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연재 낚시꽁트 씁새 (285)
낚시유감
박준걸 artellar@hanmail.net
일러스트 이규성
“누가 돌아가셨다고?”
씁새가 놀라 물었다.
“춘배 형님. 몰러? 몇 번 우덜허구 낚시도 같이 댕기고 그랬지. 변동 낚시점에 가끔 나타나시던 그분.”
호이장 놈이 숙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지, 알지. 춘배 형님. 근디… 그 양반이 왜?”
“추자도 쪽이루 열기낚시 댕겨 오시다가 낚시회 버스 안에서 주무시듯이 돌아갔대는겨.”
총무 놈이 대신 대답했다.
“월레? 그 형님은 강단도 있어 보이든디? 갯바위도 훌쩍 타넘고, 저수지 산 하나는 끄떡없이 올라 댕기시던 분인디… 갑자기?”
“그려. 워낙이 그 형님 연세도 연세였지만, 아마도 우덜이 모르는 병이 있으셨을 껴.”
회원놈이 한숨을 폭 쉬며 말했다.
“그 형님 어려서 엄칭이 고생 하셨다고 허시드만…”
“말해 뭐혀. 천애 고아였다는디… 늙도록 고생 고생혀서 자식 새끼 키우고, 제법 살만 하시니께… 이게 뭔 날벼락이여.”
호이장 놈이 넥타이를 고쳐 매며 말했다.
“말년에 낚시 배워서 너무 즐겁다고 그렇게 애들처럼 좋아하시드만…”
씁새가 울컥하는 마음을 고쳐 잡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춘배 씨의 나이는 올해로 73세였을 것이다. 어려서 힘든 일 안 해 본 것이 없어서 체력 하나는 어디서 꿀리지 않는다며 껄껄 웃던 분이었다. 씁새 패거리들이 자주 다니던 낚시점이 변동으로 이사를 가면서 가끔 들르다보니 마주치며 알게 된 분이었다.
같이 낚시를 다니게 된 동기도 씁새들 때문이었다. 3년 전, 낚시점에 들렀을 때, 낚시점 김 사장이 소개해 주어서 알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는 낚시를 할 줄도 몰랐고, 그저 집 앞에 낚시점이 생겼다고 하니까 무료한 김에 들렀다 가는 장소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씁새들의 권유로 저수지 민물낚시를 다녀온 후부터 낚시에 흠뻑 빠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낚시에 취미를 들이고는 씁새패들과 자주 낚시를 다녔고 급기야는 같은 연배의 낚시꾼들을 만나 친구처럼 지내며 바다낚시까지 다니게 되었던 것이다.
“이보게, 나도 참 바쁘게 살았던 것 같어. 이 좋은 취미를 여즉 모르고 말이여. 그저 먹고 살자고 뛰어 댕기다 보니께 이리 좋은 것 하나 꿈도 못 꾸고 살아온 것 같어. 70 넘어서야 이리 좋은 것을 알게 되다니… 참이루 지난 세월이 허망시럽네… 허망시러워…”
3년 전, 처음가본 밤낚시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케미라이트를 바라보며 홀린 듯 말을 하던 춘배 씨였다. 한국전쟁 통에 부모님과 형제들 까지 모두 잃어버리고 천애고아가 되어 버렸다고 했다. 그리고는 고아원으로 들어갔다가 도망쳐 나온 후로 구두닦이부터 중국집 배달부, 공사장 인부 등 도둑질과 강도질 빼고는 안 해 본 일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었고, 결혼하고, 또 악착같이 벌어서 자식들 시집, 장가보내고, 또 악착같이 벌어서 웬만큼 살게 되자 어느새 70세의 나이에 접어들게 되었다.
“나는 밀가루 음식을 못 먹어… 하도 그놈의 수제비에… 수제비면 좋지… 그저 맹물에 밀가루 타서 미숫가루처럼 마셨으니께… 그냥 배만 채우면 된 거였어…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으니께 애덜만이라두 번듯허게 보내고 싶었지… 시상 좋다는 것은 다 멕이고, 개인교사 붙여서는 공부시키고…”
외나로도에서 갯바위 타던 날, 춘배 씨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었다.
“뭐, 그려두 낚시 친구들과 그 좋아하던 낚시 다녀오문서 하늘로 가셨으니… 행복하셨을까?”
