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연재 낚시꽁트 씁새 (296)
시절유감
박준걸 artellar@hanmail.net
“퇴근하는 겨?”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아파트 길을 내려오던 씁새의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뭐여? 애 저녁에 뭔 일이 있다고 돌아댕기는 겨?”
검은색 마스크로 가려진 총무놈의 얼굴을 보며 씁새가 물었다.
“마님이 마트에서 두부 사오랴. 그려서 마트 좀 가니라고.”
총무놈이 손에 든 비닐가방을 들어 보여주었다.
“칠칠치 못한 인간!”
씁새가 혀를 끌끌 찼다.
“넘 말을 지가 허고 자빠졌네. 니놈은 접때 마트서 반찬거리를 바리바리 사가드만. 지놈만 고고한 척혀. 인자 퇴근혀는 겨?”
“보문 몰러? 시방 퇴근허지, 그람 이 시간에 출근허냐?”
씁새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 시방새는 고이 답을 토해내는 법을 못 봤어. 그나저나 인자 새해도 되고 혔는디, 낚시는 가야 않겄냐? 남해 쪽이루 참돔이 지천이랴. 서해 쪽이루는 우래기(우럭)가 아조 나래비를 서 가지고는 날 잡아가셔유, 이라고 있댜.”
“총무놈이 씁새와 나란히 걸어가며 말했다.
“지랄을 나래비루 혀라. 시국이 이리 어수선헌디, 뭔 낚시여?”
“허긴…”
“염병… 올해는 참돔 타이라바 낚시 한번 지대루 혀 보겄다구, 낚싯대허구 릴허구 장비덜을 죄다 사놨는디, 영 글러 처먹었어.”
“말해 뭐허냐… 시국이 이런디, 낚시 간다고 허문 죄다 처 죽일 매국노 보드끼 쳐다본다니께. 아무리 명부 쓰고 마스크 잘 쓰고, 방역지침 준수혀서 배 탄다고 혀두 아주 코로나 온상이루 들어가는 것처럼 말린다니께.”
총무놈이 입을 쩝 다셨다.
“그렇다고 한갓지게 민물로 가자니 한 겨울에 얼어 죽을 일이고… 답이 없다… 코로나가 끝나든가, 한방에 코로나 면역되고 치료되는 약이 나오든가 혀야 맘 놓고 낚시라도 댕기지. 이러다가 우리 낚시인생이 이대루 끝나는 거는 아닌가 싶다.”
물론, 낚시를 가겠다고 한다면야 얼마든지 갈 수는 있을 것이다. 낚시점마다 방역수칙 단단히 지키고, 낚싯배 선장들도 행여 한 가지라도 위배될까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고, 배 위에서도 거리두기를 하기 위해 각자 도시락을 준비해 주고, 낚시하는 간격도 2, 3미터를 준수하려고 22인승 배에 10명만 태우기도 한다는데.
그러나 그 마저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선상낚시 하면서 코로나에 걸렸다는 기사도 본 적 없고, 그런 얘기를 들은 적도 없지만, 일반인에게는 배 위에서 북적이는 낚시꾼들의 이미지가 박혀있는지라 코로나에 감염되려고 깨춤 추는 몹쓸 인간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민물로 떠나자니 시절이 겨울이요, 갯바위에 오르자니 역시 겨울이다. 시절마저 용서치 않는 모양이다.
“언제 모여서 술이라도 한잔 하려해도 용이치를 않네…”
총무놈이 한숨을 폭 쉬며 말했다.
“술집에 모여 앉아 있으문 욕 처먹고 배 터져 뒤져. 니들 만나서 술 한 잔 헌다고 얘기라도 꺼냈다가는 우리 마님의 이단옆차기 날라온다.”
씁새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염병…”
“정 술 먹고 싶으문 술을 사서 집이루 가. 그러고 안주 준비혀고 영상통화 혀. 각자 영상이루 술 마시문서 기분이나 내자고.”
