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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씁 새(160)_고향유감
낚시 꽁트 씁새

 

 

 

고향유감

 

 


박준걸  artella@lycos.co.kr / artella@nate.com

 

 


“그저 안골저수지가 옛날 우리 시절의 안골저수지처럼 가끔 낚시꾼이 들르고, 동네 아이들 멱이나 감던 풍요로웠던 저수지루 돌아갔으면 좋겄는디….”


무거운 눈덩이를 이겨내지 못한 소나무가 후드득 나뭇가지를 흔들어 눈을 털어냈다. 발목까지 덮는 눈은 길과 논밭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새하얗게 쌓여있었다. 길옆의 농수로도 눈으로 가득 들어차 있다.
“이 수로서 우렁이 엄칭이 잡아 먹었는디, 요즘두 우렁이가 가득한가?”
씁새가 눈 덮인 농수로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우렁이? 이 수로루 내려가는 물보다 많은 것이 우렁이여. 수로가 막힐 정도라니께.”
씁새 옆에서 어깨를 곧추세우고 걷던 창근이 대답했다.
“그려? 그라문 우렁이 잡아다 내다팔아두 돈은 되겄는디?”
“도시놈덜 봉창 긁는 소리는 여전허구먼. 그 우렁이들 죄다 중국산이라 알맹이만 크고 맛이 없어서 내다팔두 못혀. 그놈의 뭔 친환경농법인지 무공해 농법인지 헌다구 중국산 우렁이 뿌려 놓는 바람에 처치곤란이여. 애물단지 되었다니께.”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며 수철이 대신 대답했다.
“그뿐인 중 알어? 뭔 놈의 우렁이가 처먹을 것이 없으니께 토종 개구리두 잡아먹는다니께. 이 수로에 가득허든 미꾸락지두 사라졌어. 피라미, 송사리는 아예 눈 씻구 봐두 없고.”
창근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고향두 인자 고향이 아닌개비다.”
씁새가 수로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인자 시골에 붙어서 농사 지을 놈 하나 없어. 우덜 나이가 낼 모레면 환갑인디, 고향 떠나봐야 배운 짓거리라고는 농사 짓는 것뿐이라 헐 일두 없겄지만, 그래두 여건만 된다문 떠나고 싶다.”
수철이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윗동네 안골저수지는 그대로인가?”
씁새가 앞산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는 온전허겄냐? 거기두 농지개량사업인지 뭣인지 헌다고 한 삼사년 들쑤시고 바닥 판다고 난리치드만. 작년에 가뭄 들구 나서 저수지가 아니라 둠벙으루 변했다. 시골동네 아작 난 게 한둘이 아녀. 물괴기가 씨가 말랐어.”
“그거이 농지개량사업 때문만이겄어? 씁새야. 니놈은 안적두 낚시허냐?”
수철이 느닷없이 씁새에게 물었다.
“낚시? 그거야 안적두 허지. 취미라고는 그 것 뿐인디 우쩌겄냐? 근디, 안골저수지 아작난 게 낚시허고 뭔 상관이 있는 겨?”
씁새가 물었다.

 

 

