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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화)

[연재_낚시꽁트 씁새 (325)] 구보 씨의 굴욕(상)
낚시 꽁트 씁새
[연재_낚시꽁트 씁새 (325)]

구보 씨의 굴욕(상)


박준걸 artellar@hanmail.net
일러스트 이규성

구보 씨는 아내와 함께 씁새의 동네에서 작은 선술집을 운영하고 있다. 메뉴래야 선술집처럼 해물전, 동태찌개, 고갈비, 계란말이, 제육볶음 정도다.

물론 씁새 패거리들과 잘 아는 사이는 아니다. 구보 씨에게 씁새 패거리는 그저 가끔씩 들러서 술이나 마시고 허접스러운 낚시얘기만 줄창 떠들어대는 단골스러운 손님일 뿐이었다. 구보 씨가 이놈들의 말에 넘어가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워낙 작은 가게이다보니 테이블이라고는 5개에 그저 그런 메뉴이다 보니 매출이라고 신통치도 않았고, 하루에 두서너 팀 받으면 다행인 정도이다. 그래도 잊어버릴 만하면 찾아와서는 뭔 소린지 모를 낚시 얘기나 떠드는 놈들이지만 구보 씨 내외에게는 고마운 손님이다.
그날도 그랬다. 이 패거리들이 호기롭게 들어와서는 늘 그렇듯, 해물전에 동태찌개를 시켜 놓고는 시덥잖은 소리를 까 제끼고 있었다.

“한치! 이 시방새들아! 한치!”

저 입 걸은 놈이 씁새라는 이상한 놈이다. 보통 저 네 놈이 같이 만나는데, 저 씁새란 놈은 아예 낚시에 미친놈인 것 같다! 무슨 주말만 되면 사라져서는 낚시를 가는 것 같다.

“개눔아! 시방 붕어가 세숫대야만 헌 것이 나온단 말여!”

저놈은 호이장이라고 불리는 놈이다. 대체 호이장이란 뜻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네 놈 모두 낚시를 다니는데, 씁새란 놈은 바다낚시를 가는 모양이고, 나머지 세 놈은 바다낚시 보다는 민물낚시를 자주 다니는 것 같다.

“닥쳐! 씁새 네 놈이 한치 댕겨와서 한 마리 주는 것을 못 봤어!”

저놈은 총무라고 한다. 꼴에 저 네 놈이 무슨 낚시회를 운영하는 모양인데, 다른 회원들은 보이지 않고, 늘 저 네 놈만 모인다. 망한 낚시회 같다.

“낚시는 뭐니 뭐니 해도 쏘가리 낚시가 최고여! 한치 새끼 백 마리 가져와 봐라. 쏘가리 한 마리하고도 안 바꾼다.”
저 놈은 회원이란다. 뭔 낚시회에 꼴랑 저 놈 하나만 회원인 것 같다! 망한 낚시회가 틀림없다.

“캬! 이 촌놈의 새퀴들아! 한치를 몰러? 오징어가 보리밥이면 한치는 쌀밥이다, 몰러? 하, 이 그지 같은 자식들!”

지금 씁새라고 하는 놈이 남해 쪽으로 한치 낚시 가자고 열심히 꼬시는 중이다.

“한치회! 한치무침! 한치물회! 한치순대! 한치찜! 좀만놈들아!”

거의 열변을 토한다. 저 씁새란 놈은 정력이 쎈 모양이다!

“열심히 잡아서 처먹어! 잡았으면 먹으라고 나눠주면서 그런 소리 하면 귀엽기나 하지. 이 씁새는 한치 다리도 안 줘요, 드런 새퀴.”

호이장이란 놈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뭐, 저 놈들 만나면 서로 소리 지르고, 서로 욕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사이좋게 가버린다. 희한한 놈들이다.

“네 놈들이 잘 몰라서 그런가 본데, 여기 해물전 있잖여? 여기에 오징어 대신 한치를 넣어봐! 순식간에 업그레이드 되는겨! 격이 틀려! 저기, 사장님!”

씁새가 말을 하다 갑자기 구보 씨를 불렀다.

