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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연재 에세이_ 낚시라는 음악
낚시에세이

연재 에세이

 

낚시라는 음악

 

이병철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오늘의 냄새>, 산문집<낚;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가 있다. 쏘가리 낚시동호회 ‘팀쏘가리’ 회원. 루어낚시를 비롯해 다양한 낚시를 즐긴다.

 

 

낚시와 음악은 밀접하다. 나는 낚시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무슨 황당한 주장이냐고 묻는 이도 있겠지만, 낚시와 음악은 때로 한 몸이 된다. 낚시인들의 영원한 고전인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플라이낚시는 음악 연주의 ‘리듬’으로 묘사된다. 브래드 피트는 아버지로부터 배운 4분의4박자 리듬의 정형화된 캐스팅 방법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엇박자’ 리듬으로 변용하여 커다란 무지개송어를 낚아낸다.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연상시키는 플라이낚시꾼의 캐스팅을 차치하고서라도 낚시에는 음악성이 존재한다. 대물 붕어를 걸었을 때 줄에서 울리는 ‘피아노줄 소리’, 참돔의 질주가 합사줄을 현으로, 바다를 울림통으로 삼아 연주하는 릴 드랙 소리, 원투 릴대 끝에서 우는 방울소리, 잠든 호수를 깨우는 채비의 수면 마찰음, 빠가사리 우는 소리, 성대 노랫소리, 파도소리, 여울소리…… 이런 것들은 낚시꾼의 마음을 사로잡는 특별한 음악이 되곤 한다.
낚시 자체가 음악이 되기도 하지만, 대개 낚시와 음악은 분리된 채로 밀접하다. 음악은 낚시의 좋은 친구다. 물론 고성방가나 시끄러운 앰프 소리는 낚시의 적이다. 하지만 낚시터로 가는 길, 차 안에서 흥얼거리는 노래나 흐르는 강물에 루어를 던져놓고 부르는 콧노래는 낚시의 설렘을 증폭시키고 ‘노동요’의 역할을 해 낚시 능률도 높인다.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에서 함께 낚시하는 소설가 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선생님은 서해의 광어다운샷이나 어초 침선 배 위에서 늘 커다란 헤드셋을 쓰고 낚시한다. 음악소리가 다른 소음들을 차단해주는 덕분에 낚시에 집중이 잘 된다는 이유에서다. 낚시가 반드시 물고기만을 잡는 승부가 아니라 일상과 분리된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휴식이라면, 휴식에는 음악이 필수적이다.
정작 나는 낚시할 때 음악을 잘 안 듣는 편이다. 아까시 나무가 송홧가루를 털어내는 소리, 강물 위로 베이트피시들이 튀어 오르는 소리, 황소개구리 우는 소리, 산새 소리, 다른 조사들의 정겨운 대화 소리 듣는 것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예외는 있다. 오천항 밥말리호를 탈 때다. 조용한 가솔린 엔진에 고급 원두커피머신까지 장착한 그 배에서는 늘 음악이 흘러나온다. 송인호 선장은 선장 겸 디제이의 역할을 동시수행하며 레게와 힙합, 발라드, 팝, 국악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틀어준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백조기와 우럭과 주꾸미와 갑오징어 등의 습성, 대상어를 잘 낚는 법,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그가 깨달은 세상살이의 지혜 등을 털어놓는다. MBC라디오에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있다면 서해 오천항에는 ‘밥말리의 낚시캠프’가 있는 셈이다. 승선한 낚시인들에게 유쾌한 추억을 만들어주려 늘 노력하는 송 선장 덕분에 나는 신한태와 레게소울이라는 뮤지션의 레게음악을 알게 되어 종종 듣곤 한다.
자연의 소리를 사랑하는 나도 낚시가 잘 안 될 때는 무료함을 달래고자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러다 가끔 기이한 일을 겪기도 한다. 십여 년 전 화성 덕우낚시터 잔교좌대에서 붕어낚시를 하는데 찌가 말뚝이었다. 그럴 때 나는 문학 전공자로서 박두진 시인의 시 ‘해’를 “찌야 솟아라. 찌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찌야 솟아라”로 바꿔 주문처럼 외곤 했는데, 그날은 그즈음 입에 달라붙은 야구 응원가를 흥얼거렸다. 보니 엠의 ‘Rivers of Babylon’을 개사한 것으로 “롯데의 강민호. 롯데의 강민호. 오오오오. 롯데의 강민호” 하는, 당시 롯데 자이언츠 강민호의 응원가였다. 참 신기하게도 그 노래를 부르자 찌가 움찔거렸다. ‘어? 이거 봐라?’ 물속의 붕어가 노래를 알아들은 것인지 입질로 찌를 밀어 올리는 모양이 마치 장단을 맞추는 듯했다. 지금은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지만 그때 “롯데의 강민호” 덕분에 붕어 손맛 넉넉히 볼 수 있었다.
