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집 떠나면 개고생이다 (下)
박준걸 artella@lycos.co.kr / artella@nate.com
“조졌다…” 회원놈이 휴대폰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씁새가 바락 소리를 질렀다.
“휴대폰이 뒈졌다고! 배가 고파서 연락을 할 수가 없대여!”
“예미럴! 하필 작금의 상황에서 밧데리가 나갔다능겨? 좌우간 일이 터질라문 10년 키운 개새끼두 주인을 문다드먼….”
“그건 또 뭔 개 풀 뜯는 소리여?”
“시끄러우니께, 조동바리 닥치고 우찌 할 것인지 논의나 하자고!”
보다 못한 호이장이 소리쳤다.
“그라문 우짤껴? 시방 전화두 안되고, 우라질 선장은 감감무소식이고….”
회원놈이 한숨을 폭 쉬며 말했다.
“웬만허문 여기서 비박하문서 날이 밝을 때를 지둘리자고. 낼 새벽녘에 낚시꾼 태우고 들어오는 배를 잡아타고 나가는 수밖에 더 있겄어?”
씁새가 담배를 피워 호이장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비박하문서 지둘리기에는 총무놈 마빡이 영 말씀이 아닌디? 당장이라두 병원이루 달려가야 헐 것 같어.”
회원놈이 총무놈의 이마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 손바닥도 말씀이 아니시다.”
호이장이 까진 손바닥을 호호 불며 말했다. 그의 양손에는 피가 스멀거리며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라문 마을까정 이 능선을 타고 넘어가자는겨?”
씁새가 어두워진 바위 언덕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위에 능선을 따라서 가다 보문 포구가 나올껴. 포구서 여기까지 배로 대충 20여분 걸리니께… 걸어가문 두어 시간 걸리겄지. 대청댐 귀신골로 기어들어가던 생각하고 걸어가문 될것이여.”
회원놈이 비장한 눈초리로 말했다.
“예미럴! 귀신골허구 여기허구 같다구 생각혀? 장비도 그때보담 배로 많고, 부상자도 있는디, 두어 시간에 마을로 돌아갈 수 있다는겨? 더구나 이 밤에! 밤낚시 생각허구 온 것도 아니라서 랜턴조차 없는디?”
씁새가 다시 퍼질러 앉으며 말했다.
“그라문 여기서 모진 놈 둘 데리고 밤을 새자는겨?”
그때 이마를 감싼 채 총무놈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 일어섰다.
“시끄러워! 우쨌든 내는 병원이루 가야겄어. 대구리가 쪼개지는 것 같으니께. 밤새 여기 있을 놈은 있고, 떠날 놈은 떠나는겨! 내는 당장 가야겄어.”
“이게 뭔 개고생이여? 낚시질 40여년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겄어?”
씁새가 툴툴거리며 일어섰다.
결국 밑밥과 미끼 등을 모두 비우고 최대한 짐을 가볍게 한 일행들이 산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씨벌… 이 어둠 속을 우찌 헤쳐 나간다는겨?” 능선의 정상에 올라선 씁새가 말했다. 그들의 앞에는 밑도 끝도 없는 어둠이 나무숲 사이로 내려앉아 있었다. 이마를 쥔 채 끙끙거리는 총무놈의 짐과 손바닥이 까진 호이장놈의 짐을 나머지가 분산해서 짊어진 판에 어둠마저 짙게 깔려 움직이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모두들 가방에서 케미라이트 꺼내봐. 그거라도 부러뜨려서 앞으로 나가보자구. 중바위가 포구서 남쪽이니께 북쪽이루 걸어가야 헐 거시여.”
호이장이 나침반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나마 태클박스에 예비용으로 넣어둔 케미라이트를 모아 부러뜨리자 퍼렇게 사방이 밝아왔다.
“시방 우덜이 뒤지러 가간디? 열두폭 치맛자락맨치 구겨진 인상 좀 펴! 이 쓰벌눔은 총무놈 마빡 까진 것이 뭔 지놈 죄라구 금방이라두 통곡을 할 인상이여?”
맨 뒤에 처져서 풀이 죽은 채 걸어오는 거시기를 보고 씁새가 소리쳤다.
“그게… 거시기… 뒤에서… 거시기…”
왜 그런지 거시기의 얼굴에는 미안함 대신 공포의 표정이 가득했다. 계속해서 앞을 가로막는 잡풀들과 소나무 가지들을 헤치고 겨우 겨우 케미라이트 불빛에 의지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어! 저… 저기! 저기!”
무거운 짐에 눌리고, 나뭇가지들에 긁히며 걷다가 능선 위의 큰 바위에 일행이 앉아 쉴 때였다. 느닷없이 회원놈이 바다를 향해 손짓을 해대기 시작했다.
“월레? 저건 또 뭣이여?”
분명히 장선장의 배였다. 서치라이트를 훤히 비춘 채 장선장의 배가 그들이 있던 중바위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예미럴! 그러게 내가 저기서 지둘리고 있자고 했잖여! 이 무신 야밤에 깨춤이여! 흐미… 멀어서 소리를 질러두 안 들릴 것이구… 워메! 속 터지겄네!”
씁새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씨부럴! 일이 그리 될 줄 알았간디? 장선장이 올라문 일찍 올 것이지, 야밤에 서치 비추고 나대는 건 또 뭔 경우여?”
호이장놈이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됐으니께, 어여 일어서! 이제 와서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지. 벌어진 일을 우쩌겄어? 뒤지는 한이 있어도 걸어가야지.”
