이 아방궁 밖에 더 있간? 생전 처음 와보는 골짜기서 뭣이를 허자는겨? 가뜩이나 텃세 강한 대청댐인디…”
씁새가 발을 길게 뻗으며 말했다.
“아방궁은 터가 더 쎈디?”
호이장이 일어서서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려두 저짝이서 허시는 양반은 댓 마리 끌어 올리는 모냥이여?”
총무놈이 골짜기의 곳부리 쪽을 보며 말했다.
“보니께 장기 숙박낚시 중인 듯헌디… 뿌려놓은 밑밥이 바닥에 있으니께 낚시 헐만 허겄지.”
멀찍이 떨어진 곳부리의 낚시인이 어둠속에서 길게 릴을 쏘아 올리고 있었다. 그의 등 뒤의 언덕에는 튼튼하게 지어진 텐트가 보였다.
“릴낚시 아녀? 우덜두 릴이나 몇 대 가지구 올걸 그랬나벼.”
호이장이 쩝 입맛을 다셨다.
“아예 적설을 가지구 오셔서 물 속이루 들어가시지?”
씁새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안 그래두 그러구 싶은 심정이여.”
등 뒤에서 소쩍새가 울기 시작했다. 미동조차 없는 찌 불을 바라보며 한여름의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우째 좀 잡으셨는가유?”
씁새들의 등 뒤에서 낯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뽀인뜨는 잘 잡으셨는디… 새벽이나 돼야 괴기 얼굴 보게 될거구먼유.”
반백의 노인이 그들의 등 뒤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아! 저짝이서 장기낚시 허시는 어른이시구먼유?”
씁새가 곶부리 쪽과 노인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그려유. 발써 일주일째 낚시를 허는디, 우째 이번에는 신통허덜 않구먼유.”
노인이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아 물었다.
“어르신은 몇 마리나 잡으셨대유?”
호이장이 물었다.
“대충 십 여 마리 잡기는 혔는디… 여름이라 그닥 재미보기는 어려울 거여유. 찬바람이 불어야 때글때글헌 괴기덜 얼굴을 보지유. 이짝 골짜구니두 여름 타는 곳이라 별루 좋은 뽀인뜨는 못 되구먼유.”
"그라문 어르신은 이짝이루 자주 오셨는개벼유? 뽀인뜨를 훤히 꿰구 게시는 모냥여유?“
씁새가 물었다.
“집 앞인걸유…”
노인이 쓴 웃음을 흘렸다.
“고기 잡기는 틀린 시간인 것 같고, 우째 지덜허구 쐬주나 한 잔 하실까유?”
총무놈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그라지유. 지헌티 밑반찬허구, 저녁나절에 끓여놓은 돼지고기 찌개 있으니께 가져올께유.”
노인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집 앞…? 뭔 얘기래?”
씁새가 호이장을 보며 물었다.
“노인장 집이 저 아래 마을인 개비지. 그라니께 집 앞이라는 것일 테지.”
호이장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이 근처에 사시는 개벼유?”
술잔이 한 순배씩 돌아가자 씁새가 물었다.
“이 근처가 아니구… 여기 살지유…”
노인이 잔을 비우며 대답했다.
“실상은 집은 따루 있는디… 안적두 여길 못 떠나는 거지유… 집이 여기니께…”
여전히 노인은 알 수 없는 말을 흘리고는 달빛이 부서지는 댐을 바라보았다.
“그라문… 혹시… 예전에 대청댐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곳에서 사셨던 수몰민이셨는가유?”
호이장이 물었다.
“그렇구먼유.”
노인이 다시 쓰게 웃었다.
“지가 저짝이서 릴을 던지는 곳이 바로 지가 살던 집터 쪽이구먼유. 정확히 예전 살던… 지금은 물에 잠겨버린 집 마당이지유. 가끔 릴을 던지면 갑자기 마구 풀려 들어가는 곳이 있지유. 그게 우리 집 마당에 있던 우물여유.”
노인의 잔에 다시 술이 부어졌다.
“기분이 묘허시겄어유. 잘 이해는 가덜 않지만, 자신의 집이 물에 잠기구… 이젠 볼 수 없는 정든 집을 생각허문서 그짝이루 릴을 던지구…”
“우쩌겄슈? 우리네 운명이 그러헌걸… 처음 이 수몰된 마을로 들어온 것이 내 나이 15살 때 였지유. 이북에 가족들 죄다 놔두고… 야밤에 아버님 손잡고 후퇴하는 국군들 따라서 남쪽이루 넘어와서 이곳까지 흘러 들어왔지유.”
노인의 얼굴이 회상에 젖은 듯 어둡게 변해갔다.
“실향민이셨구먼유…”
씁새가 노인의 잔과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그렇게 언젠가는 이북의 가족을 만날 것이라는 희망 하나루 악착같이 땅을 넓혔지유. 마당을 넓히구… 깊은 우물두 파고… 밭도 일구고…”
“시상에 사연 하나쯤 없는 사람이 워디 있간유?”
호이장이 쩝 입맛을 다셨다.