내가 음악에 심취하는 순간은 낚시 가는 길, 낚시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다. 낚시 가는 길에는 설렘을 주체하지 못해 저절로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된다. 낚시터로 가는 길에 주로 듣고 부르는 노래들은 다음과 같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은 봄철 남도에 첫 쏘가리 낚시를 갈 때 “사랑하는 연인들이 많군요 알 수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흩날리는 벚꽃잎이 많군요 좋아요”라는 노랫말을 “사랑하는 쏘가리가 많군요 물고기 친구들이 많아요 여기저기 입질들이 많군요 좋아요”로 개사해 목청껏 부른다.
옥천 청마리와 동이리, 합금리, 쇠보루를 지나 지수리로 가는 금강 ‘향수 100리’길을 달릴 땐 정지용 시인의 시를 노래로 부른 ‘향수’(이동원&박인수)를 듣는다. 겨울 새벽, 볼락낚시를 하기 위해 포항이나 통영으로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던 차가 속도를 내면서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진입할 때쯤,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 아침놀을 보며 나는 Journey의 명곡 ‘Faithfully’를 따라 부른다. “백야의 태양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려요……” 영화 ‘물랑루즈’의 주제가인 ‘Come what may’도 즐겨듣는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라는 뜻이다.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반드시 고기를 낚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워보는 것이다.
무늬오징어 낚시를 하러 간 여수 금오도 새파란 비렁길에 흠뻑 취해서, 또 갯바위 루어낚시를 하러 간 부안 위도의 금빛 저녁놀에 정신이 홀려서는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을 소리 높여 부르기도 했다. “나는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사색의 시인이라면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 가는 고행의 수도승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리 들을 테요” 노래를 부르고 나면 뭉클해진다. 노을이 눈으로 옮겨와 화끈거린다. 그 가창은,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낚시를 즐겼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일종의 세리머니다.
낚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졸음운전을 방지하고자 펑크록을 듣는다. 크라잉넛의 ‘안녕 고래’ 같은 노래는 신나기도 하고 고래, 오징어, 문어 등 바다에 사는 것들이 여럿 등장해서 좋다. 조과가 엉망이라 기분이 상해 있는데, 조수석의 친구 놈이 저는 몇 마리 잡았다며 자꾸 흰소리나 해대면 막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곡 ‘영웅의 생애’ 같은 걸 틀어버린다. 클래식만 들으면 잠이 온다는 친구 놈을 얼른 재워버리기 위해서다.
어쨌거나 낚시 후 귀갓길은 늘 쓸쓸하다. 해 저물 무렵이나 늦은 밤인 경우가 많은데 불빛도 드문 지방도로를 달리며 창밖의 빈 들판을 바라보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든다. 조과마저 없다면 정말 허전하다. 차 안으로 볏짚 태우는 냄새, 퇴비 냄새가 스며들면 마음의 코도 심란해진다. 텅 빈 아이스박스를 생각하니 내 마음도 텅 빈다. ‘승선비와 기름값과 고속도로 통행료와 숙박비와 밥값을 아껴서 부모님께 효도나 할 걸……’ 이런 자괴감이 밀려올 때 이승환의 ‘가족’이나 바비킴의 ‘MaMa’, 서유석의 ‘타박네’를 들으면 엄마 생각에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음악은 낚시 가는 길부터 갔다 오는 길까지, 채비를 던지고 회수하고, 내리고 올리고, 풀고 감고, 잡고 놓치는 낚시의 모든 과정에 감성을 입힌다. 음악이 흐르는 순간, 낚시는 고루하고 따분한, 비린내 나는 ‘아저씨들의 취미’라는 오해를 벗고 감수성과 정서적 풍요가 넘치는 복합예술레저스포츠가 된다. 지금은 4월의 봄밤, 나는 코로나로 위축된 일상에 감성을 더하기 위해 예술레저스포츠를 즐기러 섬진강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새벽 2시에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 만남의 광장에서 일행과 만난다. 어떤 채비로 쏘가리를 공략할지보다 새벽 운전을 하는 동안 어떤 음악을 들을지가 더 고민된다. 지미 폰타나의 ‘Il mondo’가 좋을 것이다. 토토의 ‘Africa’나 진시몬의 ‘보약 같은 친구’, 아니면 군가 ‘멸공의 횃불’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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