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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연재_에세이] 파안대소의 연평도
낚시에세이

[연재_에세이]



파안대소의 연평도



이병철



“조기를 담뿍 잡아 기폭을 올리고 온다던 그 배는 어이하여 아니오나. 수평선 바라보며 그 이름 부르면 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눈물의 연평도’ 노랫말이다. 1964년 태풍 ‘사라’에 의해 희생된 어부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곡이다. 태풍뿐이랴. 지난 1999년과 2002년의 제1, 2 연평해전, 그리고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까지 비극적인 사건이 수차례 발생한 섬이다. 게다가 중국 어선들의 불법 어업까지 빈번해 늘 긴장감이 팽팽하다. 수평선이 마치 잔뜩 벼려진 칼날처럼 번뜩이는, 그러나 한없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연평도는 조기와 꽃게와 점농어의 섬이다.


5월 31일, 낚시 단체복 내쇼날보이 대표 장정민 형, 해외 원정낚시 전문가 엄일석 군과 대물 점농어를 만나기 위해 연평도로 향했다. ‘눈물의 연평도’가 아닌 ‘파안대소의 연평도’를 꿈꾸면서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플라잉카페리호에 올랐다. 서해5도 방문 할인 혜택이 적용되어 왕복 티켓이 5만원 정도로 저렴했다. 터미널에서 라면 한 그릇씩 먹고, 배에 타 수다 떠는 사이 소연평을 거쳐 대연평도에 2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가거도 가는 험난한 고생길에 비하자면 연평도 가는 길은 그야말로 꽃길이었다.

배에서 내리는 승객들을 향해 팻말을 든 선거 운동원들이 열심히 인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옹진군수 후보 이름이 장정민 아닌가? 눈을 씻고 봐도 장정민이었다. “형님, 옹진에 땅 보러 다니신다더니 언제 군수 출마까지 하셨습니까?” 농담하는 동안 장정민 형은 어느새 더불어민주당 연평도 당원들 곁에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장정민이 “장정민 화이팅”을 외치고, 장정민 지지자들이 “장정민 우럭! 광어! 농어! 아자아자!” 소리치는 기막힌 상황이 벌써부터 박장대소의 연평도를 만들고 있었다.


마중 나온 둘리민박 차량을 타고 둘리둘리노래방 겸 둘리민박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내가 제주에서 잡아온 대포한치를 썰었다. 달고 쫀득한 한치 회에 쏘맥 몇 잔 말아 먹고는 식당 ‘연평회관’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돈까스와 제육볶음이 기대 이상이었다. 간밤에 잠 설치고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떤 데다 낮술까지 마시니 졸음이 밀려왔다. 예약해둔 부경호는 이튿날 오후 반나절, 그리고 출도하는 날 오전 반나절 이렇게 낚시하기로 해서 이날 오후엔 원래 갯바위 워킹낚시를 가려 했는데, 눈 붙이고 일어나니 어느덧 오후 4시였다.


부랴부랴 채비를 해서 둘리민박 차를 타고 ‘아이스크림 바위’ 인근 갯바위 근처까지 갔다.

포인트로 가기 위해서는 해안 경계 통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처음엔 통문 옆으로 난 계단길로 들어 아예 경계 초소까지 올라가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껴 내려왔다. 잘못하다간 총 맞을 뻔했다. 다시 통문 앞에서 군 전화기로 인적사항과 용무를 보고한 후 출입승인을 받아 해변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미 만조가 가까워 갯바위에서는 몇 번 던져보지도 못했다.


