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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연재_에세이] 꿈의 물고기를 만나다
낚시에세이
[연재_에세이]

꿈의 물고기를 만나다

이병철


"대학 교수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에 대학 교수보다 넙치농어를 잡아본 사람의 수가 훨씬 적을 것이다. 누가 더 귀한가? 나는 넙치농어를 잡은 사람이다."

세상이 내게서 등을 돌리고, 인생이 나를 배반한다. 노력의 결과는 허망한 실패이고, 뜻밖의 고난에 대책없이 무너져 내린다.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이 됐는데, 내 꼴이 딱 그렇다.
뉴스에서 떠들썩한 ‘빌라왕’ 전세 사기가 남의 일이 아니다. 혹시나 싶어 등기부등본을 열람했더니 임대인이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을 반환 못해 주택도시기금에서 대위변제한 채권액이 48억 9천만원이다. 소유 주택이 170여 채라고 한다. 경악스럽다.
그 채권으로 인해 내가 사는 전셋집도 가압류된 상태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보증금 반환 소송을 진행 중이다. 보증금 받으면 이사 가고, 못 받으면 강제경매 신청해 내가 낙찰 받을 생각이다. 집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선 금방 받아들이고 최선책, 차선책을 준비하는 편이라 멘탈에는 작은 실금 하나 그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내 온 마음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절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국립대학교의 전임교수 공개채용에서 최종 3인까지 올라갔지만 공개강의와 면접까지 치르고서 탈락했다.
내 나름으로는 인생을 다 건 도전이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했다.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했다. 다시 기회가 있을까? 찢기고 패인 마음을 우선 달래야만 했다. 구두와 양복을 눈에서 안 보이는 곳에 치워놓고 낚시장비를 챙겼다. 제주도에 열흘쯤 내려가서 아무 생각 없이 낚시만 하다 오려고.

지깅과 캐스팅 빅게임, 타이라바, 넙치농어까지 서너 장르의 낚시를 준비해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에 도착하니 매서운 강풍과 폭설이 휘몰아쳤다. 마치 내 앞의 생처럼. 타이어에 체인을 감고는 살벌한 겨울 눈보라를 헤치며 공항까지 마중 나온 송협 형과 김성수 형을 보는 순간 그제야 마음이 좀 녹았다. “살다가 힘들면 제주 오고”라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이병헌의 대사가 그토록 사무칠 줄은 몰랐다. 등뼈 해장국에 소주를 마시고, 송협 형 집에 짐을 풀었다. 열흘 동안 신세를 지게 됐다.

악기상으로 며칠 낚시를 못하고, 바람이 잦아든 날 송협 형 레저보트를 타고 마라도 앞바다에 나가 지깅으로 15킬로그램급 대방어를 낚아 올렸다. 다음날 압둘라호를 타고 나간 타이라바낚시에서는 조금 물때에 남풍이 불어 조과가 영 신통치 않았다. 애초에 조과에 큰 기대나 욕심 없이 온 여행이었다. 낚시에서 마음을 비우면 인생도 좀 달관하지 않을까?
하지만 넙치농어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다른 물고기 다 못 잡아도 넙치농어만큼은 꼭 잡고 싶었다. 7년을 기다린, 내 꿈의 물고기이기 때문이다.
10년 전쯤 쏘가리루어로 루어낚시를 시작하고서 삶이 행복해졌다. 처음에 혼자 힘으로 쏘가리 잡겠다고 포인트도 모르는 채 인제, 홍천, 금산, 옥천 등을 다니면서 아홉 번 연속 꽝치고 열 번째 만에 섬진강에서 첫 쏘가리를 만났을 때 감격이 아직 생생하다.

