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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씁 새(156)_아내의 김치
낚시 꽁트 씁새

 

아내의 김치

 


박준걸  artella@lycos.co.kr / artella@nate.com

 


살가죽을 벗겨낼 듯 따갑게 내리쬐던 햇볕이 오후로 접어들며 한결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이 산마루를 타고 내려와 저수지를 한 바퀴 돌고 지나갔다.
“흐미! 인자 쫌 살 것 같은디.”
낚싯대는 팽개친 채 나무그늘 밑에서 배 깔고 누워있던 씁새가 부스스 일어서며 말했다.
“그러게 뭔 중뿔났다고 이 여름날 대낮버텀 낚시질을 오자구 보챈겨? 더위 좀 가신대미 느즈감치 와두 되는디.”
호이장이 역시 나무그늘 밑에서 웃통을 벗어젖힌 채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랄! 느즈감치 오문 이 명당자리 뺏기는디, 언넝 쳐들어 와서 자리를 맡아놔야 헐 것 아닌가?”
“붕어새끼 익사하는 소리허구 자빠졌네. 니눔 눈에는 이 자리가 명당으루 뵈는 겨? 저수지를 눈 씻구 둘러봐라! 낚시꾼이라고는 우덜 둘 밖에 없는디, 뭔 자리 싸움여?”
“쫑알대지 말고 좀 기다려봐! 여기가 4짜리를 무더기루 배출한 곳이라구, 낚시꾼들 자리다툼이 치열하다잖여! 이 뙤놈 빤쓰 입은 놈아!”
씁새가 발길로 호이장의 옆구리를 차며 말했다.
“든적시런눔! 이 씁새는 또 어디서 케케묵은 낚시잡지를 읽고 와서 이 지랄인 겨? 4짜는 커녕 붕어 새끼두 한 마리 귀경을 못했는디, 뭔 시답잖은 소리여? 한나절 땡볕에 살가죽 벌겋게 다 타구, 나무그늘루 피신헌 주제에!”
호이장이 씁새의 발길질을 피하며 말했다. 두 사람의 욕지거리가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어치키… 좀 나오남유?”
그들의 등 뒤 언덕을 타고 내려온 낚시꾼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오긴 개뿔이 나와유? 지놈덜두 날 뜨거우니께 시원헌 저수지 바닥이루 죄다 숨은 모냥여유.”
씁새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래유? 이 저수지가 따문따문 씨알 좋은 놈이루 나와주던 곳인디… 어둑해지문 나오겄지유.”
사내가 씩 웃고는 씁새의 낚시자리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들었는가, 따문따문 씨알 좋은 놈이루 나와준대잖여? 이 쓰벌눔은 남의 말을 곧이 안 들어요.”
씁새가 자신의 낚시자리로 내려가며 말했다.
“남의 말을 안 듣는 것이 아니고, 씁새! 니놈 말을 믿덜 못허는 겨. 이 거머리 쓸개 같은 놈아.”
호이장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한참을 달궈대던 태양이 서산 꼭대기에 걸리고 있었다.
“인자 슬슬 본격적인 낚시를 시작혀야 허는디, 그 전에 저녁이나 먹고 하자고.”
씁새가 도시락을 펼치며 말했다.
“마누라가 오랜만에 낚시 간다고 도시락두 정성스럽게 싸줬구먼? 니놈은 마누라헌티 감사허문서 살아야 혀!”

호이장도 자신의 도시락을 꺼내며 씁새의 5단 도시락을 보며 말했다.
“저 양반두 불러야 허겄지? 낚시터 꾼들 인심이 야박허문 못 쓰는 것인디.”
씁새의 부름에 몇 번을 사양하던 사내가 조그만 도시락 보퉁이를 들고 건너왔다.
“지두 도시락은 싸왔는디….”
사내가 조용하게 웃으며 옆자리에 앉았다.
“많이 싸왔으니께 걱정허지 말고 드셔유. 인자 바람두 션헌디 얼릉 먹고 괴기잡이나 해야지유.”
씁새가 도시락 뚜껑을 열었고, 사내도 자신이 가져온 도시락을 풀었다. 계면쩍은 듯 웃으며 사내가 풀어낸 도시락은 그저 쌀밥에 허옇게 빛이 바랜 김치조각들 뿐이었다.
“반찬이 형편없지유? 짠지(김치) 하나허구 그저 식은 밥 뿐여유.”
사내가 뒷머리를 긁었다.
“사람 사는 모냥새가 거기서 거기지유. 누구는 삼시세끼 괴기 먹간디유?”
씁새가 웃으며 사내의 도시락에 담긴 김치를 입에 넣었다. 순간… 마치 굵은 소금을 덩어리로 퍼 넣은 듯, 소태 씹은 느낌이었다.
“어헉….”

