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연재_낚시꽁트 씁새 (280)
기묘한 이야기 2
“우리… 홀린 거 아녀?”
번갯불에 잠깐씩 보이는 작은 집을 보며 호이장놈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비에 젖어 떨리는 것인지, 아니면 이 요상한 상황 때문에 겁에 질려 떨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저수지를 이 잡듯 뒤지며 언덕 위의 작은 집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결국은 다시 그들의 낚시짐이 놓여 있는 저수지 무너미 자리였다. 저수지를 돌고 돌아도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세 번째였고, 언덕 위의 작은 집은 간간이 떨어지는 번갯불 빛에 공포스러운 하얀빛을 내뿜고 있었다.
“옘병! 또 든적시런 공포 분위기 조성할라면 아구리 닥쳐!”
씁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면! 홀린 게 아니면? 분명히 저 앞에 집이 있는디, 우치키 가보면 없고, 원래 자리로 되돌아 오냐고!”
호이장놈이 같이 소리를 질렀다.
“인생 살만큼 산 늙은 놈덜이 뭔 개소리여? 이 나이에 귀신이 무서운 겨? 아니문 도깨비가 무서운 겨? 우치키 된 늙은 놈덜이 해가 갈수록 동네 애덜 허는 짓을 따라 혀?”
총무놈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실상은 그들 모두 공포에 질려 있었다. 쉴 새 없이 내리는 비에 온몸은 젖었고, 천둥과 번개에 정신은 혼미해졌으며, 가끔씩 번갯불 빛에 창백한 표정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작은 집 때문에 공포심은 배가 되고 있었다.
“그… 그 얘기 들었어?”
커다란 나무 아래에 바짝 붙어 비를 피하고 있는 중에 회원놈이 입을 열었다. 나무 아래라고는 하지만, 내리는 비를 다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빗물을 저마다 쪼그리고 앉아 낚시가방과 짐 보따리 등으로 겨우 막고 있을 뿐이었다.
“뭐… 뭐여?”
하얀 김을 내뿜으며 호이장놈이 물었다.
“둔산동 창업이가 몇 년 전에 소양강댐이루 낚시를 갔었대잖여? 근디 거기서 귀신을 봤대는겨!”
“아조 지랄을 퍼대기루 싸지르고 자빠졌네! 시상에 귀신이 어디 있대는 겨? 창업이 그 빌어먹을 종자는 대놓고 뻥이나 치는 놈인디, 뭔 그놈이 귀신을 봐? 그놈은 야밤에 돌아댕기는 고양이를 보고두 호랭이를 봤다고 할 놈이여.”
“아녀, 아녀. 그놈이 아조 정색을 하문서 얘기 허드라니께. 소양강 댐 상류 쪽이서 밤낚시를 허다가 밤늦게 잘라고 텐트에 들어 갔는디, 한참 자는디, 밖이서 웬 여자 목소리가 나드라는겨. ‘여기 우리 집인데 문 좀 열어 주세요’ 이라드라는 겨.”
“그려서? 그려서?”
호이장놈이 회원놈 쪽으로 더욱 바짝 붙으며 물었다.
“놀라서 텐트를 내려 보니께, 웬 여자가 서 있더라는 겨. 하얀 옷을 입고. 근디… 얼굴이 없더랴. 그냥 달걀 매니 민짜였다는 겨.”
“지랄 염병을 허네.”
씁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녀. 진짜랴. 그려서 그놈이 그 자리서 기절을 혔는디, 아침 되어서 사람덜이 깨워서 일어났댜.”
“썩을 놈의 새끼. 그 얘기는 이미 몇 십 년 전에 낚시꾼덜 사이에서 유명했던 얘기여. 소양강댐 처녀귀신. 어떤 사람은 여자가 웬 아이를 데불구 서 있었다고 허고, 어떤 사람은 얼굴에서 피를 흘린다고 허고, 추워서 어느 움푹 파인 고랑이루 들어가서 잤는디, 웬 여자가 ‘내방에서 썩 나가!’ 이라문서 지랄혀서 보니께 관짝을 파낸 무덤 구멍이었다고 허고, 좌우간 창업이 그 종자가 어디서 주워들은 소양강댐 귀신 얘기를 늘어놓은 모냥이구먼, 니놈은 귀가 얇아서 탈이여. 귓구녕이 습자지여.”
씁새가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그려?”
“그려두 귀신 얘기 중에서는 씁새 귀신이 최고여.”
총무놈이 킥킥대며 말했다.
“그건 뭐여?”
“생각 안 나냐? 몇 십 년 전에 저 씁새놈이 삼가저수지루 우덜이 낚시 갔을 때, 뒤따라오다가 자동차 라디오 안테나에 비니루 쪼가리 매달아 놓구서는 귀신이 쫓아 온다구 울고불고 지랄허든 거. 대청댐 비니루 귀신!”
총무놈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그려. 그려! 아조 넘의 과수원 아작을 내고 난리두 아녔어.”
“개놈들아! 진짜루 귀신이었대니께! 비니루가 아니고, 귀신!”
씁새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까는 귀신이 없다드만, 이번엔 귀신이 있대는 겨? 쓸개 빠진 놈!”
이렇게 말이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당장 무슨 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엄습하는 추위와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과 천둥, 번개. 거기에 더해 좀 전에 겪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겹쳐 누군가 끊임없이 얘기라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았다.
