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낚시꽁트 씁새 (316)]
선장열전
상남자 ㅇㅇ호 선장
박준걸 artellar@hanmail.net
일러스트 이규성
새벽 4시. 이미 선착장은 낚시꾼으로 미어터지고 있었고, 주차장은 차들로 들어차 바늘 하나 꼽을 자리가 없었다. 포구를 몇 바퀴 돌아 겨우 주차하고 낚시점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초죽음이었다.
“염병! 민어 호황이라니께 전국에 낚시꾼들이 죄다 모인 것 같다. 예미.”
무거운 낚시짐을 내려놓으며 호이장놈이 씩씩거렸다.
“그중에 네놈도 포함되어 있는겨, 잔말 말고 어여 명부나 작성하자고.”
씁새가 아이스박스에 주저앉으려는 호이장놈을 부축하며 낚시점으로 들어섰다.
“ㅇㅇ호 명부는 워디 있어유?”
총무놈이 젊은 점주에게 물었다.
“ㅇㅇ호 타셔유?”
젊은 점주가 씁새 일행을 보며 물었다.
“그런디유? 왜유? 문제가 있남유?”
그러자 젊은 점주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그게유, 그 ㅇㅇ호 선장이 식전 댓바람부터 승질이 나가지구 난리두 아녀유. 조금만 더 허문 살인나겄어. 뭔 승질이 여간혀야 말이지유. 우리 선단에서 쫓아내고 싶어유.”
이건 뭔 소리인가 싶었다.
“왜유? 선장이 말을 안 들어유? 실력이 없어유?”
놀란 씁새가 물었다.
“실력은 아주 좋아유. 그라니께 내 쫓지두 못허구 내비두지유. 근디 승질머리가 여간머리가 아녀유. 오늘두 새벽버텀 난리를 치니께 아조 정신이 없어!”
젊은 점주가 씩씩거리며 대답했다.
“그라문… 오늘… 낚시허는데 지장을 몹시 초래할까유?”
“그건 아녀유. 배질은 대한민국 선장 중에서 최고일거여유. 근디 선단 말을 안 듣고, 선주인 나헌티두 대들어유. 별 일두 아닌 것 가지구 난리를 치니께 문제지유.”
말로만 듣던 선주와 선장의 싸움이었다. 어떤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선주와 선장의 갈등은 낚시 손님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왠지 오늘 낚시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갔다. 어쨌든 명부를 작성하고 필요한 소품을 구입하고 낚시점 문을 나설 때였다.
“ㅇㅇ호는 해안경찰서 앞 쪽 선착장여유. 그러고 그 선장이 낚시허는디 자꾸 엄한 짓 허거나 문제를 일으키문 얼른 지헌티 연락하셔유. 분명히 오늘 사고 칠껴.”
젊은 점주가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야이씨… 이거 오늘 낚시두 조진 거 아녀?”
총무놈이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뭔가 선주와 선장 사이에 사단이 난 모냥이여… 이거 심상치 않은디….”
“선장 승질 났다는디 배 마구 몰고 포인트 엄한데 데려가면서 손님들 떨어트리려고 하는 거 아닐까? 우쩌지?”
선착장 쪽으로 짐 보따리를 들고 가며 호이장놈이 말했다.
새벽 5시, 드디어 배들이 출항을 시작하고 낚시꾼들이 분주히 올라타고 있었다. 그리고 문제의 ㅇㅇ호도 접안을 하고는 손님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뭐여? 이 개눔의 선주 새끼가 캔커피를 이따구로 보낸겨?
이건 달기만 허구 싸구려 아녀? 이 새끼가 나허구 한번 해 보자는겨?”
“뭐여? 이 개눔의 선주 새끼가 캔커피를 이따구로 보낸겨? 이건 달기만 허구 싸구려 아녀? 이 새끼가 나허구 한번 해 보자는겨?”
뱃전에 나와 있던 선장이 손님들을 위해 배에 싣고 있던 물품들을 보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갑자기 배에 오르던 세 명의 젊은 낚시꾼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니들 이거 다시 낚시방에 던져버리고 이거보다 더 좋은 캔커피가 냉장고에 있으니께 그걸루 가져와. 빨리 튀어!”
그러자 세 명의 젊은 낚시꾼이 배에 짐을 던지다시피 올려놓고 싸구려 캔커피 박스를 들고는 부리나케 낚시방으로 뛰어갔다.
