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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연재_에세이] K-낚시 콘텐츠를 기대하며
낚시에세이

[연재_에세이]



K-낚시 콘텐츠를 기대하며



이병철


낚시 인구 1천만 시대다. 낚시가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게 되어 반갑지만, 한 가지 큰 아쉬움이 있다. 바로 낚시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간혹 있기는 하지만 죄다 엉터리다. 제대로 된 낚시 영화, 정말 잘 만든 웰메이드 낚시 드라마 한 편 보고 싶다.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이 낚시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지금쯤 전국 지자체에서는 앞 다투어 “우리가 낚시의 본고장”이라며 홍보에 열을 올렸을 것이다. 낚시공원을 만들고, 기존 낚시터를 정비하고, 낚금 구간을 해제하고, 치어를 방류하고, 낚시 어선의 각종 규제도 풀 것이다. 그만큼 대중문화 콘텐츠의 힘은 강력하다.


외국의 경우 낚시를 소재로 한 콘텐츠들이 꽤 눈에 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역시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출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다. 1993년작인 이 영화 때문에 낚시를 동경하게 된 사람들이 많다.


뛰어난 영상미와 서정적인 음악 안에 무지개송어 플라이낚시 장면을 눈부시게 담아낸 수작이다. 잘생긴 브래드 피트가 몬태나를 흐르는 빅블랙풋강에 몸을 담근 채 플라이낚시를 하는 장면을 보며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은 낚시가 얼마나 멋진 취미 활동인지 알게 되었고, 남자들은 질투 좀 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정형화된 낚시 방법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창조적 기법으로 대형 무지개송어를 낚아낸 브래드 피트가 환하게 웃는 모습은 남자인 내가 봐도 아름답긴 했다.


2010년에 개봉한 <더 리버 와이> 역시 플라이낚시를 소재로 한 영화다. 이 영화 역시 영상미가 뛰어나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낚시꾼이 된 주인공 거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모님과 갈등을 빚는다. 홧김에 가출해 강가의 오두막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는데, 거기서 온종일 낚시하고 먹고 자고 놀며 자유로움을 만끽하지만, 인생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게 되면서 방황을 겪는다. 영화는 한 소년이 어른으로 자라나는 성장서사를 낚시를 통해 보여준다.


헤밍웨이의 소설을 영화화한 <노인과 바다>는 고전 명작이다. 84일 연속으로 꽝을 친 늙은 낚시꾼 산티아고가 450킬로그램짜리 청새치를 낚아내는 사투를 그리고 있다. 겨우 끌어 올린 청새치를 뜯어 먹으려는 상어 떼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노인의 모습은 처절하면서도 숭고하다. 뼈만 남은 청새치를 배에 묶고 마을로 돌아오면서 산티아고는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라는 명대사를 남긴다. 파멸이 물질적인 것이라면 패배는 정신적인 것이다.


일본은 영화보다 만화를 더 잘 만드는 나라다. 그래서 낚시를 소재로 한 명작 만화들이 꽤 있다. 가장 유명한 건 우리나라에서 <낚시왕 강바다>로 방영된 티브이 애니메이션 <슈퍼피싱 그랜더 무사시>다. 배스, 농어, 타이멘, GT(자이언트 트레발리)까지 다양한 어종을 소개하면서 실제 낚시 현장을 방불케 하는 사실적 묘사, 그리고 만화적 상상력을 버무려내 인기를 끌었다.