비가 잦아지는 틈을 타, 주위의 싸리나무를 꺾어 머리위로 지붕처럼 풀더미를 만들었고, 그나마 서로 맞댄 체온으로 겨우 버티는 중이었다.
“씨벌 내가 다시는… 밤… 낚… 시를… 오문… 개…새…”
어느 정도 긴장이 잦아들고, 비가 그치기 시작하자 총무놈의 말소리가 띄엄띄엄 들리기 시작하며 씁새가 그대로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야! 야! 이 개종자덜아! 일어나봐!”
누군가 옆구리를 심하게 꼬집는 바람에 씁새가 눈을 번쩍 떴다.
“왜 지랄…”
눈을 뜬 씁새가 옆에 쪼그리고 앉아 졸고 있던 회원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회원놈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고, 녀석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씁새의 눈에도 그것이 보였다.
악스럽게 내리던 비는 어느새 가는 이슬비로 변해 있었으며, 하늘에는 먹구름 사이로 달빛이 내려오는 중이었다. 회원놈이 바라보는, 그리고 녀석이 깨워서 일어난 모두의 눈에 비친 것은 기묘한 풍경이었다. 번갯불 빛에 간간이 보이던 작은 집… 또는 원두막 같은 집 앞에 웬 허연 무리들이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있었다. 허옇게 너풀거리는 그것들은 때로는 하나가 되었다가 때로는 서 너 개로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뭐… 뭐여?”
모두가 놀라 입 한번 뻥끗 하지 못하고 눈만 고정한 채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 씨… 귀… 귀신들이라니께…”
총무놈이 얼어붙은 듯 닫힌 입을 겨우 뗐다. 그때였다.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던 달빛 아래의 그 무리들이 순식간에 다시 한 번 모였다가 흩어지더니 언덕 끝자락, 씁새들이 낚시하는 저수지가 바라보이는 언덕으로 죽 늘어서기 시작했다.
비온 뒤의 바람으로 허옇게 펄럭이는 그것들은 기괴한 달빛 아래에서 창백한 빛을 떨구고 있었다. 분명히 그것들은 일렬로 늘어서서 씁새들을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튀… 튀어!”
있는 힘을 다 짜내어 소리치며 씁새가 일어섰다. 그리고는 잡히는 대로 짐들을 챙겨들고는 저수지 아래로 무조건 뛰기 시작했다. 좁은 길가에 늘어선 나뭇가지들이 미친 듯이 뛰어가는 그들을 후려쳤고, 발에는 돌부리들이 걸리며 통증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씨… 분명히 귀신이여!”
“떼루 모였어! 떼루…”
하늘의 달빛은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고, 산 너머로 뿌옇게 동이 트고 있었다.
“어… 어… 어디까지… 뛰는 겨?”
숨을 헉헉거리며 총무놈이 물었다.
“안적 멀었어… 차를… 너무… 먼데다 대놨어.”
호이장놈이 헉헉 거리며 대답했다.
“옘병! 옘병!”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씁새는 계속 욕지거리를 뱉어대며 뛰었다. 비는 그쳐가며 가느다란 세우(細雨)로 변해있었지만, 이미 그들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헉…헉… 인자 그만 뛰어두 되는 거 아녀?”
총무놈이 길가의 나무를 붙잡고 허리를 꺾으며 말했다.
“뒤… 뒤질 거 같다… 우우엑!”
회원놈이 헛구역질을 해대며 말했다.
“다 왔다. 인자 다 왔다.”
호이장놈이 저수지를 올라가는 작은 소롯길(씁새들이 뛰어 온 곳)과 산 너머 마을로 통하는 넓은 길과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 공터 삼거리에서 짐을 내팽개치며 헉헉거렸다. 공터에는 그들이 타고 온 호이장놈의 승합차가 세워져 있었다.
“부… 분명히… 귀… 귀신이지?”
“몰러. 씨벌. 막 이리저리 흩날리고, 막… 날라댕겨.”
“뭐여? 도깨비불두 아닌디, 막 뭉쳐. 막 흩어지고.”
“봤냐? 낭중에 그 귀신덜이 우덜 노려보는 거?”
“누… 눈깔에서… 막… 불이… 불이… 씨뻘건 불이 막 나와.”
모두 다 짐을 팽개치고는 비에 젖은 땅에 철퍽 주저앉았다. 밭은 숨을 내 쉬느라 말조차 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큰 도로로 나가는 도로 쪽에서 웬 경운기 한 대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 경운기 짐칸에는 세 명의 남자가 하얀 비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문식이네가 새벽에 올라갔다문서?”
“그려유. 근디 갸들은 그 비 오는디, 뭔 지랄루 새벽부텀 처 올라가서 지랄이래유?”
“저 삼밭이서 인삼을 오늘 중이루 다 뽑구 갈아 엎을라문 새벽버텀 난리쳐야 오늘 중이루 끝날 거 아녀? 갸덜이 먼첨 올라가서 작업 헌다구 허드만.”
짐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들이 탄 경운기는 널브러진 씁새들을 뒤로 하고 산 너머 마을로 통하는 넓은 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문득 씁새가 단내 나는 입술을 헉헉거리며 그들이 뛰어 내려온 소롯길과 경운기가 올라간 넓은 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개… 씨… 벌…!”
씁새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욕을 뱉어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