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연재_낚시꽁트 씁새 (276)
석양의 무법자
“당신이 혼자 다녀오면 안되는겨?”
씁새가 시장바구니를 챙기는 아내를 보며 목 메인 소리로 말했다.
“뭔 말이 그리 많대유? 그러고 나 혼자 그 무거운 것을 우치키 들고 오라는겨유? 방구석이서 뒹굴지 말고 어여 일어나셔유.”
씁새의 아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뭔 그리 살 게 많다구 덩치는 당신이 나보다 더 좋은디….”
씁새가 끙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연휴에 괴기 잡으러 못 가니께 부애(화)가 나서 그러는거지유? 딱 보니께 얼굴에 ‘낚시 못가서 불만이 많구먼유’ 이리 써 있구먼.”
“그런 거는 아닌디… 그… 시장에 남정네가 마누라 뒷꽁무니 졸졸 따라 댕기는 거… 그거 별로 좋은 게 아녀.”
“그려서? 연휴라고 애덜이 내려 온다는디, 낚싯대 들쳐메고 낚시나 가야겄슈? 어버이날이 낼모레라고 부모님 얼굴 본다고 오겄다는디, 아빠라는 양반이 낚시 못 가서 입술이 댓발 나와서는 그러고 있는디, 애덜이 기분이 좋겄슈?”
씁새의 아내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낚시 못 가서 그라는게 아니라니께….”
할 말이 없어진 씁새가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리며 옷을 입기 시작했다.
“시장을 가니께 그러지… 시장… 회원놈은 집사람허구 거제도 간다든디….”
“그거는 회원네는 딸 하나 있는디, 미국에 있으니께 못 와서 두 내외가 여행을 간다고 그러는 거지.”
“총무놈네는? 그 놈은 서천이루 놀러 간다는디….”
씁새가 여전히 볼멘 소리로 말했다.
“총무네는 아들내미들 끼고 살잖여? 그러니께 연휴에 서천이루 댕겨 온다는 거 아녀! 왜유? 우리 애덜은 서울서 있다가 모처럼 내려오는 거구유. 걔들 회사 댕긴다고 고생혔는디, 내려와서 푹 쉬다 가게 허문 오죽 좋아유?”
씁새의 아내가 쉼 없이 쏘아 붙였다.
“예미… 그때 술을 덜 먹었어야 혀.”
씁새가 중얼거렸다.
“뭐라구유?”
“아녀, 아녀. 그냥 그렇다는겨.”
5월 연휴를 맞이하는 씁새였다. 보통의 연휴라면 이미 낚싯배 위에서 광어나 우럭을 잡는다고 신이 나 있을 시간이었지만, 연휴기간 동안 서울에 있는 딸들이 내려온다고 하자 낚시는 엄두도 못 내고 황금 같은 시간들을 딸들에게 모두 쏟아 부어어야 할 지경이었다.
호이장놈은 상처를 하고 딸은 사위와 함께 주중에 다녀갔으므로 이미 연휴기간 내내 배 위에서 살겠다며 고흥으로 떠났다. 회원놈은 자기 부인과 함께 남해 일주를 한다는 핑계로 낚시도구 때려 싣고 거제도로 떠난 참이었다. 총무놈마저도 낚시 좋아하는 아들놈들 데리고 서천에서 이미 배를 타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일부터 연휴이건만 녀석들은 이미 배 위에 있거나, 민박을 잡았다며 가뜩이나 심기 불편한 씁새에게 문자질을 해대고 있는 중이었다. 씁새의 휴대폰은 쉴 새 없이 녀석들이 보내오는 사진과 문자들로 몸서리를 쳐댔다.
“술을 덜 먹었어야 혀. 힘이 딸려서… 술이 웬수여….”
현관문을 나서며 씁새가 계속 중얼거렸다. 아파트 앞의 재래시장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겹쳐진 연휴라고는 해도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처럼 붐비지는 않았다. 씁새의 아내는 딸들 내려오면 먹일 거라고 정육점이니, 야채상이니 열심히 뒤지고 있었지만, 씁새는 그저 먼 산 구경하듯 느릿느릿 뒤만 따라다니고 있었다.
“불고기를 해줄까유? 아니면 갈비찜이나 해줄까유?”
씁새의 아내가 물었다.
“낼모레면 시집갈 놈덜헌티 부모가 다 해 바쳐야 혀… 걔들은 지덜이 내려와서 부모님헌티 해주문 안 되는겨? 이건 부모 공양이 아니라, 부모 공격이여.”
씁새가 버섯을 고르는 아내의 뒤에서 중얼거렸다.
“이 양반은 언제나 철이 드는겨? 헐 말이 따로 있지, 그게 뭔 개 풀 뜯는 소리래유? 부모가 돼가지구 그게 헐 소리래유? 먼디서 애덜이 내려오문 따순 밥 멕이는 게 부모들 도리지, 뭔 쓰잘 데 없는 말이 그리 많대유? 시답잖은 소리 허덜 마시구 어여 이 장바구니나 들어유. 무거워 죽겄슈.”
또다시 씁새의 아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시방 세태가 그리허다는 것이지… 우리가 뭐… 그렇다는 것은….”
씁새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더듬더듬 말했다.
-릴릴릴리-
마침 씁새의 아내가 생선가게 앞에 섰을때, 씁새의 휴대폰이 울렸다. 총무놈이었다!
“뭐여, 개아들놈아!”
머리끝까지 불만이 팽배해 있던 씁새가 욕설을 내뱉었다.
