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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연재_에세이] 살다가 힘들면 제주 오고
낚시에세이
[연재_에세이]

살다가 힘들면 제주 오고

이병철
일러스트_탁영호

지독히 덥고 무섭게도 비가 내리던 여름이 갔다. 여름의 끝자락이면 한치 졸업식과 함께 갈치 입학식이 열린다. 밤바다에서 갈치 좀 잡다 보면 금방 가을바람 불고, 주꾸미와 갑오징어 시즌이 시작된다. 낚시의 사계절만큼 성실한 자연이 또 있을까.

냉동실에 한치를 쌓아두고 여름내 주구장창 먹다 보니 질렸다. 생선을 먹다보면 두족류가 땡기고, 두족류를 먹다보면 생선이 땡기는 게 낚시꾼 마음이다. 갈치를 생각하자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8월 1일부로 금어기가 끝났는데, 시즌 초반 제주와 남해에서 마릿수와 사이즈 호황이 연일 올라왔다. 손이 꼴리고 몸이 달아 견딜 수 없어 제주행 항공권을 끊었다.

사실 이런저런 복잡한 일들로 이번 여름은 괴롭고 힘들었다.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심해질 때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이병헌이 한 대사를 떠올렸다. 서울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며 “살다가 힘들면 제주 오고” 하는데, 그게 뭐라고 그 장면만 보면 뭉클했다.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한 사람만 있다면 성공한 생 아닌가? 내겐 그 한 사람이 있다. 제주도의 송협 형이다. 그렇잖아도 술 취한 밤 전화해 이병헌 대사 이야기를 했더니 “병철아, 살다가 힘들면 제주 와라” 했다. 그래서 갔다.

송협 형과는 작년 5월, 제주 압둘라호를 타고 나간 관탈도 대부시리 지깅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배에서 몇 마디 나눈 후 SNS로 연락하면서 친밀감을 쌓았다. 그러다 12월 겨울 시즌 지깅을 같이 한 이후 형님 동생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올해 1, 2월에 거의 제주에 가서 살았다. 형과 낚시하고, 맛있는 거 먹고, 커피 마시고, 마사지 받고, 사계리 형네 어머님 집에 가 귤 까 먹고 놀았다. 꽃 피는 봄에는 내가 형을 섬진강으로 초대해서 함께 꽃구경하고, 쏘가리 낚고, 참게탕 먹고, 강변을 걸었다. 사람과 사람 사귐의 깊이는 물리적 시간과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생각했다. 이제는 가장 자주 통화하는 사람이 됐다.

중부지방에 100여 년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던 8월 8일 저녁,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형이 차를 몰고 나와 있었다. 곧장 제주시의 오래된 뼈해장국집으로 갔다. 킥복싱 챔피언 출신이자 맥스FC 입식격투기 해설자, 그리고 록쇼어 전문가인 ‘갯바위의 파이터’ 김성수 형과 제이에스컴퍼니 바다 스탭 윤지환 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넷이서 가볍게 술잔 기울이고, 커피 한 잔 마시고 헤어졌다. 새벽 1시쯤 해안동 언덕 위 형네 집에 가니 창밖으로 한치, 갈치잡이 배들이 띄워놓은 ‘백 개의 달’이 휘황찬란했다. 그 불빛에 서울에서 지친 마음이 위로 받았다. 형이 깔아놓은 잠자리에서 편하게 잤다.

다음날, 일하느라 바쁜 형을 대신해 김성수 형, 이광수 형이 나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놀아줬다. 이호테우해변을 걷고, 서귀포 돈내코 계곡에 가 멱 감고, 계곡 백숙집 평상에 앉아 닭다리 뜯으며 낮술도 했다. 그날 늦은 밤에는 애월 갯바위에 나란히 서서 한치 에깅을 했다. 파도가 밀어 올리는 바닷바람이 향기로운 밤이었다.