씁새가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서며 중얼거렸다. 상주들과는 알지 못하는 사이인지라 그저 함께 낚시 다니던 낚시꾼들이라고 말하고는 조문을 하고 손님들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리고 씁새들 앞으로 음식이 차려지고 있을 때였다.
“그러게 왜 그 나이에 낚시를 댕기는가 말여!”
건너편 자리의 한 사람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그냥 집이서 형수님이 챙겨주시는 밥 드시문서 고요히 계셨으면 이런 일은 없을 거 아녀? 그 나이에 뭔 부귀영화라고 낚시여?”
아마도 춘배 씨의 친척인 듯싶었다.
“그르게 말여. 애덜 다 컸구 이만큼 살게 되었으면 집이 계시문서 조용히 지내시면 되지, 위험허게 뭔 낚시를 가셨느냐고! 넘 부럽지 않게 살게 되었으면 인자 편히 계시면 될 거 아녀!”
또 다른 사람이 맞장구를 쳤다.
“내 말이 그거여! 요즘 뉴스보문 뭔 낚시 갔다가 배가 전복되고, 실족혀서 죽고 그란다는디, 왜 지발로 그 위험시런 낚시를 찾아 댕겼냐 말여. 나이나 젊어?”
슬슬 씁새의 가슴에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춘배 성님이 어릴 적에 그리 고생허셨다문서, 늘그막에 좀 살게 되었으면 편히 집에 계시문 안 되는겨? 뭔 낚시여? 낚시가…”
또 다른 사람이 말을 끝냈다. 그리고는 씁새가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이봐유! 손님덜. 듣다 보니께 말이 심허시네유?”
호이장 놈이 씁새의 옆구리를 꾹꾹 찔렀지만, 이미 씁새의 화는 한계점을 넘어가고 있었다.
“춘배 형님이 살아온 것 다 아시문서 그리 얘기허시문 안되지유! 70세가 되도록 그 개고생 허시문서 겨우 살만허니께 낚시를 댕기시는 여유가 생긴 거 아녀유? 겨우 3년 댕기신 겨유! 그 바락바락 고생허문서 곁눈질 한 번 못허시문서 자식새끼 키우느라 고생허시다가 겨우 3년! 겨우 3년을 자신헌티 돌려준거여유! 그짝 양반덜 말처럼 그리 죽도록 고생허다가 살만하문 그저 집구석에 누워서 딩굴다가 한세상 마감허라는겨유?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쓴 시간 3년이 그리두 아깝대유?”
씁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여? 그짝 분덜은 우리 춘배 성님을 그리 잘 알어유?”
건너편의 남자들 중 하나가 씁새를 향해 소리쳤다. 손님들 방에서 큰 소리가 나오자 상주들까지 모여들고 있었다.
“몰러유! 허지만 한 가지는 알어유. 그짝 상주분덜두 잘 들어유. 이때껏 아버님이 기분 좋게 편히 웃고 있는 얼굴 보신 적 있어유?”
씁새가 묻자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들인 듯한 상주들과 춘배 씨의 안사람인 듯한 여자가 무언가 흠칫하는 표정이었다.
“애새끼덜 멕이구 입히구, 마누라 남부럽지 않게 해 주느라고 죽도록 일만 허시느라 온 얼굴이 주름살과 상처투성인디, 그 얼굴이 온전히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웃는 얼굴 본 적 있냐구유? 우덜은 봤슈!”
씁새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세상 바쁘고 힘들게 사느라 내 시간 한 번도 못 써 봤는디 이리 좋은 세상이 있는 줄 이제야 알게 됐다고! 낚시터에서 시상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던 얼굴! 우덜은 봤슈!”
호이장과 총무 놈, 회원놈 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단정허건데! 춘배 형님이 그저 죽도록 일만 허다가 늙어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뒷방 늙은이로 100년 집구석에 갖혀서 지내신 것보다는, 겨우 3년이지만, 마음껏 시상 구경허고 신나게 괴기도 잡고, 사람들과 어울려 소줏잔 기울이신 그 3년이 더 행복허셨을 거여유!”
