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낚시外傳_무창포 스님
모처럼 광어 몇 마리씩, 우럭 튼실한 놈으로 몇 마리씩 각자 족할 만큼 잡은 날이었다. 씁새를 비롯해 호이장, 총무 놈까지 제법 무겁게 아이스박스를 들고 배에서 내렸다.
“이런 날 왔어야지, 뭔 중뿔났다고 등산이여? 낚시꾼이 산이루 쏘 댕기문 탈 나는 겨.”
“냅둬. 회원 놈이라고 오구 싶덜 안 허겄어? 걔 마누라가 하두 보채니께 산이루 간 것이지.”
회원놈에 대한 이야기였다. 회원놈의 아내가 동네의 아줌마들과 무슨 산악회를 결성했다고 한다. 회원놈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회원 놈의 아내가 재개발위원회에 가입을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당연히 위원장인 부녀회장이 등산을 빙자한 여행을 획책하였고, 몹시 안타깝게도, 부부동반이라는 단서를 붙여놓은 것이었다.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회원 놈이지만, 유독 아내에게만은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는 위인인지라 꼼짝없이 남해 쪽 어느 섬의 산으로 등산을 떠난 것이었다.
“젤로 불쌍헌 것이 뭣인지 알어? 그 섬의 산이루 등산을 갔으니 사방으루 바다가 보일 거 아녀? 월매나 낚시가 허고 싶겠어?”
“말해 뭐혀? 그건 등산이 아니라 고문이여, 고문!”
씁새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나저나 미치게 덥구먼. 저짝이루 가문 커피숍이 있을 껴. 총무야, 저기 가서 냉커피라두 사와라.” 호이장 놈이 총무 놈에게 말했다.
“덥구 피곤헌디, 뭔 커피여? 그냥 시원헌 에어콘이나 켜고 언능 떠나자고.”
총무 놈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목마르니께 그러지! 지랄 말고 사와! 총무 놈이 총무 짓을 안 혀!”
씁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개새! 총무짓은 허덜 않는디, 뭔 총무여! 염병. 시바랄 놈덜이 지들 허기 싫을 때만 총무랴!”
총무놈이 비실비실 일어서며 선착장 건너편의 상가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 씁새와 호이장 놈이 아이스박스를 의자 삼아 앉아서 총무 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회색 승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스님이 그들 쪽으로 다가왔고, 씁새들의 옆, 배로 내려가는 선착장 계단에 주저앉았다.
“여보세요? 응, 엄마!”
회색 바랑에서 휴대폰을 꺼낸 스님이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응, 지금 내려왔어. 응. 그려. 나 지금 엄마 집에 가려고. 응, 응. 주지스님이 하루 다녀오래. 응, 엄마.”
씁새가 갑자기 터져 나오는 웃음을 끅끅 거리며 참았다. 호이장 놈도 고개를 푹 숙이고는 허리를 꺾고 웃음을 참는 중이었다. 중년의 남자가 엄마라는 말을 하는 것도 오글거리는 상황이건만, 이 양반은 스님이었다.
“응, 엄마. 나 지금 무창포 선착장. 응, 엄마. 여기 우리 절 보살님이 계셔서 만나고 가느라고. 응, 응?”
씁새가 입을 가리고 호이장 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차가운 커피를 들고 온 총무 놈도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셋 다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이 희귀한 상황에 터지는 웃음을 참는 중이었다.
“응? 엄마! 뭐라고?”
전화를 하던 스님이 뒤쪽의 어판장을 돌아보고는 다시 씁새 쪽을 바라보았다.
“응? 정말? 아… 엄마, 알았어. 잠깐만.”
전화 통화를 멈춘 스님이 씁새와 호이장, 총무 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무… 무슨…”
씁새가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스님이 회색 승복을 한 번 털어내더니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시주님들. 고기는 많이 잡으셨습니까?”
중년의 스님 얼굴은 온화함이 가득했고, 속세의 일 따위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을 듯, 불심이 가득해 보였다.
“아… 예. 오늘은 그런대로 조과가 괞찬구먼유.”
씁새가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대답했다. 혹시나 미물에 대한 살생 따위의 불편한 얘기가 나올까 약간은 조심스러웠다.
“아, 그래요. 어떤 고기를 잡으셨는지.”
스님이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광어하고… 우럭하고… 예. 그렇게 잡았는디유?”
이번엔 호이장 놈이 대답했다. 그러자 다시 스님이 전화에 대고 얘기를 시작했다.
“응, 엄마. 광어, 우럭.”
호이장 놈이 무슨 상황인지 씁새와 총무 놈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누구도 이 스님이 뭔 뜻으로 묻는지 알지 못한 채, 차가운 커피만 쪽쪽 거릴 뿐이었다.
“응! 엄마. 우럭은 매운탕이 최고지. 그럼. 광어는 횟감으로는 좋은데, 매운탕은 별로드라. 응, 엄마.”