“그럴까? 그것도 좋은디, 그라문 이따가 8시에 죄다 영상통화 혀. 호이장놈허고 회원놈헌티 내가 얘기 헐라니께.”
“그라문 일반 영상통화로는 네놈이 화상이 안 되여. 내가 여러 명이 허는 화상 어플을 알려 줄라니께 그거 깔고 들어오라고 혀.”
씁새가 마트 쪽으로 빠져나가는 갈림 길에서 회원놈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8시. 총무놈의 말대로 영상통화가 시작되고 저녁을 물린 상 위로 각자의 안주와 술이 준비되어 있는 술상들이 비춰졌다.
“어따, 이라니께 실지루 술집이서 우덜끼리 모여 있는 기분이 드는구먼?”
호이장놈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영판 술판이구먼. 씁새는 안주가 뭐여?”
회원놈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물었다.
“작년 10월에 잡은 문어숙회여. 니놈은 뭐여?”
“나는 주꾸미 볶음이여. 총무놈은 뭣이루 안주 하는가?”
“대패삼겹이다. 염병. 해산물 먹고 싶어 죽을 맛이다.”
“지랄들. 나는 김치전이다. 뭣이가 낚시를 가야 상위에 안주거리라도 올려놓지, 냉장고 뒤져봐두 뭣이가 봬야 안주를 허지.”
호이장놈이 소주를 잔에 따르며 말했다.
▲일러스트 이규성
“근디… 씁새는 문어가 안적두 남은 겨?”
총무놈이 물었다.
“작년에 그르키 때려 잡았으니께 안적두 남았을 것이여, 여허튼 씁새 저놈은 문어낚시에는 신의 경지에 들었다니께. 작년에 때려잡은 문어가 대체 몇 마리여?”
회원놈이 킬킬거리며 물었다. 그렇게 영상통화로 이어지는 술판이 제법 무르익어 가고 웬만큼 취해가고 있었다. 그래도 술집이 아닌 각자의 집에서 영상으로 술판을 벌인 남편들의 모습이 일견 대견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부인들도 가끔 끼어들어 분위기는 더욱 무리익기 시작했다.
“근디, 이 시국에 돈 버는 사람들도 있다드만.”
호이장놈이 안주를 쩝쩝거리며 말했다.
“요즘 시상에 돈 버는 사람이 워디 있어? 월급쟁이 아닌 다음엔 죄다 쪽박이여.”
총무놈이 자신의 잔에 맥주를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며 말했다.
“아녀! 그거 주식 있잖여! 아주 주식이 광풍이랴. 주식 안 허문 요즘은 워디 끼덜두 못한댜.”
호이장놈이 화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며 대답했다.
“그, 용문동에 낚시점 박 사장! 그 박 사장이 코로나 백신 때미 제약회사 주가 뜬다고 없는 돈, 있는 돈 죄다 긁어서는 몰빵혀서 이익을 단단히 봤다든디?”
호이장놈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건 또 원제적 개소리여? 박 사장이 그거 낚시방에 자주 오는 손님이 알려준 거라든디, 아조 쪽박을 차서는 가게도 홀랑 넘어가게 생겼다든디.”
이번에는 총무놈이 화면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려? 그라문 씁새는 우치키 됐는가? 니두 주식 허겄다고 연말에 성과금 나온 거 주식에 몰빵 했담서?”
회원놈이 끼어들며 말했다.
“그… 이 샹놈 시키가 뭔 소리여? 뭔 성과금? 뭔 주식?”
놀란 씁새가 말을 더듬으며 옆을 보았다. 그리고 눈에서 불이 뚝뚝 떨어지는 마나님의 얼굴이 한가득 겹쳐왔다.
“아녀! 난 주식. 그거 뭔지도 몰러. 나는 고스톱두 여즉 모르고 살아 온 놈여!”
“에헤이, 지가 우덜헌티 쏠쏠히 재미 본다고 얘기 허구서는.”
