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연재_낚시꽁트 씁새]
슬기로운 낚시생활 (두 번째 이야기)
일러스트 이규성
새벽 4시. 이미 포구 앞은 낚시를 떠나기 위해 준비 중인 낚시꾼들로 붐비고 있었고, 주차장도 거의 만차 수준이었다.
“시상에 제일루 부지런헌 사람덜이 우리 낚시꾼들이여.”
호이장 놈이 차를 주차하며 말했다.
“이 사람덜이 죄다 백조기 잡으러 가는 사람덜은 아닐 테지?”
씁새가 포구를 둘러보며 말했다.
“백조기는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낚시잖여. 총무놈도 회원놈도 백조기는 싫어허는디. 저기 있는 낚시꾼 중에 열에 일곱은 아마도 외수질이나 참돔, 다운샷일껴.”
호이장놈이 명부를 쓰기 위해 갯바위 낚시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주차장 바로 앞에 있는 갯바위 낚시점은 이미 불이 훤히 켜져 있었고, 전과는 다르게 시끄러운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여? 쌈박질 난겨?”
낚시점으로 다가갈수록 누군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잘 계셨슈?”
씁새가 낚시점 문을 열며 물었다.
“어서오셔유.”
갯바위낚시점 조 사장이 씁새와 호이장을 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뭐여? 저 인간덜은 뭐여? 쌈 난겨?”
씁새가 소파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낚시점 한 쪽으로 놓인 소파에는 두 사람의 낚시꾼이 앉아 있었고, 보기에도 얼굴에서 심술과 욕심이 덕 지덕지 붙은 한 낚시꾼이 고래고래 떠들고 있었다.
“아녀유. 그냥… 그렇지유.”
조 사장이 피식 웃으며 말을 흘렸다.
“그려서 말여! 내가 지난번에 여수루 한치를 간겨! 워따 한치덜이 환장을 허고 덤비는디, 그때 내가 48리터 삐꾸를 가져갔는디. 아따, 대장 삐꾸를 가져갔 었어야 혀. 월매나 잡았는지 삐꾸가 뚜껑이 안 닫혀! 허미. 원제 한 번 또 가야 허는디, 오늘 내가 시키는 대로만 허문 바다낚시 워지간히 통달헐 껴. 그 담이 내가 한치 데려가 주께. 알겄어?”
심술이 덕지덕지한 낚시꾼이 맞은편에 앉은 다른 낚시꾼에게 떠들어댔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마치 싸우는 듯 보였다.
“미친놈.”
씁새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어이, 조 사장. 우리 말여. 지랭이 한 통 더 줘봐. 보아하니 오늘 백조기루 삐꾸 가득 채울 모냥이니께, 한 통 가지고는 모지랄 것 같어. 빠하하하하.”
심쑬꾼이 조 사장을 보며 말했다.
“그 정도는 아녀유. 한 통만 있어두 충분혀유. 지랭이 냄새만 맡어두 뎀비는 게 백조긴디, 두 통이나 가져가서 뭐 헐라구유.”
조 사장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이봐, 이봐. 낚시점 사장이문서 선단의 주인이라는 사람이 그리 어두워서 우쩔껴. 나는 백조기가 문제가 아녀. 부세여, 부세! 팔뚝만한 부세를 노리는 중이 라고. 그 싸구려 백조기 때려잡아서 뭐 헐 거여? 부세를 잡을라문 지랭이두 큼직시럽게 써야 허는 겨.”
심술꾼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그리고 조 사장이 냉장고에서 갯지렁이 한 통을 꺼내주었다.
“그야말로 미친놈일세. 넣으면 부세가 나오는가? 백조기 잡다가 손님으루 올라오는 것이 부세 아녀?”
씁새가 키득거리며 중얼거렸다.
“냅둬유. 말로는 대한민국 최고의 낚시꾼인디, 허는 짓은 개진상여유. 옆에 사람은 바다낚시 두어 번 다녔다는데, 자기가 지대루 가르쳐 주겄다고 데려왔 대유.”
조 사장이 씁새와 호이장에게 조그맣게 얘기했다.
“뒤! 뒤쪽이루!”
