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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씁 새(161)_바람불어 좋은날(상)
낚시 꽁트 씁새

 

 

 

바람불어 좋은날(상)

 


박준걸  artella@lycos.co.kr / artella@nate.com

 

 

“심각하게 스님시러운디? 절에서 내려 오셨슈? 파계허신 스님여유?”
사내는 씁새의 말에 대답이 없이 또 빙그레 웃기만 했다.

 


애초에 그 별스런 놈을 만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낚시점에서 처음으로 녀석의 얼굴을 대면하는 순간 뭔가 야릇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낚시점에 죽치고 앉아있는 군상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무료한 시간이나 보내기 위해 낚시점 주인과 농담이나 주고받던가, 아니면 쌈빡한 출조지 정보라도 꿰차기 위해 들르던가, 요즘 말하는 낚시 신상(신상품) 구경하러 왔던가, 이도 저도 아니면 뒷골방에서 화투장이라도 쪼러 오던가 셋 중의 하나일 터였다.
녀석 역시도 그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녀석이 풍기는 포스는 그런 범주를 벗어난 듯 보였다. 요란스럽게 낚시점으로 들어서는 씁새를 바라보는 눈길이 마치 측은한 중생을 바라보는 큰 스님의 그것과 닮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낚시잡지에서 눈을 떼고는 씁새를 바라보는 모습이 천상 그것이었다. 입가에 약한 미소를 흘리며 느긋한 눈길을 보내는 녀석 때문에 씁새의 발걸음이 잠시 움찔했다.
“누구여유? 저 새로운 세숫대야는?”
씁새가 카운터로 다가가 박 사장에게 물었다.
“몰러. 아침버텀 와가지구는 낚시점 휘 둘러보고는 찌 하나 사드만 저러구 죽치구 있는 겨.”
박 사장이 녀석을 힐끗 쳐다보고는 대답했다.
“세숫대야 요상시럽네… 우째 낚시꾼 같아 보이지두 않는디?”
“언놈은 마빡에 낚시꾼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등가? 얼굴만 보구 우치키 낚시꾼인지 아닌지 아는 겨?”
박 사장이 느물느물 웃었다.
“월래? 지가 물가로만 돌아다닌 것이 발써 40여년이유. 얼굴만 봐두 이 사람이 낚시 고수인지, 낚시 초짜인지 대번에 알아맞춘다니께유. 지랭이 40년 꿰문 사람덜 얼굴두 두루두루 꿸줄 아는 겨유.”
“얼씨구? 그라문 저짝 사거리에 돗자리나 하나 깔어. 시방 저 사람은 고수로 보이는가? 초짜루 보이는가?”
“그것이… 애매시러운디유? 몸에서 풍기는 행색이 영판 낚시꾼시럽지 않은디유?”
“허이구 인자는 씁새가 점쟁이루 나설 모냥이구먼.”
박사장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언제 낚시 가실래나벼유?” 궁금한 것은 절대 못 참는 씁새가 예의 그 사내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언젠가는 가겄지유.”
사내가 여전히 인자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낚시는 많이 댕겼슈?”
씁새가 내친김에 사내의 건너편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뭐… 대충…”
“말이 심히 짧은디유? 대충 댕기문 몇 년 댕겼대는 겨, 아니문 하루 이틀 댕겼대는 겨유?”
“꼭 낚시터를 댕겨야만 낚시를 댕겼다구 허겄어유? 시상이 온통 낚시터인디?”
사내가 여전히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대답했다.
“대답이 심히 철학스럽구먼유? 그란디… 바다낚시 하시남유?”
