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광장

사이드메뉴
이전으로
찾기

(7화)

씁 새(153)_집 떠나면 개고생이다 (上)
낚시 꽁트 씁새

 

 

 

 

 

집 떠나면 개고생이다 (上)


박준걸  artella@lycos.co.kr / artella@nate.com


일이 그리 되다보니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출조하는 아침부터 심기가 몹시 불편했었다. 오랜만에 떠나는 바다낚시인지라 모처럼 기분이 들떠있었건만 낚시장비 챙겨드는 씁새의 뒤에서 마누라의 근심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웬만허문 가덜 마시지…”
천지가 개벽을 하든, 북한의 김정일이가 핵폭탄으로 깨춤을 추든, 아랑곳없이 물가로 떠나고야 마는 씁새의 올곧고 지랄맞은 성격을 아는지라 여간해선 씁새의 낚시를 말리지 않던 마누라가 이미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씁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 것이다. 그만큼 씁새의 마누라로서도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한 말이었다.
“그건 뭔 소리여?”
“그게유… 지난밤 꿈에…”
이건 웬 한여름날 대청마루에서 널브러져 자다가 형수님 넓적다리 긁는 소린가 해서 쳐다보는 씁새의 눈에 얼굴 가득 근심이 서린 아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꿈이 워치키 됐간디?”
“하두 요상시런 꿈을 꾸서 그려유…”
“뭣이가 요상시럽다는겨? 꿈이 워쪘다구 그러는겨?”
“그게…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낚싯대를 들고 나타나셨구먼유.”
올 초에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아내의 꿈에 나타나셨던 모양이다.
“그려? 그건 좋은 꿈이잖여? 아버님두 나랑 낚시를 가시고 싶었던 모냥이구먼. 좋은 꿈인디, 우째 낚시를 가지 말라는 겨?”
씁새가 피식 웃으며 신발을 신었다.
“그란디… 아버님이 낚싯대를 분질렀슈.”
순간, 씁새의 머릿속이 헝클어지는 느낌이었다.
“당신만치나 낚시를 좋아하시는 아버님께서 낚싯대를 분질르신다는 건… 뭔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다는 뜻 같아 보여서유.”
주말마다 집안일 내팽개치고 저수지로 바다로 쏘다니는 꼴 보기 싫고 한심스러운 남편을 붙잡아 놓기 위한 거짓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돌아가신 아버님을 들먹이며 말릴 마누라는 아니었다.

 

“그… 그려… 그라문 아버님 계신 하늘나라에는 낚시터가 없거나 있어두 시원찮은 개비구먼. 별일 없을 거여. 걱정허덜 말어. 내두 조심헐라니께.”
애써 웃으며 현관문을 나섰지만, 느닷없이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툴툴거리는 호이장놈의 승합차에 짐들을 싣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 나올 때까지도 씁새의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하지만, 천성이 골수까지 낚시꾼인 씁새의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휴일임에도 뻥 뚫린 고속도로로 올라서자 무거운 마음은 봄 눈 녹듯 사라졌다.

