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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연재 낚시꽁트 씁새(290)] 운수좋은날
낚시 꽁트 씁새

[연재 낚시꽁트 씁새(290)]

운수좋은날

박준걸 artellar@hanmail.net

 

 

낚시를 시작한 지 2시간째, 그동안 세 군데를 돌아다녔건만 목표했던 농어는커녕 우럭 새끼 조차 얼굴 한 번 보이지 않았다. 대신, 넣기 바쁘게 장대만 줄기차게 올라오는 중이었다.
낚시꾼마다 물고 늘어지는 장대를 패대기치느라 바빴고, 뱃전은 어느새 장대들로 수북이 싸여가고 있었다.
“이게 뭐여? 우덜 장대잡이 배여? 외수질이 이런 겨? 하다못해 우럭 새끼라도 나와야지, 아녀, 백조기라도 나오문 대행이여! 워디서 장대만 처 나오는 겨? 이 배가 장대 조업선이여?”
씁새가 선장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우쩌라고. 물때도 좋고, 물색도 좋고, 다 좋은디. 어제만 해도 농어가 제법 나왔는디 오늘은 뭐가 틀어져서 이라는 겨.”
장 선장도 난감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선장덜 허는 얘기가 죄다 해묵은 레파토리여. 괴기 안 잽히문 어제는 잘 잡혔댜, 어제까정 잘 잽히던 괴기가 오늘은 안 잽힌디야. 그라지 말고, 선장덜마다 냉장고 포인트가 있대미? 괴기 안 나오문 비상시에 몰고 가서 잡아오는 비장의 뽀인뜨!”
“염병. 그란 게 워디 있어? 그라문 그 놈의 괴기덜이 냉장고 뽀인뜨서 움직이지도 않고 365일 노바닥 거기 있다는 겨?”
장 선장이 선장실에서 머리만 내밀고 말했다.
“에헤이, 죄다 소문 났드만. 선장덜마다 냉장고 뽀인뜨 하나씩은 있다고.”
씁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염병. 다른 배들두 죄다 꽝이랴. 한 번 더 옮겨 봅시다. 한 20분 달립니다.”
선장이 뱃고동을 두 번 울렸고,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거두자 힘차게 엔진을 돌렸다.
“인자 냉장고 뽀인뜨로 가는 겨?”
호이장 놈이 물었다.
“몰러. 접때 전투선단 김 선장이 그라대? 선장덜마다 고오급진 뽀인뜨는 하나씩 있다고.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겄지만, 그렇댜. 낚시춘추에 심층분석을 의뢰해 봐야겄어.”
씁새가 파도를 피해 선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배는 다른 포인트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었고, 뱃전에 부딪힌 파도가 부서지며 바닷물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오호!”
씁새가 선실에 앉아 유리창으로 부서지는 파도를 구경하다말고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는 선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씁새의 눈이 머문 곳은 뱃전이었다. 그리고 씁새의 눈에 뱃전에 널부러진 장대들이 보였다. 어차피 버리는 물고기들이었다. 씁새가 널부러진 장대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뭔 개짓거리여? 재수 없는 장대는 뭣허러 모으는 겨?”
총무 놈이 핀잔을 주듯 말했지만, 씁새는 아랑곳 하지 않고 뱃전을 한 바퀴 돌아 장대를 주워 모았고, 그 숫자는 무려 13마리나 되었다. 씁새가 씩 웃으며 자신의 아이스박스에 주워 모은 장대를 처넣었다.
“잡어 처리반!”
씁새가 아이스박스를 닫으며 말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포인트에서도 여전히 장대들로 파시를 이루기 시작했다. 낚시꾼들마다 걸려 올라오는 장대를 떼어내느라 씩씩거렸고, 일부는 다시 바다로 던지기도 하고, 일부는 그대로 자신의 앞에 있는 물통에 던져 넣었다.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씁새가 장대를 잡은 낚시꾼이 보이자마자 달려가 떼어내는 것을 거들고는 물었다.
“버리실 껴유?”
“그걸 버리지 뭐헌대유?”
“저 주셔유. 장대 처리반여유.”
낚시꾼들로서는 딱히 안 될 것도 없었다. 어차피 가져가지 않을 장대였으며, 바쁜 시간에 장대 떼어내느라 애먹을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씁새는 누군가 장대를 잡으면 득달같이 쫓아가 떼어주고 자신이 가져가길 반복했다. 그토록 바라는 농어는 보이지 않았고, 신나게 달려드는 장대들과의 힘겨운 싸움이 계속 이어졌다.

 

 

 


