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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씁 새(158)_과속스캔들(하)
낚시 꽁트 씁새

 

 

 

 

과속스캔들(하)

 

 

 

박준걸  artella@lycos.co.kr / artella@nate.com

 

 


씁새나 호이장의 생각 같아서는 그따위 팔난봉꾼 정가놈 아는 체도 하지 않았겠지만, 인간산맥을 연상케 하는 정가놈 마누라의 정나미 넘치는 사정도 있고 해서 어쩔 수없이 정가놈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 겸 낚시를 가르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영 찝찝한 기분을 떨쳐버리기는 힘들었다.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언제 또다시 정가놈의 팔난봉이 불을 뿜을지 모르는 일이었고, 열 여자 마다하는 남자 없다고, 얼떨결에 정가놈 팔난봉에 휘둘려 들어가 어떤 지독한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려서? 니놈들이 팔랑개비 정가놈을 인간으로 만들어 준단겨? 낚시를 가르쳐서?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일세! 아예 개차반낚시회를 팔난봉낚시회루 맹길 참이여? 아서라. 술과 여자라문 니놈덜두 만만찮은 놈덜인디, 뭘 가르치겄어? 예미럴!”
그랬다. 씁새와 호이장이 정가놈의 바람기를 낚시를 가르쳐서 잠재운다는 말을 듣고 총무놈 회원놈 모두 배를 움켜잡고 웃어댔던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정가놈이 곧잘 씁새와 호이장의 말에 고분고분 따라주고, 낚시라는 새로운 취미에 흥미를 느끼는 듯 했기에 그럭저럭 정가놈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는 성공을 하는 듯싶었다.
“잘 돼가지유?”
금요일 저녁. 외출했다 돌아오는 씁새를 보고는 쌀가게 앞에 나와 앉았던 정가놈의 아내가 물었다.
“뭐… 그냥 저냥 해보는 거지유. 다행히 낚시에 흥미를 느끼는 듯 허긴 헌디… 내일 한 번 출조해보문 알겄지유. 지가 흥미를 느끼문 되는 것이고….”
“좌우간 상아 아빠허구 여진이 아빠만 믿구 있겄슈. 동네방네 싸돌아 댕기문서 그저 임자 없는 여편네들 비비적거리지만 않음 되는 거지유. 똥 먹던 개가 금방 사료 먹겄슈? 차츰 허다보문 인자 사료두 처먹구 헐 테지유.”
제 남편을 똥 먹는 개라고까지 표현하는 정가놈의 아내가 못내 괘씸하기는 했지만, 정가놈의 행실을 봐서는 정가놈 아내의 표현이 결코 과장되거나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삽시간에 고쳐지지는 않을 거여유. 낚시터 경치두 구경하문서 바람 좀 쐬다 보문 지두 낚시에 취미가 붙어설랑 개과천선 허겄지유.”
씁새가 자신 없는 투로 말했다.
“그려두 금방 낚시에 취미가 붙을 것 같드먼유?”
“에? 그건 또 뭔 소리대유? 낚시두 한 번 안 가보구 낚시 장비만 준비헌 것뿐인디?”
씁새가 뚱한 눈으로 물었다.
“웬걸유? 밤마다 술 한 잔 하문서 상아 아빠허구 여진이 아빠 낚시 얘기 듣지유, 낮이문 들은 얘기 고대루 낚시헐 물건 산다구 낚시방을 드나드는디유? 매일 낚시장비 사들이느라 정신이 없드먼유.”
정가놈의 아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월레… 낚시장비는 화요일에 수영낚시점서 가방허구 낚싯대 산 것 밖에는 없는디? 우덜두 뭘 사라는 얘기두 안 했는디 뭘 샀다는겨?”
씁새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좌우간 내일 낚시 가신다니께 김밥허구 닭도리탕거리 준비해서 보낼께유. 소주도 몇 병 넣을라니께 재미있게 댕겨오시구 애 아빠 낚시에 흠뻑 빠지게 해 봐유.”
정가놈 아내가 해맑게 웃었다.

