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연재 낚시꽁트 씁새 (288)
세월의 단상
“내가 말여! 엉? 맹호부대여! 엉? 월남에서! 엉? 베트콩을. 엉?”
낚시점으로 들어서자 웬 중년의 노인 한 분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가 소리치고 있는 대상은 역시나 골방에서 화투를 치고 있던 동네의 한량 패거리들이었다.
“그거 알어? 엉? 니들은 화투패나 쪼고 말여! 엉? 나는 말여, 엉? 월남전 때, 엉? 미국, 양키들 하고, 엉? 트람푸를 쳤어! 이거 왜이래, 엉?”
“그라문 딴 데 가서 트람푸 쳐! 왜 여기 와서 지랄여! 니놈만 월남전 다녀왔어?”
듣다 못한 화투 패거리 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너두 간겨? 어디여? 엉? 백마여? 십자성이여? 맹호여?”
노인이 더욱 크게 소리쳤다.
“뭐여?”
씁새가 낚시점 김 사장에게 물었다.
“염병… 시두 때두 없이 나타나서는 저려. 저 웃동네 사는 양반인디, 뭐, 월남전에 맹호부대루 다녀왔다는겨.”
김 사장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대답했다.
“근디?”
“뭐가 근디여? 골방에서 화투치는 양반덜한티 돈이 없으니께 끼지는 못하구, 저렇게 어깃장을 놓는 거지.”
“낚시허는 양반이여?”
“자기 말로는 가끔 민물낚시는 간다는디, 가는 모습을 본 사람은 없어.”
김 사장이 노인을 흘겨보며 대답했다.
“굉장시럽게 시끄러운 양반이구먼.”
씁새가 노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말여, 엉? 양키덜허구 트람푸를 치문, 스티브, 제임스, 토마스, 엉? 얘들 죄다 털리구 그랬어! 이거 왜 이래, 엉?”
노인이 아예 골방 앞으로 의자를 끌어 오더니 골방 문 앞에 버티고 앉아 소리쳤다.
“재밌는 양반이네?”
씁새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지랄! 하루 이틀두 아니구, 한 달 전부텀 갑자기 나타나서 매일 저러고 있는디, 아주 죽겄어. 어쩌다 손님이라두 오문 월남전 얘기를 떠들어대는디, 손님 죄다 쫓아 보내고 있다니께? 오지 말라고 헐 수도 없고, 염병…”
김 사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이, 그짝 양반!”
갑자기 노인이 씁새를 보고는 말했다.
“야? 저… 저유?”
“그려. 그짝 양반. 낚시꾼여? 낚시 댕기는 사람여? 엉?”
“그… 그런디유?”
씁새가 놀라 대답했다.
“그려? 뭐 잡어?”
“그… 붕어두 잡구… 저기… 바닷괴기두 잡구… 뭐… 그… 그러지유.”
“그려? 내가 말여, 엉? 괴기를 잡을라면, 엉? 조잡시럽게 낚싯대루 안 잡어! 엉? 내가 맹호부대 용사여, 엉?”
노인이 가슴을 펑펑 치며 말했다.
“예… 예… 그… 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는 씁새가 그저 꾸역꾸역 대답만 했다.
“내가 월남전서 베트콩 때려잡다가 말여, 엉? 우리 소대 애덜허구 엉? 적진에 고립된 겨. 엉? 그때 막 식량은 떨어지고 베트콩은 우덜을 포위허고, 엉? 그려서 우덜 소대 애덜이 배고파서 총을 쏠 기운두 없는겨, 엉? 그려서 내가 말여, 엉? 우덜 진지 앞에 개울에다가, 엉? 그냥 수류탄을 까서 던진 겨! 엉? 알어? 수류탄 던져봤어? 엉?”
“그… 논산훈련소서… 던져 봤는디…”
“여튼 간에, 엉? 개울에 수류탄을 까 던진 겨! 우와! 엉? 괴기가, 엉? 괴기가 엄칭이 뜬 겨. 엉? 내가 말여, 그렇게 혀서 애들 괴기루 배부르게 허고, 엉? 기운 차리게 혀서, 엉? 포위헌 베트콩덜 죄다 때려잡고 포위망 뚫고 살아 온 사람여, 엉?”
“그… 아, 네, 네.”
이걸 믿어야 하는지, 웃고 넘길 얘긴지 도통 모를 지경이었다.
“염병… 두 번 더 들으문 백번이여… 저놈의 수류탄… 좀 더 들으문 기가 찬 얘기두 나올껴.”
김 사장이 씁새에게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알어? 엉? 내가 말여, 엉? 괴기 잡으러 가잖여? 그라문 월남전서 가져온 수류탄 몇 개 가져 가는 겨. 엉? 기냥 개울에 다가, 저수지에 다가 까 던져! 엉? 괴기 막 떠! 온 천지가 괴기여! 엉? 애덜 장난감 같은 낚싯대루 원제 잡어? 엉? 수류탄 까 던져! 엉? 괴기? 엉?”
이것이 정말이라면 당장 쇠고랑 철컹철컹 하는 범죄였다. 수류탄을 무슨 떡밥처럼 들고 다니고, 마구 까 던지다니!
“그… 그라문… 경찰이… 그게 막 범죄…”
씁새가 놀라 말했다.
“이거 왜 이래! 엉? 내가 맹호여! 맹호부대! 호랑이! 엉?”
노인이 아예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두 손을 허리에 척 걸치고는 가슴을 한껏 내밀었다.
“내가 말여, 엉? 베트콩을 자네가 여태껏 자네가 잡은 괴기보다 더 많이 때려 잡았을껴. 엉? 일개 사단을 내가 죄다 때려잡았어, 이거 왜 이래, 엉?”
