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연재_에세이]
한치 블루스
이병철
올해도 어김없이 한치의 계절이 왔다. 차로 네 시간쯤 가서 먼 바다까지 또 두세 시간을 나가야 하는 통영, 부산, 여수권보다 제주도를 선호한다. 항에서 10~20분만 나가도 좋은 포인트들이 널렸기 때문이다. 시즌 초반인 5월 중순, 화북항에서 뜨는 해성피싱호를 탔다. 30마리쯤 잡았는데 영 아쉬운 조과였다. 5월 말, 제주항 압둘라호를 타고 나선 두 번째 도전은 더 처참했다.
책 <나는 낚시다>의 저자이자 문학평론가이신 하응백 선생님과 동행했는데, 둘 다 10마리를 겨우 넘겼다.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항공료가 오르고, 선비도 오르는 바람에 주말 제주 출조는 큰맘 먹어야 하는데, 한 40만원 들여 열댓마리 잡았으니 1마리당 거의 3만원 하는 귀한 한치가 됐다. 새벽 5시, 공항 가는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서부두 초입에 난전을 편 할망에게 자리돔 스무 마리를 1만원 주고 샀다. 집에 와 한치만으로는 빈약한 술상을 자리돔으로 채웠다. 자리돔 아니었으면 정말 억울할 뻔했다.
연중 낮이 가장 긴 하짓날, 설욕전의 막이 올랐다. 하루 출조로는 조과를 장담할 수 없으니 연이틀 낚시하기로 하고 해성피싱호 승선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내 문학과 낚시의 은사이자 <낚시, 유혹과 몰입의 기술>의 저자이신 문학평론가 전영태 선생님과 동행출조했다. 재작년 여름, 선생님과 이틀 동안 부지런히 흔들었지만 큰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지난 아쉬움이 손에 남은 건 하응백 선생님께서도 마찬가지.
첫날 동행하셨는데, 해성피싱호에 자리가 없어 같은 선단 배인 빅보스호에 타셨다. 전영태 선생님과 하응백 선생님은 10여년 만의 재회. 그렇게 낚시 산문집을 출간한 바 있는 세 사람의 문학평론가(나는 <낚시 - 물속에서 건진 말들>을 썼다)가 배 두 척에 나눠 타고 한치 사냥에 나섰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이라 해거름 바다는 선선했다.
수심 80미터권에서 시작해 집어등을 켠 후부터는 45미터권에서 30미터권까지를 주로 노렸다. 요즘 제주 한치낚시는 이카메탈 다단채비보다 삼봉 오모리그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액션을 주고 길게 스테이할 때 입질이 들어오는 패턴인데, 밤 10시 전에 한 번 피딩이 잠깐 붙고 나서는 별 재미를 못 봤다.
어쩌다 낱마리나 올리면서, 새벽 4시 반 철수할 때 보니 40마리쯤 잡았다. 그나마 배에서 제일 많이 잡은 수준이었다. 못 잡아도 인당 60~70마리, 많이 잡으면 세 자리 수를 찍는다던 최근의 호황이 무색했다. 그날 출조한 다른 배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하응백 선생님은 스무 마리에 그쳤다고 하셨다. 전영태 선생님과 나는 택시를 타고 탑동 보보스모텔로 가고, 하응백 선생님은 해성피싱호 픽업 차량을 타고 공항으로 가셨다. 떠나시는 뒷모습이 영 쓸쓸해보였다.
밤샘 낚시로 아무리 피곤해도 한치 썰어서 소맥 말아 먹고 자야 한다는 은사님의 가르침을 성실히 받들어 모텔 화장실에서 한치를 손질해 썰었다. 아예 작정하고 집에서 도마랑 칼까지 챙겨 왔다. “역시 자네는 준비성이 철저한 제자야” 한치 세 마리 썬 것이 게 눈 감추듯 금방 사라졌다. 갓 잡은 초여름 한치라 야들야들하고 꼬득꼬득했다. 한라산 21도 두 병과 테라 500 두 캔을 나눠 마시고 침대에 누웠다. 오해는 금지다. 보보스모텔은 방에 침대가 두 개 있다.
