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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연재_에세이] 제주 갑오징어 낚시와 생명연장의 꿈
낚시에세이

[연재_에세이]



제주 갑오징어 낚시와 생명연장의 꿈



이병철


어한기인 3월, 제주도는 때 아닌 낚시 호황을 맞았다. 매년 겨울 신창항을 중심으로 비양도 등 제주 서부권에서 갑오징어가 좀 잡히긴 했지만, 이번 시즌처럼 폭발적인 호조황을 보인 적은 없었다. 서부 북부 동부남부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갑오징어들 덕분에 제주도 유어선들은 모처럼 쾌재를 불렀다. 앞으로 갑오징어낚시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는 전망마저 돌 정도로 이번 연초부터 봄까지 제주 갑오징어는 정말 ‘핫’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갑오징어 잡겠다고 제주도로 날아가는 이 골드러시를 어찌 구경만 하고 있으랴?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제주 갑오징어 열풍의 끝자락에 살짝 발이라도 걸쳐보자는 심정으로 3월 15일, 도두항에서 출항하는 뉴그린호에 올랐다. 이 배도 원래는 갈치, 열기낚시 전문인데, 갑오징어가 하도 난리니까 급하게 종목을 바꾼 것이다.


화요일 오전 5시, 평일 새벽인데도 김포공항은 인산인해였다. ‘코로나 시국이 과연 맞나?’ 하는 의심마저 들정도였다. 6시 첫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내려가려는 사람들이 항공사 카운터부터 공항 입구 게이트까지 긴 줄을 서고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입이 떡 벌어졌다. 탑승수속을 밟는 승객들의 99퍼센트가 어깨에로드 케이스를 메고 있었다. 전부 갑오징어를 낚으러 가는 꾼들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장기간 경기 침체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유가 인상으로 항공산업은 물론 낚시, 관광산업도 위축됐는데, 갑오징어가 다 살렸다. 이번 겨울과 봄만큼은 진짜 ‘갑’ 오징어였다. 아니 갓(God)오징어다.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주차장에는 수십 대의 대형버스가 출조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열기 손님들을 태우는 버스도 간혹 있긴 했지만, 거의 다 갑오징어 출조선에서 보낸 버스들이었다. 짐칸에 낚싯대와 태클박스를 넣고 버스에 올랐다. 도두항에 닿기 전 낚시점 및 편의점에 한 번 정차해 손님들이 채비와 간식 등을 구입할 수 있게 해줬다.


제주 갑오징어낚시에서 잘 통하는 에기로 정평이 나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 ‘요즈리’사의 보라색 삼봉에기(학꽁치포 같은 생미끼를 감아서 쓰는 에기)의 경우 인터넷에서는 진작 품절이고, 현지 낚시점에서도 인당 2개까지만 살 수 있게끔 제한을 걸어뒀다. 출조객들은 일반적인 갑오징어 에기는 물론이고 한치 에기, 무늬오징어 에기, 삼봉에기, 호래기 생미끼 바늘 등 여러 채비를 준비했다. 생미끼도 학꽁치포, 꽁치지마, 전어, 갈치, 오징어, 심지어 과메기까지 다양했다.


아침 8시, 승선명부를 작성하고 자리를 잡았다. 인원을 꽉 채웠지만 원래 갈치 잡는 9.77톤 유어선인 덕분에 낚시 자리는 널찍했다. 40분 정도 달린 배는 비양도 인근 물골에 멈춰 서서 풍닻을 폈다. 물풍을 펴고 하는 갑오징어낚시는 처음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날 배에 탄 출조객들은 거의가 서해권 갑오징어낚시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이래저래 생소하기도 하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낯선 필드에서의 첫 갑오징어낚시 40호 봉돌에 단차를 30cm 정도 주고 삼봉에기를 단 가지채비를 내렸다. 수심은 80미터권. 바닥을 찍고 살짝 들어 올려 갑오징어가 촉수를 얹는 미세한 느낌을 포착하고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깊은 수심과 무거운 채비 탓에 좀처럼 입질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선수와 선미에서 하나 둘씩 갑오징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야말로 놀랠 노짜다. 무슨 갑오징어가 신발짝도 아니고 대포알도 아니고 럭비공보다 크다. 선장실 옆에서 채비를 내리고 있는 나한테는 아직 소식이 없는데…… 옆 사람들이 무지막지한 사이즈의 갑오징어를 연신 뽑아 올리는 걸 보니 초조해졌다. 채비가 잘못된 건지, 에기 선택이 틀린 건지, 액션을 잘못 주고 있는지, 아니면 입질 파악에 실패하고 있는지 등등 온갖 번뇌가 스며드는 그때, 내게도 입질이 왔다.