씁새가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아까 배가 뒤집어지고, 갯바위서 실족혀서 죽는 위험한 낚시를 왜 가냐고 혔지유? 춘배 형님 살아온 과거와 힘들었고 슬펐던 청춘을 생각해 보셔유. 그런 얘기가 나오는가. 작년에 무창포로 주꾸미낚시 갔던 날, 모텔에서 술 마시는디 갑자기 윗도리를 벗더니만 등짝에 커다란 흉터를 보여주며 그럽디다. 이게 내 새끼덜, 내 마누라 남부럽지 않게 멕여 살리느라 얻은 훈장이라고… 거기 아덜들과 딸덜은 그 상처 봤어유? 춘배 형님이 그 등에 난 상처를 안 보여줄라고 아덜들과 목욕탕 한 번 못 가봤다고 합디다. 그 흉터 봤어유?”
씁새의 말이 끝나자 춘배의 아내인 듯한 여자가 풀썩 주저앉으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짝 양반덜처럼 낚시가 그리 흉악헌 취미라고 헙시다. 그려유. 그란디두 왜 춘배 형님이 그 흉악시런 취미에 빠져서 그 먼 추자도를 가서 낚시를 허셨을까유?”
씁새가 묻자 아무도 말이 없었다.
“평생의 세월 중에 겨우 3년여유. 저 양반 살아온 시상에서 가장 즐거웠고 행복했던 시절. 아셔유? 낚시였다구유! 3년짜리 낚시! 흉악하고 위험헌, 그래도 그 양반의 행복한 3년 낚시.”
조용한 가운데에 상주들의 울음소리가 하나 둘 들리고 있었다.
“춘배 형님이 물고기 잡아오면 집이서 비린내 난다고 난리치신다매유? 그려서 춘배 형님이 아무리 괴기를 많이 잡아도 죄다 남들 퍼주고는 했지유. 가게서 사먹는 괴기는 비린내 안 나유? 그 양반이 잡은 괴기는 비린내가 아니라 예전에 자식 새끼덜 멕일라고 뼈 빠지게 일혀서 사들고 들어오는 생선에서 나는 땀냄새여유. 비린내가 아니라. 작년에 격포 쪽이루 농어낚시 갔을 때두 그라시드만유. 큰 거 한 마리 잡아서는 집이 가서 애덜 불러서 회 떠놓고 한 잔 했으문 좋겄다고… 근디 결국 큰놈 한 마리 잡아놓고는 집이서 비린내 난다고 가져 오지 말라고 혀… 이라시문서 다른 낚시꾼 주드만유.”
씁새가 소줏잔에 자작을 해서는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상주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손님방에 앉아있던 문상객들 사이에서도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씁새가 소줏잔의 술을 털어내며 일어섰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겨우 낚시나 댕기시다가 돌아가셨다고 그 양반헌티 화내지 마셔유. 어쩌면 말년에 겨우 작은 행복을 누리시다가 가신 것일 테니께 어쩌면… 어쩌면 행복하셨을 지도 모르잖어유?”
씁새가 밖으로 나가며 상주 쪽으로 돌아섰다.
“화장해 드린다매유? 그분 쓰시던 낚싯대가 아마 변동낚시점에 꽤 있을 거여유. 비린내 난다구 그것도 못 가지구 들어가시고는 낚시점에 맡기고, 옷도 거기서 갈아입고는 허셨으니께. 거기서 나머지 낚시도구들 죄다 챙겨서 같이 태워 드려유. 하늘에서 그 행복해 하시던 낚시나 실컷 허시게…”
큰아들로 보이는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씁새! 대단혀!”
장례식장을 나오며 호이장 놈이 씁새의 어깨를 툭 쳤다.
“지랄! 하도 화가 나서 그런겨. 우덜 아버님 때의 모습이 저랬을 거 아녀? 지 인생 죄다 가족덜헌티 몰아주고는 변변한 행복 하나, 소소한 즐거움 하나 챙기지도 못하고. 어찌 살다보니 할 일없고 남들이 귀찮아하는 뒷방 늙은이…”
“그라문 우리는 잘 살고 있는겨? 우리는 틈만 나문 낚시 가잖여?”
총무 놈이 씁새를 보며 물었다.
“염병! 우덜은 노바닥 낚시 간다고 깨춤 추는 놈덜이고! 우덜이 무신 소소헌 즐거움이여? 그저 낚시에 몰빵허는 미친 놈덜이지!”
씁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려. 우덜은 미친놈덜이여!”
호이장놈과 회원 놈이 까르르 웃어댔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