“뭐 허는겨?”
장 선장이 씁새의 하는 양을 지켜보다가 물었다.
“장대 처리허는 겨.”
씁새가 손에 들고 있는 바늘 뽑기용 니퍼를 흔들며 대답했다.
“그눔의 장대는 뭐 헌다구 모으는 겨? 우치키 허다보문 농어가 들어오겄지. 허다못해 바닥 긁으문 광어라도 물릴 껴. 든적허니 열심히 혀야 뭐라두 잽히는 벱이지, 그 지랄루 뻰찌들구 설치문 뭣이가 잽히간?”
장 선장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냅둬. 어차피 올라오느니 장대여.”
선장실 옆의 낚시꾼이 또 장대를 잡아 올리자 달려들어 바늘을 빼주며 씁새가 대답했다.
“안 가져가실 꺼지유?”
“그걸 뭐헌다구 가져간대유?”
씁새가 냉큼 자신의 아이스박스로 장대를 처넣었다.
“그냥 든적시러운 장대 처리해 드리는 겨유.”
씁새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걸루 매운탕이라두 끓여 먹을라고?”
호이장 놈이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씁새를 보며 물었다.
“이것두 매운탕 끓이문 먹을만 혀.”
씁새가 장대를 아이스박스에 처넣으며 대답했다.
“아서라. 호랑이가 굶어 죽을지언정 푸성귀 뜯을 텐가! 농어낚시 와서는 뭔 짓거리여?”
다들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장대를 하찮은 물고기로 취급하고, 대상어종이 아니라고 허투루 보지만, 손질하는 것과 먹기 위한 준비 과정이 번거로워서 그렇지, 장대도 꽤 먹을 만한 고기였다. 다만, 모두들 원하는 고기는 안 올라오고 허접스럽게 달려드는 물고기라서 가볍게 볼 뿐이었다.
물론 씁새도 그런 생각이었다. 이런 물고기 축에도 들어가지 못할 놈을 번잡스럽게 주워 담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잡히지 않는 농어 기다리며 고패질 하느니, 누군가 농어라도 잡아 올리면 그때 낚시를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장대는 덤이었다. 버리는 물고기 주워다가 꾸덕꾸덕 말려서 튀겨 먹든지, 매운탕을 해먹으면 그런대로 꽤 괜찮은 물고기였다.
“장대 잡으시면 말씀허셔유. 바늘 빼드릴께유.”
아예 뱃머리에 올라선 씁새가 소리쳤다. 그리고는 누군가 ‘장대!’라고 소리치면 득달같이 달려가 바늘을 빼주기에 바빴다.
“아예 사무장으로 취업을 해라.”
“저 새퀴는 좀 진득허니 낚시를 못해. 입질 10분만 없으문 딴 짓이여.”
“아주 장대로 쿨러를 채울 판이네, 썩을 종자.”
호이장 놈과 총무 놈, 회원 놈들이 한마디씩 해댔지만, 씁새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결국, 농어는커녕 광어, 우럭조차 한 마리 구경 못하고, 장대만 줄기차게 뽑아낸 후, 완벽한 꽝으로 배는 철수했고, 씁새만 작은 장대는 모두 방류하고도 큼직한 놈으로 아이스박스를 끝까지 채울 수 있었다.
“에헤헷! 에헤헷!”
다른 낚시꾼들은 빈 아이스박스를 들고 가뿐하게 배에서 내렸건만, 씁새만 한껏 무거워진 아이스박스를 어깨에 메고 혼자 키득거리고 있었다.
“아주 신이 났네, 장대 처리반 새키.”
호이장 놈이 씁새의 아이스박스를 걷어차며 말했다.
“염병… 그나저나 어시장 가서 광어라도 한 마리 떠 가야겄다. 처남식구들이 저녁에 온다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잖여.”
총무 놈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했다.
“그려. 집이서는 낚시 도사루 알고 있는디, 빈손으로 가문 그렇잖여. 나두 우럭이라도 몇 마리 떠 가야겄다.”
호이장 놈도 빈 아이스박스를 메고 공판장 쪽 시장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장대로 가득한 무거운 아이스박스를 멘 씁새도 연신 웃으며 그들을 따라 어시장으로 들어섰다.
“그짝 사장님은 뭐 안 뜨셔?”
호이장 놈과 총무 놈, 회원 놈에게 광어와 우럭을 떠준 횟집 여사장이 씁새를 보고 물었다.
“에헤헷, 에헤헷. 지는 아이스박스가 가득혀서 뭘 더 넣을 수도 없어유.”
씁새는 웃으며 말했다.
“그려요? 오늘 나간 배들마다 죄다 꽝이라는디, 사장님만 잡은겨? 어디 봐유.”
여 사장이 씁새의 아이스박스를 보며 말했고, 씁새는 의기양양하게 아이스박스를 열어 제쳤다.
“옴마! 이거 장대 아녀?”
여 사장이 놀라며 말했다.
“그려유, 장대.”
씁새가 씩 웃으며 말했다.
“옴마나… 장대들도 엄칭이 크네. 이게 몇 마리여. 저기, 그짝 사장님. 이 장대가 손질이 여간 번잡시런 게 아녀. 배 가르고 소금치고, 살이 많아서 며칠을 또 꾸덕꾸덕 말려야 혀. 그러니께 이거 몽땅 여기 쏟아주구 가유. 내가 광어 삼킬로짜리루 하나 썰어드릴게. 이거 구워서 우리 식당 손님상에 올리문 손님덜이 참 좋아해. 매운탕도 좋고. 우뗘유?”
여 사장이 눈빛을 쨍 빛내며 물었다. 여 사장네 가게 좌판에는 말린 장대가 8마리에 만원 쪽지가 붙은 채로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에헤헷, 에헤헷”
3킬로짜리 광어를 포 떠서 아이스박스에 담은 씁새가 또 신이 나서 앞서 걸으며 웃음을 흘려댔다.
“개시키.”
돈 주고 광어 2킬로를 포 뜬 총무놈이 뒤에 따라가며 중얼거렸다.
“저 쓰벌눔은 대체 어복이 좋은겨? 아니문 운수가 좋은겨?”
돈 주고 우럭 3킬로를 포 뜬 호이장 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둘 다여. 우라질 놈의 새키. 넘들이 버리는 장대덜 주워 모아서 광어로 바꿔가네, 염병할 놈. 결국 저 놈만 오늘 꽝을 안 친 겨.”
회원 놈이 앞서가는 씁새를 보며 투덜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씁새는 연신 웃음을 흘리며 발걸음도 가볍게 주차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에헤헷, 에헤헷.”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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