“그렇지유. 그런 사연 하나쯤 간직하지 않은 사람들이 워디 있간유? 여기 수몰된 마을 사람들두 다들 나 같은 사연들을 가지구 있던 실향민들이었지유.”
“그라문, 이 수몰마을이 죄다 이북에서 월남허신 분덜 마을이었남유?”
“모두 그런 것은 아니고, 거의 실향민들이었지유. 지금 댁들이 낚시허는 자리 앞쪽이 황해도서 월남헌 이장댁 뒷마당이지유. 실헌 감나무가 세 그루 서있던 자리였는디…”
“그려서 자꾸 바닥에 걸리는 것이여? 우쩌다 떨어지는 자리가 옆이루 벗어났다 싶으문 채비를 뜯기는겨. 예미럴.”
호이장이 눈치 없이 대답하자 총무놈이 호이장놈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건 아닐껴유. 그 뒷마당까정은 그 낚싯대 길이루 닿지두 않을 것이니께.”
노인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태어난 고향서 쫓겨나더니… 겨우 마련한 남쪽의 고향서두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구먼유. 결국 이렇게 틈만 나면 낚싯대 싸들고 수몰된 집터를 바라보며 릴이나 던지는 노인네루 늙어가는 거지유. 늘상 고향만 쳐다보시던 아버님두 돌아가시구… 이북의 가족을 다시 만날 기회두 저 물 밑에 가라앉은 집처럼 사라졌지유.”
노인이 술잔을 비웠다. 조용하던 소쩍새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아버님허고 마당에 우물을 파는디, 분명히 땅 밑이루 물길이 지나가고 있다는디, 파도 파도 물이 안 나오는겨유. 다른 사람덜 집 우물이면 발써 물이 나오기 시작해야 허는디. 결국 다른 집 우물보담 배 이상 짚게 파고서야 물이 나왔지유. 그려서 그런지, 마을에서는 우덜 집 우물이 제일루 시원허고 맛이 좋다구 했었지유. 아무리 가물어두 물이 마르는 벱이 없구유. 그려서 동네 사람덜이 우덜 집 우물루 물을 길러 오구 했구먼유. 먼저 세상을 떠난 우리 집사람두 우덜집이루 물 길러 온 동네 아가씨였지유.”
노인이 껄껄 거리며 웃었다.
“그려두 어르신처럼 물 밑에 가라앉아서 볼 수 없어두 찾아올 수 있지만, 찾지두 못허는 고향을 갖은 사람이 월매나 많겄슈? 물론, 어르신의 진짜 이북의 고향은 아니지만.”
씁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유. 여허튼 이 노인네 살아온 인생이란 게 그렇지유. 인자 지두 일어나서 내 자리루 가볼께유. 이 자리가 동틀 무렵이문 붕어덜이 회유허는 길목이니께 새벽이문 손맛을 볼거구먼유. 실개천이 흐르던 골짜기 자리라서 괴기덜이 기필코 한 번씩 지나가는 자리구먼유.”
노인이 일어서며 말했다.
“사람덜 사연이 짚으면 그 집의 마당두 짚어지는 벱이지유.”
노인이 씩 웃으며 일어서서 자신의 낚시 자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기 힘든 무거운 침묵이 씁새패들을 감싸고 있었다.
“마당 짚은 집이란 뜻이 뭔 뜻인지 알겄구먼.”
씁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니놈이 그런 신비시러운 말의 뜻을 안다고?”
호이장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워디든 그렇겠지만, 누군가의 힘든 인생의 이야기가 배어있지 않은 곳이 워디있겄는가… 더구나 우덜이 낚시를 던지는 저 댐 물밑에 저 어르신과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배어 있는디… 낚싯대두 조심히 던지고, 낚시두 조심히 허야 혀는겨. 우덜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깊은 사연 속이루 낚싯대를 던지는 중이니께.”
씁새가 잔에 남은 술을 마저 털어냈다.
“월레? 씁새가 우치키 개똥철학을 그리 쉽게 불어대는겨?”
총무놈이 씁새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냅둬. 씁새의 고요시런 철학적 사색을 방해허문 쓰겄는가? 새벽이문 괴기덜이 이짝이루 지나간다니께 밑밥이나 더 떨구자고.”
호이장놈이 자신의 낚시자리로 돌아가며 말했다. 어느새 하늘의 달은 서쪽 산등성이에 걸려있었다. 저 달이 산 뒤로 숨고 짙은 어둠이 잠시 펼쳐지면 새벽이 올 것이다.
“우덜두 몇 년 더 지나가문 짚은 사연이 숨어있는 마당 짚은 집을 하나씩 가질 수 있겄지. 저 노인처럼…”
씁새가 일어서서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며 릴을 던지는 노인 쪽을 바라보았다.
길게 날아간 릴 추가 수면의 달빛을 깼다. 어쩌면 노인은 고기를 낚으려 하는 것이 아니리라. 노인은 이제는 찾을 수 없는,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을 낚아 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가 건져 올리는 것은 자신의 마당 깊은 집의 젊은 추억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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