그 다음날, 송협 형과 갈치낚시에 나섰다. 형은 며칠 전 낚시 가서 갈치를 잔뜩 잡았기에 굳이 출조하지 않아도 됐는데, 갈치 열심히 잡아서 나를 다 주겠다며 함께 배에 올랐다. 오후 다섯 시, 압둘라호에 올랐다. 장진성 선장님이 반겨줬다. 너울이 꽤 일고 바람도 불었다. 포인트에 도착해 물돛을 내리고, 아직 집어등을 켜기 전 설렁설렁 낚시를 시작했다. 형이 메탈지그를 내리자마자 바닥권에서 3지급 갈치 한 마리를 올렸다. 시작이 좋아 기대감이 부풀었다. 곧 나도 메탈지그로 갈치를 올렸다. 날이 어둑해지자 메탈지그, 오모리그, 텐빈 가리지 않고 4~5지급 갈치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초반에 피딩이 걸린 이후 물이 영 가지 않아 낱마리 조과만 뜨문뜨문 이어지는 상황, 나는 형 덕분에 정말 편하게 낚시했다. “너는 손맛만 봐라”면서 미끼로 쓸 풀치를 썰고, 풀치가 떨어지면 스피닝 채비로 메탈지그를 멀리 던져 표층에 떠 있는 풀치들을 잡아서 또 썰고, 갈치를 잡고, 잡은 갈치를 최대한 신선하게 빙장하고…… 낚시만 하는 나보다 몇 배는 더 바빴다.

전반적으로 조황이 부진했지만, 내 쿨러는 가득 찼다. 형이 잡은 것까지 나한테 다 몰아줬기 때문이다. 새벽 3시가 넘은 철수길, 형은 내가 갈치를 서울에 가지고 올라가기 편하게 일일이 손질을 해줬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갈치를 한 마리씩 꺼내 대가리 자르고, 내장 빼내고, 토막 내서 미리 준비한 비닐에 소분해 아이스박스에 넣었다. 옆에서 거들면서 얼마나 감사하고 또 미안했는지 모른다. “형님, 감사합니다”하면 “우리끼리 감사할 게 뭐 있냐. 네가 재밌게 낚시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하는 형과 마주보며 웃었다. 집에 와 샤워하고 뻗어 자는 사이 형은 두 시간 자고 출근했다.

함께 있으면 그 ‘함께 있음’만으로 행복하고 편안한 사람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아도, 논리나 지식 없이도 그저 마음이면 충분하다. 함께 있는 동안에는 복잡한 세상살이를 잊는다. 점심 무렵 일어난 나는 일하느라 바쁜 형을 대신해 빨래하고, 설거지했다. 그날 저녁 일 마치고 온 형과 함께 사계항에서 레저보트를 타고 무늬오징어 에깅을 했다. 김성수 형도 함께. 형제섬 사이로 보름달이 떠올라 바다가 은빛 윤슬로 눈부실 지경이었다. 샤크리 액션을 줄 때마다 휙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 경쾌한 드랙 소리와 함께 달빛이 반짝이는 소리만 밤바다에 가득했다. 남자 셋이서 웃고 장난치고 농담하고 그러는 동안 무늬오징어도 넉넉한 손맛을 안겨줬다. 이날 잡은 무늬오징어 역시 다 내 몫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아니 아낌없이 주는 형들이다.

다음날 첫 비행기로 올라가게 돼 마지막 밤은 공항 근처 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형은 스티로폼 아이스박스를 구하지 못한 나를 위해 갈치 얼린 것과 무늬오징어를 자기 아이스박스에 넣어 가져가라고 내줬다. 아이스박스는 다음에 내려올 때 갖고 오라며. 호텔까지 데려다주고, 온갖 짐을 함께 들어주었다. 호텔 로비에서 “형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하며 끌어안았다. 형은 이병헌의 그 대사, “살다가 힘들면 제주 와라”를 다시 한 번 들려줬다. 이런 조우(釣友)가 있다면 낚시라는 한 세상, 아니 인생은 살아볼 만한 과정이 된다. 세상살이야, 네가 아무리 날 괴롭혀봐라. 나는 끄떡없다. 나에게는 제주라는 피난처가, 거기서 온맘으로 나를 맞아줄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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