점심 무렵 일어나 모텔 앞 ‘산지물 식당’에 가 활어초밥과 갈치국을 먹었다. 먹으면서 두 가지를 걱정했다.
하나는 오늘도 몰황이진 않을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점심을 이렇게 든든하게 먹어서는 이따 배 터지진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배 터질 일을 걱정한 것은 해성피싱호가 승선한 손님들을 마치 겨울철 출하를 앞둔 대방어 축양하듯이 먹이기 때문이다.
배에 탄 순간부터 내리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포인트 도착해 풍닻펴자마자 제주 전통음식인 돼지고기 산적을 비롯해 돈까스, 새우튀김, 미트볼, 콩나물냉국, 각종 밑반찬으로 푸짐하게 차려낸 저녁밥을 먹인다. 두어 시간 지나면 오징어 버터구이를 내고, 또 한 시간쯤 지나면 커피와 도넛을, 또 한두 시간쯤 지나면 라면을 끓여준다. 여담이지만 이틀간 낚시하고 집에 왔더니 체중이 3킬로나 불어 있었다.
먹을 걱정보다 잡을 걱정이나 하자! 둘째 날 낚시가 시작됐다. 어제와는 다르게 초반부터 한치들이 맹렬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전영태 선생님은 낚시 한 시간 만에 벌써 어제의 조과를 넘기셨다. 선생님이 한 마리 올리고 있으면 거치 로드에 입질이 들어와 내가 쏜살같이 선생님 낚싯대를 뽑아들고 한치를 올리는 일이 여러 번이었다. 반대로 선생님이 내 낚싯대를 대신 들고 한치를 올려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스승과 제자는 콤비플레이를 발휘하여 먼동이 틀 때까지 주구장창 한치를 뽑아냈다.
40미터권에서 시작된 입질은 밤 9시 무렵 30미터권에서 불꽃 피딩으로 번지더니 새벽 3시쯤 8~9미터권 상층에서 폭발적인 ‘느나느나’가 됐다. 두 번의 피딩타임 외 시간에도 꾸준히 올라왔다. 삼봉 오모리그 채비를 캐스팅해 수심층에 안착시켜 액션을 준 뒤 에기가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스테이를 길게 주는 게 패턴인데, 불필요한 동작을 없애려면 액션을 주고 나서 아예 로드를 거치해버리는 게 낫다. 그 방법으로 20킬로그램 이상 잡았다. 연이틀 출조 혜택으로 전날 추첨한 선미 자리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는데, 배의 맨 뒤 음영지대에 채비를 내려선지 전영태 선생님의 에기에는 유난히 대포한치가 많이 걸려들었다. 항에 들어와 스승과 제자는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인기를 끌어 제주 관광객이 급증했는데, 한치 물회가 불티나게 팔리는 중이라고 한다. 1킬로에 5만원씩 하는 귀한 ‘금치’를 잔뜩 잡았으니 어찌 아니 기쁠쏘냐. 나 혼자서만 이틀간 30킬로를 넘겼다. 이번 출조에서 스승과 제자는 대략 300만원어치 한치를 수확했다. 수하물을 부칠 때 추가요금이 세게 나왔다. 그깟 추가요금쯤이야. 김포공항에 도착해 잔뜩 무거운 아이스박스를 카트에 올리고 선생님과 헤어졌다.
“비쌀 때 잡자”며 온 제주 한치 조행이 해피엔딩으로 맺어지는 순간이었다. 한편 하응백 선생님의 아쉬움은 이달 중순 나로도 민어, 붉바리 외수질낚시로 만회할 계획이다. 두 분 선생님 모시고 16일, 나로도 홍가네호에 탄다. 요즘 민어가 제대로 터졌단다. 한치 블루스에 이어 이번엔 민어 블루스를 춰보리라.
민어는 지금 1킬로에 7만원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