또다시 통화를 중단한 스님이 씁새들 쪽으로 그윽한 눈길을 돌렸다.
“시주님들.”
스님이 말했다.
“예… 예…”
“물고기 몇 마리만 공양 하십시오.”
뜻밖이었다. 살생을 금하고 육식을 금하는 스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 씁새들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예? 예?”
총무놈이 마시던 커피를 뿜으며 다시 물었다.
“그, 광어하고 우럭하고 몇 마리 공양 하시지요.”
스님이 합장까지 하고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총무 놈이 그 말을 듣고는 호이장 놈과 씁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과연, 스님의 요청대로 물고기를 줘야 하는 것인지, 승가의 법도대로 고기를 주지 말아야 하는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뭐 그리 크지 않아도 됩니다. 우럭은 매운탕용으로 40여 센티 정도가 딱 좋지요. 광어라면 횟감으로 50센티 정도는 넘어야 제대로 된 횟감이지요.”
스님이 여전히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그… 드리는 것은… 문제가 아닌디…”
호이장 놈이 매우 불편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시주님들 오늘은 많이 잡으셨다고 하니까, 몇 마리만 시주하시라는 것입니다. 이게 다 보시하는 것이지요. 덕을 쌓는 겝니다. 아미타불.”
스님이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더니 말했다.
“근디… 그게… 스님이신데… 이 괴기는 좀 그렇지 않남유?”
씁새가 더욱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아하하. 원 저런, 오해하셨군요. 저는 다만 저희 속세의 어머님께 드리고자 하는 겝니다. 설마 부처님께 귀의 한 불자가 육식을 탐하겠습니까?”
스님이 한바탕 웃더니 말했다. 뭐, 따지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스님 자신이 먹을 것도 아니고, 어머님께 드리고자 한다면… 주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물론, 일반인 누군가가 잡은 고기를 좀 잘라고 한다면, 절대 주지 않겠지만, 승복을 입은 스님이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스님 말대로 보시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효심 가득하신 스님께서 어머님을 위해 공양을 청하신다면야 주지 못 할 이유가 없었다.
“그… 그려유…”
결국 호이장놈과 총무놈, 씁새가 자신의 아이스박스를 열어 큼직한 광어와 우럭을 몇 마리 꺼내어 비닐봉투에 담았다. 그사이 그들 주변으로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고, 씁새들이 잡은 광어와 우럭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오! 크다!”
“와, 많이 잡았네.”
주위 관광객들의 탄성이 쏟아지면 어깨가 우쭐해야 당연하지만, 이것이 스님을 드리기 위한 공양인지라, 그것도 물고기인지라 세 놈의 행동은 몹시 불편했다. 하지만, 세 놈의 마음은 모르는 채, 스님은 여전히 인자하고 해맑은 웃음을 띠며 세 놈으로부터 큼직한 비닐봉투를 건네받았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시길.”
스님이 고기가 들어있는 봉투를 꽉 묶어서 회색바랑에 담고는 씁새와 호이장, 총무 놈을 보며 합장을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 네… 네.”
얼떨결에 세 놈도 같이 합장을 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주위의 관광객들의 의아해하는 눈초리들이 쏟아졌다. 이 황당한 사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초리들이었다.
어쩌면 고기를 건네받는 스님보다는 스님에게 고기를 건네주는 세 놈이 더 흉악스러운 놈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얼굴은 아주 자연스러웠으며, 아주 당연한 듯 보였다. 그리고 스님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웃으며 전화를 들었다.
“응! 엄마. 우럭하고 광어. 응, 알았어. 금방 갈 거야. 알았어, 엄마!”
다시 전화통화를 끝낸 스님이 자리를 떴고, 저만치 멀어지는 스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배를 고정한 장 선장이 계단을 올라오면서 말했다.
“아놔! 저 땡중 시키!”
“응? 뭐여? 저 스님은 자기 엄마 준다고 괴기 좀 달라고 허든디?”
씁새가 저만치 다른 낚시꾼들에게로 다가가는 스님과 장 선장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지랄! 뭔 엄마여? 노바닥 낚시꾼헌티 가서는 시주하라고 괴기 뺏어서는 어판장에 다시 팔아서 쏘주 처먹는 놈인디! 스님 아녀! 저 사기꾼 시키!”
장 선장이 핏대를 올리며 말했다. 그 사이 스님은 다른 낚시꾼들 옆으로 가더니 전화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응! 엄마? 응, 여기 무창포. 응? 엄마 우럭 먹고 싶어? 광어두?”
그러고는 통화를 중단하고 낚시꾼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시주님들. 고기 몇 마리만 공양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황당한 사태에 휘말리기 시작한 그 낚시꾼들의 얼굴에 매우 불편함이 스쳐가고 있었다.
“인간들 사는 법도 여러 가지여.”
씁새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