일본 낚시 만화의 시초는 단행본 시리즈인 <낚시광 산페이>다. 우리나라에는 ‘소년 낚시왕’으로 번역되어 유통됐다. 지난 2020년 타계한 일본의 전설적인만화가 야구치 타카오의 작품인데, 1973년 첫 연재 이래 72권이나 되는 방대한 스토리를 풀어냈다. 일본의 기후와 포인트 환경을 실감나게 묘사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물고기들을 잡는 ‘낚시 명인’들을 등장시켜 재미를 유발한다. 주인공인 소년이 낚시 명인들과 펼치는 대결, 또 대상어와의 대결 과정을 치열한 고난 극복의 서사로 그려내면서 30년 넘도록 큰 사랑을 받았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과 비교해 낚시 사랑이 전혀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지만 대중문화 콘텐츠로서의 낚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나라 영화와 드라마가 낚시를 다루는 방식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푹푹 나온다. 낚시를 그저 사소한 장식으로 쓰거나 심각하게 왜곡시켜 묘사하곤 한다. 범죄자들의 도피처나 사회적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의 자숙 수단, 혹은 불륜이나 반인륜적 범죄가 벌어지는 현장쯤으로 낚시를 등장시킨다. 더 큰 문제는 그마저도 다 엉터리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또 <나는자연인이다> 같은 방송에서 제대로 된 낚시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조폭 두목 박성범은 유료터에서 붕어낚시를 하던 중 경찰에 붙잡히는데, 붕어 입질이 아니라 향어나 메기 같이 조잡하게 찌를 끌고 내려가는 입질에 망나니 칼춤 추듯 챔질을 한다. 월척붕어가 몸을 뒤채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장면 이후 박성범의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진다.


영화 <신세계>도 마찬가지다. 경찰 간부인 최민식이 조폭에 잠입한 부하 경찰에게 은밀한 지시를 내리는 장소는 무슨 폐공사장을 방불케 하는 음산한 실내 낚시터다. 화면으로 보기에 대략 한 칸 반대 정도 되는 낚싯대를 엉성하게 던져 놓고 담배를 피던 최민식은 낚시객으로 위장한 조선족 킬러에게 암살당한다. 낚시터 수면 위에 시체가 둥둥 떠다니는 장면은 우리나라 영화 감독들이 낚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김기덕의 <섬>이나 <활> 같은 영화에서 낚시터는 성매매와 가학적 변태 성행위의 온상으로 묘사되고, 나홍진의 <곡성>은 일본인 악마가 섬진강에서 강붕어낚시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얼마 전 화제를 끈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도 낚시터가 등장하는데, 역시나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예능 프로그램은 어떤가?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 등장하는 자연인마다 전부 낚시해서 물고기를 잡아먹는다는데, 낚시 도구며 방법이며 전부 엉터리 개판이다. 시장에서 사온 양식 가물치와 손맛터에서 꺼내온 무지개송어, 유료터의 향어가 자연인의 앞마당 연못에서 전부 자연산으로 둔갑한다. 낚시를 우습게 보는 것도 정도껏이다.


스크린과 티브이가 낚시를 홀대하고 왜곡하는 사이 낚시 채널과 유튜브의 낚시 관련 콘텐츠들이 그래도 분발하며 대중들에게 낚시의 매력을 전파하고 있다. 낚시 채널 프로그램 중에도 막걸리 댓병 걸치고 하는듯한 ‘싼마이’ 방송들이 더러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진상현 프로의 ‘아트 오브 피싱’이나 김병철 프로의 ‘히트맨 히트 더 로드’, 이광수 프로의 ‘솔루션’ 같은 프로그램은 빼어난 영상미와 음악, 탄탄한 구성, 지식과 정보를 모두 담아내며 시청자들에게 현장에서 낚시하는 듯한 대리만족의 쾌감을 제공한다.


유튜브에도 수준 높은 낚시 콘텐츠들이 꽤 있다. 그러나 케이블 낚시 채널이나 유튜브는 영화나 넷플릭스, 지상파 방송만큼의 확산성과 파급력을 지니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의 시대에 전 세계 낚시인들을 짜릿하게 할 K-낚시 영화와 K-낚시 드라마가 제작되길 기대해본다.


공유와 정우성이 각각 루어와 생미끼로 쏘가리를 추적하며 대결하는 드라마, 꾀저립을 찾아 헤매는 송강호와 설경구의 버디 무비, 마동석이 우람한 팔뚝을 뽐내며 주꾸미를 낚는 코메디 영화, <오징어게임>의 오영수 할아버지가 백발의 노조사로 나와 영등 감생이와 사투를 벌이는 영화, 김태리가 낚시 입문 1년 만에 미국 MLF 배스 토너먼트에 나가 강호들을 꺾고 우승하는 넷플릭스 시리즈 등등. 얼마나 재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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