별 기대 없이 나온 터라 슬슬 철수하려는데, 저쪽 몽돌 해안가 얕은 곳에 스핀바이브를 던지던 엄일석 군이 “걸었다!” 외쳤다. 50센티미터급 예쁜 점농어였다. 이윽고 쌍둥이마냥 똑같은 사이즈를 또 한 마리 끄집어냈다. 꿰미가 없어 해변에 굴러다니던 폐밧줄로 고기를 꿰어 숙소로 돌아와 회를 떴다. 연평회관에 가져가 꽃게탕 시키고 점농어 회를 곁들이니 연평도 한상 차림이 완성됐다. 회를 파는 식당에 회를 가져와서 먹는 사람들이 다 있냐며 사장님이 웃었다. 물론 미리 전화로 양해를 구한 터였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 백반 먹고 부경호에 올랐다. 선장님은 바람이 세고 너울이 일어 낚시가 쉽지 않을거라 했다. 일반적인 농어낚시와는 패턴이 전혀 달랐다. 바람이 백파와 반탄류를 일으키는 난바다에서 주로 낚시하는 일반 농어와는 달리 연평도 점농어는 바람 없고 너울 없는 장판일 때 조과가 좋다는 것이었다. 선장님 예언대로 우리 일행은 별다른 손맛을 못 봤다. 정민형이 두 마리, 내가 한 마리를 올렸지만 깔따구 사이즈였다. 실망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여행 전부터 내내 정민 형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예찬한 중국집 ‘칭칭차이나’ 술국과 탕수육, 유산슬에다 고량주로 아쉬움을 달래려 했건만 재료가 떨어져서 저녁 장사를 하지 않는단다. 나는 입이 댓발 튀어 나와 툴툴거렸다. 바로 옆 고깃집에 가 삼겹살과 갈비살을 배 터지게 먹긴 했다만 청요리에 빼갈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하물며 지방선거일이었던 그날, 옹진군수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장정민 후보마저 낙선하고 말았다. 그렇게 ‘눈물의 연평도’가 될지 모른다는 초조함을 안고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 다섯시, 부경호 선장님이 숙소 앞으로 픽업을 왔다. 해무 때문에 30분 기다리다 다섯 시 반에야 출항할 수 있었다. 구지도 앞 미노우 포인트에서 첫 캐스팅을 하는데, 하늘을 뒤덮은 새까만 갈매기 떼가 신경 쓰였다. 아니나 다를까 세 번째 캐스팅만에 그만 갈매기를 걸고 말았다. 드랙이 사정없이 풀리며 초릿대가 위로 솟아올랐다. 갈매기연을 신나게 날리게 생겼는데, 다행히 갈매기가 미노우를 털어냈다. 루어를 회수하면서 채비 손실이나 로드 파손에 대한 걱정보다는 갈매기가 안 다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노우 포인트에서는 별 재미를 못보고, 수중여가 발달한 바닥낚시 포인트로 가 3/4~1온스 지그헤드에 5인치 웜을 흘렸다. 이윽고 입질이 들어왔다. 70센티미터급 힘 좋은 연평도 점농어가 아사다 마오의 트리플 악셀처럼 요란한 바늘털이 점프를 뛰면서 힘을 썼다. 히트, 더블 히트, 트리플 히트…… 정민형이 히트한 80센티미터급 따오기는 물 위를 걷는 그리스도처럼 수면 위를 성큼성큼 활보하더니 아쉽게도 그만 바늘을 뱉어내고 말았다. 그렇게 걸고 올리고, 걸고 털리고, 한 마리, 두 마리 꺼내 올리다보니 어느새 어창이 가득 찼다.


기대했던 미터급 점농어를 만나진 못했지만, 그래서 칭칭차이나 한쪽 벽면 ‘메다급’ 농어 조사만 입성 가능한 ‘명예의 전당’ 포토존에 헌액되지도 못했지만 다이나믹한 농어 손맛을 실컷 본 것으로 만족했다. 씨알 굵은 점농어를 연신 끌어내면서 웃음꽃이 만발했다. 마릿수로는 30마리 이상, 무게는 60kg 가까이 됐다.


전날의 아쉬움을 달래려 칭칭차이나에 가 선장님 것까지 간짜장 네 그릇을 시켰다. 군만두를 추가했더니 낚시꾼인 사장님께서 서비스로 내어주셨다. 손맛 무진장 보고 먹는 짜장면 맛은 끝내줬지만, 술국과 유산슬과 고량주, 그리고 ‘명예의 전당’ 포토존이 못내 아쉬웠다. 이런 아쉬움이야말로 늘 다시 돌아올 약속이 된다.

더불어민주당 장정민 후보에게는 눈물의 연평도였지만, 우리 장정민 형에게는 웃음의 연평도였던 2박 3일의 조행이 그렇게 마무리됐다.


다음날 내가 강의하는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종강파티 테이블에는 제철 자연산 점농어 회가 다섯 접시 나올랐다. 학생들이 다들 “우리 선생님 최고!”라고 했다. ‘이놈들아, 포 뜨는 데만 11만원 들었다’ 혼잣말은 속으로 삼켰다. 회 귀신처럼 회를 먹는 학생들을 보며 뿌듯했다. 이 맛에 낚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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