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연재 낚시꽁트 씁새 (291)]
장마유감(상)
날씨가 든적시러우니께 저 쓰벌놈이 자꾸 나타나네… 가뜩이나 손님덜두 없어 죽겄는디, 갈 생각도 없고… 상녀리 자식!
낚시점 김 사장이 매장 한가운데의 응접 테이블에 죽치고 앉아 있는 한 녀석을 보며 끓어오르는 속을 겨우 다스리고 있었다. 김 사장이 계속 눈총을 주고 있지만, 녀석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수시로 믹스커피를 빼먹으며 흔한 개소리만 늘어놓는 중이었다.
“우째 얼굴이 자꾸 찌그러지는 겨? 비두 퍼 붇고, 날씨두 우중충헌디 얼굴마저 우중충허문 우치키 혀? 김 사장 얼굴두 장마여?”
녀석이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상녀리 새키…
김 사장이 끙 소리를 내었다.
“똥 마려? 그라문 화장실 같다와. 내가 가게는 지켜줄라니께.”
녀석이 다리를 까딱거리며 말했다.
“어차피 이 쏟아지는 비에 올 사람두 없어. 언놈이 이 비를 뚫고 낚시 가자고 물건 사러 오겄어?”
녀석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떠들더니 다시 커피믹스 봉지를 뜯었다. 저 개자식이 죽치고 앉은 지 한 시간 만에 다섯 봉째였다. 저 든적스러운 자식이 커피귀신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와따! 비 징그럽게 온다.”
녀석이 다시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가게 창밖으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쏟아지는 중이었다.
“집이 안 가?”
김 사장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 비에? 아님 집에 뭐 할 일이 있다고? 우차피 헐 거 없는디, 시간이나 때우는 거지 뭐.”
녀석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헐 거 없으면 집이 가서 괴기 잡을 채비라도 만들어.”
김 사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 만들어서 만들 것두 없어. 그러구 거실에 낚시장비 늘어 놓으문 마누라헌티 뒤지게 혼나.”
녀석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라문 비두 오는디, 집이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든가!”
김 사장이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밀가루가 없어.”
녀석은 아랑곳 하지 않고 조용히 대답했다.
개 상녀리 자식!
김 사장이 끙 소리를 내며 돌아섰다. 그때였다. 비가 조금 뜸해지는가 싶더니 낚시점 앞에 승용차가 주차하고는 한 사내가 낚시점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서오셔유!”
사내에게 큰소리로 인사를 건넨 것은 녀석이었다. 김 사장은 먼저 인사를 한 녀석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우치키 오셨나유?”
녀석이 실실 웃으며 사내에게 물었다. 비를 피해 급히 들어선 사내가 진열장 너머에 있는 김 사장과 테이블에 앉아 인사를 건네는 녀석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떤 사람이 낚시점 주인인지 살피는 중이었다.
“그… 낚싯대를 살라고 허는…디유?”
사내가 쭈뼛쭈뼛 녀석을 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인사를 한 녀석이 주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려유? 그라문 워떤 낚싯대를 살라고 허셔유? 대상 어종이 뭐여유? 민물? 바다? 그게유, 민물두 그렇구 바다두 그렇구 어종별로 천차만별여유.”
녀석이 신나게 떠들었다.
“바다유.”
사내가 흠칫하며 대답했다.
“바다! 좋지유. 그라문 갯바위여유, 선상여유?”
녀석이 사내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물었다.
“바… 바다. 무… 문어 잡을라구… 유.”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녀석의 질문에 사내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만혀! 이 씁새야. 그짝 사람은 손님이구유, 지가 주인이니께 지헌티 말씀허셔유.”
김 사장이 보다 못해 소리쳤다.
“그… 그려유?”
사내가 씁새에게 별 미친 놈 다 보겠다는 눈초리를 보내고는 김 사장에게로 다가갔다.
“문어낚시. 그라문 배타고 하실 건가유?”
김 사장이 사내에게 물었다.
“그러지유. 장마 끝나문 서해 쪽이루 친구들 허구 가볼라구유.”
사내가 대답했다.
“그라문 예약은 허셨슈?”
씁새가 물었다.
“문어 낚시허구 주꾸미, 갑오징어는 예약 안 허문 못혀. 암만, 나두 9월 10월 문어 겨우 예약혔는디. 평일이문 가끔썩 두어 자리 나오기는 허는디, 휴일은 음써!”
씁새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평일에 휴가내서 갈라는디유?”
사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려유? 그라문 뭐… 근디 문어낚시는 해보셨슈?”
씁새가 다시 물었다.
“문어는 첨인디, 주꾸미, 갑오징어는 몇 번 해봤구유. 뭐 대충 허는 법은 배웠어유. 이참에 문어낚싯대 하나 준비혀서 본격적이루 해볼라구유.”
사내가 대답했다.
“그려유. 그라문 에 또… 요즘은 문어낚싯대두 좋은 게 많이 나와유. 가격대는 어치키 허시게?”
