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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씁 새(164)_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하)
낚시 꽁트 씁새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하)


박준걸  artella@lycos.co.kr / artella@nate.com

 

 

 

 

“우어! 살려줘! 우어! 나 못 내려간다! 우어!”


나쁜 놈
씁새의 버럭질에 주춤하던 사내의 입이 낚싯배에 오르면서 또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뱃전에 쪼그려 앉은 총무놈의 친구인 사내는 총무놈을 바라보며 떠들어댔다.
“날씨가 삼삼허니 참이루 좋잖여? 이렇게 배를 타고 나가는 것이 시상 한량시러운 유람이문 월매나 좋겄어? 그란디 자네는 유람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적이루 괴기를 처단허러 간다 이것이여.”
“이런 개쌔리! 바다귀경 허겄다구 혀서 데불구 왔드먼, 뭔 조동아리가 쉬덜 안 혀? 우덜이 뭔 전투적이라는 겨? 우덜이 시방 전쟁터루 나가는 것이루 뵈는 겨? 바닷물에 수장시켜서 심청이 낭군을 맨들기 전에 조동바리 닥쳐!”
참다못한 총무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무신… 좌우간 말이 그렇다는 겨… 거기 씁새님, 내 말이 참이루 안 그류?”
사내가 이번에는 뱃전에 배를 깔듯이 하고 누운 씁새를 보며 말했다.
“이봐유, 총무놈 친구양반! 자꾸 우덜을 무신 연쇄살인범맨치루 싸잡아서 얘기 허시는디 말여. 시상에는 허구 많은 취미가 있다 이것이여. 그중에 낚시두 취미생활여유. 안 그류? 그런디, 사람이 사람 쏴 죽이는 전쟁을 취미라구 허간디유?”
“그… 그건 아니지유.”
“그려유. 그람, 친구양반이 얘기허시드끼 전투적이네, 생태계 형법상 중형이라네 허는 무시무시한 낚시를 우째서 취미라구 허간디유? 자연생태계를 도륙 내는 낚시를 우째서 취미생활이라고 헌대유?”
“그… 그러지유….”
사내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말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람, 그런 씨알머리 안 멕히는 애기는 허덜 말어유. 낚시허는 꼴이 뵈기 싫으문 고요히 돌아가시든가. 뱃머리 돌려서 선창이루 모셔 드릴라니께. 그도 아니문, 개똥철학적인 얘기는 닫아두고 갯바우서 바닷바람이나 쐐유. 안 그래두 존나리 복잡시런 시상에 무신 허접시런 일루 대구리 헝클어지게 산대유? 물은 물이고, 산은 산여유.”
씁새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끙 소리와 함께 돌아누웠다.
“씨벌… 저 인간이 갯바우서 반야심경이라두 읊어낼까 무섭구먼.”
씁새가 호이장을 바라보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씁새의 말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떠들어댔다가는 욕이라도 먹을 것을 걱정했는지, 사내는 갯바위에 다다를 때까지 뱃머리에 조용히 앉아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발판 편한 갯바위를 골라 일행들이 내리고는 본격적인 낚시가 시작되었다. 그저 바다구경이나 하겠다고 따라온 총무놈 친구는 갯바위 뒤편에 쪼그리고 앉아, 일행들이 낚시하는 모습만 하릴없이 구경할 뿐이었다. 너무 잔잔한 탓인지 제대로 된 조과 없이 아이스박스에는 치어를 갓 벗어난 노래미 몇 마리만 퍼덕대고 있었다.
“우어! 살려줘! 우어! 나 못 내려간다! 우어!”