백조기 낚시는 낚시자리의 영향이 덜 받는 낚시인지라, 자리싸움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그래서 자리 선정도 먼저 타는 사람이 원하는 자리에 낚싯대를 꽂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 심술꾼은 포구로 배가 정박하자마자 득달같이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그 모습을 본 낚시꾼들마다 혀를 찼다.
“1호줄! 내가 1호줄 감아오라고 혔어? 안 혔어? 08이 뭐여? 주꾸미 잡는겨? 추는 30호!”
심술꾼이 맨 뒷자리를 잡고는 같이 온 낚시꾼에게 쏘아 붙이고 있었다.
“저거 낚시꾼 맞아? 08호나 1호나 뭔 상관이여? 08호문 제대로 감아왔구만.”
씁새가 부르르 화를 내며 말했다.
“냅둬. 지들이 알아서 허겄지. 보아하니 낚시 좀 헌다고 낚시 두어 번 가본 초짜를 데려다가 자랑 좀 헐라는 것 같구먼.”
호이장 놈이 채비를 마치며 말했다.
“봐라! 아하하하! 이게 백조기여.”
포구에서 10여분 나가서 자리 잡은 포인트에서 백조기 한 마리를 건져낸 심술꾼이 배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는 같이 온 낚시꾼에게 또 다시 소리쳤다.
“그라니께 못 잡는 겨! 입질을 잘 봐야지. 톡톡. 이거 아녀. 톡톡 그담에 우두둑! 이거여. 바닥 찍고 10센티 띄워! 자고로 바다낚시는 바닥을 못 찍으면 꽝 이여! 에헤이. 이라니께 초보를 못 벗어나는 겨! 챔질이 틀렸잖여! 챔질이!”
심술꾼 놈의 목소리가 계속 뱃전을 울렸고, 같이 탄 낚시꾼들마다 성질이 오를 대로 오른 얼굴이었다. 첫 번째 포인트에서는 낚시꾼마다 한두 마리의 백조 기만 올렸을 뿐, 조황이 시원치 않았다. 그 포인트에 다른 배들도 몰려 있었지만, 역시 그 배들의 낚시꾼들도 몰황을 면치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게 뭐여? 괴기가 없잖여? 조 선장(갯바위낚시점 의 사장은 이 배의 선장 동생이다)! 내가 괴기 좀 잡겄다고 갯지렁이를 두 통이나 사왔다구! 뭔 포인트 가 이따구여? 어여 포인트 좀 옮겨봐!”
역시나 심술꾼이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고, 조 선장이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배를 옮겼다.
“어련히 알아서 옮겨줄라고. 뭔 소리를 지르구… 대체 저 놈 뭐여?”
선장실 바로 옆에 자리를 잡은 씁새가 조 선장에게 물었다.
“말두 말어. 저 씨부럴놈은 진상 중에 개진상이여. 낚시는 좃도 못 허는 게. 남들은 잘도 잡는디 지놈이 못 잡으문 배 옮기자고 난리치는 놈이여. 허는 짓도 지랄이고. 오죽허문 저 씨불놈이 선사마다 블랙리스트에 올랐겄어? 지놈 이름이루 예약허문 죄다 짤리니께 다른 사람 이름이루 예약 올리는 놈이여. 씨불 놈.”
조 선장이 배를 멈추며 말했다. 역시나 조황은 그다지 별 차이가 없었다. 드문드문 백조기가 올라왔고, 조 선장은 벌써 네 번째 포인트를 옮겼다.
“이게 뭔 짓거리여? 뭔 백조기가 피딩타임(갑자기 입질이 터지는 황금시간. 느나느나타임이라고도 한다)두 없구. 올라오는 게 죄다 장대만 올라 오잖여? 다른 포인트 없어?”
심술꾼놈의 고래고래 소리치는 잔소리는 계속 이어졌고 그때마다 배에 탄 낚시꾼들의 나지막한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인자 정조시간 지나고 물이 흐를 시간이니께 추는 30호 떼 내고, 40호로 다셔유. 아마 물이 좀 쎄지면 백조기도 잘 올라올 거여유. 20분 포인트 이동헙니다.”