계류를 다니면서 루어낚시에 대한 관심은 바다로 번져, 신진도 내항에서 애럭들을 잡는 걸 시작으로 서해 갯바위와 동해 남해 방파제를 다니며 우럭, 광어, 볼락 등을 만났다.
그러다 좋은 기회로 레저보트팀을 이뤄 서해권 농어들을 꽤 잡기도 했다. 2019년에는 러시아 아무르강에 가서 타이멘과 파이크, 레녹을 만났다.
그런데 늘 마음 한 켠엔 어두운 방이 있고, 그 어둠 속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예리한 은빛 섬광이 어른거리다 사라지곤 했다. 그 매혹적인 섬광은 넙치농어의 것이다. 2016년 초, 유튜브에서 제주방송 루어아일랜드 문석민 프로의 넙치농어낚시 영상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저렇게 멋진 낚시, 저렇게 멋진 물고기가 있다니!

장비도 없고, 포인트도, 대상어의 습성과 생태도 전혀 모르면서 2월 중순 제주도 4박5일 출조를 감행했다.
넙치농어는 난류성 어종으로 회유하는 성질이 있는데, 제주 남쪽인 서귀포 일대와 가파도, 지귀도, 마라도등에서만 잡을 수 있다. 그 위쪽으로는 여간해서 나타나지 않는다.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시즌이라지만 그것도 날씨 등 조건이 맞을 때 얘기다. 현지 상황을 잘 아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꽝을 면하기 어렵다.
그 어렵다는 넙치농어 낚시에 도전한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경험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나마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열심히 장비를 꾸리고, 정보를 수집하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날씨라는 변수를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원래 계획은 모슬포에서 배를 타고 가파도로 가 넙치농어를 노리는 것이었는데, 풍랑주의보로 일정 내내 배가 뜨지 않았다. 결국 ‘루어인제주’를 찾아 문석민 프로에게 조언을 구해 서귀포 남원 해안 일대를 낚시 장소로 택했다.



서귀포 남원읍의 유명한 포인트인 일화연수원 앞 여밭, 해녀탈의장 부근, 양식장 배출수 나오는 자리 등 넙치농어가 있을 만한 곳을 부지런히 옮겨 다니며 낚시했다.
파도가 쳐야 유리한데 북서풍이 몹시 세게 불었지만 바다는 오히려 잔잔했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영하의 기온은 좀처럼 오를 줄 몰라 젖은 손이 꽁꽁 얼어 떨어져나가는 듯했다. 방수복을 입었지만 파도에 젖은 옷 위로 찬바람이 스칠 때마다 온몸이 오들거렸다.

