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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연재_에세이] 낚시의 기쁨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낚시에세이

[연재_에세이]



낚시의 기쁨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이병철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오늘의 냄새>, 산문집< 낚;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가 있다. 잔카, 아이마루베이트 필드스탭. 루어낚시를 비롯해 다양한 낚시를 즐긴다.



이번 겨울 낚시가 참 쉽지 않다. 날씨가 영 도와주지 않는 탓이다. 1월에만 제주에 두 번 내려갔는데, 기상악화로 낚시를 하지 못했다. 1월 둘째 주,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등으로 이뤄진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신년 정출이 있었다. 신창항에서 타기로 한 갑오징어 배가 뜨지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겨우 오후 반나절 출조하는 만석호에 올라 옥돔 타이라바를 해봤지만, 조과가 저조한 가운데 우리 일행 역시 손맛을 보지 못했다.


한편 넷째 주에는 조홍식 박사님, 팀쏘가리에서 오래 같이 낚시한 김건우 형과 함께 관탈권 방어·부시리 지깅 출조를 하려 했으나 현지에 도착하고 나서 갑작스레 터진 동풍으로 그만 출항이 취소되고 말았다.


낚시는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두 번의 제주 나들이는 나름대로 즐거웠다.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정출을 앞두고 나 혼자 며칠 먼저 제주에 내려갔다. 이틀 동안 저녁마다 제주 현지 앵글러 형들과 레저보트를 타고 선상 무늬오징어 캐스팅을 즐겼는데, 손맛 보기 어려운 시기에 그것도 겨울 무늬오징어를 넉넉히 만날 수 있었다. 이미지를 지켜주기 위해 당사자들의 실명을 공개하진 않고 썰을 좀 풀어볼까 한다.


제주의 송모 형과 이모 형, 그리고 ‘카카’ 형 이 세 분은 그야말로 ‘톰과 제리’가 따로 없다. 이 형들과 낚시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배꼽 빠질 듯 웃느라 정신없다. 얼마나 장난기가 넘치는지 한번 들어보시라.


누구 한 사람이 캐스팅하다가 ‘딱총’을 쏴서 채비가 끊어지기라도 하면 양옆에서 환호성을 터뜨린다. 쇼크리더를 매느라 헤드랜턴을 켜고 있으면 서로 남의 랜턴 스위치를 눌러 불을 꺼버린다. 동료에게 담뱃불 붙여주다가 갑자기 라이터를 쑥 내려서 라인을 지지는 시늉을 해 깜짝 놀래키기도 하고, 동료의 에기가 바닥에 걸리면 무사히 빼내기보다 망실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누가 볼까봐 몰래 에기를 슈퍼섈로우 타입으로 바꾸고는 “베이직에만 반응하네”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옆에서 먼저 던져놓은 방향 위로 라인 크로스되게끔 캐스팅을 하며 괴롭힌다. 먼저 채비를 회수하고는 옆 사람이 캐스팅을 막 하고 나면 “포인트 이동!”을 외치고, 내내 한 마리도 못 걸던 사람이 가까스로 무늬오징어 한 마리를 걸어 조심스레 릴링을 하면 한마음으로 “떨어져! 떨어져!”를 합창한다. 그러다가 정말 떨어지면 망연자실한 동료 옆에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분다. 초딩들 장난하는 것보다 더 유치하고 더 골 때리게 웃긴다.



이 형들은 매일 이렇게 웃으면서, 서로 장난치면서 낚시한다고 한다. 개구쟁이들 노는 것 같은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낚시가 무엇인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 낚시란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 즐겁기 위해서하는 행위가 아닌가? 낚시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화내고, 싸우고, 사람과 멀어지는 일이 그동안 참 많았다.


조과가 없으면 어떤가. 꽝 좀 치면 어떤가. 형들과 낚시하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어릴 적 친구들과 족대에 양동이 들고 냇가로 천렵 가던 추억이 떠올랐다.


