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연재_낚시콩트 씁새 (275)
저수지의 개들
“기력 있을직에 좀 더 지랄을 할 걸 허구 생각하는 날이 올껴. 늙으문 한이 될 수도 있는겨. 그니께 닥치구 즐겨.”
씁새가 떡밥 그릇을 호이장에게 집어 던지며 말했다.
“저 개새는 조동아리만 기력이 남았대니께.”
호이장놈이 떡밥 그릇을 다시 씁새에게 던졌다.
“솔직허니 얘기혀봐. 우덜 하루에 직립해 있는 시간이 월매나 되는겨? 그저 넓직시런 판때기만 있으문 몸땡이 눕히기 바쁘잖여?”
씁새가 바늘에 떡밥을 달며 말했다.
“지랄들 그만허구 낚시나 혀! 우찌된 놈덜이 해가 갈수록 쌈박질만 늘어나. 정수리에 흰 눈이 쌓이고 허리 굽어지기 일보 직전인 놈덜이 애덜두 아니고 말여.”
총무놈이 혀를 끌끌 찼다.
“예미랄! 언놈이 이 저수지가 숨겨진 보물단지라구 헌겨? 염병헐. 피라미 새끼 한 마리 건들두 안허누만.”
회원놈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쳤다.
“월평낚시에 장가놈이 그랬다니께. 지놈허구 친구덜 몇 놈만 아는 숨겨진 보물단지라구.”
씁새가 씩씩거리며 대답했다.
“그 장가놈은 배때지에 거짓말만 잔뜩 들은 놈인디, 그 놈 말을 믿은겨? 씁새, 니놈은 귀가 아주 팔랑귀여. 한없이 얇은 새키!”
회원놈이 저수지 위의 둑으로 올라가며 말했다.
“낚시 안 혀유?”
모처럼 씁새들을 따라 낚시를 온 창식이가 회원놈을 보고 물었다.
“텄어. 염병, 괴기 새끼는 한 마리도 뵈덜 않고, 찌가 말뚝인디 뭔 낚시여?”
둑 위에 올라가 주저앉은 회원놈이 투덜대며 말했다.
“씨벌…”
이미 흥미를 잃어버린 창식이놈도 낚싯대를 놓고 둑 위로 올라갔다.
“지금부터 열심히 떡밥을 뿌려놔야 밤낚시에 뭐라도 잽힐 것 아녀? 안적 대낮인디, 뭔 괴기 타령이여? 아조 저 씨불넘들은 낚시의 기본이 안 돼 있어, 촘만놈들.”
씁새가 미안함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려, 니놈이나 떡밥 열심히 뿌려 놔라, 나두 재미없어서 그만 할란다. 진즉에 예당이루 뜨자니께 뭔 지랄이라구 이따구 저수지루 온겨?”
총무놈도 자리에서 일어나 둑 위로 올라가며 말했다.
“상녀리 장가 새끼…”
씁새가 이를 부득 갈며 중얼거렸다.
“여기서 마을을 바라보니께 고향 생각이 나네유? 우덜 고향에두 마을 위에 저수지가 있었구먼유.”
창식이가 둑 위에 앉아 저수지 아래로 펼쳐진 마을을 보며 말했다. 저수지 아래로 모내기를 위해 물을 가득 담아놓은 논들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작은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작은 산과 들판이 어우러진 조용한 마을은 요즘 보기 드문 시골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려? 우덜 동네두 작은 저수지가 있었구먼. 저녁나절에 저수지 봇뚝 위에 올라가서 마을을 보문 집집마다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나고… 참이루 따듯헌 광경이었지.”
총무놈도 창식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촌놈의 자식들…”
미련을 버리지 못한 씁새가 떡밥을 달아맨 낚싯대를 휘두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게유, 모내기를 허거나 논빼미서 피 뽑구 나서 이리 봇뚝에 올라앉아서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면 시상 천국이었지유.”
“그려, 그려. 산이서 낭구(나무) 혀서 내려오다가 봇뚝 위에 앉아 잠시 쉬문서 막걸리 마시고 그라문 시상 부러울 것이 없었어, 야.”
회원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깡촌놈덜…”
그 말을 듣고 있던 둑 아래, 낚시터의 씁새가 또다시 이죽거렸다.
“그라문… 우리… 마을에 가서 막걸리나 사서 그 시절을 추억험서나 술잔을 기울여 볼거나?”
총무놈이 두 녀석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려유, 그려유!”
“그려, 그려!”
의기투합한 세 놈이 씁새와 호이장놈에게는 말도 없이 그대로 일어서서는 달리듯 마을을 향해 내려갔다.
“뭔 애새끼덜이 의견통일이 순식간이여?”
호이장놈이 세 놈이 사라져 버린 둑 위를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나라 정치허는 놈덜두 저리 의견통합이 잘 되문 오죽 좋겄냐?”
씁새가 뜬금없이 말했다.
“예미, 그놈덜두 술 마시자구 허문 의견통합이 순식간일껴.”
그리고는 한 시간이 지나도록 세 놈은 나타나지를 않았다.
“이 개눔덜이 우찌 안 오는겨?”
어찌 되었든, 녀석들이 막걸리를 사러 갔으니, 돌아오면 막걸리 술잔을 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하던 씁새와 호이장놈이 돌아올 기미가 안 보이는 녀석들을 기다리며 말했다.
“뒤진겨?”
