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2월 한 달 동안 낚시를 아예 못 갔다. 시간도 없고 돈도 없어서 출조는커녕 아끼던 장비들마저 중고 거래로 처분했다. 방학 동안에는 급여가 1원도 나오지 않는 시간강사 생활의 애환이다. 타이라바로드 한 대, 쏘가리로드 한 대 팔아서 버텼다. 지깅로드와 8천 번 릴도 내놨는데 에누리 요청이 심해서 안 팔았다. 그것까지 팔려야 낚시 좀 갈 수 있겠다.
하지만 낚시꾼이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든 손맛을 봐야 한다. 2월 말, 시인 황종권, 인디 뮤지션이자 시인인 강백수 이 두 친구와 함께 경북 포항에 갔다. 오래전부터 계획된 여행이었다. 십년 지기인 우리는 몇 년 전에 이병철의 ‘이’, 강백수의 ‘백’, 황종권의 ‘권’을 따서 ‘이백권’이라는 이름의 청년문화 단체를 조직, 문화예술 지원금도 타 먹고 재미나게 지냈다. 황종권은 애가 둘이고, 강백수는 작년 가을에 결혼해 신혼이다. 유부남 둘과 함께 떠난 여행, 맛집 탐방과 낮술도 중요하지만 최우선 지상과제는 역시나 손맛이었다. 차에 볼락대 세 대, 릴 세 대, 집어등, 두레박 등을 미리 실어뒀다. 2박 3일 일정 중 첫날은 관광하고, 이튿날 낚시할 요량으로.
2월 말 포항은 따스했다. 도착하자마자 죽도시장 소머리곰탕 먹으러 장기식당을 찾았는데 긴 줄이 골목 밖까지 이어져 있어 발길을 돌렸다. 대신 삼호복집에 가 생복지리와 복껍질초회를 안주 삼아 낮술 마셨다. 죽도시장 구경하는데 두 유부남이 장인 장모한테 보낸다며 과메기와 참가자미를 주문했다. 돈 없는 나는 엄마한테 전화 걸어 “참가자미 같은 거 안 먹지?”하며 유도 질문을 했는데, 마침 엄마가 “소금 친 거야? 간 안 한거면 사지 마”라고 해서 잘됐다고 생각했다. 소금 안 뿌리고 그냥 말리기만 한 가자미였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연오랑 세오녀 테마파크에 가 포항에서 보기 힘든 서쪽 노을을 눈에 담았다. 그날 저녁에는 경북매일신문 홍성식 부장, 소설가 김강 선배와 미리 약속한 술자리에 앉았다.
족발로 1차 달리고, 2차로 조개구이와 도화새우 안주 삼아 또 달리고, 3차로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며 소맥 달리고, 헤어지고서 우리끼리 숙소에 들어와 4차로 한잔 더 했다. 각 소주 다섯 병씩은 먹은 것 같다. 새벽 1시쯤 모텔 온돌방에 널브러져 잠들었다.
친구 두 놈이 코 골며 세상모르고 자는 새벽 4시 반, 낚시꾼은 그때 눈을 뜬다. 이놈들에게 어떻게든 볼락 회를 먹여야겠다는 일념으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모텔을 나섰다. 신항만 뜬방에 들어가려다가 요즘 뜬 방 조황 기복이 심하다고 해서, 익숙한 포인트인 구룡포 하정리와 삼정리 쪽으로 갔다. 하정리에 도착하니 새벽 5시 반, 먼동이 막 터 오는 테트라포트에서 볼락 입질을 받긴 했는데, 작아도 너무 작다. 눈깔만 달린 열쇠고리가 올라와서 삼정리로 옮겼다. 삼정리 외항은 20 전후 먹을 만한 크기의 볼락이 아침 피딩에 마릿수로 잘 나오는데, 여기도 젖볼락 천지였다. 그나마 포획금지 체장을 간신히 넘긴 것들로만 열다섯 마리쯤 추려 두레박에 담았다. 그걸 잡겠다고 테트라포트를 넘나들며 아침 운동 제대로 했다. 어느덧 해가 환하게 떠 있었다.
15cm를 겨우 넘는 볼락 열댓 마리는 체중 합계 300kg의 장정 셋이 먹기에 코에 붙이기도 뭣한 양이라서, 우럭이나 두어 마리 사서 직접 잡은 거라 구라 치기로 했다. 그래 구룡포 시장 한 수산집에 갔더니 꽤 굵은 사이즈의 쏨뱅이와 30센티 조금 안 돼 보이는 능성어를 ‘볼락’이라며 싸게 팔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볼락 세 마리만 주십쇼 하고는 능성어 한 마리, 쏨뱅이 두 마리를 두레박에 담았다. 숙소에 도착해 여전히 잠에 빠진 놈들을 깨워서는 두레박을 쓱 보여줬다. 그런 건 잠결에 얼른 보여줘야 한다.