형들은 함께 재밌게 낚시하다가 배고프면 야식으로 늘 돼지 제육덮밥을 해 먹는다고 한다. 선상 제육덮밥을 위해 제주도의 웬만한 제육, 두루치기 맛집은 다 섭렵했다고. 포장해온 제육볶음에다 냉동실에 얼려뒀던 한치나 무늬오징어를 챙겨와 오삼불고기로 조리해 밥을 비비면 만찬이 완성된다. 송모 형이 이 만찬을 위해 직접 톳밥을 지어오기까지 했다. 덮밥에 김가루를 뿌리다가 세찬 바람에 김이 밥에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이모 형 얼굴에 들러붙어서 또 한참 웃었다.


이틀 동안 무늬오징어를 여러 마리 잡았다. 내가 잡은건 몇 마리 안 되는데, 형들은 서울에서 내려오는 손님들 대접하라며 함께 잡은 무늬오징어를 내게 다 몰아주었다.


다음날, 서울에서 첫 비행기로 내려온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원들을 맞이하러 스타렉스를 몰고 제주공항에 갔다. 우리 일행은 갑오징어 낚시가 취소된 대신 산지해장국집에 가 아침 먹고, 추사 김정희 유배지를견학하고, 사계 해안의 오션뷰 카페에 가 커피를 마시고, 만석호를 타고 반나절 낚시하고, 여러 가지 장을 봐서 숙소에 와 밤늦도록 먹고 마셨다.


무늬오징어 회와 통찜, 오삼불고기에다 만석호 선장님이 협찬한 두마리 알부시리를 회 떠서 저녁상을 차렸다. 형들이 내게 몰아준 무늬오징어 덕분에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새해 정출이 풍요로울 수 있었다.


열흘 뒤 조홍식 박사님, 김건우 형과 다시 제주에 내려왔다. 출항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제주에 도착하자 선장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출항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희망에 부풀기도 잠시, 이윽고 다시 문자가 왔다. 인터넷이 안 터져서 기상 어플 실시간 정보가 업데이트 되지 않았노라고, 내일 동풍이 세게 불어 출조가 어렵겠다고. 이미 제주까지 내려온 상황에서 출조 취소는 참 속상하고 서운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틀 동안 제주 관광이나 실컷 하기로 했다. 미리 포장 주문해놓은 ‘돼지구이연구소’ 제육볶음을 찾아 와서는 애월 하나로마트에서 산 한치 두 마리를 썰어 넣고 돼지한치두루치기를 만들었다. 형들에게 배운 것이다. 딱새우도 한 접시 사와서 술상을 더 풍성하게 꾸렸다. 술잔이 오고가면서 낚시 이야기로 밤이 깊었다.


다음날, 애월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멋진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제주 현지인들에게 사랑 받는 맛집인 ‘돈물국수’에 가 꿩메밀칼국수 한 그릇씩 든든하게 먹었다. 낚시꾼 셋이서 표선 해변을 걷고, ‘바다 위에 코끼리’라는 멋진 이름의 카페에 가 당근 케이크와 함께 달달한 라떼를 즐기고, 고산리의 작은 책방인 ‘무명서점’에 들렀지만 문을 닫아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사계리로 가 송악산을 잠시 걷고, 유채꽃 사진도 찍고, 항구에 매어진 배 구경도 하다가 제주 빅게임 앵글러들의 성지인 모슬포 ‘돈방석수산’에 가 대방어회를 사 먹었다. 누가 물고기를 직접 잡아서 먹느냐며, 가장 강력한 채비는 역시 카드채비라며 농담하는 동안 한라산 소주병이 한 병, 두 병 쌓여갔고, 첫 지깅 입문을 위해 몇 달을 별러 장비를 준비하고 머릿속으로 상상 낚시를 해온 김건우 형의 아쉬움도 사르르 달래어졌다.


낚시는 영 못했지만 마음만큼은 넉넉했던 두 번의 제주 조행, 낚시란 이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음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일임을 새삼 생각했다. 그리고, 낚시의 기쁨은 오직 ‘낚시’로만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 또한 다시 새겼다. 그렇게 좀 더 성숙해진 나는 다음 주 또 제주에 간다. 이번엔 아주 지쳐 쓰러질 때까지 주구장창 낚시만 하다 오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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