“중바위를 탈 껴, 아님 진널방파제로 올라설 껴?”
“어차피 우덜이 도착하문 2시경이나 될 것인디… 오늘은 중바위 타고 내일은 진널방파제로 나가자고. 중바위가 오후 포인트잖여?”
“거시기하문, 진즉에 거시기를 가면 참이루 거시기 헐 것인디유!”
“니놈은 나불대덜 말고 닥치고 있어. 알아듣는 놈두 없는디 씨부리지 말고.”
한껏 들떠있는 녀석들을 보면서 씁새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 마누라와 나눴던 께름칙한 대화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지체나 정체현상 하나 없이 그들의 승합차는 점심나절에 무사히 경남 사천으로 들어섰다.
“이쯤서 뱃속에 곡기라도 채워 넣어야 허는 거 아녀?”
사천시내로 들어서자 호이장놈이 길가로 차를 세우며 말했다.
“그려, 먹구 살자구 허는 짓인디 굶어가며 낚시질 댕길 일이 있겠는가?”
한껏 들뜬 씁새가 승합차 문을 열며 말했다. 대충 한 그릇씩 비우자고 국밥집을 들어가 경상도 명물이라는 돼지국밥 한 그릇을 다 비웠을 때였다.
‘도저히 알아들어 처먹지 못할 말’을 씨부린다고 총무놈에게 몇 번 구박을 받은 거시기놈이 먼저 일어섰다.
“월레? 저 거시기놈이 웬일이래? 지가 돈 낼 모냥인디?”
낚시미끼조차 아까워 하수구 파내서 지렁이 잡고, 미끼 따로 사기가 아깝다고 밑밥용 크릴 녹여서 쓰는 짠돌이 거시기가 먼저 일어서서 카운터로 다가가는 것을 본 회원놈이 실실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거시기놈은 그들의 호기심어린 눈길을 보기 좋게 외면하고는 그대로 식당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려, 쓰벌! 천하의 짠돌이 거시기놈이 밥값 내는 법이 있겄어? 낚시 댕기문서 배운 짓이라고는 제 놈 사부를 닮아서 사고치는 것뿐인 놈인디!”
호이장놈이 씁새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 쓰잘데기 없는 갯강구같은 놈이 왜 나를 노려보는겨? 내는 저놈 낚시 가르친 죄밖에 없어! 천하의 짠돌이 되라고 가르친 적은 없으니께 나를 원망허덜 말어. 그런 의미로 이번 밥값은 호이장놈이 내는겨.”
쏜살같이 내뱉은 씁새가 냉큼 일어섰다.
“씨불넘… 저 지랄허문서 짠돌이 짓을 안 가르쳤대… 씨이불넘…”
어느새 신발 꿰어 신고 식당 밖으로 사라지는 씁새를 보며 호이장놈이 중얼거렸다.
“이놈은 또 워디 간겨?”
계산을 끝내고 승합차가 세워진 주차장으로 돌아왔을 때, 으레 먼저 나가 기다리고 있어야 할 거시기놈이 보이질 않았다.
“똥 누러 간겨?”
총무놈이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했다.
“예미, 화장실은 식당 안에 있는디 뭣 헐라고 밖으로 기어 나와서 똥 누러 간다는겨?”
씁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라문… 총무… 니놈이 하두 구박을 허니께 어디 가서 눈물 질질 짜고 있는 거 아녀?”
회원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때였다.
“얼씨구? 이 양반은 뭐여?”
주차장 한 구석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우리 차에서 퍼질러 잔대? 이사람 누구야? 여보슈, 일어나쇼.”
그들이 타고 온 승합차와 얼추 비슷한 승합차에서 관광객 차림의 네댓 명이 소리치고 있었다.
“거시기… 이게 거시기…”
그리고 그들의 틈에서 거시기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월래? 저 빌어먹을 놈은 또 저기서 뭔 짓을 하는겨?”
씁새가 놀라 뛰어가며 말했다.
“이 양반 아는 사람이슈?”
헐레벌떡 뛰어 온 씁새를 보며 일행 중의 누군가가 물었다. 자다 깬 게슴츠레한 눈으로 승합차의 뒷좌석에 거시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죄송허구먼유. 댁들 차허고 우덜 차허고 비슷허니께 이놈이 이리 들어가 잠을 잔 모냥여유. 가끔 정신 나간 짓을 허는 놈이지만, 별다른 해코지하는 놈이 아니니께 이해해 주셔유.”
씁새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두 이상하잖소. 아무리 정신 나간 사람이라도 남의 차에 올라타서 잠을 잔다는 게 말이 될 법합니까? 내 차에 남이 자고 있으면 기분이 안 나쁘겠소?”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사내가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 싸움으로 번질 태세였다.
“그래도 저 놈이 물진 않어유.”
어슬렁거리며 다가온 회원놈이 심드렁하게 말을 뱉었다. 순간, 잠시의 정적이 흐르고 모두가 웃어젖혔다.
“정신 나간 놈 데리고 사라지겠습니다. 죄송했구먼유.”
아직도 사태 파악이 덜 된 기시기의 손을 잡아 끌어내리며 회원놈이 말했다. 승합차 앞에서 킬킬거리는 사내들을 뒤로 하고 거시기의 팔을 잡아끌던 회원놈이 거시기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이 쓰벌눔이 지놈 사부를 닮아서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댕길라고 허는구먼! 하마터면 낚시도 못가고 길바닥에 누울 뻔 했잖여.”
회원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거시기가… 거시기혀서…”
“시끄러! 이놈은 눈이 포경이여, 뭐여? 저놈덜 팔뚝에 시퍼렇게 눈 뜨고 있는 용대가리 안보여?”
그제야 사태 파악을 한 거시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일행의 구박을 받으며 승합차에 오르는 거시기를 보며 문득 씁새의 뇌리에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워낙 엉뚱하기도 하고, 생뚱맞은 짓을 잘하는 녀석인지라 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아침의 일과 겹쳐서 씁새에게는 예사롭지가 않았다.
“뭣이여? 갑자기 천하의 씁새가 입을 닫고 있으니 말여. 오랜만에 바다낚시 가니께 설레여서 말이 안나오는겨?”
호이장이 돌아보며 말했다.
“얼씨구? 그러구 보니께 아침부텀 씁새가 말수가 퍽이나 적어졌는디? 집에서 대판 싸우고 나온겨?”
총무놈이 씁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조동바리 닥치구 운전이나 열심히 혀. 시방 이 어른께서 심기가 매우 불편시러우니께.”
씁새가 불퉁맞게 쏘아붙였다. 무엇인지 모를 찝찝한 씁새의 마음과는 달리 일행들은 한껏 들떠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보며 난생 처음 바다를 본 녀석들처럼 소리를 지르는 일행들을 보며 씁새는 다시 기분을 고쳐먹기로 했다.
‘별다른 일이 있겠어? 다른 사람들은 별 탈도 없고, 나처럼 침울한 이야기를 들은 것도 아닌데, 저들과 같이 낚시를 왔는데 나에게만 별 일이 생길 리도 없잖은가…’
오랜만에 왔다며 반가이 맞아주는 낚시점 여주인을 보며 씁새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침 남편이 먼저 온 낚시꾼들을 진널방파제로 데려다주러 배 타고 나갔다는 말을 들으며 밑밥과 미끼를 골랐다. 낚시점 앞으로 남일대 해수욕장과 해수리조트가 초여름 햇볕에 반짝이고 있었다.
“아따, 오랜만에 오셨구만.”
이미 타버릴 대로 새카맣게 타버린 장사장이 낚시점으로 들어서며 환하게 웃었다.
“중바위? 허긴… 중바위는 오후 포인트니께 지금 가도 감생이 얼굴은 알현허겠구만. 진널은 낚시꾼덜이 너무 몰려서 만만헌 자리도 없어. 낚시줄이 엉키지나 않으문 다행이라니까.”
배의 시동을 걸며 장사장이 소리쳤다.
“여름이라 해가 좀 늦으니께 6시쯤 모시러 갈거구먼. 친척 조카놈이 오늘 결혼을 헌다네? 어여 모셔다 드리구 식장에도 가봐야 하는디… 오늘은 무척 바쁘구먼.”
배의 시동을 걸며 장선장이 말했다. (계속)  

 

 

 

 

 

 

 

※ 낚시광장의 낚시춘추 및 Angler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침해(무단 복제, 전송, 배포 등) 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