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에세이]
집념의 제주 빅게임 도전기
이병철
매년 겨울이면 한 해의 마지막 낚시로 무엇을 할까 고민이 깊어진다. 참돔 타이라바를 갈까 방어 지깅을 갈까, 대구를 잡을까 볼락을 잡을까 마음이 이리저리 널뛴다. 그런데 지난겨울에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요즘 말로 1도 고민하지 않았다. 무조건 빅게임 캐스팅! 대물 부시리를 잡겠다는 일념뿐이었기 때문이다.
11월말 제주는 봄처럼 따뜻했다. 한 달 전 방문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포근했다. 10월 말, 캐스팅게임에 그렇게 잘 나온다던 부시리가 내가 낚시하러 가자 자취를 감췄다. 시즌이 끝나는가 싶더니만 내가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대물과 마릿수가 또 폭발적으로 터졌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 운명의 장난을 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항상 대박은 내가 낚시하러 가기 전, 또 내가 철수한 다음에 터진다. 이쯤 되면 낚시꾼을 희롱하고 노는 짓궂은 신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난달에는 압둘라호를 타고 관탈도와 절명여 등 제주 북부권으로 가 대부시리에 도전했는데, 이번엔 레저보트를 타고 서귀포권을 노리기로 했다. 제이에스컴퍼니 이광수 프로, 김성수 형과 함께 송협 형 배에 올랐다. 물때 맞춰 느지막이 오전 10시쯤 출항했다. 220mm 펜슬을 힘껏 던졌다. 몇 번째 캐스팅 만에 부시리가 펜슬을 쫓아왔지만 바이트로 연결되진 못했다. 펜슬 바로 뒤에서 꿀렁거리는 거대한 파장을 눈으로 보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몇 차례 포인트를 옮겼지만 부시리들의 움직임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부시리들이 상층에 떠 있지 않고 바닥권에 내려간 듯했다. 지깅을 하면 잡을 수도 있을 텐데, 지깅 장비는 아예 챙겨가지도 않았다. 오직 캐스팅으로 잡고 싶었다. 오후가 되자 바람과 너울이 세졌다. 던지고 감고를 반복하는데, 덜컥! 하고 입질을 받았다. 바늘을 제대로 박기 위해 강력한 후킹을 한 순간, 팽팽한 장력은 사라지고 낚싯줄이 허공에 길게 나풀거렸다. 시마노 파워프로 합사 8호 원줄이 중간에서 끊어진 것이다. 라인 어느 부분이 데미지를 입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천금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입질은 다시 오지 않았다.
놓쳐버린 부시리가 나에게 주화입마(走火入魔)를 준 걸까? 그날 내내 몸이 좋지 않았다. 소화가 되지 않고, 어지럽고, 천식과 유사한 증세를 보이면서 호흡이 불편했다. 저녁에 우리나라와 우루과이의 월드컵 예선전이 있었는데, 그 좋지 않은 컨디션에도 월드컵 축구는 치맥과 봐야 한다면서 치킨을 주문했다. 몸이 금방 괜찮아지겠거니 했다.
그날 밤 제주시 해안동에도 ‘치킨 대란’이 일어났다. 배달 어플로 주문하려는 곳마다 전부 품절이거나 운 좋게 주문이 되더라도 곧장 주문이 취소됐다. 그래서 피자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해보려 했지만 그것도 주문이 취소됐다. 그러던 중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소한 치킨집에 주문이 정상 접수됐다. 원래 배달비가 5천원인데, 퀵서비스로 보내는 거라며 5천원을 더 달라고 했다. 배달료 1만원짜리 귀하디 귀한 치킨님이 오시고, 누가 또 벨을 눌러 보니 다른 배달원이 피자를 들고 있었다. 아까 주문 취소된 피자가 가게의 착오로 배달된 것이었다. 할 수 없이 피자를 받아 들었다. 그렇게 거나한 한 상을 차려 놓고 축구를 봤다.