그 와중에 실수로 낚싯대를 부러뜨리고, 개당 2만원이 넘는 고급 루어 여러 개를 수장시켰다. 단 한 번, 루어가 바위에 부딪치는 느낌과 완전히 다른, ‘툭’ 하는 입질을 받았지만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4박5일간의 넙치농어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하루 더 도전할 의지가 완전히 꺾인 채 패잔병 몰골을 하고 제주 시내 맛집 탐방이나 다녔다. 이건 내가 할 낚시가 아닌가보다 하고 단념했다. 함부로 덤볐다가 처참하게 깨진 후 넙치농어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서, 우리나라 최고의 넙치농어 앵글러인 이광수 프로의 낚시방송을 보며 대리만족과 희열을 느끼는 것으로 위안 삼았지만, 그래도 가슴 한 곳의 떨림은 희미하게나마 맥박을 유지해온 모양이다. 넙치농어라는 이름을 소리 내 발음하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2월 3일 금요일, 마침내 넙치농어에 재도전하는 날이 밝았다. 먼발치에서만 보다가 이제는 가까이 뵙는 형님이 된 이광수 프로가 서귀포권 포인트를 자세히 알려줬다. 새벽 간조시간에 진입해야 하는 포인트인데, 어느 자리에 서서 어떤 지형을 노려야 하는지 눈 감고도 그려볼 수 있을 만큼 상세한 묘사를 곁들여 조언해주었다. 다른 일정이 있어 함께 출조하지 못했지만, 록쇼어피싱 전문가인 김성수 형, 송협 형이 동출했다.
낚시 장소에 도착해 채비를 하고, 등산을 하듯 몇 개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며 겨우 포인트에 진입했다. 거센 파도가 여에 부딪칠 때마다 맥주거품 같은 포말이 사방을 뒤덮는, 야성적인 겨울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10피트 넙치농어 전용대에 5000번 릴, 합사 1.5호와 쇼크리더 25lb, 제주 넙치농어 공략의 비밀병기로 알려진 점프라이즈사의 부토비군 95s를 매달아 캐스팅했다. 첫 캐스팅 후 릴링을 하며 대략적인 지형을 파악했다. 그리고 두 번째 캐스팅, 루어 착수 후 리트리브를 하는데 퍽! 하는 바이트, 넙치농어를 걸었다. 옅은 물속으로 꾹꾹 처박으면서 여를 향해 돌진해 라인을 끊으려는 질주에 드랙이 사정없이 풀렸다. 어느 정도 힘을 빼 거의 제압했다고 생각한 그때, 톱가이드가 하늘로 솟았다. 넙치농어의 필사적인 바늘털이에 당하고 만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경계심이 강한 넙치농어는 걸었다가 놓치게 되면 다른 개체들까지 예민해진다. 나는 또 다시 교수 채용 탈락 통보를 받았을 때의 심정이 돼 버렸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상어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부지런히 두드려보기로 했다. 우측에서 좌측, 좌측에서 우측 부채꼴 모양으로 30분쯤 캐스팅을 반복했을까? 흰 포말에 덮였다가 검은 이마를 드러내는 간출여 옆에서 또 한 번의 강력한 바이트를 받았다. 의심할 여지없이 넙치농어였다. 처음 바이트 때보다 더 확실하게 챔질해서는 낚싯대를 옆으로 눕혔다. 바늘털이에 당하지 않기 위해 드랙을 잠그고 녀석과 힘겨루기를 했다. 간헐적으로 드랙을 째는 폭발적인 질주가 몇 차례 있을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러
다 허공으로 힘차게 솟구쳐 오르며 바늘털이 점프를 하는 순간 그야말로 심장이 터질 듯했다. ‘오냐, 살려는 몸부림이 처절하구나. 하지만 나도 살아야 한다. 네 얼굴을 봐야만 내가 살겠다. 그러니 오너라!’

끌려오던 녀석이 마지막으로 거칠게 저항했다. 발 앞 여 틈으로 처박으려 하는 바람에 합사 원줄이 여에 쓸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랜딩을 계속 시도하다가는 라인이 터질 것 같았다. 몇 발자국 움직여 물로 들어갔다. 녀석이 파고들어간 여의 반대편 쪽에 서서 침착하게 릴을 감았다. 한 평생 같은 십 초가 지나고, 드디어 은빛 실루엣이 수면에 넘실거렸다. 그립으로 주둥이를 꿰기 어려운 포지션이어서 너울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줄을 잡고 너울에 태워 녀석을 갯바위 위로 올렸다. 빛나는 은린 갑옷을 입은, 7년을 기다린 내 꿈의 물고기 넙치농어였다.

엄지손가락을 녀석의 아래턱에 대고 주둥이를 움켜 쥔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68센티미터. 큰 사이즈는 아니라고 하지만 내게는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인생고기다. 거친 겨울 제주바다가 내게 준 선물은 넙치농어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해내겠다는 용기와 의지, 어떤 꿈이든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다.

폴 퀸네트가 쓴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에 이런 구절이 있다. “가족이든 친구든 낚시든 진정으로 사랑하는 대상과 가까이 있는 것이야말로 기쁨의 원천이다”라고.
나이 들수록 기쁨이 점점 메말라가는 삶에 낚시는, 낚시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은, 그리고 저마다 한 우주가 되어 오는 물고기들은 기쁨이 마르지 않게 마음에 촉촉한 비를 뿌려준다. 차갑고 짠 파도를 뒤집어썼지만 그 짠물이야말로 내 영혼에 내린 봄비다. 낚시는 소년을 늘 소년이게 해준다. 꿈의 물고기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고, 나는 또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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