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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화)

[연재_낚시꽁트 씁새 (318)] 제자님 나의 제자님 (상)
낚시 꽁트 씁새
[연재_낚시꽁트 씁새 (318)]

제자님 나의 제자님 (상)

박준걸 artellar@hanmail.net
일러스트 이규성

“참이루 거시기 허네유.”
거시기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뭔일인디?”
씁새가 빈 술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회사서 거시기 하라네유?”
거시기가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전근?”
씁새가 물었다.
“맞어유.”
“그라문 워디루 전근 가는겨?”
호이장놈이 아쉬운 표정으로 물었다.
“강원도 거시기유,”
거시기가 슬픈 표정으로 잔을 비웠다.
“강릉?” “맞어유.”
씁새가 묻자 거시기가 바로 대답했다.
“참이루 희한한 종자들여. 거시기 얘기 허는 거 알아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두 희한헌디, 그 알아듣는 놈이 씁새라는 것두 놀라운 일이여.”


호이장놈이 거시기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시끄러워, 개눔들아! 거시기가 전근 간다는디, 슬프지두 않은겨?”
씁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근디, 그게유. 우리 가족들 모두 거시기 혀유.”
“가족들 모두 같이 간다고? 이사 가는겨?”
이번에는 총무놈이 물었다.
“알아들은겨?”
회원놈이 총무놈을 보고 물었다.
“때려맞춘겨.” 총무놈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라문 인자 우덜허구 낚시 댕기기가 힘들겄는디?”
회원놈이 물었다.
“그지유. 인자 거시기 허지유.”
거시기가 침울하게 대답했다.
“그라문 우덜이 강릉이루 낚시를 가문 되잖여.”
호이장놈이 말했다.
“그려! 우덜이 가문 되잖여! 강원도루 낚시를 근디… 강원도 쪽이루 뭣이가 잽혀?”
총무놈이 막창 하나를 들고 물었다.
“대왕문어! 대구! 그러고… 가자미… 그러고…”
회원놈이 대답했다.
“전부다 우덜은 해 보덜 않한것인디? 그거 말고는 없는겨? 우럭, 쭈깨미, 광어, 농어…”
호이장놈이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그런 거는 죄다 서해서 나오는 것들이고. 강원도는 딱히 자주 갈만한 것이 없어.”
씁새가 제법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근데… 그게…”
거시기가 씁새 패들의 중구난방 떠드는 얘기를 듣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알아… 무슨 말인지…”
씁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호이장, 총무놈, 회원놈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결국… 그런 거지… 세상이 빨리 돌아가는 것인지… 우리가 너무 오래 붙박이로 있는 것인지…”

호이장놈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세월이 지나는 것을 느끼는 나이가 되면 알게 된다. 이제는 우리가 퇴진해야 하는 나이라는 것을…

그런대로 잘 나가는 중소기업의 차장자리를 차고 있었던 거시기가 갑자기 연고지도 아닌 강원도의 작은 영업소 소장으로 발령이 났다는 것. 우리는 아직도 명예퇴직과, 정리해고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무서웠던 IMF의 시대를 겪어 왔음에도 우리는 익숙하지 못했고, 언제 뒷방의 퇴물로 취급당하다 명예퇴직이 아니면 강제 전근이라는 간접적인 퇴사의 압력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거시기도 무언의 퇴사 압박을 받고 있었다. 청춘을 다 바친 회사임에도 나이라는 굴레에 못 박혀 젊은 친구들에게 자리를 내주고는 쓸쓸히 떠나야 하는 것이다. 변변한 취미라고는 하나도 없던 거시기가 그나마 씁새 패거리들과 어울리며 세상의 재미를 알게 될 즈음에 들이닥친 시련이었다.

“그려… 돌이켜 보문… 우리가 나이도 잊고 천방지축이루 살았는가 싶다…”
호이장놈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렇지… 맨나닥 사고나 치고 돌아 댕기느라고 세월 가는 줄도 몰랐네…”총무놈이 자신의 잔에 자작하며 말했다.
“버텨!”
씁새가 나지막이 외쳤다.
“뭔 소리여?”
총무놈이 물었다.
“시상이 지랄 같아도 버티는 놈이 이기는겨. 강원도 아니라, 워디 깡촌 두메산골을 가더라도 꿋꿋이 버텨. 낭중에는 같이 모여서 또 같이 낚시 다니면서 지난날을 얘기하는 날이 올껴. 버티는겨. 시상이 뭣 같아도 흔들이지 말고 버텨.”