“지는… 뭐라고 안 혔는디유?”
“접때는 저기 옥천에 저수지 갔었는디, 물가에 어마어마허니 큰 잉어가 돌아 댕기는 겨. 엉? 아! 증말루 내가 집에 고이 모셔둔 에무 씩스틴(M16 소총)을 안 가져 온 게 한이 되드라구. 그냥 그 놈헌티 갈기문 딱 인디, 엉?”
좀 더 얘기 하다보면 미사일에 항공모함도 튀어 나올 지경이었다.
“그만혀! 이 뻥쟁이 새키야! 뭔 에무 씩스틴이여? 수류탄은 또 뭐여? 언놈이 그따구 무기를 함부루 가지고 있다는 겨? 그 지랄루 아무데나 수류탄 던지구 총 쏘문 니놈은 당장 감옥 가는겨! 뭔 고짓부렁을 그리 하는겨!”
듣다 못한 골방의 화투패 중의 한 사람이 소리쳤다.
“뭣이? 이 샹놈의 새키들을! 가만있어 봐! 내가 집이 가서 수류탄 가져 온다! 엉? 내가 이 방안에 하나 까 던지문, 니들 다 죽는겨! 엉? 수류탄 가져 와봐?”
“던져. 던져 봐! 이 입만 살아 있는 새키야!”
방안의 사람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아오! 이… 아오! 이… 엉? 아오!”
화가 난 노인이 가슴을 치며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낚시점 문이 열리며 또 다른 노인이 들어섰다. 훤칠한 키에 노인답지 않게 다부진 몸이었고, 얼굴과 몸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넘쳤다.
“김 사장 잘 있었나?”
“어서 오셔유, 형님. 그간 어찌 안 오셨대유?”
김 사장이 반갑게 물었다.
“응… 갈치잡이 가 있느라구, 며칠 여수 쪽에서 살았어. 갈치는 거의 꽝이구, 애꿎은 우럭이나 잡다가 어제 올라왔지.”
풍채 좋은 노인이 인자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리고, 예의 월남전 노인의 눈이 쨍 빛나더니 풍채 좋은 노인에게 물었다.
“그짝 양반! 내가 말여, 엉? 월남전 파병 가서 가져 온 수류탄으루 엉? 바다에다가 몇 개 까 던지문, 엉? 바닷괴기덜 죄다 엉?”
“월남전 다녀 오셨슈?”
월남전 노인의 말을 끊으며 풍채 좋은 노인이 물었다.
“그류. 내가 맹호여! 맹호. 그짝 양반은 월남전 가 보기나 했슈? 내가 말여, 엉? 베트콩덜, 엉?”
“청룡이외다.”
풍채 좋은 양반이 웃으며 대답했다.
“응? 뭐라구유?”
월남전 노인이 물었다.
“청룡부대였다고요.”
“처… 청룡…”
월남전 노인이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왔는가?”
골방 안에서 한 사람이 나오며 풍채 좋은 노인에게 인사했다.
“그려. 자네덜은 또 새 새끼 잡는겨? 삼천포 쪽으루 갑오징어가 잘 나온다는디, 거기나 갈 것이지.”
풍채 좋은 노인이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월남전 노인 쪽으로 돌아서며 물었다.
“어디로 파병 됐슈? 맹호면 사이공으로 갔다가… 다낭 쪽으로 들어갔나? 우리는 나트랑으로 들어갔는데.”
풍채 좋은 노인의 말에 월남전 노인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청룡부대 선발대루 부대 이끌고 다녀왔수다. 그 뭐, 월남전 다녀 온 게 자랑이겠수? 서로 죽이고, 죽고… 죄다 허망스러운 일이지… 내 부대 애들 죽어나가는거 보문… 아직도 내 애들 다쳐서 울부짖는 모습이 꿈에도 나타난다우. 거, 뭐… 수류탄 얘기 허든디, 쓸데없는 얘기 허지 마쇼. 자랑도 아니고, 그런 거짓말 해봐야 실지루 알아듣는 사람 없고, 그저 정신 나간 노친네 헛소리로 들릴 거유. 병풍 뒤에서 백화수복 냄새나 고이 맡으려면 그저 조용히 살다 가는 게 복이지.”
“그거 아슈, 월남전 양반. 이 사람이 청룡부대 대대장으루 대령 예편헌 사람이요.”
골방 안에서 또 한 사람이 말했다. 그러자 월남전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서더니 큼큼 헛기침과 함께 출입문으로 조용히 빠져 나갔다.
“저 사람두 세월 지나가는 것이 슬프니께 그런 걸 거여. 그저 한 때 잘나가던 시절이 그리웠겠지. 가장 빛나던 시절과 무엇이던 할 수 있었던 젊은 시절이 그리운 거여. 이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노인으로 변해서 지나간 세월만 기억하고 있겠지.”
저 멀리 힘없이 걸어가는 월남전 노인을 바라보며 풍채 좋은 노인이 슬픈 눈으로 말했다.
“어이, 김 사장.”
풍채 좋은 노인이 김 사장을 불렀다.
“예, 성님.”
“저 친구 또 들르문 내가 그러더라고 전해주게. 나헌티 낚싯대가 넘쳐나니께 수류탄 죄다 버리고, 나하고 제대로 낚싯대 들고 세월이나 낚으러 가자고. 같이 월남전 다녀 온 전우들 아닌가? 꼭 같이 다니자고 얘기해 주게.”
“암요, 그러지유.”
김 사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씁새의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퍼져 나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