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연재_에세이]
민어의 노래
이병철
“고사리 장마가 지나고 난 바닷길/ 깊게 패인 여울물 소리에 새우떼의 선잠을 깨우는/ 밴댕이와 알 품은 병어들의 놀이터가 돼버린 전장포 앞바다에서는/ 서남쪽 흑산해에서 진달래꽃 피기를 기다렸다가/ 뻘물 드리우는 사리물 때를 기다려/ 뿌우욱 뿌우욱 부레로 내는 속울음으로/ 내 고달픈,/ 고향에 다다른 칠월의 갯내음을 아가미로 훑는다”
김옥종 시인의 시 ‘민어의 노래’ 1연이다. 시인은 목포 출신으로 한때 폭력 조직에 몸담았으나 격투기로 진로를 바꿔 1995년 세계적인 입식 격투대회인 ‘K-1’에 진출했다. 데뷔전에서 패한 후 곧장 은퇴, 횟집 주방장으로 변신해 민어 전문점을 운영하다 전남 광주 신안동에서 ‘지도로’라는 밥집을 새로 열어 수년째 장사 중이다. 학창 시절부터 주먹 세계에 있을 때도 시를 써온 그는 2015년 문학전문지 ‘시와 경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등단 5년 만에 첫 시집 ‘민어의 노래’(휴먼앤북스, 2020)를 출간했다.
“뿌우욱 뿌우욱 부레로 내는 속울음으로 내 고달픈, 고향에 다다른 칠월의 갯내음을 아가미로 훑는다”는 문장을 읽으면 당장이라도 장비를 챙겨 민어낚시에 나서고 싶다. 민어배 선장들은 민어가 부레로 뿌우욱 뿌우욱 내는 소리를 추적해 배를 댄다. 여름철 최고의 보양식으로 각광 받으며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기에, 큰놈 한 마리만 잡아도 선비 본전 뽑고, 온 가족 행복해지는 게 민어 낚시다.
그런데 이 민어 낚시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첫째, 우선 멀다. 제철 민어를 낚으려면 고흥이나 해남, 신안으로 가야 하는데 왕복 800킬로미터, 민어 찾아 이천 리 대장정이다. 둘째, 힘들다. 그늘도 없는 바다 위, 여름철 뙤약볕을 직격으로 맞으며 낚시하기란 정말 고역이다. 장거리 운전과 쪽잠으로 지친 몸은 새벽 출항에 이미 파김치가 돼서는 해가 중천에 뜰 무렵이면 푹푹 곰삭는다. 셋째, 더럽게 안 잡힌다. 보통 외수질낚시나 원투처박기를 하는데, 입질 받기가 쉽지 않다. 초릿대가 훅 꺾여 챔질해보면 얄궂게도 장대, 백조기, 메퉁이가 올라온다. 민어는 경계심이 높아 입질이 굉장히 약다.
왕복 유류비에 선비, 기타 부대비용까지 감안하면 민어는 잡아서 먹는 게 아니라 사 먹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그동안 사 먹었다. 매년 여름이면 싱어송라이터 강백수, 영화배우 장다경, 성우 김도영, 그리고 나까지 넷이서 추렴해 민어 복달임을 한다. 목포의 일성호수산에서 4~5킬로그램짜리를 택배로 주문해 먹는다. 비늘 치고 내장 손질만 해서 올라온 민어를 직접 회 뜨고, 부레 썰고, 초밥 쥐고, 전 부치고, 껍질 데치고, 척추뼈 다져 뼈다대기 만들고, 대창과 간은 수육 삶고, 서더리로 맑은탕까지 끓여내면 생선도 낚시도 잘 모르는 친구들이 ‘물개박수’를 친다. 인당 6~7만원씩 걷어서 이렇게 해 먹는 게 훨씬 마음 편하다.