느닷없이 등 뒤에서 겁에 질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월레? 저놈은 우치키 저길 올라간 겨?”
총무놈 친구였다. 씁새 일행의 낚시자리 뒤쪽으로 깎아지른 암벽이 있었고, 그 위에는 굵은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무료해진 총무놈의 친구가 그 암벽을 어찌어찌 올라가긴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이 그리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다. 친구놈은 암벽의 1/3지점에 쪼그려 매달린 채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씨벌, 가지가지 허는구먼.”
“저걸 우치키 올라갔대? 올라갈 길두 없는디?”
“천성이 염생이 새끼인 모냥이여. 잘두 올라갔구먼.”
일행들의 입에서 허탈한 목소리들이 새어나왔다.
“씨벌… 저러니께 우덜 낚시가 전투적이라구 허는 겨. 니놈 친구가 유격이라두 받으러 왔는개비다.”
씁새가 총무놈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예미럴! 내려올 생각허덜 말고, 거기 매달려서 우덜이 호전적이며 전투적인 낚시루 물괴기덜 연쇄살생허는 모습이나 귀경혀.”
총무놈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소리를 지른 후 되돌아서서 낚싯대를 휘둘렀다.
“니놈 친구는 안 구해줄 껴?”
호이장놈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충무놈에게 물었다.
“뒤지라구 혀!”
총무놈이 매몰차게 내뱉었다.
“어이! 나 못 내려간다니께. 어이, 어이! 나 안 구해줄 껴? 다리에 힘두 빠졌는디… 씨벌눔들아! 안 구해줄 껴? 이 살인마들아! 이 시상에 드러운 환경파괴범들아! 어이… 어이! 좃도 씨불넘들아! 제발… 어어어… 나 떨어진다아! 어이, 어이! 형씨들… 살려줘요. 제발… 어어… 나 떨어진다! 어이… 이 드런 놈들아!”
총무놈 친구의 애절한 목소리가 묵묵히 바다를 향해 낚싯대를 던지는 일행들 뒤에서 갖은 욕설과 함께 쏟아졌다. 하지만 씁새 일행들의 신경은 등 뒤의 절벽에 쏠려있었다. 도저히 오르고 내리기 힘든 위험한 절벽에 매달려서 울부짖는 놈을 무시하기엔 상황이 매우 위험했다. 잘못 발이라도 삐끗하는 날에는 대형사고도 일어날 수 있다. 어느 정도 제 놈이 출조 오면서 떠들어댔던 왜곡된 언동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놈을 무사히 내려올 수 있게 할 요량이었다.
“씨불넘들… 사람 새끼가 절벽에 매달려서 뒤져간다는디두 구해줄 생각은 안 허고 존나리 낚시만 해대는 씨불넘들! 그라니께 니놈덜은 살인자놈덜이여, 나아쁜 놈덜.”
갑자기 친구놈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어헉! 이… 이 새퀴 어떻게 내려온 겨?”
어느새 그 위험한 절벽을 어떻게 내려왔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총무놈의 친구가 일행의 등 뒤에 쪼그려 앉아 노려보고 있었다.
“저… 저길… 혼자 내려온 겨?”
총무놈이 놀라 소리쳤다. 발판조차 거의 없이 깎아지른 절벽에 매달려서 울부짖던 놈이 맞는가 싶었다. 친구놈이 총무놈의 말에 대답이 없이 주머니를 뒤지더니 갑자기 번쩍이는 칼을 꺼내들었다.
“어… 이… 이러지 맙시다. 고요히 해결합시다. 우덜이 안 구해줄라던 게 아니고… 그… 어떻게 내려줄까 생각하던…”
씁새가 놀라 더듬거렸다.
“나쁜 놈들. 절벽을 오르내리느라 배가 고파서 그려. 어여 괴기나 도륙내. 난 배고파서 이 놀래미라두 회 쳐 먹어야 헐 것이니께. 시상에 극악시런 나쁜 놈들.”
친구놈이 퍼덕이는 노래미에 칼집을 넣으며 중얼거렸다.

