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연재 낚시꽁트 씁새 (277)
좋은 친구들
“기침을 월매나 했는지 배때지에 복근이 생겼어야.”
쌥쌥이가 웃옷을 걷어 올리며 말했다.
“치워! 든적스러운 놈아! 다 늙어서 축 처진 배때지를 뭐 헐라구 뵈주는겨? 눈 베린다!”
씁새가 벗겨진 쌥쌥이의 배를 철썩 치며 말했다.
“오뉴월 감기는 개새끼두 안 걸리는겨. 월매나 든적시럽게 살문 감기에 걸리고 지랄이여?”
총무놈이 혀를 끌끌 차며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칭!”
쌥쌥이가 다시 재채기를 시작했다.
“개새 온통 감기나 전염시킬려구 작정을 혔네. 저 개새를 내버리구 갈거나?”
씁새가 입을 가리며 말했다.
“지랄은… 광어는커녕, 놀래미 한 마리 못 잡은 놈이 뭔 말이 많어? 니놈은 아조 조동이루 괴기나 잡지, 실력이루는 논빼미에 송사리도 못 잡을 놈이여.”
호이장놈이 운전석에서 중얼거렸다.
“그건 안적 물이 따싯허덜 안 혀서 그런겨! 60명이 떴는디, 광어냐구 열 마리두 채 안 나왔다니께? 모처럼 낚시춘추에서 기자님두 오셨는디 완전 조진겨.”
씁새가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쳤다.
“그러니께 니놈 말은 기자님두 오셨는디, 니놈의 개떡 같은 낚시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혀서 아까운 납덩이만 바닥에 죄다 뿌려놓고 왔다 이거 아녀? 텐피싱 밴드서 낚시대회 헌다고 상품도 타고, 광어 회두 처멕여 준다고 큰소리 팡팡 치더만, 결국은 개차반낚시회의 개뿔도 없는 낚시솜씨만 뵈주구 온 거 아녀?”
총무놈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옘병. 광어가 안 나왔다니께? 그 흔한 우럭두 없구, 놀래미두 안 나왔다니께? 그려두 행운상이루 타이라바 낚싯대는 한 대 탔다니께?”
“지랄을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루 떨구 자빠졌네. 그건 니놈이 불쌍혀서 주최 측이서 한 개 덜렁 던져준 거 아녀? 저 씁새 불쌍한디, 이거라두 줘서 보내버리자. 이리 된 거 아녀? 안그라문 지랄을 떨어댈 것인디.”
회원놈이 씁새를 흘겨보며 말했다.
“이 개놈들과 친구라는 내가 불쌍허다. 이번 생은 틀렸어….”
씁새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난달, 씁새가 가입한 낚시밴드에서 광어 다운샷 낚시대회가 열렸고, 모처럼 씁새가 낚시춘추에 부탁해서 기자까지 취재를 내려왔건만, 지극히 초라한 조과로 마감하고 말았다.
이참에 낚시 실력 유감없이 보여주고, 상품도 타 오겠다고 큰소리 친 씁새의 체면은 구겨질 대로 구겨지고 말았다. 다시 한 번, 광어들에게 복수하겠다고 이번 주를 별렀지만, 씁새의 친구놈들은 광어 따위에는 왠지 관심이 없었고, 오랜만에 민물낚시를 가자고 결정하는 바람에 입이 댓발 나온 씁새와, 가끔씩 개차반낚시회의 민물낚시에 동행하는 쌥쌥이가 동행하게 되었다.
“워디루 간다고?”
씁새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장령산저수지!”
호이장놈이 운전을 하며 큰소리로 대답했다.
“예미럴… 잡아도 먹덜 못하는 붕어새끼 잡아서 뭣 허겄다고….”
씁새가 팔짱을 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총무야! 그 옷, 상당히 비싸 보이는디?”
쌥쌥이가 앞좌석의 총무놈을 보며 말했다.
“이 개눔은 또 시작이여? 또 아들놈헌티 사달라고 헐라는겨?”
총무놈이 뒤쪽의 쌥쌥이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쌥쌥이는 총무놈의 말에 대꾸도 없이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아들! 그려, 그려. 뭔 일이 있겄어? 콜록, 콜록. 그려. 우치키 허다보니께 고뿔에 걸렸다. 그려… 응, 그려. 아마두 옷이 좀 얄팍시런개벼. 저기 개차반낚시회에 총무라는 아빠 친구 알지? 그려. 그놈은 옷이 아조 두툼허니 참이루 좋다. 아녀! 사달라는 것이 아녀. 뭐 대충 아무거나 처입구 낚시 댕기문 되야. 그라다가 고뿔 걸리문 약 먹으문 되구, 보건소두 가차워. 고뿔 걸려서 뒤진 사람은 없으니께. 아녀. 사달라는 것이 아니라니께.”