“니놈두 낚시꾼이라니께 허는 말이여. 안골 저수지가 농지개량사업을 허게 된 것이 바로 낚시꾼들 때문이여.”
“월레? 그건 또 뭔 소리여? 낚시꾼덜이 안골저수지를 메워버렸다는 겨?”
“결과적이룬 그려. 5년 전에 안골저수지가 괴기가 잘 나온다구 소문이 난 모양이여.”
“허긴 안골저수지는 대물 많기루 소문난 곳이었는디… 우덜 코 찔질 흘릴 때부텀 대나무루 낚싯대 만들어서 붕어 잡던 곳 아닌가?”
씁새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좌우간 그놈의 저수지가 유명세를 타드만 하루가 멀다 하고 낚시회 버스가 드나들기 시작헌겨. 그 바람에 저수지 근처에 논두렁은 낚시꾼들 때미 죄다 망가지고, 정씨네 과수원두 망가지고 난리가 아니었어. 낚시꾼덜이 하두 몰리니께 낭중에 정씨네 과수원을 누가 인수했다드만. 갑자기 불고기 파는 가든이 들어선 겨. 예미… 저수지 주변이루 낚시점이 들어서고, 건너 마을 누가 임대를 받았다나 뭐라나 허문서 좌대꺼정 들어서더라니께.”
“그라문 관광객허구 낚시꾼 드나드니께 동네 살림은 좋아지겄는디?”
씁새가 물었다.
“처음엔 좋았지… 동네 길두 포장허구… 그란디 괴기가 씨가 마르기 시작헌 겨. 단 1년 새에 그 지경이 되니께 우쩌겄냐? 이번엔 사라진 붕어덜 대신에 그 외국괴기 뭣이여? 비린내 엄칭이 나구 맛대가리 없는 시퍼런 물괴기.”
수철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배스라는 물괴기 말여?”
씁새가 물었다.
“그려! 그 배슨지 버슨지 허는 놈. 그걸 또 누가 죄 풀어버린겨. 결국이는 낚시꾼들 사라지고, 장사가 안되니께 가든허구 낚시가게들 사라지고… 저수지는 방치돼버린겨. 저수지 인근 가게들이 죄다 흉가루 변해버렸으니께. 인자 누가 건사할 사람이 없으니께 저수지는 토사루 메워지구, 그라다가 우치키든 살려보겄다구 저수지를 파냈구먼. 그런다구 이미 호시절 지나간 저수지가 살아나겄어? 결국 바닥 드러낸 둠벙이루 변했다니께.”
창근이 속이 타는지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낚시꾼 바라보구 농토팔구 가게 낸 동네사람덜 여럿 절딴 났어.”
창근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더 웃기는 얘기 해줄까? 저수지 가든이 잘 된다니께 농토 팔구 빚내서 안골저수지 초입에 가든 하나 세운 영철이네 말여. 가든 절단 나구서 뭐 허는지 아는가?”
창근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뭣을 하간디? 이미 파장 난 동네에 세운 가든이 영업을 계속할리는 없겄구먼.”
씁새가 대답했다.
“지덜 가든 영업 안되니께 흉물스럽게 변헌 것을 이리저리 소문 내드만 흉가체험인가 뭐 허는 장소루 만들었드만. 가끔 정신 나간 젊은놈덜이 그 가든에서 귀신이 나온다나, 가든 주인 일가족이 모조리 병사했다나 허는 소문 내문서 놀러 온다니께.”
창근과 수철이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그저 안골저수지가 옛날 우리 시절의 안골저수지처럼 가끔 낚시꾼이 들르고, 동네 아이들 멱이나 감던 풍요로웠던 저수지루 돌아갔으면 좋겄는디….”
씁새가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낚시꾼덜 어디 저수지 좋다 허문 떼루 몰려 댕기문서 아작이나 잘 내잖여? 남의 농사짓는 논밭 죄다 뭉개버리고, 쓰레기는 산더미처럼 만들어 놓고 말여. 건너 마을 이장은 송천저수지에 낚시꾼덜이 버린 쓰레기 청소헌다구 모아서 불싸지르다가 부탄개스 터져서 병원서 두어 달 살았다니께. 이러니 누가 낚시꾼덜 좋아하겄어? 물론, 우덜 마을이야 안골저수지 덕분에 먹고 살게 됐다고 난리친 잘못도 있지만….”
창근이 씁새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미… 낚시 좀 헌다는 죄루다가 니놈덜 원망은 다 듣는구먼. 그라문, 건너편에 바튼머리 저수지는 우치키 되었간? 거기두 낚시꾼덜 손 탄 겨?”
씁새가 생각난 듯 물었다.
“바튼머리? 아! 진양저수지 말이구먼. 인자는 진양저수지라구 부르는구먼. 거긴 아예 낚시꾼 출입금지여. 동네 사람덜 한바탕 홍역을 치루구서는 그 저수지만은 그냥 내비두자고 혀서 낚시꾼 절대금지루 묶어 버렸다니께.”