씁새가 사내의 앞에 놓인 찌를 가리키며 물었다. 사내의 앞에는 오색영롱한 바다용 막대찌가 놓여있었다. 아침나절에 들어와서 샀다는 그 찌일 것이다.
“바다문 우떻구, 강이면 우떤감유? 시상이 온통 낚시터라니께유.”
“심각하게 스님시러운디? 절에서 내려 오셨슈? 파계허신 스님여유?”
사내는 씁새의 말에 대답이 없이 또 빙그레 웃기만 했다. 씁새는 그만 일어섰다.
“사상이 의심스러운 인물인디유? 나의 정신력이루는 도저히 뭔 뜻인지 알아먹덜 못 허겄구먼유.”
씁새가 박 사장에게 돌아와서 중얼거렸다.
“시상에 씁새가 알아먹덜 못 허는 일이 있었는가? 지랭이 40년 꿴 고수의 입장에서 잘 생각혀봐.”
“저 세숫대야는 답이 안 나오는구먼유.”
씁새가 커피포트로 다가가자 이번엔 사내가 씁새를 보며 물었다.
“저기… 선상님께서는 낚시를 몇 년이나 허셨는가유?”
“뭐… 대충…”
씁새가 사내를 돌아보며 아까 사내가 한 대답과 똑같이 대답했다.
“지가 보니께 선상님은 낚시깨나 다니셨을 것 같구먼유. 뒷모습이 영락없는 낚시꾼이시구먼유.”
씁새가 커피를 뽑다 말고 사내를 다시 쳐다봤다.
“거참, 인물이 인물을 알아본다고, 그짝이서 지를 꿰뚫어보시니께 그짝분두 낚싯줄깨나 끊어 먹은 분 같구먼유.”
씁새가 헤벌쭉 웃으며 대답했다.
‘인물은 예미… 우째 사상이 의심스럽다드만 죽이 착착 맞는디?’
박 사장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에또… 지가유, 대한민국이서 낚싯대 휘둘러 봤다고 자랑질허는 낚시꾼들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는 개차반낚시회의 씁새여유. 몇 년 낚싯줄 끊어 먹어 봤으문 익히 아실 것이구먼유.”
씁새가 내친김에 사내의 커피까지 뽑아서 테이블로 가며 말했다.
“개차반낚시회… 이름이 고약시럽게 흥미로운디유?”
사내가 씁새가 건네주는 커피를 받으며 말했다.
“여허튼 유명시러운 낚시회란 것만 알문 되유. 근디… 대체 몇 년이나 낚시를 허셨간디? 그라고 보아허니 바다낚시 댕기시는 분 같은디유?”
씁새가 다시 사내의 앞에 놓인 바다용 막대찌를 보며 물었다.
“몇 년 댕긴 것이 뭣이가 중요허겄슈? 바다낚시가 중요허겄슈? 민물낚시가 중요허겄슈? 뭐 대략적이루 물이 좋아서 파도를 벗 삼아 들풀을 벗 삼아 돌아댕기는 거지유.”
사내는 씁새가 건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워미! 그짝분이 상당히 고수인 모냥이구먼유? 몇 년 물가루 쏘댕겨두 그렇게 심오시러운 철학적 문구는 나오기 어려운 법인디, 낚시에 달관허야만 그러헌 인생철학이 배어나오는 벱이지유!”
씁새가 감탄하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무신 과찬시러운 말씀을… 지가 보기에는 그짝 씁새님께서 오히려 인생을 달관허신 낚시인의 참모습이시구먼유.”
사내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니미… 별 시덥잖은 놈덜이 개그질을 허구 자빠졌네.’
박 사장이 입을 비죽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때 뒷골방에서 화투장을 쪼던 부동산 장 사장이 문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는 말했다.
“어이! 씁새야. 니놈이 인생을 달관혔으면 진실루 좋겄다. 시상 사고라는 사고는 다 치구 댕기는 놈이 뭔 인생철학이 우쩌고 허는 겨? 대한민국 낚시협회서 니놈 낚싯대 손에서 놓는 날을 국경일로 하자고 국회에 청원서를 올렸단다.”
“거 장 사장님은 대충 화툿장에 신경이나 쓰셔유. 접때 화투쳐서 몇 십 만원 잃었다구 고향다방 미스킴헌티 하소연했다문서유? 고도리 새끼나 제대루 들어왔는가 신경이나 쓰셔유!”
씁새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어따… 쓰벌눔!”
장 사장이 골방문을 닫아 버렸다.