호이장놈이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서서는 둑 위로 올라가며 중얼거렸다.
“가게에서 지덜끼리 막걸리 까묵다가 뻗은 거 아녀?”
씁새도 호이장을 따라 둑 위로 올라섰다.
“저기. 저기 오는디?”
호이장이 마을의 작은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네… 근디… 심상찮은디? 뭐여? 저놈덜 취헌겨?”
마을의 진입로를 따라 걸어오고 있는 녀석들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세 놈 모두 양손에 막걸리 병과 안주들이 들어 있을 법한 비닐봉지를 들고는 휘적거리며 오는 중이었다.
“얼레? 저놈덜이 넓은 길 냅두고 우째 논빼미로 들어서는겨?”
“저거, 저거! 저 지랄허다가 논이루 빠질 거인디?”
서로 간에 떠들고 웃으며 잔뜩 취한 놈들이 비틀거리며 멀쩡하고 넓은 저수지 길을 놔두고, 빨리 올 생각이었는지, 미끄러운 논둑을 따라 들어서는 중이었다.
“아싸, 저 지랄맞은 놈덜이 생쑈를 보여줄라나부다. 아싸!”
씁새가 자리에 털썩 앉으며 기대감으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것덜이 제 정신이여? 맨정신이루두 걸어오기 힘든 미끄러운 논빼미를 가로질러 오겄다는겨?”
호이장놈도 말로는 걱정하는 듯 말했지만,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씁새 옆에 앉았다.
“오케이! 첫 번째 선수, 총무놈. 저 씨불넘은 다리깽이가 부실혀서 일 미터도 못 오고 자빠질 것인디?”
아니나 다를까 휘적거리며 호탕한 웃음과 함께 논둑으로 올라선 총무놈이 그대로 미끄러지며 흙탕물로 가득한 논으로 떨어졌다. 그리고는 녀석이 들고 있던 비닐봉지 속의 과자봉지와 막걸리병이 하늘로 난분분 흩어졌다.
“10점 만점에 7점. 아쉽게도 액션이 부족혔어.”
씁새가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번째 선수, 창식이. 저 우라질놈은 몸이 삐썩 골아서 화려헌 액션이 안 나올 것인디….”
호이장놈이 기대감이 결여된 목소리로 말했다. 흙탕물에 흠뻑 젖어버린 총무놈이 비척비척 일어서더니 몇 걸음 못 가 다시 엎어지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창식이 놈이 논둑으로 올라서더니 그 미끄러운 둑을 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녀석도 미끄러지며 하늘로 막걸리병과 비닐봉지에 담겨있던 김치, 깍두기로 보이는 빨간 덩어리들을 쏘아 올렸다.
“저놈은 준비물이 과하구먼. 6점.”
이제 회원놈 차례였다. 논둑 위에서 미끄러지며 흙탕물 가득한 논으로 떨어져 나가는 두 놈을 보고는 회원놈이 허리를 꺽으며 웃어대더니 자신도 논둑으로 올라섰다.
“기대한다! 저 뚱땡이 자식!”
씁새와 호이장놈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눈을 반짝 빛냈다. 그 사이, 총무놈과 창식이놈은 미끄러지고 엎어지기를 반복하며 논둑 위로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기세 좋게 논둑으로 올라서서 곧잘 균형을 잡고 걸어오던 회원놈이 마침내 미끄러지며 두 놈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향해 막걸리병과 안주들을 흩날리더니 기어 나오고 있던 두 놈을 싸잡고는 논으로 처박혔다. 세 놈이 일으킨 물보라가 햇살을 받아 무지개를 그려냈다.
“최고다! 역시 회원놈이여!”
“만점! 역시, 우리의 기대주여!”
씁새와 호이장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쳐댔다.
“저게 뭔 짓이여유?”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씁새와 호이장놈의 뒤에는 언제 와 있었는지, 농사꾼으로 보이는 노인 한 분이 노기를 띤 채 서 있었다.
“낚시를 헐라문 고이 허면 되지, 넘덜이 땀 빼문서 일궈논 논빼미를 저리 절딴 내면 어쩌자는겨유? 당장 짐 싸들구 나가유!”
“아… 죄송허구먼유. 우치키 허다보니께 친구덜이 술을 마시….”
“그니께 낚시를 할라문 고요히 혀고, 술을 마실라문 고요히 마시문 되지, 왜 저 난리를 직이느냐고유? 어여 짐 싸서 가셔유. 안 그라문 이장헌티 얘기혀서 논빼미 죄다 고치라고 헐란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뒷자리에 앉은 세 놈은 젖은 몸으로 히터를 좀 더 세게 틀어 달라는 말뿐이었다.
“허는 짓이 개여. 예미… 동네 개새끼두 논빼미서 그런 짓거리는 허덜 않을껴. 개눔덜….”
호이장놈이 흙탕물로 젖어버린 뒷좌석을 보고는 화를 벌컥 내며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막걸리에 취한 세 놈은 정신없이 잠에 떨어져 있었다.
“저놈덜, 내 버리고 갈까?‘
씁새가 뒷좌석을 쳐다보며 물었다.
“저 개종자덜을 기필코 다음 휴게소에서 쓰레기통에 내던지구 갈껴!”
호이장놈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근디… 저 놈덜이… 젖은 쓰레기여… 마른 쓰레기여?”
씁새가 중얼거렸다.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호이장놈의 승합차는 다음 휴게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