“예? 아, 예!”구보 씨가 놀라 대답했다.

“여기 해물전에 한치를 넣어 봐유! 겁나 호텔 음식이여. 그러고 사장님네 메뉴에 한치회, 한치무침, 한치물회 이런 거 맹길어 넣어봐유. 금새 손님들루 메어 터찔껴!”

씁새란 놈이 구보 씨에게 말했다. 그때 구보 씨의 머리를 무언가가 텅 치고 가는 느낌이었다.

“조까세요. 뭐니 뭐니 해도 민물 매운탕이 최고여. 메기, 빠가사리 이런 거 넣어서 매운탕 끓이면 대전 시민들이 사장님네 가게로 죄다 몰릴껴!”

회원이라는 놈이 말했다.

“너나 까세요! 네 놈은 이 해물전에 메기를 처 넣을껴? 빠가사리를 쳐 넣을껴?”

씁새라는 놈이 바락 바락 소리를 지른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구보 씨 가게에서 그래도 잘 나가는 것이 해물전인데, 거기에 씁새란 놈 말대로 민물고기를 넣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민물 매운탕을 하려니 자신이 없었다. 민물 매운탕은 손이 많이 가고, 잘 못하면 비린내 대박이다.

“그려서 한치 잡으러 갈껴? 요즘 못 잡으면 백 마리! 잘 잡으면 이백 마리랴. 한치 잡으러 같이 가자!”

씁새가 애원하듯 말한다. 참 성격도 가지각색인 놈들이 잘도 뭉쳐 다닌다. 망한 낚시회에 그나마 남아있는 놈들이라서 그런가?

“안녕! 잘 다녀오세요, 우린 이번 주에 붕어 잡으러 간다. 한치 많이 잡아서 물회 맹길어서 목욕이라도 하세요, 씁새야.”

그렇게 저 세상 한심스러운 놈들의 술자리가 끝났다. 씁새라는 놈은 다른 낚시회 사람들과 한치를 가게 된 모양이다. 오늘의 음식 값은 총무라는 놈 차례인 것 같다. 음식 값을 치른 놈들이 가게를 나서며 언제나처럼 말한다.

“술 깰 겸 흐느낌 하나씩 사먹자.”

처음엔 저게 뭔 소린지 몰랐다. 세상에 흐느낌이라는 음식이 있는지... 그런데, 저 희한한 놈들에게는 그런 것이 있다. 저 놈들이 말하는 흐느낌은 모 빙과류 회사에서 나오는 ‘설레임’이라는 빙과다. 어째서 그걸 흐느낌이라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저 놈들이라면 이해가 될 것 같다. 씁새 패거리들이 가버리고, 술상을 정리하던 구보 씨가 곰곰이 생각에 젖어든다.

‘한...치...회? 무침? 그러고 물회?’

별로 어렵거나 힘든 음식은 아니었다. 더구나 구보씨의 전공이 일식이었기에 회를 뜬다거나 초밥을 쥐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물론, 구보 씨도 요즘 난리라는 한치 낚시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유튜브를 보면 나오는 것이 한치낚시였고, 100수니 200수니 하는 얘기는 늘 들어왔다. 다만, 구보 씨는 낚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보니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들어 왔을 뿐이다.

“한치낚시유?”

가게가 끝나고 주방을 정리한 구보 씨와 아내가 자리에 앉아 의논을 시작한다.

“그려. 아까 그 씁... 머냐? 씁새? 그 사람이 얘기 허잖여.”

“택두 없슈. 당신은 저 사람덜 몰러유? 낚시에 빠져 사는 날건달, 한량들이잖여유?”

(그렇다! 실제로 구보 씨의 아내가 이렇게 얘기 했다고 한다. 단골임에도 그저 하는 얘기라고는 낚시질 얘기 밖에 없는 한심스러운 낡은이들이다.)

“그러구 낚시꾼덜 얘기는 죄다 뻥이래잖여유. 뭐 접때 저 사람덜 와서는 뭐라고 뻥을 쳤는지 알어유? 저 총무라는 양반이 그러대유. 지가 잡은 괴기가 월매나 컸는지, 저수지서 꺼내니께 저수지 물이 반이루 줄었대유.”