쌥쌥이가 씨익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든적시러운 놈… 결국 아들한티 옷 하나 뺏었구먼.”
씁새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니놈은 우치키 맨나닥 아들놈만 못 살게 구는겨? 갸두 먹구 살기 빠듯헐 것인디, 옷 사내라, 에어콘 사내라, 온통 사달라는 것뿐여. 그려두 니 아들놈이 착허니께 군말 없이 척척 사주지만, 갸는 속이루 월매나 쓰리겄어?”
가끔 씁새들과 민물낚시 동행하는 쌥쌥이는 아파트 입구에서 작은 이불가게를 한다. 물론, 그저 심심풀이로 할 뿐 대충 가게 열어 놓고 마누라에게 가게 맡기고 저수지에 앉아 있는 일이 태반이었다. 녀석의 아들은 대기업의 과장으로 있었고, 효심이 지극하기로 이름나 있었다. 취미가 오로지 낚시뿐인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군말 한 마디 없이 낚싯대, 장비 등등을 말만하면 사서 보내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놈의 별명이 쌥쌥이였다.
“뭔 소리여? 나는 그저 고뿔 걸렸다구 말헌 거여. 그러구 총무놈 낚시복이 썩 좋아 보인다고 말만 한 거여.”
“지랄 염병!”
씁새가 쌥쌥이의 머리통을 쥐어 갈겼다.
장령산저수지는 그리 크지 않은 소류지였다. 큰 고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가끔씩 준척급 붕어가 입질을 했고, 무엇보다 귀찮은 배스가 유입되지 않은 토종붕어 낚시터였다.
“아들!”
차에서 내려 낚시장비를 꺼내고, 찻길 아래의 낚시자리로 이동하는 중에 또다시 쌥쌥이가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전화를 시작했다.
“그려. 아빠가 낚시를 왔는디, 그려. 장령산저수지. 저기 접때 너허구 새 아가 내려 왔을 직에 드러지게 맛없는 맛집이라는 토종닭 먹으러 간 그 장령산. 그려. 근디, 웜마! 호이장이라구 아빠 친구 알지? 그려. 왐마! 이놈이 낚싯대가 근사혀. 뭐 허긴 물괴기가 낚싯대 삐까번쩍허다구 잘 물리구, 아빠처럼 써금써금헌 낚싯대라구 안 물리겄어? 근디, 이 괴기덜두 자존심이라구 있을 거여. 그렇지! 이 물괴기덜두 냅다 지랭이를 물구서 밖이루 나왔는디, 웜마! 낚싯대가 신라시대 선덕여왕이 쓰던 다 썩은 낚싯대여. 웜마! 이 괴기가 자존심이 팍 상할 거여. 아녀… 낚싯대 안적 쓸 만혀. 뭐 대충 휘두르다가 부라지문 버리면 되야. 괴기가 모처럼 월척이 올라 왔는디, 낚싯대가 써금혀서 부라지문 뭐, 그저 아빠두 자존심 상하구, 물괴기두 자존심 상하구 그라는 거여. 아니라니께! 낚싯대 사달라는 것이 아녀. 그렇지, 그려. 그려.”
또다시 쌥쌥이가 씨익 웃으며 휴대폰을 끊었다.
“저 든적시러운 자식….”
끙끙거리며 낚시장비를 나르던 호이장놈이 쌥쌥이를 흘겨보며 중얼거렸다.
“허는 짓이 씁새, 니놈이랑 아조 판박이여. 제2의 씁새여.”
총무놈이 씁새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랄! 아무리 내가 사고 치구 민폐를 끼치구 댕겨두 저 지랄루 자식새끼 울궈먹지는 안혀.”
씁새가 낚싯대를 펼치며 말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소류지인 탓에 씁새패들 외에는 낚시꾼도 없이 고요한 한낮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씨부럴… 피라미 새끼 한 마리 나오덜 안혀.”
씁새가 자리에서 일어나 애꿎은 새우망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뭔 아새끼가 20분을 자리에 앉아 있덜 못 혀? 좀 진득허니 앉아서 낚시 좀 혀. 정신 사납게 부산떨지 말고. 안적 한낮인디, 괴기가 나오겄냐?”
옆자리에 앉은 호이장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워, 개종자야! 대낚이루는 텄어. 릴이라두 던져야 헐 거 같다.”
