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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名士의 글]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
낚시에세이

[名士의 글]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



이외수 소설가



소설가 이외수 씨가 지난 4월 25일 영면에 들었다. 춘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열혈 낚시인으로 낚시춘추와 필자의 인연을 맺었다. 소설 집필에 열중하던 80년대엔 시간이 날 때마다 소양호와 춘천호에서 낚시를 즐기며 창작의 괴로움을 달랬다. 89년 9월호에 게재돼 낚시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됐던 ‘구조오작위’를 싣는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얼마나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고 취미생활에만 열중해 있었으면 도끼자루가 다 썩었으랴. 분명히 마누라쟁이들이 장작 한 번 패 줄 생각도 않고 장군멍군 따위에 열중해 있는 남편들을 원망하며 만들어 낸 말일 것이다.


하지만 도끼자루가 썩었다면 그 마누라쟁이한테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 남편이 장작을 패지 않으면 자기라도 패야지 도끼자루가 썩는 걸 그래 보고만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되는 집안인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가 실린 본지 89년 9월호 지면.


낚시춘추 김 기자는 낚시에 대해서라면 나는 비린내 중에서도 젖비린내밖에는 풍기지 않는 초보자인즉 우선 장기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 보고 싶다.

장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0여 년 전에 인도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 설도 있고 태국이나 중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 때라고 했던가.

하지만 장기의 역사나 전래에 대해서 나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만 나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른다는 말이 낚시꾼들에게도 아주 적합하게 쓰여질 수 있으며 장기에 있는 졸(卒), 사(士), 마(馬), 상(象), 포(包), 차(車), 궁(宮)이 낚시꾼들에게도 아주 잘 어울리는 말임을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낚시에는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의 등급이 있다. 조졸(釣卒), 조사(釣肆), 조마(釣痲), 조상(釣孀), 조포(釣怖), 조차(釣且), 조궁(釣窮)을 거쳐 남작(藍作), 자작(慈作), 백작(百作), 후작(厚作), 공작(空作), 그리고 조성(釣聖)과 조선(釣仙)에 이르는 것이 이른바 구조오작위라는 것이다.


조졸은 나 같은 상태의 초보자를 일컫는 말로써 한마디로 마음가짐이나 행동거지가 아직 치졸함을 벗어나지 못한 단계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빵점이다. 낚싯대를 들고 고기만 잡으면 무조건 낚시꾼인 줄 아는 것도 바로 이 부류에 속한다. 고기를 잡을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건 말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 마리도 잡히지 않으면 신경질이 나서 낚시질을 때려치우고 술부터 찾는다. 그리고 취하면 그제서야 분이 풀려서 고성방가를 시작한다. 술을 못 마시면 집에 가서까지도 그 분이 풀리지 않을 정도다. 이 단계에서 가장 낚싯줄이 많이 엉키거나 바늘이 옷에 걸리거나 초릿대 끝이 망가져 버리는 수가 많은데 마음가짐에 따라 낚싯대나 낚싯줄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 동작 여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반드시 낚싯대나 낚싯줄도 제멋대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몇 번 낚시질을 다니고 그러다가 재미가 붙기 시작해서 좋은 수확을 거두거나 대어라도 두어 마리 낚게되면 사람이 차츰 달라지기 시작한다. 장비도 제대로 갖추게 되고 기술적인 면에 대해서도 제법 신경을 쓰게 될뿐만 아니라 공연히 목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을 대단히 고상하고 낭만적인 존재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방자할 사(肆)자가 붙어서 조사(釣士)아닌 조사(釣肆)로 한 등급이 올라가는데 낚시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는 듯 어디서든 낚시 얘기만 나오면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입질이 온다라고 말해도 될 것을 반드시 어신이 온다라고 말하고 고기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라고 말해도 될 것을 반드시 조황이 별로 좋지 않다라고 말하는 단계도 바로 이 단계이며 능수능란하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도 바로 이 단계이다.


하지만 옆에 앉은 사람이 자기가 잡은 것보다 큰 놈을 올리거나 수확이 잦은 경우에는 대번에 의기소침해져 버리는 것도 바로 이 단계다. 그리고 이 단계만 거치게 되면 비로소 낚시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그래서 조마(釣痲), 조상(釣孀) 등의 단계로 이어져 가기 시작하는데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가 실린 본지 89년 9월호 지면.


조마(釣痲), 홍역할 마(痲).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어디서든지 찌가 보여서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도 낚시질을 가지 않으면 몸살이 날 지경이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나 연휴 때에 친구가 결혼을 하면 정강이라도 한 대 걷어 차버리고 싶을 정도다. 물론 적당한 구실을 붙여 되도록 식장에 참석하지 않고 낚시질을 간다. 더러는 결근도 불사한다.