“개 상녀리 새끼! 언놈이 저런 모지리 같은 아들놈을 낳은겨? 그러구두 지가 선주여? 개눔의 새끼!”
선장이 씩씩거리자 옆의 ㅇㅇ호 선장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만 혀. 뭔 식전 댓바람부텀 승질을 내구 그랴. 자네두 그만 화 풀어. 젊은 놈이 그랄 수도 있는 것이지. 그걸 이해 못 해주나?”
“이해는 개뿔이나! 썩을 놈!”
불같은 선장의 기세에 주눅 든 낚시꾼들이 조용하게, 매우 조용하게 질서 정연히 배에 올랐고, 자신의 자리로 조심스럽게 찾아갔다. 젊은 낚시꾼 세 사람이 마지막으로 캔커피 박스와 함께 오르자 선장이 항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보았다. 배에 오른 모든 낚시꾼들의 얼굴에 비치는 불안한 기색을.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배가 항구를 빠져나가자 선장의 목소리는 180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 오늘은 민어낚시입니다. 지금부터 두어 시간 이상 달려가야 포인트입니다. 피곤하신 손님들은 선실에서 주무시기 바랍니다. 현재 유류 가격이 너무 올라서 어쩔 수 없이 정속주행을 해서 기름값이라도 절약해야 하니 손님들의 많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뱃전에 계신 손님들은 파도가 튈지 모르니 배 뒤로 가주시기 바랍니다. 자, 달려 보겠습니다.”
이건 또 무엇인가 싶었다. 스피커를 통해 전해져 오는 세상없이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아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이… 이게 뭔 일이래?”
“아까 그 선장 맞어? 왜 저렇게 변한겨?”
배 후미에 모여 있는 낚시꾼들마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포인트에 도착하자 선장이 스피커를 통해 공지를 시작했다.
“에또, 제가요, 저 선주 새끼 거덜낼 작정입니다. 지금부터 첫수를 하시는 분! 고기 어종 불문! 크기 불문! 무조건 첫수 올리시는 분에게 무료승선권 드립니다. 단! 니들! 창배 친구 새끼들은 제외여. 자, 준비하시고… 내리세요!”
그 이후, 선장의 무료승선권 증정은 계속되고 있었다.
“거기 여사님은… 이짝 손님들허구 같이 타신겨? 제 배 첨여유? 그렇다면 무료승선권 한 장 증정!”
“오호! 민어 잡는데, 웬 놀래미여? 손님 고기 잡은 기념으로 무료승선권 한 장 증정!”
점점 배에 탄 낚시꾼들의 열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무슨 선장이 무료승선권을 저리도 남발하나 싶었다.
“첫 민어에도 무료승선권 증정! 오늘 최대어 잡으신 분에게도 무료승선권 한 장! 창배 새끼 친구들 빼고!”
문제의 창배 친구들 세 놈만 빼고 모두들 신이 나 있었다. 창배 친구들이란 아까의 캔커피 박스를 나르던 그 세 놈이었다. 기가 막힌 배질로 완벽하게 배를 잡아주었고, 포인트에는 빠짐없이 선두, 선미, 양옆으로 골고루 진입했으며, 간간이 사무장과 함께 뜰채질에 낚시 기술까지 전수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민어 잘 나오네요. 이쯤에서 민어 포인트지만, 만약 광어를 잡는다, 그러면 시가 20만원 상당의 릴 한 대 쏩니다. 낚시방에 가셔서 선주 새끼한테 달라고 하면 됩니다.”
하다하다 이제는 고가의 릴까지 증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단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해진 씁새가 선장에게 물었다.
“이게 뭔 일이래유? 이라문 선주한티 쫓겨나는 거 아녀유?”
“이게 뭐여유? 뭔 상품을 이렇게 남발해유?
지금이 뭔 이벤트 허는 날여유? 점방 거덜낼 일 있어유?”
그러자 선장이 갑자기 마이크를 켜더니 온 배가 들리도록 대답했다.