허리가 뻣뻣한 라이트 지깅대로 강력하게 챔질을 한 후 행여나 떨어질까 조심조심, 신중하게 릴을 감았다. 드랙을 꽉 잠궈 놨는데도 수심 80미터에서부터 올리려니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다. 전동릴을 사용하는 다른 꾼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아무튼 무사히 한 마리를 뜰채로 뜨는 데 성공했다. 손으로 직접 잡아보니 빵이 어마어마했다. 이게 제주 갑오징어낚시의 매력이구나 싶었다. 마릿수는 서해에 비해 떨어지지만, 한 10마리만 잡아도 서해에서감자 사이즈 30~40마리 잡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감을 잡았는지 연속으로 세 마리를 걸어 올렸다. 그러자 몇몇 사람이 슬쩍 다가와 “무슨 색깔 에기 쓰세요?”, “가짓줄 단차는 얼마나 주셨어요?”, “바닥에 가만히 둬요 아니면 살짝 띄워요?” 물어왔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격으로 눈 가리고 아웅 몇 마리 잡은 주제에 “자, 이 제주 갑오징어는 말이죠. 깊은 수심에 있다보니까 입질 파악이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수상하다 싶으면 팍팍 까 재끼셔야 합니다. 드랙은 꽉 잠그시고, 후킹을 세게 하시는 게 중요합니다. 가짓줄 단차는 많이 안 주셔도 됩니다. 지금은 삼봉이 잘 먹고요."


그냥 아무 말이나 신나서 떠들어댔다.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리로 돌아갔고, 어떤 사람은 소시지와 초코바를 답례로 건네기도 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런 우쭐함도 낚시를 더욱 즐겁게 만드는 요소이긴 하다.


하지만 제주 갑오징어에 처음 도전한 초심자의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잘 나오던 갑오징어가 자취를 감췄다. 입질이 뚝 끊기더니 한 시간에 한 마리 볼까 말까 할 정도로 활성도가 떨어졌다. 입질도 약하고, 같은 에기로 두 마리 이상 잡아내지 못하는 예민한 상황에서 선미 쪽은 아예 뜸하고, 거의 대부분의 조과를 선수에서만 올렸다. 앞에서 다 잘라 먹으니까 뒤에까지 기회가 안 온 것이다.


출조 전 목표였던 두 자리 수 조과만 채우자면서 한 마리만 더, 한 마리만 더 간절히 기도했지만 결국 10마리를 채우지 못한 채 9마리로 마감했다. 스티로폼 박스에 얼음과 함께 갑오징어를 갈무리해 넣고 항구에 도착하니 어느덧 여섯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뭐 조금만 수상하다 싶으면 홱홱 챔질을 해 재끼느라 팔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수심이 80미터나 되다보니까 갑오징어를 걸어도 문제고, 빈 채비를 올리는 것도 꽤나 고역이었다. 그렇게 힘든 육체노동을 마치고 밤 아홉시 비행기로 김포에 도착하니 내가 오징어인지 오징어가 나인지 분간할 수 없는 초죽음 상태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애 첫 제주 갑오징어 맛은 봐야 한다며 늦은 밤 열한시, 잡은 것 중 작은 놈 두 마리(서해였다면 장원 사이즈)를 골라 한 마리 몸통 반은 회로 썰고, 또 몸통 반은 썰어서 초밥을 쥐고, 다리는 버터와 허브솔트, 파슬리, 다진마늘로 양념한 후 에어프라이어에 돌리고, 다른 한 마리는 찜기에 넣고 통으로 쪄냈다.


푸짐하게 차려낸 갑오징어 한 상에 소주 한잔 마시니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갑오징어 잡겠다고 분주하게 설쳐댄 하루가 참 까마득히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낚시야말로 장수의 비법이라는 사실을. 낚시를 하면 하루를 이틀처럼 살 수 있으니, 10년을 낚시터에서 보내면 20년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생명연장의 꿈은 파스퇴르가 아니라 낚시가 이뤄준다. 나는 영생을 꿈꾸는 낚시꾼이 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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