씁새가 차마 입안으로 넘기지 못하고 뱉어내자 사내가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소금소태 같지유? 지 마누라 솜씨가 이려유. 아니지… 예전엔 음식두 잘 혔는디… 마지막 솜씨가 영 아니구먼유.”
“마지막 솜씨라면…?”
호이장이 사내를 보며 물었다.
“그려유. 인자 이 시상에 없구먼유. 이 짠지마저 다 먹어버리문 지 마누라 손맛은 영 사라지는 거지유.”
“아….”

씁새가 조그맣게 탄식을 뱉어냈다.
“안적 괴기덜이 놀만치 날씨가 선선해지덜 안 했으니께 이 사람 푸념을 들어보실래유?”
사내는 씁새가 건넨 소주잔을 들고 저수지 건너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몇 년 전엔 지두 공원들 이삼십 명 데리구 사장님 소리 들으문서 작은 철공소를 운영했드랬지유. 장사가 수월허니 돌아가니께 매일 술독에 빠져 살다시피 허구… 휴일이면 낚시터루 돌아다녔지유. 딸만 하나 있는디… 이놈두 대핵교 졸업허구 지 밥벌이 헌다구 밖으루 돌아댕기구… 결국 우리 마누라만 집 지키는 천덕꾸러기 신세루 전락헌 것을 모르구 있었구먼유.”
사내가 술잔을 비웠다. 호이장이 사내의 잔에 다시 소주를 따랐다.
“어이구… 감사허구먼유. 여허튼 술 퍼먹구 새벽에 들어갔다가 아침나절에 집 나와서 일허다가 저녁이 되문 또 친구놈들, 거래처 쫓아다니문서 술독에 빠졌지유. 주말이문 어김없이 이렇게 낚시터에 앉아있었구유… 그러다가 경기불황이 시작되구 철공소 경기가 바닥을 치구… 순식간에 알거지가 되드라구유. 그러니 워쩌겄슈? 홧김에 또 술독에 빠졌구… 심란허다구 낚시터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지유.”
사내가 다시 소주잔을 비우고는 짜디짠 김치조각을 입어 넣었다.
“집안 살림이 거덜나니께 생전 일이라곤 해보덜 않았던 우리 마누라가 식당에 취직을 했구먼유. 지는 그저 알토란같은 철공소 망한 것만 탓허구, 노상 술이나 퍼먹고 밖으루 돌았지유. 그렇게 몇 년을 허송세월루 보냈지유. 그러다가… 어느 날부턴가 마누라의 음식솜씨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유. 뭐, 그렇다구 지가 집이나 제때 기어들어가서 마누라가 해주는 밥 먹었던 것은 아니지만유. 흐흐흐…”
사내가 조용하게 쓴 웃음을 흘렸다. 끄리에게 쫓기고 있는 듯, 피라미 한 마리가 은빛을 뿌리며 수면으로 튀어 올랐다.
“실상이 그랬슈… 밤늦게 술에 취해서 집으로 들어가면 마누라는 식당에서 일하느라 퉁퉁 부은 다리루 끙끙거리며 잠이 들어 있구… 딸내미는 지 방으로 숨어서 내다보지두 않구… 왜 그렇게 집구석이 싫었던지… 이누무 집구석이 이따구니께 내 사업두 망헌 것이다 싶드라구유. 마누라구 딸이구… 다 보기 싫어지구유.”
사내가 다시 짜고 시어터진 김치를 입에 넣었다.
“어쩌다 집으루 들어가면 부어오른 다리 때문에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마누라가 차려주는 밥상이 왜 그리두 맛이 없는지… 짜고 떫고 국은 그저 수돗물 같았구… 이건 도저히 먹을 음식이 아니드라구유. 음식두 곧잘 헌다구 소문이 났던 마누라였는디… 남편이라는 작자가 집안 살림은 생각도 않고 술이나 퍼먹고 낚시나 댕기문서 밖으로만 도니께 마누라가 일부러 심술부리는 것 같았지유.”
저수지 건너편으로 너댓 명의 낚시꾼들이 보였다. 모처럼의 조행이 즐거운 듯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음식 타박도 허구… 밥상두 몇 번 뒤집어 엎었지유. 남편 알기를 홍어 뭐루 아니께 음식이 이따위라구유… 마누라가 벌어오는 쥐꼬리만 한 돈으루 살림 꾸려나가는데, 남편이라는 작자는 취직헐 생각두 없이 그저 어디 술 받아주는 놈이 없는가 비루먹은 개처럼 돌아다니구, 허구헌날 낚시터서 쭈그리고 있는 주제 말이지유. 그런디… 마누라는 그 음식이 짠지 싱거운지 모르는 눈치드라구유. 지난 겨울이었지유. 그날두 낚시터에 앉아 있었는디… 딸내미헌티 전화가 왔구먼유. 지 엄마가 씨러졌다구…”