 

 

“낚시할 물건?” 호이장놈이 소주잔을 들다 말고 물었다.
“그려! 그 정가놈이 우덜 말도 안 듣구 낚시 물품들을 사들이는 모냥이여.”
씁새가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그 쓰벌눔이 뭘 알구 사들인다는 겨? 낚시에 낚자두 모르는 놈이 뭘 사들인다는 거여?”
“뭐… 낚시점 가문 이것저것 알려 주니께 그렇게 사들이는 모냥이지….”
씁새가 시큰둥하게 대답했지만 호이장의 눈빛은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그라문… 어느 낚시점서 사들인다는 겨? 중리동 대전낚시점? 아니문 터미널 앞에 해동낚시점?”
“거기는 정가놈을 데불구 가덜 안 했는디… 거기는 모를거구먼….”
씁새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라문… 수영낚시점?”
호이장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수영낚시점은 아닐 거여. 수영낚시점 여사장이 정가놈 보기를 징그러운 뱀 새끼 보듯 하는디 거길 들락거리간디?”
“뭔가 수상시러운디… 씁새야! 오늘 수영낚시점 가봤냐?”
“안 가봤는디? 왜… 뭣이가 수상시럽다는 겨?”
“아까 퇴근허다 보니께 수영낚시점이 문을 닫았드먼. 여즉 낚시점 문 닫은 역사가 없는 집인디… 그러구… 정가놈두 연락이 안돼여!”
“그라문 니놈 말은… 정가놈이?”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씁새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여자들의 숨어있는 모성본능을 순식간에 끌어올린다는 전설적인 팔난봉꾼 정가놈을 너무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어느 여자도 거들떠보지 않을 체구와 얼굴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정가놈과 두어 번 말을 섞으면 이미 한강물에 배 지나간다는 전설적인 팔랑개비가 정가놈이었던 것이다.
“씨이벌… 이거 좃되는 거 아녀?”
씁새가 밀려오는 불안감을 감지하고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토요일 아침에야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밤 늦도록 정가놈이 나타나길 기다렸건만, 놈에게서는 연락 한 번 없었고, 결국 씁새가 내일 출조할 예정이니 아침 8시까지 장비 챙겨서 아파트 정문으로 나오라고 정가놈의 아내에게 언질을 했던 터였다. 씁새와 호이장, 그리고 회원놈이 정문에 차를 대기시키고는 맞은편에 보이는 쌀가게의 출입문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우지끈, 쿵!”

 

 

