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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연재_에세이] 마수걸이 쏘가리의 기쁨
낚시에세이
[연재_에세이]

마수걸이 쏘가리의 기쁨

이병철


매년 4월 첫째 주쯤 섬진강에 가면 곡성, 압록에서부터 구례, 하동까지 강변을 따라 만개한 벚꽃이 장관이다. 물밖에는 벚꽃이, 물속에는 매화꽃이 피는 시절, 아름다운 매화문양을 금빛 어체에 박아놓은 쏘가리들이 본격적인 먹이활동을 하는 것도 벚꽃의 개화 시기와 맞물린다. 

그런데 웬걸, 벚꽃이 3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하더니 기온이 26도에 육박한 3월 말에는 섬진강 여기저기서 봄 쏘가리 마릿수 소식이 들려 왔다. 산수유와 매화가 먼저 피고, 진달래 개나리 피고, 목련 핀 다음 벚꽃과 라일락 피던 시절은 이제 추억이 됐는데, 3월 말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동면터를 지그헤드로 두드려 간신히 쏘가리를 만나던 고생스런 낚시도 옛 이야기가 된 듯하다. 환경을 생각하면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꽃과 쏘가리처럼 낚시꾼도 바뀐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야지.

그런데 꼭 내가 낚시 가려고만 하면 호시절은 끝나고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된다. 4월 첫 주 평일, 2023년 쏘가리 마수걸이를 위한 낚시 일정을 오래전부터 잡아놨는데, 하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봄 가뭄 해갈과 산불 진화에 꼭 필요한 단비였으므로 마음은 기뻤다. 하지만 찬비는 기온을 뚝 떨어뜨리고, 수온까지 낮출 것이었다. 가봐야 꽝 치거나 겨우 낱마리 볼 게 뻔했다. 갈까 말까 수없이 고민한 끝에 비 좀 맞고 낚시하기로, 아니 낚시보다는 빗소리 들으면서 낮술이나 마시기로 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경기도 화성 사는 내 친구 박진형 군과 오랜만에 동행 출조다. 지난 2015년 꺽지 낚시를 전수해주며 계류 루어낚시에 입문시킨 후 섬진강, 금강, 홍천강, 경호강, 평창강 등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낚시와 술과 낭만을 함께 즐겼다. 요 몇 년 사이 골프에 빠져서는 낚시에 소홀해진 탓에 한 해에 한두 번 같이 가기도 어렵게 됐는데, 웬일로 흔쾌히 시간을 냈다. 춥고 고생하는 걸 싫어하는 놈이 심지어 우중전까지 감내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새벽 3시40분 화성에서 출발해 아침 7시 곡성에 도착, 웨이더를 입고 포인트에 들어섰다. 추위를 잘 타는 친구를 위해 내가 입으려고 새로 산 웨이더를 건네고, 나는 물이 새는 헌 웨이더를 입었다. 고어텍스를 입었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소매 안쪽이 축축하게 젖어들고, 후드를 뒤집어써도 강풍에 날리는 빗방울이 얼굴을 때렸다. 

그래도 낚시를 못할 여건은 아니어서, 요맘때 항상 쏘가리 나오는 자리를 미노우로 부지런히 공략했다. 그러다 쏘가리는 아니고, 잉어로 추정되는 녀석이 훌치기 됐는지 드랙을 쭈욱 째다가 빠져버렸다. 여울에서 잉어 걸면 팔만 아프고 고생이다. 잘됐다고 생각했다. 여울꼬리 연안에 잉어가 들어 있는 게 썩 반가운 상황은 아닌데...... 

골똘해질 무렵 진형이가 기겁을 하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발앞으로 시커먼 게 쑤욱 하고 나왔다가 들어갔다고. 부지런히 먹이사냥 중인 수달 두 마리를 본 것이다. 비 내리고, 바람 불고, 물 차갑고, 잉어가 설쳐대는 데다 수달의 횡포까지...... 조졌다 싶어서 낚시를 접었다.

곡성읍 소머리국밥집에서 뜨끈뜨끈한 국밥에 소주 한잔 하고, 민박집에 가 아침부터 드러누워 밤샘의 피로를 풀었다. 단잠에서 깨니 벌써 오후 세 시. 창문을 열어 보니 비가 그쳤다. 이디야커피에서 아이스커피 한잔씩 마시고, 구례로 차를 몰았다. 아침에 꽝친 곡성 중상류권은 오후에도 비슷한 상황일 거고, 일찍 시즌이 열린 만큼 아무리 비 오고 수온이 떨어졌다 해도 여울에 쏘가리들이 붙었을 거라는 예상을 하고 구례 동해마을 여울로 간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최상의 결과를 낳았다.