가슴이 막막해진 씁새가 사내의 짜디 짠 김치를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히 소금기가 배어왔다.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기기엔 역부족이었다.
“말기 암이라드먼유. 그동안 암세포가 번지문서 미각조차 잃어버린 거지유. 마누라의 음식이 짜고 떫고 싱거웠던 것이 암덩어리가 온몸에 번지문서 감각까지 잃어버린 거라드먼유. 병원에 누워 있는디… 그제야 마누라 얼굴을 제대루 봤구먼유. 이 마누라가 언제버텀 이리 늙었는가 싶었슈. 이 마누라가 언제 이리두 말랐는가 싶구유. 아파트 계단에서 씨러지문서 머리까정 다쳐서…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며칠 후 세상을 떴지유. 애처럽게 내 얼굴을 바라보드만….”
씁새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피라미가 아직도 끄리에게 쫓기고 있는가 싶어 저수지로 눈을 돌렸다.
“마누라를 화장허구 빈 집이루 돌아왔지유. 이제 와서 죽은 놈 불알 만지기지만, 더 허송세월허구 있을 수만은 없다 싶어서 작은 빌딩에 경비원이루 취직을 했지유. 진즉에 어치키든 먹고 살라고 혔으면 마누라 죽도록 고생 안 시켰을 것인디…. 그러구 올 초여름께 직장 때문에 서울에 가 있던 딸내미가 내려왔다가 이 짜디짠 김치를 발견했지유. 구석에 처박혀 있던 작은 김치냉장고를 딸내미가 청소하다가 마누라가 잔뜩 담가놓은 이 김치를 본 거여유. 아마두 작년 겨울에 계단에서 씨러지기 전에 김장이랍시구 담가둔 모냥여유.”
사내가 작게 웃으며 씁새와 호이장의 빈 잔에 소주를 따랐다.
“더 이상 짤 수 없도록 짜디짠 김치… 허지만, 이게 평생을 못난 남편 때문에 고생허다가 세상을 떠나문서 남겨준 마지막 반찬이겄지유. 암 덩어리가 지 몸에서 자라는지두 모르문서 그래두 남편 멕이겄다구 김장을 담갔겠지유.”
사내가 다시 웃으며 김치를 입에 넣었다.
“처음엔 도저히 못 먹겄드라구유… 그런디 쉬는 날 이렇게 낚시 와서 마누라 생각허문서 먹어 버릇허니께 인자는 먹을만해유.”
어느새 사내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건너편의 낚시꾼들도 자리를 잡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저수지를 감돌았고, 옅은 어둠이 스멀거리며 밀려왔다.
“좀 있으문 케미를 꺾어야겄는디? 해가 상당히 짧아졌내벼. 밤에는 괴기가 좀 나올라나?”
호이장이 소주잔을 비우며 말했다. 그 목소리가 조그맣게 떨리고 있었다.
“시상 어느 누구든 슬픈 사연 하나쯤 간직허구 사는 거지유. 그게 인생이니께.”
씁새가 사내의 김치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얼레? 천하의 자발머리없는 씁새가 그런 소리 허니께 웃기덜두 않는디?”
호이장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씁새의 입에 담긴 김치는 더 이상 짜지 않았다. 짜디짠 사내의 김치보다 작게 움츠린 서민들의 인생이 그것보다 더 짜기 때문이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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