똑같이 술을 퍼마셨는데 어떻게 꼭두새벽에 일어나 낚시를 하고 왔느냐며 친구들이 놀라워 했다. 낚시꾼의 집념은 쇠젓가락을 녹이고 철판도 뚫는 법이라고 말해줬다. 다시 구룡포로 와 장사한 지 60년쯤 된 ‘까꾸네 모리국수’에서 모리국수로 해장하고, 70년쯤 된 ‘철규분식’에서 단팥죽과 찐빵 먹었다. 구룡포해수욕장 ‘태풍민박’에 일찍 짐을 풀고 생선 손질부터 했다. 볼락 열다섯 마리와 좆쟁이(돌팍망둑 두 마리), 그리고 시장서 사 왔지만 내가 잡은 쏨뱅이 두 마리와 능성어를 피 빼고 포 떠 해동지에 둘둘 감아 냉장고에 넣었다. 작은 볼락들을 회 뜰 때는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다. 어떻게든 먹여보겠다고 심혈을 기울였다.
낮잠 한숨 자고, 이제 이놈들에게 손맛을 좀 보게 해줘야 할 때가 됐다. 여수 출신인 황종권은 꺽지낚시 몇 번 해봤고, 강백수도 내가 몇 해 전 섬진강 데려가 꺽지 인생마수를 시킨 적이 있다. 둘 다 낚시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굉장히 컸다. 작은 젖볼이라도 한두 마리 잡게 해줄 요량으로 채비를 해줬다. 오후 4시 반, 고기는 잘 안 나오지만 테트라포트가 작고 촘촘해 발판이 편하고 안전한 하정1리 방파제로 갔다. 포인트에 서서 캐스팅을 하는데, 바람이 너무 셌다. 너울 파도가 테트라포드를 거세게 때리기까지 해서, 친구들을 위해 포인트를 옮겼다. 삼정리방파제로 갔는데, 여기도 바람이 무척 세 낚시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외항 테트라포트가 바람을 막아줘 바람 의지가 될 내항 석축으로 옮겼다. 나는 이미 첫 포인트부터 자리를 옮기는 곳마다 작은 볼락 몇 마리 잡았는데, 내가 잡는 것보다 이놈들 손맛 보는 게 중요한지라 초조했다.
옮긴 자리에서 낚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낚시 젬병인 강백수가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 엄청 크다!” 가서 보니 꽤 준수한 씨알의 좆쟁이를 낚았다. 강백수 인생에서 낚시로 잡은 첫 바닷고기였다. 한 마리 잡고 나니 무섭게 몰입해서,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작은 물고기들의 입질에 즐거운 긴장감을 느끼며 낚시 삼매경에 빠졌다. 그러다 작은 볼락 한 마리를 낚아내 크게 포효했다. 그러는 동안 황종권도 볼락 두어 마리 잡는 기염을 토했다. 나 역시 속된 말로 좆만 한 젖뽈 한 마리 잡아보겠다고 온몸의 피톨과 정신을 집중했다. 그 모습이 스스로 우스워 허허 웃고 말았다.
낚시가 그렇다. 1미터 넘는 부시리 방어 잡을 때나 15센티미터 볼락 좆쟁이 한 마리 잡을 때나 간절함이 똑같다. 사이즈로 보자면 젖볼락 300마리쯤 부려놔야 대부시리 한 마리 비슷할 거다. 무게로 치자면 택도 없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물고기 한 마리 잡겠다며 사내 셋이 방파제 석축에 나란히 서서는, 보랏빛으로 물든 저녁 바다를 향해 부지런히 캐스팅한 그 저녁이야말로 참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이 됐다.
저녁낚시에서 몇 마리 잡은 걸 더해서, 그날 저녁 술상은 풍성했다. 볼락, 좆쟁이, (시장에서 샀지만)내가 잡은 쏨뱅이와 능성어로 구성된 모둠회 한 접시에다 홍게 여섯 마리, 삼겹살 두 근, 게딱지 볶음밥, 라면까지 먹고도 모자라 구룡포읍 ‘백록담 바비큐’애서 바비큐 치킨을 배달시켜 술병을 비웠다.
다음날 오전, 첫날 못 먹은 장기식당에 가 소머리곰탕으로 속을 풀었다. 나 손맛 보고 너네도 손맛 보고, 입맛도 보고, 잡고 먹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그게 내 ‘장기’라며 장기식당에서 껄껄 웃었다. 이놈들 낚시에 재미 붙였으니 이번 봄 섬진강에 데려가 탈탈거리는 꺽지 손맛이나 실컷 보게 해줘야겠다. 이제 개강해서 월급도 들어온다.
▲ 일러스트_탁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