김 사장이 물었다.
“글께유. 츰이니께 일반적인 낚싯대문 되겄지유. 사장님이 하나 추천해 보셔유.”
사내가 김 사장에게 묻자 김 사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낚싯대 몇 대를 꺼내놓았다.
“이게 S사에서 나온 것이고, 이게 B사꺼. 요건 좀 비싼 편이지만 대가 짱짱허니 힘 좋아서 웬만헌 놈덜은 꼼짝없이 끌려 나오지유.”
김 사장이 신이 나서 말했다.
“근디… 가격대가 좀 비싸네유?”
사내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려두 이게 대중적이루 나온 문어 전용대여유. 이전에는 20만원을 훨씬 넘어서는 고가 전용대가 나왔었는디, 문어낚시두 생활낚시루 보편화되문서 이 정도로 나오는 거지유. 가격대는 14만원 정도면 참이루 대중적인 낚싯대지유. 암만.”
김 사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에헤이! 그게 뭐여? 그 손님은 문어낚시 첨이라는디. 그러구 문어낚시가 기교부리는 낚시두 아니구, 그냥 바닥에 붙은 놈 뜯어내는 낚신디, 낚싯대가 허리힘만 짱짱허문 되는 겨. 뭔 중뿔났다구 그리 비싼 낚싯대를 권허는 겨?”
듣고 있던 씁새가 끼어들었다.
“그… 그려유?”
사내가 씁새 쪽으로 돌아서며 물었다.
“그러지유. 아주 보편적인 문어낚싯대가 3만원 정도면 사유. 나두 3만원짜리 써금 써금헌 문어 전용대루 2년째 쓰는디. 그걸루 작년에 왕등도서 3키로짜리두 끌어 올렸슈. 엊그제두 격포서 1키로짜리 끌어 올리구. 접때는 삼천포 두 번 가구유. 허리힘 좋아유. 어이, 김 사장. 그러덜 말고 좀 써금헌 저가대루 권해드려 봐.”
씁새가 신이 나서 떠들었고, 김 사장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암만 그려두 14만원대면 중저가여. 그러구 3만원대 저가 낚싯대? 그거 무거워서 하루 죙일 우치키 들구 있을껴? 가뜩이나 무거운 추 달구서니 바닥을 벅벅 긁어야 허는디, 그러구 바닥이라두 걸리면 3만원짜리 써금헌 것은 빼내기두 힘들어. 비싼 것은 그만큼 값어치를 허는 겨. 다른 낚시꾼덜은 열쳤다구 비싼 장비 쓰는가?”
김 사장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무겁다고? 그라문 3만원대 낚싯대는 무신 통나무여? 나 같은 놈두 하루 종일 바닥 긁어두 하나두 힘들덜 안 혀! 그라구 그 비싼 낚싯대루 바닥 긁다가 부러지기라두 허문 아주 엿 되는 겨! 초보 낚시꾼일수록 초저가부텀 시작혀야 허는 겨!”
씁새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저… 그… 그러문 낭중에 또 오겄슈.”
씁새와 김 사장의 틈에서 눈치를 보던 사내가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너 뭐여? 이 씁새야! 노바닥 비가 와서 며칠을 꽝 치다가 손님 하나 봤는디, 아예 초를 치자는 겨? 나 망허는 꼴을 봐야 속이 시원 하단 겨?”
김 사장이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라문 그냥 막 팔아 제끼자는 겨? 그려두 문어낚시 몇 번 다녀온 사람이문 비싼 낚싯대 권혀두 암말 안 혀. 초짜헌티 뭔 그리 비싼 걸 권혀?”
씁새도 지지 않았다.
“그려. 니 똥 굵어! 니 똥은 칼라 똥이여!”
김 사장이 버럭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려 내 똥 굵어! 아주 굵기가 통나무여!”
씁새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쳤다.
“개눔의 씁새! 집이 안가?”
“뭐여? 인자는 손님을 쫓아내는 겨?”
“그려! 그러구 니놈이 손님이여? 하루 죙일 죽치구 앉아서는 커피나 수십 잔 빼 처먹음서 손님들 쫓아내구 장사 망치게 허문서 니놈이 손님이여? 낚싯대나 장비 살 때는 인터넷이루 사문서 겨우 바늘 쪼가리 몇 개 사가는 놈이 손님이여?”
김 사장이 작심한 듯 말했다.
“사람이 그라는 게 아녀! 몇 십 년 단골인디, 이리 서운시럽게 말 허문 안 되는 겨!”
씁새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가!”
“안 가!”
“이 씨불놈의 씁새!”
“이 막 돼먹은 장사치!”
둘이 쌍심지를 켜고 주먹이라도 올려붙일 상황이었는데, 다시 낚시점 문이 열리며 다른 손님이 들어서고 있었고, 씁새와 김 사장의 2차전을 예고하듯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다.
그리고 씁새와 김 사장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