“거기두 그라문 괴기가 엄칭이 많을 것인디.”
씁새가 씨익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아서라. 그 저수지마저 아작 낼 심산이문 애시당초 진양저수지 이름두 입에 올리덜 말어. 그저 우덜 어릴 때 추억을 간직한 곳이라고 생각혀구 마음에나 담아둬.”
창근이 씁새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인자 우덜 어릴 적에 멱 감고 송사리 잡던 개울두 사라졌어.”
수철이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
“개울두 사라져? 그건 뭔 소리여?”
“안골 저수지서 내려가던 냇물 말여. 거기 물 많고 괴기 많았잖여? 그란디 안골저수지 저 지경이 되구, 물도 안 내려가잖는가? 또 그 개울에 뭔 보를 설치헌다문서 죄다 깨뭉개버리드만 거기두 인자 들판이루 변했어. 물이라고는 애새끼 발모가지 적실만큼도 없다니께.”
“예미럴… 인자 고향이 고향이 아니라는 말이 실감나는구먼.”
씁새가 시큰해지는 콧잔등을 부비며 말했다.
“왜? 니놈 첫사랑 순덕이 때문에 가슴이 시리는가? 순덕이 만났었대미?”
수철이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그런 추억이 있으니께 더 애틋헌 것이겠지….”
씁새가 쌓인 눈을 퍽 차며 대답했다.
“모처럼 친구덜 본다구 고향에 내려온 니놈에게 이런 말 허는 거 미안허긴 허다만… 낚시라는 게 좋은 취미 아닌가? 괴기두 잡구 물두 귀경허구… 허지만, 정도껏 허야지. 안골저수지에 낚시꾼 꼬일 때 매일같이 동네에 싸움 안 난 적이 없었어. 낚시허러 온 놈이 낚시는 허덜 않고 가게집서 술 처먹고 주정이나 허고 동네 사람들과 시비나 붙고… 무신 대회 헌다고 동네 회관 앞에 모여서는 온 동네 떠나가게 마이크로 떠들어 제끼고… 신바람 난다고 노래 불러쌌고, 동네 인심 흉흉해지고….”
창근이 씁새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오히려 안골저수지가 저 지경이 된 것이 잘 된 것인지두 몰러. 몇 년 만 더 낚시꾼덜 꼬였으면 이 동네 난리 났을껴.”
수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려두 그 바람에 동네에 다방두 안 생겼었냐? 야시런 아가씨덜두 여럿 들어 오구. 수철이 니놈두 다방 아가씨헌티 마음 뺏기서 농사 지은 돈 솔천허니 가져다가 바쳤을 것인디?”
창근이 수철의 등짝을 퍽 치며 말했다.
“그라는 니놈은? 그 새롬다방 김양인지 미스킴인지헌티 소 한 마리 값은 던져 줬을 것인디? 니놈 마누라헌티 걸려서 느티나무 정자서 개 터지듯이 터졌잖여?”
수철이 낄낄 거리며 말했다.
“예미럴… 인자 지나간 헛짓거리니께 허는 말이다만, 그때는 온 동네가 헛바람 들어서 난리두 아니었다.”
창근이 웃으며 말했다.
“늦겄다. 어여 가자. 모처럼 씁새가 고향에 놀러왔다니께 옆 마을 친구놈덜두 만석이네 사랑방이루 모여들었단다.”
수철이 씁새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뭐 유명헌 놈 왔다구….”
씁새가 멋쩍게 웃으며 발걸음을 바삐 놀렸다.
“그래두 고향 인심이라는 게 이런 것 아니겄냐? 모처럼 왔는디, 안 좋은 고향 모습만 얘기혀서 미안허다.”
창근이 멋쩍게 웃었다.
“세월 따라 변하는것이 세상이라지만… 많이 변했다….”
씁새가 건너편으로 시커멓게 서있는 이층 건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필시 저 건물도 5년 전 안골저수지 호황 때 세운 건물이었을 것이다. 벗겨진 페인트칠과 녹이 슨 채 굳게 닫힌 출입문이 세월과 함께 사라진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직도 머릿속에는 저수지 물속에서 얼굴만 내놓은 채 떠들어대는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건만,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은 차가울 뿐이다.
신년. 눈 쌓인 시골길에 세 친구의 발걸음이 찍히고 있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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