회원놈이 장비를 둘러메며 말했다. 이미 장선장의 배는 중바위 곳곳을 비추어 보고는 뱃머리를 돌리는 중이었다.
“저기… 거시기…”
얼마를 걸었을까? 씩씩거리며 걷고 있는 씁새의 뒤에서 거시기가 씁새의 옷깃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뭐여? 힘들어 죽겄는디?”
“뒤에서… 뒤에서…”
거시기가 흘끔 흘끔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뒤가 우쨌다는겨? 이 바쁜 판국에 뒷간이라도 가겄다는…”
씁새의 말이 끝나려는 찰나, 무언가 시커먼 것이 풀숲에서 뛰쳐나와 일행들을 쏜살같이 가로질러 뛰어갔다.
“뭐! 뭐여… 뭣이여!”
서슬에 놀란 일행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낚시장비는 산산이 쏟아졌다.
“옘병! 인자는 흉악시런 산짐승의 출현인겨? 아니문 귀신이여?”
비탈 아래로 나가떨어진 호이장놈이 신음소리를 뿌려대며 소리쳤다.
“오, 이런 빌어먹을! 저놈이 나를 들이받고 튀었다.”
비탈진 소나무 아래에 처박힌 총무놈이 소리쳤다.
“또 온다!”
맨 앞쪽에 납작 엎드려 있던 총무놈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두두두두두두두…
저 앞쪽에서 또다시 시커먼 놈이 굉음을 울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예레이!”
어느새 일어선 씁새가 달려오는 놈을 향해 돌덩이를 던졌다.
“뻑!”
정확하게 맞는 소리가 나고 이어서 미친 듯이 달려대던 시커먼 녀석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메에헤헤헤헤…”
“뭐여? 염생이 새끼 아녀? 이런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
정통으로 머리를 맞은 듯 능선위에 주저앉은 염소가 비척대며 울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염생아… 정작 울고 싶은 건 우리들이여.”
언덕위로 올라선 총무놈이 자신의 이마를 감싼 채 울듯이 말했다.
“참이루 두 놈이 닮았다… 돌팔매에 이마 까진 염생이나, 봉돌에 이마 까진 총무놈이나…”
주섬주섬 낚시장비를 챙겨든 씁새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대체 몇 시간이나 걸어온 겨? 월매나 더 가야 마을이 나오는겨? 우덜이 시방 지대루 걷고는 있는겨?”
더 이상 걸을 기력이 쇠잔해진 총무놈이 걷다말고 우뚝 서며 말했다.
“방향은 맞으니께 어여 힘내. 이보다 더 지랄맞은 일두 겪은 놈이 왜 이라는겨? 저 씁새놈허구 낚시 댕기문서 이보다 더 험한 꼴 한두 번 봤간디? 넘의 화장실 뛰어 들어갔다가 흉악시런 강간범이루 몰리덜 않나, 똥통에 빠져서 자동차 지붕 위에 매달려 오덜 않나… 썩어빠진 좌대에 올라갔다가 태풍 만나서 빠져 뒤질 뻔허덜 않나….”
호이장이 피들피들 웃으며 말했다.
“씨불넘… 그걸 말이라구 씨부리는겨? 우째 그것이 내 잘못이라는겨? 상황이 수상시럽다 보니께 그리 된 것이지. 내가 그럴라구 똥통에 빠지구, 강간범이루 몰리구 혔간디? 하여간 낚시질 가서 뭔 일이 잘못 되문 내 탓이여, 쓰불넘들. 니놈덜 조상님 묫자리를 잘못 써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겨.”
씁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개뿔! 인자는 조상님 묫자리두 나오는구먼. 씨벌. 인자부텀 내가 낚시질을 댕기문 아까 그 염생이 새끼다.”
“그려. 집 떠나문 개고생이라드먼, 내두 인자 낚시 때려치우고 산이루 올라갈란다.”
“내 손에 낚싯대가 들려 있으문 내가 사람이 아녀!”
모두가 낚시장비를 내팽개친 채,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더 이상 움직일 기력조차 사라졌고, 느닷없이 따뜻한 집과 가족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올랐다. 어느새 거시기는 훌쩍거리고 있었다.
총 6시간 이상이 걸려 그들이 남일대 해수욕장 뒷산으로 내려섰을 때는 그만한 거렁뱅이들이 없을 지경이었다. 찢어지고 터진 옷가지와 긁히고 피 맺힌 몸들하며 지나가던 개가 놀라 짖어댈 정도였다.
다행히 총무놈의 이마는 서너 바늘 꿰맨 후 치료가 끝났고, 호이장의 손바닥도 항생제를 바르고 치료가 무사히 끝났다. 물론 터지고 깨진 모두의 상처도 그리 깊지는 않아 간단한 치료로 마무리되었다. 다만, 그들의 수상한 몰골에 놀란 의사와 간호사들의 표정만 안타까울 뿐이었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며 낚싯대를 놓겠다던 씁새 일행이 어찌 되었느냐고?
그렇게 모진 고생을 치른 다음 주 금요일 저녁, 호이장놈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야! 씁새야. 거제도 쪽으로 벵에돔이 붙었댄다. 튀자.”
당연히 그들은 지난주의 개고생을 잊어버리고 출조를 할 것이고, 더욱 당연히 개고생을 하고 돌아올 것이다. 집 떠나면 고생인 건 진리이므로.(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