“얼씨구? 이 썩을 자식이 뭔 욕지거리부텀 날리구 지랄이여? 왜? 니놈은 낚시 못 와서 배알이 뒤틀린겨? 아나 꼬숩다, 썩을 놈아!”
휴대폰 너머로 총무놈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비바람에 태풍이라도 불었어야 혔는디… 아니문 비라도 억수같이 쏟아졌어야 허는디….”
씁새가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지랄을 총천연색이루 해요, 우덜은 인자 항구로 들어가는 중이여. 우럭을 몇 마리나 잡았는지 아는가?”
“알고 싶지 않어! 말하지 마! 말하문 죽일껴!”
“떠글떠글헌 놈이루 아덜놈 거까지 총 스물두 마리를 잡았네. 그것두 방생한 놈덜 빼구 얘기여. 우뗘? 손바닥이 근질근질허지? 심장이 벌름벌름허지?”
“끊어! 오뉴월 소부랄 같은 놈아!”
씁새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전화를 끊었다.
“상녀리 자식!”
씁새가 분을 못 참고 씩씩거렸다. 그 사이에 씁새의 아내는 생선가게 좌판에 놓인 갈치를 고르는 중이었다.
“뭔 갈치가 그리 비싸대유?”
씁새의 아내가 망설이며 말했다.
“국산이니께유. 그라문 세네갈산 갈치루 들여가셔유. 그건 싸니께.”
생선가게 주인이 대답했다.
“이 우럭은 월매래유?”
“이건 한 마리에 삼천원이구먼유.”
생선가게 주인이 대답하자 머뭇거리던 씁새가 다시 물었다.
“이건 우럭이 아니구 애럭인디?”
“야? 그건 뭔 소리래유? 애럭이 뭐대유?”
생선가게 주인이 씁새를 보며 물었다.
“애새끼 우럭. 애럭! 이건 방생 사이즌디, 뭔 삼천원씩이나 헌대유? 이딴 건 뱃전에서 올라오는 즉시 바다로 돌려 보내는겨.”
씁새가 무심코 대답했다.
“뭔 말씀이 그리 심허시대유? 싸이즈가 작으문 안 사문 되지, 뭔 애럭이 뭐구 어쩌구 하신대유?”
생선가게 주인이 씁새를 노려보며 말했다.
“말이 그렇다는겨유. 봐유, 이 갈치두 해봐야 삼지 겨우 넘었는디, 뭔 한 마리에 만 오천원이나 헌대유? 이 정도문 우덜은 뱃전에서 방생이여.”
씁새가 이번에는 갈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삼지는 뭐여? 삼지창이여? 국산 갈치두 싫으문 세네갈 드셔유!”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 생선가게 주인이 소리쳤다.
“세네갈은 워디 붙어 있는 나라여? 그러구 이 애럭 말여유. 눈깔이 이미 지놈 고향이 그리워서 눈물 흘리다가 탱탱 부어올랐잖여유! 물이 갔다 이거여!”
씁새가 여태껏 잠재되어있던 불만을 한꺼번에 생선가게 주인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그만혀유! 낚시꾼 아니랠깨비 뭔 말이 그리 많어유? 이 주인 아저씨는 뭔 땅 파서 장사헌대유? 받을만허니께 받는 것이지.”
씁새의 아내가 씁새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이 양반이! 그라문 우리가 썩어 빠진 생선을 팔고 있다 이거여? 당신 낚시 헌대미? 낚시꾼이문 딱 보문 알 거 아녀? 이게 물 간겨? 당신 눈이 물 간 거 아녀?”
생선가게 주인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라문! 그라문! 시방 이 생선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남? 뒤진 물괴기가 눈알이 갔지 그라문 오남? 이건 뭐여? 얘두 광어여? 이게 광어문 여기 있는 바지락두 전복이라구 허겄구먼!”
씁새가 지지 않고 소리쳤다.
“이 양반이 보자보자 하니께 보재기루 뵈는겨? 안 살 거문 다른 데루 가문 되지, 왜 넘의 가게에서 난리여?”
생선가게 주인이 팔을 걷어붙였다.
“얘기가 그게 아니잖여! 이따우 애럭 열 마리 때려 넣구 매운탕 끓여봐야 고춧가루 맛밖에 더 나겄슈? 그러고 이 광애두 그려. 이게 앞뒤루 썰문 두 점 나오겄구만, 그러구 이게 병어여… 월남붕어여? 크기가 무신 돌 맞은 애새끼 손바닥 만혀.”
씁새가 좌판 곳곳을 가리키며 떠들어댔다.
“가유! 가시라고! 이 양반이 저녁나절 장사 시작헐라는디 뭔 깽판이여? 무법자여? 당신은 법도 없어? 넘의 가게에서 이라는 거 영업방해여!”
생선가게 주인이 큰 마대자루에서 굵은 소금을 한 주먹 꺼내며 말했다.
“뿌릴라고? 나를 염장헌다는겨? 아침부텀 친구란 놈덜이 염장을 지르더만, 아저씨두 나를 염장헐라는겨?”
씁새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염…병….”
생선가게 주인이 그대로 바닥에 소금을 던지고는 씩씩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애럭이나 팔문서 말이야… 어? 이 사람 어디 갔어? 여…보…!”
돌아서서 아내를 찾는 씁새의 눈에 저 멀리 시장 입구 쪽으로 부리나케 도망가듯 걸어가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다… 산겨?”
씁새가 무거운 시장바구니를 집어 들었다.
“오늘은 불고기 먹고, 내일은 갈치조림 헌다드만….”
멍청히 서 있는 씁새의 등 뒤로 연휴의 시작을 알리는 애처로운 석양이 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