 

 

 

“워미! 그짝분이 상당히 고수인 모냥이구먼유? 몇 년 물가루 쏘댕겨두 그렇게 심오시러운 철학적 문구는 나오기 어려운 법인디, 낚시에 달관허야만 그러헌 인생철학이 배어나오는 벱이지유!”

 

“그건 그렇고… 그라문 형씨께서는 출조하실 때 홀로이 출조를 허셨는개비구먼유? 이참에 우덜 개차반낚시회허구 출조 한 번 가시문 좋겄는디….”
씁새가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런다문 참이루 영광이지유. 개차반낚시회가 그리 유명시럽다문 씁새님허구 물가에 서서 인생적인 담소두 나누문서 시상 이치에 대해 논의를 혀볼만 허지유.”
사내가 반갑게 웃으며 대답했다.
‘별… 쓰벌눔들이 개풀 뜯어먹는 철학을 얘기허는구먼. 우째 사고뭉치 씁새놈허구 요상시런 놈 붙으니께 걱정이 태산이구먼….’
박 사장이 진열장의 문을 닫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라문, 우덜이 담주에 통영이루 출조를 헐라는디… 담주 토요일날 이 집이서 뵙도록 허지유. 물론 바다낚시 장비는 있겄지유?”
“시상 온 천지가 낚시터인디 그만한 낚시장비조차 없겄는가유? 담주 토요일에 이 집이서 씁새님을 뵙겄구먼유.”
사내가 고개를 꾸벅하며 답하자 박 사장이 걱정스런 눈으로 씁새에게 물었다.
“씁새야. 그 호이장허구 총무놈, 회원놈들헌티 논의는 허구 같이 가든가 허야지 니놈 맘대루 사람 붙여서 데불구 가문 되겄냐?”
“호이장 쓰벌눔이 무엇을 알간디유? 가자면 가는 것이지유. 낚시라는 것이 뭐 있겄슈? 철철이 마음 맞는 사람덜끼리 시상의 시름을 잊고서 갯바위에 서문 그것이 낚시구 인생이지유. 부딪히는 파도에 걱정근심을 떠넘기고, 흐르는 강물에 온갖 시름을 흘려보내는 것이 낚시 아닌가벼유?”
씁새가 박 사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려서 니놈은 악다구니루 낚시를 댕기구 사람덜 골탕 멕이는 겨?”
“월레? 박 사장님은 우째 그러신대유? 시상에 낚시 댕기문서 그만한 사고도 없이 돌아댕길라문 뭣허러 이 풍진 시상에 나왔대유? 대구리 박박 밀구 산속이루 들어가서 고요히 참선이나 허지?”
씁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들을 때마다 참이루 금과옥조 같은 말씀만 허시는구먼유. 참이루 진리적인 얘기구먼유.”
사내가 여전히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예미럴… 저 씁새놈헌티 말루 이길 사람은 이 시상에 없을 껴. 인자는 씁새가 철학적이루 사고를 칠 모냥이구먼….’
골방에서 화투를 치던 패들 중에서 누군가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라문 담주 토요일 날 아침 8시쯤에 이 집이서 뵙는 것이루 허구 지는 물러가겄구먼유.”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씁새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라지유. 담주에 우덜 못 다헌 얘기는 심층적이루 더 논의해 보기루 허지유.”
씁새가 사내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거참! 철학적인 낚시 고수구먼.”
낚시점 문을 열고 나가는 사내의 등을 보며 씁새가 빙긋이 웃었다. 낚시점 박 사장은 여전히 못마땅한 눈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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