“쫓겨나유? 지가유? 내가 그놈을 해고시킬껴. 개눔의 새끼가 오늘이 주말 아녀? 그라문 낚시 손님덜이 워낙이 몰릴 것인디, 한 분 한 분 성실히 모셔야 헐 것 아녀유? 이 새끼가 저녁에 술을 퍼 먹은겨! 평일이라문 몰러. 주말에, 그것두 손님 많이 오시는 주말에 새벽까정 술을 퍼먹었어유(이때를 기해 선수에서 느닷없이 백조기 잡으신 손님에게도 무료승선권 증정!). 좌우간 애새끼가 정신머리가 글러 먹은겨! 워디 지놈이 주말에 술을 퍼먹어? 저 창배 친구 새끼들두 그라문 안대! 니놈들이 말렸어야지! 새벽까정 술 퍼먹구서니 눈은 시뻘개서, 술 냄새 팍팍 풍기문서 손님들 모시는 게 정신머리가 온전헌겨? 니 새끼들이 말렸어야지, 같이 퍼먹어?”
“그… 그래두… 그 젊은 사장이 선주라든디…”
“개뿔이나! 그 새끼가 말여. 내가 배질 혀서 돈 벌어서니 낚시점 맹길어주구, 선장허는 친구들 모아서 선단 꾸려주니께 아주 지놈 시상인 중 알어. 확 파면시키까!”
“그라면… 그 창배라는…”
“내 아들 새끼여유. 개눔의 새끼.”
결국 배에 탄 손님들 모두가 웃음보가 터졌고, 낚시를 못 할 정도로 웃어 제끼기 시작했다. 이 유쾌한 사건의 전말이었다.
“오케이! 이 선주 새끼 파산하는 꼴을 보기 위해 오늘 민어 최대어 시상을 무료승선권이 아닌 외제 30만원 상당의 외수질 전용대로 드립니다. 창배 새끼 친구들 세 놈 빼고!”
어쨌든 이 유쾌하고 어찌 보면 아들을 정신 차리게 하려는 배포 큰 선장님과의 황당한 뱃놀이는 창배라는 낚시방 젊은 사장의 친구들만 빼고 모두 즐겁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느닷없고 황당한 무료승선권 증정식은 계속되었다.
총 11장의 무료승선권이 남발되었고, 고가의 릴 한 개, 고가의 낚싯대 하나, 상품을 타지 못한 손님을 위한 낚시 장갑이 두 개, 구명조끼 한 개가 증정되었다.
결국 그 배에 탔던 낚시꾼 모두 하나씩 골고루 선물을 증정 받은 것이었다. 물론, 창배 친구 새끼들은 빼고.
그렇게 상남자 선장의 아들이자 낚시방의 사장인 선주를 엿 먹이고 싶어 하는 선장과의 즐거운 낚시가 끝나고 항구로 돌아오자 선착장에는 거의 울 듯한 젊은 선주가 서 있었다.
“아부지!”
선장을 보자 창배라는 젊은 사장이 슬픈 목소리로 불렀다.
“뭐 새끼야!”
“이게 뭐여유? 뭔 상품을 이렇게 남발해유? 지금이 뭔 이벤트 허는 날여유? 점방 거덜낼 일 있어유?”
그러자 뱃전에서 팔짱을 끼고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던 선장이 터벅터벅 선장실로 가더니 마이크를 잡고 온 항구가 떠나가도록 대답했다.
“어이, 아들 새끼. 내가 말여. 담번에도 니놈이 주말에 술 처먹으면, 그것도 밤새 술 처먹고 불성실하게 손님덜 받으면 그때는 낚시방을 경품으루 내놓을껴! 그라문 너는 그지 새끼 되는겨. 알간? 더 나아가서는 이 배를 경품이루 내 놓을 수도 있어. 그라면 우리 가족은 그지 새끼 되는겨, 알간? 조심혀, 새끼야.”
그러자 온 항구의 낚시 손님들과 선장들, 일반 관광객들의 엄청난 웃음소리가 항구에 울려 퍼졌다. 그 후, 다른 낚시꾼에게 전해 듣기로는 무언가 ㅇㅇ호 선장이 실수를 했다고 아들인 창배라는 사장이 무지막지한 경품을 걸었다고 한다. 3개월 무료 승선이라는… 3개월 내내 맘대로 탈 수 있다는…!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물론, 선장이 과한 면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손님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ㅇㅇ호 선장의 굳은 심지는 칭찬해도 될 것이다. ㅇㅇ호 선장님의 올곧은 마음이 영원하시길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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