가뜩이나 속이 불편했는데 억지로 치킨과 피자를 쑤셔 넣은 탓인지 새벽 내내 복부팽만과 헛구역질, 호흡 불편으로 잠을 자지 못했다. 이날은 동 트기 전에 바다로 나가보기로 했는데, 새벽 항구에서 배에 장비를 싣는 게 너무 힘들었다. 힘든 내색을 어떻게든 보이지 않고 낚시에만 집중했다. 해 뜰 무렵 피딩을 하는지 펜슬을 따라오는 부시리들이 보였다. 아쉽지만 이번에도 거대한 대가리가 수면 위로 꿀렁, 하더니 바이트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그러던 와중 함께 낚시한 일행이 미터급 부시리를 걸어 올렸다. 제주도에서는 작은 사이즈다. 어쨌든 고기가 있는 걸 확인했으니, 아픈 몸에도 열심히 캐스팅을 했는데, 갑자기 릴 베일이 고장났다. 산 지 한 달도 안 되는 시마노 트윈파워 14000번이다. 베일이 제대로 열리지 않는 상태로 캐스팅을 하다 충격으로 라인이 뚝 끊어졌다. 릴도 릴이지만 시마노 파워프로 합사는 ‘짝퉁’을 의심해야 할 정도로질이 나빴다. 몇 번 그러던 베일이 다시 제대로 복구되나 싶었는데, 그때부터는 스풀 아래쪽으로 라인이 감기는 쏠림 현상이 심했다. 결국 장비 때문에 피딩타임을 다 허비해버렸다.
철수해서 라인을 다 풀고, 스풀 와셔를 빼고 다시 감아보려는데 와셔를 다 빼도 아래쪽 쏠림이 개선되지 않았다. 게다가 합사에서는 국방색 물감이 뚝뚝 묻어나와 손바닥이 거무죽죽하게 물들 지경이었다. 장비도 병들고 나도 병들어서 그날 오후에는 컨디션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혹시나 싶어 약국에 가 코로나 자가검진 키트를 사고, 소화제와 몸살감기약도 샀다. 검사 결과 코로나는 아니었다. 소주가 약일까 싶어 백돼지 생갈비 몇 점에 한라산 17도를 마셨는데, 역시 만병통치약인지 그날 밤 극적으로 컨디션이 되살아났다.
내가 간곡히 부탁해 다음날 새벽, 한 번 더 출조했다. 김성수 형이 대물을 걸었다가 1초 만에 라인을 터뜨렸다. 큰놈들이 움직이는 듯했다. 희망이 보였다. 그런데 역시 장비가 문제였다. 몇 번 던져보고 괜찮은 줄 알았던 릴이 또 말썽이었다. 시마노에 소송을 걸고 싶었다. 결국 라인이 엉망으로 엉켜 더는 낚시할 수 없었다. 송협 형 장비를 빌려 우측 핸들을 왼쪽으로 바꿔 장착하고 부지런히 던져봤지만, 피딩타임이 이미 지난 뒤였다.
속상한 마음 가득 안고 대낮부터 접짝뼈국에 한라산 소주를 마셨다. 2022년 마지막 낚시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허망한 결말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제주에 와 3박4일 내내 손맛을 한 번도 못 봤다. 그날 저녁, 잔뜩 풀이 죽어 있는 나를 위해 송협 형이 무늬오징어 에깅을 가자고 했다. 돼지불백을 넉넉히 포장해서는 형의 레저보트에 올랐다. 그날 이른 새벽부터 늦은 오후까지 꼴랑거리는 대관탈도로 빅게임을 다녀온 이광수 형은 온몸이 녹초가 돼서도 같이 손맛 보자며 동행해줬다. 김성수 형도 함께 했다. 정말 고마운 형들이다. 부시리를 잡지 못한 아쉬움, 장비를 향한 원망과 분노가 누그러졌다. 걸었다 하면 킬로오버급 무늬오징어를 잔뜩 잡으면서 아쉬웠던 손맛을 달랬다. 배 위에서 먹는 오삼불고기는 꿀맛이었다.
서울로 오자마자 바리바스사의 빅게임 전용 라인인 아바니 캐스팅 슈퍼맥스파워를 구입했다. 무려 14만원짜리 라인이다. 그리고 트윈파워 14000번 릴을 구매처 수리 센터에 입고시켰다. 며칠 뒤 수리 완료된 릴에 새 라인을 감으면서 중얼거렸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150센티미터급 부시리로 2022년 대미를 장식하지 못했지만, 2023년은 다를 것이다. 기대하셔도 좋다!
▲ 일러스트_탁영호
※ 낚시광장의 낚시춘추 및 Angler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침해(무단 복제, 전송, 배포 등) 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