 

한동안 소식도 없던 녀석이 전화를 걸어와서는 대청댐의 모처에서 4짜 붕어를 타작했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찌만 바로 서면 입질이 오고, 잡아내면 4짜였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던지며 부디 금주 토요일에 그 장소로 모시겠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놈
“이 길이 맞는 겨? 우째 가도 가도 낚시터라고는 안 뵈는디? 이 깎아지른 언덕배기서 무신 낚시를 헌다는 겨?”
승합차의 창문을 열고 씁새가 길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여기가 맞는디… 지가유, 접때 아는 형님이랑 왔었대니께유?”
승합차 앞에서 스쿠터를 세운 딸딸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오른쪽으로는 그대로 산이었고, 왼쪽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에 대청댐 물이 검게 빛나고 있었다. 그 사이로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비포장도로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라문, 딸딸이 자네는, 그 아는 형님허구 밧줄 매고 이 절벽에서 낚시를 혔다는 겨?”
호이장놈이 운전대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게… 아하! 지가 잘못 생각혔구먼유. 아하, 내 정신 좀 봐라. 여기가 아니구유, 좀 전에 여기 들어오던 초입에 갈래길 있었잖여유? 그 짝서 왼쪽 길이구먼유. 다시 돌려서 가유.”
제 놈 머리 위에 얹혀있는 헬멧을 두어 번 두들기고는 딸딸이가 또 스쿠터를 되돌려 나가기 시작했다.
늘상 스쿠터 몰고 낚시를 다니는 통에 이름 대신 딸딸이라고 별명 붙은 녀석의 전화가 온 것이 이번 주 월요일이었다. 한동안 소식도 없던 녀석의 전화를 걸어와서는 대청댐의 모처에서 4짜 붕어를 타작했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찌만 바로 서면 입질이 오고, 잡아내면 4짜였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던지며 부디 금주 토요일에 그 장소로 모시겠다는 것이었다.
별로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요즘 어디 가나 붕어 입질 보기가 돌아누운 마누라 얼굴 보기보다 힘들 시절이라 냉큼 그러마했고, 녀석은 여전히 호이장의 승합차를 마다하고 스쿠터를 타고는 승합차를 선도하듯 대청댐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저놈 새퀴 믿을 만헌겨? 원체 뻥이 심헌 놈이니께 마음이 안 놓이는디….”
호이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형님덜, 맞어유! 이쪽여유. 확실히 이쪽여유. 인자 지두 나이가 먹는 개벼유. 깜빡 허는구먼유.”
딸딸이가 한참을 되돌아 나와서는 갈림길에 서서 손가락질을 해댔다. 또다시 스쿠터를 앞세우고 호이장의 승합차가 길 같지도 않은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길은 점점 숲으로 둘러싸이기 시작했고, 웬 무덤을 앞에 두고 길이 끝나버렸다.
“뭐여, 이 시방새야! 여기가 낚시터여? 니놈은 물도 없는 무덤 가서 낚시를 했다는 겨?”
씁새가 차창을 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월레… 참이루 요상시럽구먼… 이 길이 맞… 아하! 여기가 아니구유, 아까 우덜이 갔었던 그 짝에서 쭉 앞이루 더 들어가야 했구먼유. 그려야 상류가 나오지유. 우짠지, 자꾸 헷갈리드만유. 다시 아까 그 짝이루 다시 가유.”
“어… 어이… 딸딸이.”
씁새가 뭐라 소리치기 전에 놈은 스쿠터를 돌려 또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 씨벌… 오늘두 저놈 때미 완전히 조진 거 아녀? 저 놈이 워디서 들은 풍월루 이라는 거 같은디? 지놈이 댕겨왔다구 뻥치는 거 같어.”
호이장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참 이상시런 놈이여… 그려두 우쩌겄냐… 이왕 이렇게 된 거 믿어봐야지.”
이미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씁새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승합차를 앞서 달려가던 딸딸이가 왼쪽으로 대청댐물이 보이던 아까의 장소에 서서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앞 쪽을 가리켰다.
“형님들! 이 길이 맞어유! 확실혀유. 이 길만 넘어가문, 상류 쪽 뽀인뜨여유. 인자 다 왔시유!”
녀석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스쿠터의 헤드라이트를 켜고는 냅다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느닷없이 호이장의 승합차가 숲길을 끝내고 불빛 밝은 4차선 대로로 뛰어들었다.
“허미… 이… 이게 뭣이여? 뭐… 뭣이여?”
어느새 호이장의 승합차는 대청댐에서 대전으로 들어가는 4차선 대로에서 수많은 차들과 휩쓸려 달려가고 있었다.
“그 참 이상시런 새끼여… 또 이 지랄을 해놓고는 사라졌구먼. 인생 참이루 이상한 놈이여….”
씁새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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