오후 네 시, 여울꼬리에 자리를 잡았다. 몇 번 캐스팅 만에 드랙을 마구 째는, 잉어인지 누치인지를 걸었다가 털렸다. 그리고 몇 분 뒤, 다시 팔뚝만 한 누치 등지느러미를 미노우로 걸어서는 여울에서 한참 줄다리기 끝에 물 밖으로 끌어냈다. 어쨌든 손맛은 봤다며 위안하면서도 마음은 내심 불안했다. 경험상 이 포인트에서는 오후 다섯 시 조금 넘으면 입질이 들어올 거라고 말하면서 초조해하는 친구를 안심시켰다.


오후 다섯 시 반, 말이 무섭게 여울에서 쏘가리가 입질을 했다. 톡, 하고 미노우를 무는 경쾌한 입질은 쏘가리의 것이 확실했다. 물밖으로 꺼내니 일곱치 정도 크기의 잘 생긴 섬진강 봄쏘가리다. 그렇게 마수걸이에 성공했다.

진형이에게 릴링을 천천히 하고, 중간에 스테이를 길게 줘서 쏘가리가 루어를 충분히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미노우 운영법을 친절히 알려주는 와중에 여울에서 또 한 마리 쏘가리가 물었다. 30cm급의 준수한 씨알이었다. 진정한 시범교육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스승의 넓은 도량을 발휘해서 내가 선 자리를 진형이에게 양보하고 나는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갔다. 자리를 양보한 덕분인지 아니면 미노우 운용법 특강이 빛을 발한 덕분인지 진형이도 곧 쏘가리를 걸어냈다. 한 마리에서 그치지 않고 연달아 두 마리를 더 꺼냈는데, 랜딩 과정에서 한 마리를 떨구고 말았다.두 마리를 연거푸 잡더니 이놈이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너랑 낚시가면 맨날 너 잡는 거 구경만 하고, 나는 손맛도 못 봤잖아. 그래서 낚시 가봤자 ‘에이 어차피 꽝일 텐데’ 싶어서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더라고. 그런데 오늘은 쏘가리 낚시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확실히 감을 잡은 것 같아. 이렇게만 낚시하면 맨날 갈 수 있지”라고. 친구의 말을 들으니 그동안 나 혼자만 손맛 본 것이 미안해지면서도 스스로 학습해서 낚시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는 친구의 태도에 뿌듯함도 느꼈다.


이후로 나는 쏘가리 세 마리를, 친구는 한 마리를 더 잡아냈다. 막판에 내가 메기를 잡았는데 들고 사진 찍다가 그만 자동 방생이 돼 버렸다. 메기가 물에 첨벙, 하고 빠지는 순간 그 전까지의 훈훈한 분위기는 와장창 깨졌다. 이날 잡은 쏘가리들을 진형이 큰고모, 작은고모, 큰형, 사촌동생 모이는 가족모임에 매운탕거리로 전부 협찬하기로 했는데, 이놈이 “메기 한 마리 들어가면 국물 맛이 다른데... 메기야말로 매운탕의 왕인데...”하며 입이 댓발 나온 채로 아쉬움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야, 쏘가리매운탕은 쏘가리만 들어가야지 메기가 섞이는 순간 잡어매운탕 되는 거야”하며 응수하는 사이 푸르스름한 저녁이 됐고, 우리는 풍성한 꿰미를 든 채 강변을 걸어 철수했다.

민박집에 갔더니 아주머니가 벌써 토종닭백숙을 삶아 놓았다. 백숙 국물을 한술 뜨자 추위에 떨었던 몸이 이내 뜨끈해지면서 마음까지 훗훗해졌다. 전라도 소주 잎새주를 홀짝 홀짝 비우면서 밤이 깊었다. 술 마시는 내내 질리지도 않는지 낮에 쏘가리 잡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듣고 또 들었다. 

모처럼 진하게 본 쏘가리 손맛에 신난 진형이가 “이번 달 말에 금강 가자”고 먼저 제안했다. 옥천 지수리 등나무가든 민박 평상에 앉아 촌돼지 앞다리살 구워 충청도 소주 ‘린’ 마시면 기가 막힌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쏘가리를 잡아야 좋지. 다 방법이 있다. 섬진강도 금강도 다 내 손바닥 안에 있다. 마수걸이 쏘가리에다 마릿수까지 거둬 허세가 하늘을 찌를 듯해진 나는 친구의 제안에 곧장 응답했다. “그래, 가자. 이 형님만 믿고 따라 와, 짜샤. 손맛 제대로 보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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