다시 새우망을 던져놓은 씁새가 릴대를 찾기 위해 자신의 낚시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월래? 이게 왜 여기에 있는겨? 광어 낚시대회 다녀 오구서는 민물가방에 쑤셔 넣었는개비네?”
씁새가 민물낚시가방에 들어있는 선상낚시용 우럭대와 릴을 꺼내며 말했다.
“아조 골고루 허는 놈이여. 우치키 낚싯대두 정리를 않….”
“월래? 이 가방에는 뭔 구명조끼가 들어있는겨? 저수지서 웬 구명…”
“얼씨구? 이건 주꾸미 릴대 아녀? 아조 생지랄….”
라면을 끓이러 왔다가 씁새의 낚시가방과 장비가방을 본 호이장놈과 총무놈, 회원놈, 그리고 씁새가 말을 하다 말고 일제히 쌥쌥이를 바라보았다. 막 바늘에 떡밥을 개어 달고는 낚싯대를 휘두르는 쌥쌥이가 보였다.
“워우! 이거 완전 심마노 릴인디? 워우! 멋지다!”
“오호라! 이것이 그 유명시런 아빠가르시아 선상 낚싯대여? 근사허니 잘 빠졌네?”
“이거여, 이거! 이것이 작년에 나온 신상 주꾸미대여. 이거 한 대문 주꾸미 12키로 타작은 문제없대니께.”
“요즘은 구명조끼두 참이루 근사허니 나온다. 기술력이 보통이 아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눈을 마주친 씁새패들이 릴과 구명조끼를 들고는 한껏 떠들어댔다. 그러자 쌥쌥이가 궁금한 표정으로 씁새들 쪽으로 다가왔다.
“이건… 민물낚싯대가 아닌디?”
쌥쌥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워미, 자네는 이것을 모르지? 이것이 선상낚싯대! 바다낚싯대여.”
“우뗘? 민숭민숭헌 민물낚싯대허구는 껨이 아녀. 이 잘 빠진 낚싯대를 봐. 이 아름다운 가이드허며, 이건 예술이다.”
“구명조끼는 우떻고? 이거 완전 자동이여. 물에 빠지문 그냥 지가 알아서 부풀어 올라. 그냥 살려줘.”
“좋다! 역시 바다낚시는 장비빨이여. 완벽허다.”
씁새패들이 키득거리며 쌥쌥이 앞에서 낚싯대를 펴고 릴까지 장착하며 떠들어댔다.
“좋은겨?”
쌥쌥이가 그들의 모습을 보며 물었다.
“네놈이 아무리 아들놈 졸라서 옷이며, 낚싯대며 사봐두 바다낚시 장비허구는 껨발이 안되는겨. 여기에 바다낚시복까정 걸치문, 절단나는겨. 이 낚싯대에 광어라두 80센티 잽히문… 완전 절단나는겨.”
씁새가 침을 튀기며 말하자, 쌥쌥이의 표정이 점점 펴지기 시작했다.
“아들!”
순식간에 휴대폰을 꺼낸 쌥쌥이가 전화를 걸었다.
“그려. 그니께, 그 씁새라고 아빠 친구 알지? 접때 동네 통닭집이서 치맥 헐 직에 옆자리에 앉아서 개지랄 떨든 놈. 그려. 그놈이 왐마! 바다낚시를 헌다는겨. 아녀… 내가 뭔 바다낚시까정… 뭐 내는 먹덜 못허는 붕어새끼 잡아 올리구 그놈은 광어, 농어 이딴 거 잡아서는 집이루 와서 회 떠먹구 뭐 그라문서 사는 거여. 붕어새끼나 광어새끼나 죄다 물괴기 아녀? 뭐 물괴기 잡는 거는 똑같은겨. 엉뎅이나 방댕이나 똑같은 거이지. 근디… 왐마! 이놈이 바다 낚싯대가 비까번쩍혀. 그려, 그려. 아빠두 가오라는 것이 있지. 그렇지! 일단 사내새끼는 가오루 사는겨. 그렇다구 뭐, 내가 새삼시러이 바다낚시를 허겄다는 것이 아니고, 근디, 왐마! 이놈이 왐마! 아빠를 기죽이네? 민물낚시 허러 온 놈이 웬 바다낚싯대를 싸들고 와서는… 그렇지. 근디, 왐마, 왐마! 아녀… 그저 그렇다는겨. 아빠는 붕어루 족혀. 그라문, 단지 가오는 떨어지지.”
침을 튀기며 전화를 하고 있는 쌥쌥이를 바라보며 씁새 패거리들이 사악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