조 선장이 마이크로 이야기 하고는 다시 배를 돌렸다.
“뭐여? 40호 봉돌 없는 겨? 뭔 낚시꾼이 준비성이 없는 겨? 그래서 뭔 낚시를 허겄다는 겨? 빌려 달라고? 없어! 자고로 낚시꾼은 지 장비나 채비는 빌려 주는 게 아녀! 없으문 선실서 잠이나 자!”
심술꾼이 같이 온 낚시꾼에게 소리쳤다. 아마도 같이 온 낚시꾼이 30호 봉돌만 준비해 온 모양이었다. 그대로라면 세진 조류에 30호 봉돌이 흐르며 여기 저기 엉킬 것이 분명했다. 심술꾼 놈의 짓거리에도 같이 온 낚시꾼은 얼굴 가득히 화만 삼키고 있을 뿐 한마디 대꾸도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너무도 처 량해 보였다.
“에또, 화장실을 다녀와야 쓰겄네?”
씁새가 아이스박스에서 엉덩이를 떼며 말했다.
“방금 다녀오고 또 가는 겨? 오줌소태 걸린 겨?”
호이장 놈이 씁새를 보며 물었다.
“그러게. 오늘 따라 오줌이 심히 마렵네.”
씁새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20분 정도 이동한 배가 포인트에 서고 낚시꾼들이 일제히 채비를 내렸다. 그리고는 선장의 말처럼 조류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백조기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뭐여! 40호 봉돌 있잖여? 있으문서 왜 없다고 헌 겨?”
심술꾼 놈이 또 소리쳤다.
“없었는데… 있네? 왜 발밑에 40호 봉돌이 한 봉지 나 있…지?”
같이 온 낚시꾼이 어리둥절해서 좌우를 살피다가 씁새와 눈이 마주쳤고, 씁새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여? 뭐여? 내 지랭이 워디 간겨? 이거 워디 간겨? 두 통이나 있었는디, 워디 간겨?”
갑자기 심술꾼 놈이 날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백조기가 올라오고, 같이 온 낚시꾼도 곧잘 잡아내 는 중이었으니 심술꾼 놈의 속이 타들어 가고 조급 해지기 시작했다.
“없어! 지랭이가 없다고! 뭐여? 이봐. 자네 갯지렁이 좀 줘봐!”
조바심이 난 심술꾼이 같이 온 낚시꾼에게 말했고, 그 낚시꾼의 입에서 통쾌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 돼!”
그러자 심술꾼이 선장실로 뛰어오더니 소리쳤다.
“내 지랭이가 사라졌어! 사라졌다구! 다시 항구로 돌아가! 지랭이 없어서 낚시 못하니께 어여 돌아가 서 지랭이 가져오자구!”
“뭐여? 지금 다른 손님덜 고기 신나게 잡아 올리는디, 돌아가자고? 처맞아 뒤지고 싶은 겨?”
조 선장이 맞받아 소리쳤다.
“그라문 누구여? 어느 놈이 내 지랭이 훔쳐간 겨? 누가 훔쳐 갔냐고!”
심술꾼이 길길이 날뛰었고, 배의 낚시꾼 누구 하나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소해하는, 만족해 하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결국 그 심술꾼은 여기 저기 갯지렁이를 구걸했지만, 누구 하나 갯지렁이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퉁명스럽게 ‘낚시하는 사람이 준비성이 그렇게 없어유?’하는 핀잔이 날 아올 뿐이었다.
같이 온 낚시꾼은 연신 즐겁게 백조기를 올리며 가끔씩 씁새를 향해 기쁜 웃음을 날렸고, 씁새도 같이 웃음을 날렸다. 그야말로 피딩타임이 시작되었고 넣으면 나오는 느나느나타임이었다. 하지만 심술꾼은 풀죽은 얼굴로 먼 바다를 보며 애꿎은 담배만 태우다가 선실로 사라졌다.
“저 사람, 갯지렁이 두 통이나 사오드만… 어디다 잃어버린겨?”
호이장 놈이 백조기를 건져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씁새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씨익 날리며 다시
채비를 바다로 내려보내고 있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