회원놈이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이… 이… 샹녀리 새키! 그러는 니놈은 작년 10월에 참돔 어마허니 큰 놈 잡아서는 집이다가는 꽝쳤다고 허구서는 아랫거리 옛날통닭집 과수댁헌티 갔다준 거는 왜 얘기 안 혀?”
씁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헉! 그… 그것은… 그것은 오해여! 그 집 딸내미가 해산을 혔다고 혀서 고아 먹으라고… 이우지서(이웃에서) 정이루…”
회원놈의 사색이 된 얼굴이 화면에 가득 들어왔다. 그리고 옆에서 씩씩대는 회원놈의 부인의 숨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개놈 새키! 그게 가물치여? 고아 먹게? 그 집 딸내미는 캐나다루 남편허구 이민 갔는디, 뭘 고아 먹인다는 겨?”
“예미! 그라문 그게 나 혼자만 준겨? 총무놈두 작년에 잡은 문어 바리바리 싸다준 게 열 마리가 넘는디?”
회원놈의 불똥이 총무놈에게로 튀었다.
“뭔 개소리여? 왜 내를 끌고 들어가는 겨? 그건… 헉!”
총무놈의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총무놈의 화상은 먹다 남은 술상을 쓸쓸히 비추며 움직이지 않았다.
“이 염병! 언 놈이 화상술판 하자고 헌… 아니, 그게 아니고… 에헤이, 그게 참돔이… 워낙이 작… 작은… 헉!”
또다시 회원놈이 비명소리와 함께 화상에서 사라지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쓸쓸한 술상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꾸준히 버티는 회원놈의 얼굴만 상당히 고소하다는 신나는 표정으로 남아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호이장놈이야 상처하고 새 장가간 상황이니 이런 일에 말려들 기운이 없었을 것이다.
“아조 지랄들이 풍년이여. 크하하하하하!”
호이장놈의 웃는 모습이 화면에 크게 들어왔다.
“그게… 사실은… 그… 성과금이 나온 게 아니고…”
씁새가 마나님 쪽으로 돌아앉으며 말했다.
“그려서! 뭔 주식을 산 거여유?”
“아니! 그게 아니고… 그냥 용돈이루 쪼금. 쪼오금!”
“시답잖은 소리 그만 혀고, 어여 주식 보여줘 봐유.”
하지만, 이미 주식통장은 바닥이 나있었고, 회사 직원이 찍어 준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어있었다. 속칭 동학개미들 중에 쓰다버리는 일개미가 되었던 것이다.
“그게 아니라니깐! 주식은 뭔 주식! 그게 친구덜허고 뭐 주식 얘기허다가 우연히 주식들을 많이 하니깐, 뭐 그냥 우리덜두 주식이란 걸 쫌…”
그러나 마나님의 얼굴은 철통같은 불신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얼마나 투자혔어유? 내가 회사 총무팀이루 물어 볼라니께. 잘 들어유. 올해에 낚시는 주식이루 탕진헌 금액만큼 못 가는 겨유. 알겄쥬?”
불신의 철갑을 두른 마나님이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배낚시 갈 직에 배삯으루 10만원 잡고, 성과금 액수만큼 사라질 때까지 못 가는 겨유. 알겄지유? 갯바위낚시하고 저수지낚시는 8만원. 못 가는 만큼 성과금서 까여 나가는 겨유, 알겄쥬?”
마나님의 얼굴이 점점 중세시대의 여전사로 변하고 있었다.
“예미… 담배라도 들고 나올걸. 개눔의 회원놈 새키! 뭔 얼어 죽을 화상을 허자고 혀서 이 사단을 맹길어? 천하의 개눔!”
답답한 마음에 아파트 현관으로 나온 씁새가 추위에 떨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문득 바라본 회원놈의 아파트 8동의 앞에 반짝이는 담배 불빛이 보였다.
틀림없이 회원놈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