조상(釣孀), 과부 상(孀). 마누라쟁이를 일요과부로 만드는 것은 약과다. 격일과부로 만드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사업조차 낚시 때문에 시들해져 버리고 급기야는 잦은 부부싸움 끝에 이혼하는 사례까지도 있다.


조포(釣怖), 낚시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는 단계. 이쯤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자기 절제를 시작한다. 취미를 다른것으로 바꾸어 보려고도 노력한다. 낚시 때문에 인생 전체를 망쳐버릴 듯한 생각까지도 드는 것이다.


조차(釣且), 또 차(且). 다시 낚시를 시작하는 단계. 행동도 마음가짐도 무르익어 있다. 고기가 잡히건 잡히지않건 상관하지 않는다. 낚싯대를 드리워 놓기만 하면 고기보다 세월이 먼저 와서 낚싯바늘에 닿아 있다. 그러나 아직 낚을 수는 없는 단계. 고기는 방생해 줄 수 있지만 자신은 방생해 주지 못하는 단계.

조궁(釣窮), 다할 궁(窮). 이제부터는 낚시를 통해서 도를 닦기 시작하는 단계.
남작(藍作), 마음 안에 큰 바구니를 만들고
자작(慈作), 마음 안에 자비를 만들고
백작(百作), 마음 안에 백 사람의 어른을 만들고 후작(厚作), 마음 안에 후함을 만들고
공작(空作), 나중에는 모든 것을 다 비운다.


그러면 비로소 조성(釣聖)이나 조선(釣仙)이 되는 바 달리 말하자면 도인(道人)이나 신선이 되는 것이다.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가 실린 본지 89년 9월호 지면.


그런데 아직까지 나는 조졸이니 어찌 그런 경지를 바라볼 수조차 있을 것인가. 하여튼 틈만 나면 기를 쓰고 낚시질을 떠나 보지만 내게 술 대신 낚시에 취미를 붙이라고 낚싯대까지 마련해준 내 아내는 벌써부터 도끼자루가 썩을까 봐 약간 맛이 가는 듯한 표정이다. 고기라도 좀 많이 잡아 온다면 또 모르겠는데 조졸이 무슨 실력이 있어서 고기를 많이 잡아 온단 말인가. 얼마 전에 월척을 한 마릴 올리기는 했지만 아마도 붕어가 미쳤거나 술에 취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생각하던 중에 스승을 한 분 모시기로 작정했는데 그분이 바로 춘천호 인람에서 만난 목영균(54) 선생님이시다.


그분은 붕어를 따라 집을 이사하면서까지 낚시를 즐기실 정도로 광이시지만 기후조건이나 수심의 변동 등에 따라 고기가 활동하지 않는 날은 같이 활동하지 않고 고기가 활동하는 날만 같이 활동하시는 베테랑이시다, 이른바 외대에 외바늘의 정통파. 지금 이사해 있는 집 바로 앞에다 전용 좌대 하나를 만들어 놓고 하루에 평균 한 마리꼴로 월척을 올리신다.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나는 귀찮을 정도로 쫓아다니며 비법을 물어보았다.

“부디 통촉하옵소서.”
“하도 열심이니까 내 한 가지만 가르쳐주지. 여자 스타킹이나 모기장에다 삶은 닭발이나 원자탄 따위를 돌과 함께 싸서 던져놓아 보게. 일단 모인 고기는 상당히 오래 거기 머물러 있지. 냄새는 나는데 먹지는 못하거든. 그때 낚시를 던지면 비교적 잘 물리게 되어 있어.”


간신히 알아낸 비법 중의 하나다. 실제로 해보니까 확실히 다른 날보다는 수확이 좋았다.
하지만 또 다른 비법이 상당히 많이 비장되어져 있을 것 같은데 좀처럼 털어놓으려 들지 않는 듯한 기색을 보이신다. 고생을 좀 더 한 다음에 배우는 게 좋다는 말씀이시다. 그러니 낚시춘추의 김 기자의 주문대로 비린내가나는 글을 쓰는 것은 당분간 보류해 두는 수밖에 없는일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분의 얘기를 한번 써서 책장을 넘길때마다 고기 비늘이 번쩍거리고 비린내가 훅훅 끼쳐오는 글을 한번 써 볼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 믿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게 있어서 시급한 일은 우선 조졸부터 면하는 일이다. 도끼자루야 썩건 말건 그게 무슨 상관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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