구보 씨의 아내가 정색을 하며 말한다.

“아니, 그건 재미루 허는 얘기잖여. 내 생각에는 우리 가게두 메뉴를 좀 더 개발허야 할 것 같고 말여... 저 씁새라는 사람 말대로 한치가 그리 잘 잡히면, 두고두고 한치 요리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구보 씨가 정중스럽게 말했다.

“허긴... 한치회, 물회... 이런 거는 여름 한 철에 메뉴로 내놓기 참 좋은디...”

“그것만이 아녀. 한치를 한 철 잡아다가 쟁여놓고, 찜이나 볶음이루 내놔두 좋을 거여. 오징어 보다 비싸고, 맛두 좋잖여? 해물전에 넣어두 좋고.”

구보 씨가 깊은 숨을 들이키며 말했다. 그렇게 구보 씨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구보 씨가 고민을 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저 네놈 때문이었다. 한치 낚시를 가자니, 완전초짜인 구보 씨가 누군가와 같이 가서는 낚시를 배워야 할 것인데, 저 씁새라는 놈이 몹시 미덥지 않았던 것이다. 하는 말이나 짓거리가 저잣거리의 사기꾼 같았다. 그리고 며칠 후 구보 씨의 생각이 바뀌게 된다.


“애기아빠(구보씨)! 얘기 들었어유? 저기 그 씁새라는 낚시꾼, 그 양반이 지난 주 한치 낚시를 가서는 백 마리가 넘게 잡아왔대유!”

“그려? 그 사람이 그리 낚시를 잘 헌대? 누가 그랴?”

구보 씨가 다급하게 묻는다.

“그 씁새라는 낚시꾼 부인이 그라대유? 점심나절에 아파트 정문서 만났는디, 지난주에 한치 낚시 가서는 엄칭이 잡아서는 여기저기 나눠줬다고 허든디유?”

씁새의 부인을 아는 이유는, 씁새 패거리들과 그들의 부인들이 가끔씩 구보 씨의 가게에 모였기 때문이다. 구보 씨 가게의 동태탕이 꽤 맛있기로 소문이 나있어서 같이 모이기도 했고, 그 부인들끼리 모여서는 낚시에 눈먼 한심한 남편들을 안주삼아 모임을 갖기도 했다.

“지난주면, 엊그제 아녀? 남쪽이루 한치 낚시 간다고 허드만...”

그때 구보 씨의 마음은 굳어져버렸다. 물론, 내심으로는 한치 낚시를 핑계로 가게를 잠시나마 떠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름도 거지같은 개차반낚시회라는 한심한 패거리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때라도 알았다면 일이 이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며칠 후, 또다시 씁새 패거리들이 가게로 들어섰다.

“쉑휘들아! 어뗘? 한치 맛이 어뗘?”

씁새란 놈이 거들먹거리며 말한다. 아마도 한치 잡아 온 것을 나누어 줬던 모양이다.

“그려, 알었다. 그래서 이번주에 같이 간다고 했잖여. 근디, 왜 나만 가문 한치가 안 나오는겨? 노바닥 갈치만 극성을 부리고.”

씁새는 물론이고, 나머지 세 놈도 바다낚시를 가끔씩 다닌다고 하더니, 한치 낚시를 몇 번 같이 다녔던 모양이다.

“그건 네놈들 실력이 뭣 같아서 그려.”

씁새란 놈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리고는 구보 씨가 그들이 주문한 해물전과 고갈비를 들고 다가갔다.

“낚시 잘 허시나봐유?”

구보 씨가 어렵게 말을 했다.

“뭐, 넘들 허는 많큼 해유.”

호이장이란 놈이 대답한다.

“그게... 저기... 그 한치 낚시 말여유. 어렵덜 안혀유?”

구보 씨가 다시 어렵게 말한다.

“왜유? 해 보시게유? 그라문 인자 이 해물전에 한치가 들어가는겨유?”

씁새가 반갑게 묻는다. 염병... 이놈이 반갑게 묻지만 않았어도 그 지경은 아닐 텐데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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