“마늘 뽑고 양파 캐어 말리던 늦은 오후,/ 구년은 자랐을 법한 일 미터의 십키로짜리 숫치를 토방에 눕히고/ 추렴하여 내온 병쓰메에 네 등살은 막장에 얹어 먹고/ 목살은 묵은지에 감아먹고 늙은 오이짠지는 볼 살에 얹어 먹고/ 고추 참기름 장에는 부레와 갯무레기 뱃살을 적셔먹고/ 갈비뼈와 등지느러미 살은 잘게 조사서/ 가는 소금으로 엮어내는 뼈다짐으로 먹어도 좋고/ 내장과 간은 데쳐서 젓새우 고추장에 볶아내고/ 쓸개는 어혈이 많아 어깨가 쳐진 친구에게 내어주고/ 아랫 턱 위에 붙어있는 입술 살은 두 점 밖에 안 나오니/ 내가 먹어도 될 성 싶은/ 깊은 고랑 주름살에도 꼬리뼈 살을 긁적거리고 있노라면/ 봉굴수리잡 옆의 대실 개복숭아는 제법 엉덩이가 빨갛다”
▲ 일러스트_탁영호
‘민어의 노래’ 2연이다. 돈 주고 사 먹는 게 합리적이란 걸 알면서도 낚시꾼 마음이 또 그렇지 못하다. “일 미터의 십키로짜리 숫치”면 한 70~80만원쯤 한다. 차마 그 비싼 걸 사 먹진 못하겠고, 낚시로는 잡기 희박한 사이즈라는 걸 알지만 도전해보는 것이다. 낚시꾼만큼 유혹에 약한 사람들도 없다. 물고기를 유혹하기 위해 스스로 유혹당하는 족속들이 아닌가. 물고기 유혹에 실패하고서 어시장 좌판에 유혹당하는 그야말로 눈먼 인간들이 낚시꾼이다. 마침 6월말 7월초, 고흥 나로도와 거금도권에서 민어가 제대로 터졌다는 소식에 귀가 마구 팔랑였다. 배에서 100~200마리씩 뽑아 올리고, 한 사람이 열댓 마리 우습게 잡는다고 하니 안 가고 배길쏘냐. 시를 읽으며, 등살은 막장에 얹어 먹고, 목살은 묵은지에 감아먹고, 볼살에 오이짠지 얹어 먹고, 고추 참기름장에 부레와 뱃살 적셔먹는 상상을 하면서 고흥 나로도로 향했다.
나로도로 가는 길, 민어에 얽힌 웃기는 추억 하나 떠올라 즐겁게 운전했다. 임자도 가는 다리가 놓이기 전, 목포 점암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갔을 때니 벌써 여러 해 전이다. 임자도 출신 김두안 시인 초청으로 시인 야구단 ‘사무사’ 멤버들이 놀러 갔다. 대광해수욕장에서 해수욕하고, ‘목섬닭집’에서 토종옻닭 코스요리를 먹었다. 옻닭은 에피타이저에 불과했다. 김두안 시인의 널찍한 한옥집에 도착하니 8킬로그램짜리 민어가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어회에 소주 진탕 마시는 동안 김두안 시인이 썰을 풀기 시작했다.
신안 앞바다는 옛날 고려시대 무역선들이 많이 침몰해 해저 유물이 많은데, 자기는 어릴 적에 상평통보로 짤짤이를 했다는 것이다. 한술 더 떠서 바닷가에 굴러다니는 술잔 하나를 주워 왔는데, 거기 술을 따르니까 술잔 속에서 웬 소복 입은 여자가 장구를 치더란다. 김두안 시인의 ‘혼이 담긴 구라’가 민어회 맛을 돋웠다. 다음날 아침, 곰국마냥 푹 끓여낸 민어지리로 속을 풀었다. 그 술잔 좀 구경시켜 달라 했는데 아직까지 보여주질 않는다.
나로도에 도착해 어시장에서 덕자와 붉바리를 회 떠 초장집에 가져갔다. 기름진 덕자와 꼬들꼬들한 붉바리회를 안주삼아 소맥을 여러 잔 마셨다. 큼지막한 덕자회를 전 부치면 얼마나 맛있을까, 주방에 부탁하니 안 해준단다. 그런데 우리 일행이 내일 탈 배가 ‘홍가네호’라고 하니 아주머니께서 “우리 조카 배”라며 당장 전을 부쳐 내줬다. 보드랍고 기름지고 ‘겉바속촉’한 덕자전과 매운탕에 또 술병을 여럿 비웠다.
다음날 새벽 일찍 홍가네호에 올라 열심히 낚시했다. 독자 분들께서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조과는 거의 꽝에 다름없는 몰황이었다. 그래서 낚시 얘기는 안 하고 주구장창 다른 썰만 푼 거다. 퉁치 두 마리, 퉁치만 한 백조기 한 마리가 조과의 전부였다. 그나마 일행 중에서 내가 나은 편이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잘 나온다더니, 역시 소식 듣고 가면 지각이다. 결국 민어 유혹에 실패해서는 어시장에 가 갯장어나 좀 샀다. 올라오는 길에는 보성에 들러 짱뚱어탕을 먹었다. 어시장 좌판과 미식의 유혹에 넘어간 어리석은 낚시꾼이 바로 나다.
“세월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 민어 몇 마리 돌아왔다고 기다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새우 놀던 모래밭을 파헤쳐/ 집 지을 때부터 플랑크톤이 없던 모래밭에/ 새끼를 품어내지 못한 오젓, 육젓이 밴댕이를 울리고/ 깡다리를 울리고/ 병어를 울리고/ 내 입맛 다실 갯지렁이도 없는 바다에 올라 칼끝에 노래하던/ 민어의 복숭아 빛 속살은 다시 볼 수 없으리라”(김옥종, ‘민어의 노래’ 3연)
아아, 낚시꾼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이다. 민어 몇 마리 못 잡았다고 기다림이 끝난 것은 아니다. 내년 여름, 바다에 올라 초릿대 끝에 노래하는 민어의 복숭아 빛 속살을 반드시 다시 보고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