씁새가 잔을 탁 내려놓았다. 하지만, 정말로 그 날이 돌아올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남아있는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작은 나이였다. 나중에 다시 만나자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 말인지 다들 알고 있었지만,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뿐이었다.

“그려. 버티고… 틈틈이 휴가내서 제수씨랑 같이 대전이루 놀러와. 그려서 같이 낚시도 가고…”
회원놈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지두 참 거시기 한 게 인자 거시기 하문… 또 거시기 하겄어유?”
거시기가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말했다.
“통역!”
총무놈이 씁새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나두 참이루 아쉬운 게 인자 강릉이루 가면 자주 우리들과 모이겠느냐 그 말이여.”
씁새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려유.”
거시기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라문 내년에는 모두 휴가내서 거시기네루 놀라가자. 워뗘? 그려서 뭣이라도 낚시 하문서 자주 왕래하문 되지.”

회원놈이 커다란 소리로 말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 소리인지 알기에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워쨋거나 가서 잘 살어. 만나자구 생각하면 만나지 못 할 것두 없으니께. 전화두 열심히 혀고. 우덜이 사고나 치고 말썽이나 부리고 댕기는 개차반낚시회지만 그려두 자네가 우덜허구 흠 없이 잘 지낸 것 만두 고마워. 자부심을 갖고 잘 살어.”


씁새가 목이 메인지 술잔을 한 번에 비우며 말했다.
“근디… 지가 강원도로 거시기 하문서 씁새 성님헌티 거시기가 있는디유?”
거시기가 진지한 얼굴로 씁새를 보며 말했다.
“뭣인디?”
“제자유.”
“뭐… 뭐라고?”
“제자래니께유?”
“제자는 뭔 소리여?”
호이장놈이 뜬금없는 거시기의 얘기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지가 성님들헌티 거시기 했잖여유? 근디 우리 회사에 거시기헌 거시기가 있는디, 야가 지가 거시기를 하니께 좀… 거시기 했어유.”

“야! 통역!”
회원놈이 씁새를 툭 치며 말했다.
“거시기가 우리한테 낚시를 배웠는디, 회사에 참한 후배가 있다는겨. 근디 얘가 거시기가 낚시 댕기구 허니께 부러워 했다는겨.”
씁새가 모두를 위해 통역했다.
“근디?”
모두가 거시기의 눈으로 쏠렸다.
“그려서 걔를 참… 우리 거시기에 이… 거시기를 하문…”
거시기가 씁새 패거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안돼!”
씁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려! 낚시는 배우는 순간 인생 조지는겨. 마약이여, 마약!”
호이장놈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려두… 걔가 지처럼 거시기가 하나도 거시기 헌디… 지가 성님들허구 참… 거시기 하고 오문 막 거시기 하문서.”
“그려… 우쩌겄냐… 거시기도 떠나고… 저리 부탁하는디…”
회원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참한 놈이여?”
씁새가 거시기를 보며 물었다.
“지가 보증혀유.”
거시기가 패거리들을 보며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한 놈 가니께 또 한 놈 오는겨?”

그렇게 아쉽고 슬픈 거시기와의 마지막 만남이 끝나고, 며칠 후 거시기는 강릉으로 가족들과 떠났다. 늘 보아오던 아파트였지만, 허전하고 비어있는 쓸쓸한 며칠이 지난 후, 씁새가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개차반낚시회의 명예회장님이십니까?”
또랑또랑한 서울 말씨의 누군가였다.
“그런디유? 누구…”
“저는 김ㅇㅇ씨(거시기) 회사 후배입니다. 선배님 얘기를 듣고 전화 드렸습니다. 개차반낚시회에 가입해서 낚시를 배워 보라는 선배님의 말씀이 있으셔서 감히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때, 씁새는 무언가 불길한 느낌적인 느낌이었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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