느닷없이 쌀가게의 유리문이 열리며 낚시가방과 의자, 비닐봉지들이 바리바리 날아와 길가에 떨어졌다. 뒤이어 사람 잡는 애처로운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아악! 잠깐… 잠깐!”
그리고는 늘어진 런닝셔츠와 빨간색 사각팬티를 입은 정가놈이 튀어 나오더니 쌀 가게 맞은편 슈퍼 앞에 주차되어있던 트럭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 빌어먹을 난봉쟁이야! 오늘 네놈 뱃속을 온통 끄집어내서 니놈 몸뚱이를 쌀가마니루 쓸 겨! 볼링장 밑에 술집 여자루 성이 안차서 일주일 만에 이번에는 볼링장 위에 낚시점이여? 오늘 한 번 뒈져봐!”
어느새 쌀가게 주변에는 또다시 벌어진 쌀집 내외의 활극을 구경하러 나온 주민들로 들어찼다.
“씨이벌… 결국 수영낚시점 여사장이었구먼….”
호이장이 침을 찍 뱉으며 말했다.
“좌우간 엄청난 근성을 지닌 놈이여.”
씁새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상아 아빠! 여진 아빠! 아, 글쎄 이 썩을 종자가 이번에는 수영낚시점에 붙어 먹었대유! 요 전날에 볼링장 지하술집서 나헌티 줘 터지고는 구석에 숨어 있었잖여유?”
“예… 그… 그런디… 우치키…”
정가의 아내가 씁새와 호이장을 발견하고는 다가와 말하자 씁새가 황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때 장황허니 지 앞에서 무릎 꿇고 개과천선혀서 새사람이 되겄다고, 그러기 위해서 상아 아빠허구 여진 아빠헌테 낚시라도 배우겄다고 허덜 안 했슈? 그란디, 이 개 썩을 종자가 지헌티 줘 맞구서 구석에 숨어 있다가 수영낚시점 여자를 봤다는 겨. 그 불여시 같은 여편네를!”
안 들어도 뻔했다. 이 천하의 팔난봉꾼 정가놈이 술집 여자와 부비적거리다가 제 놈 마누라에게 들켜서 얻어맞고는 숨어있던 와중에 수영낚시점의 여사장을 본 모양이었다. 마누라에게 얻어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 팔난봉꾼은 다음번 집적거릴 대상으로 수영낚시점 여사장을 점찍었던 것이다. 그러고 수영낚시점 여사장에게 접근할 구실로 낚시를 배우겠다고 떠벌린 것이다.
“참이루 용이주도헌 놈일세….”
씁새가 트럭 밑에 기어들어가 납작 엎드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정가놈을 보며 말했다.
“우째 낚시장비를 매일같이 바리바리 싸들고 온다 했드만, 그 불여시 같은 낚시점 여편네 만나느라구 그런 것이여유! 밤이문 밤마다 그 불여시허구 붙어서 술 처먹구 돌아 댕겼다는디, 그 말을 곧이곧대루 믿겄슈? 어디서 뭔 짓까지 했는지 아까 새벽 5시에 기어 들어와서는 낚시 가겄다구 짐보따리 챙기구 있드라구유!”
씩씩거리며 말을 마친 정가의 아내가 거구를 흔들며 트럭으로 다가섰다. 그러고는 바닥으로 내팽개쳐져 내용물을 드러내고 있는 낚시가방에서 3칸 낚싯대를 집어 들었다.
“뒤지게 후려 팰라니께 이 개종자가 뒈져두 아무두 경찰에 연락허덜 말아유. 연락하는 인간덜은 같이 조져버릴껴!”
그리고는 쭈그리고 앉아 트럭 밑의 정가놈을 낚싯대로 후드려패고 쑤셔대기 시작했다. 골목길은 정가놈의 비명소리와 정가놈 아내의 욕지거리로 가득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경찰에 연락한다든지 정가놈의 아내를 말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당해도 싸다는 식의 고소한 기분이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
“멋진 놈이여! 증말루 멋진 놈이여.”
씁새가 쓸쓸히 뒤돌아서 승합차로 가며 중얼거렸다.
“뭐가 멋진 놈이라는 겨?”
회원놈이 물었다.
“안 그러냐? 저놈은 낚시의 진정한 뜻을 아는 놈이여. 낚시란 물괴기나 잡으라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여자덜 후리는 용도로도 쓰인다는 것을 몸소 실천해 보인 놈이여.”
“지랄맞은 놈! 여허튼 저 난봉쟁이가 우덜 낚시회에 가입허덜 않은 게 참이루 다행이여. 아무리 개차반낚시회라지만, 난봉쟁이까정 끌어들일 수는 없잖여?”
호이장이 낚시터로 떠나기 위해 승합차의 시동을 걸며 말했다.
“그려두… 우째 저 쓰벌눔이 부러워지는디?”
씁새가 뒷창으로 쌀가게 쪽을 내다보며 말했다. 쌀가게 앞에는 어느새 트럭 밑에서 질질 끌려나온 정가놈이 거구의 마누라에게 엎어치기 한 판을 당하는 중이었다.
(이후 낚시에서 돌아온 씁새에게 씁새의 아내가 수영낚시점 여사장도 정가놈 아내에게 대 여섯 번 패대기질을 당했다고 알려줌. 수영낚시점은 사라지고 양품점으로 바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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