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연재 낚시콩트 씁새 (273)
설날 유감
씁새의 얼굴은 불만으로 가득했다. 설 연휴라고 5일간의 휴일이 가득했건만, 도저히 낚시를 갈 수 있는 짬이 나오질 않았다. 손바닥은 가렵고 온 몸이 뻐근할 지경이었다. 친척집마다 인사 다니고, 인사 오는 친척들 맞이하고, 처갓집까지 다녀오려면 5일의 연휴가 모자랄 판이었다.
“그러게 어느 한 집 골라서 친척덜 죄다 한꺼번에 모이문 우죽이나 좋아? 죄다 뿔뿔이 흩어져서 이게 뭔 짓거리여? 발정난 동네 발발이 마냥 쏘다녀야 하는 게 말이나 되는겨?”
씁새가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벌써 어머님을 모시고 두 군데 친척집을 다녀온 참이었고, 쉴 시간도 없이 잠시 후면 들이닥칠 작은 이모네 가족을 맞이해야 한다.
“당신두 그런 소리 허덜 말어유. 어머니 계시니께 두루두루 찾아뵙는 것이지, 어머님 안 계셔봐유. 친척덜 코빼기나 볼 수 있겄슈?”
씁새의 아내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려두 그렇지. 요새 시상에 명절이라구 친척덜 집집이 방문허는 사람덜이 몇이나 있겄어? 죄다 외국이루 여행을 간다구 난리라는디. 인천공항이 외국여행 가는 사람이루다 막혀서 터져 부렀대여. 이참에 우덜두 어머님 모시구 저기 베트남이나 댕겨왔으문 오죽 좋아?”
씁새가 구겨진 담뱃갑을 주섬주섬 챙기며 말했다.
“그만 펴유. 온 시상이 금연헌다구 난린디, 원제까정 담배나 피울껴유?”
씁새의 아내가 눈에 독기를 띄며 말했다.
“예미… 담배 하나 지대루 피덜 못하는 시상….”
집 밖으로 나온 씁새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뭐허는가?”
씁새가 휴대폰을 들고 물었다.
“내가 뭐 헐 거나 있겄어? 이따가 시장에나 가서 차례 지낼 거리나 사와야지.”
휴대폰 너머로 시큰둥한 호이장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미, 연휴가 5일이나 되는디, 물가는 가보덜 못허고 지나가게 생겼다. 그제 서울 올라와서 지금까지 강행군이여. 어머님이 자꾸 살 날이 얼마 남덜 않았다고, 친척집을 죄다 주리 돌리듯 끌구 댕기신다.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친척집까정 돌아 댕기느라 정신이 나갈 지경이여.”
씁새가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복에 겨운 소리 허덜 말어. 니놈이 그려두 어머님이 살아계시니께 그 복을 누리는겨. 나처럼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마누라마저 떠나보내고, 하나 있는 딸자식도 결혼혀서 외국이루 떠나고 홀몸이루 명절을 맞이해봐라. 그런 소리 나오덜 못헐 것이다.”
호이장의 말에는 짙은 눈물이 배어 나왔다.
“허긴… 이런 말허는 내가 미안허다. 그라문 차례 지내고 총무놈허고 어디 낚시라도 댕겨와.”
총무놈은 고향인 논산의 큰집에서 차례를 지내는지라 큰 부담이 없었다.
“안 그려두 그럴라고 헌다. 설날 차례 지내고 오후에 서산 쪽이루 가서 침선낚시나 이틀 댕겨올 예정이다.”
호이장놈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개눔들!”
씁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열심히 친척집 탐방이나 허구 와라. 우덜은 개우럭에 열기나 아이스박스 가득 잡아올란다.”
“의리 없는 종자들, 끊어!”
씁새가 휴대폰을 끊으며 소리쳤다. 호이장놈의 얘기를 듣고 나니 더욱 갑갑함이 밀려왔다.
“담배 태우는겨?”
골목길에서 작은 이모부가 걸어오며 물었다. 그 뒤로 외조카와 작은 이모가 따라오고 있었다.
“오셨슈?”
“그려. 안적두 담배 안 끊은겨? 뉴스에 보니께 외국에 어떤 놈이 담배 태우다가 담배가 터져서 죽었댜. 담배 태워서 폐암이루 죽는 게 아니라 담배가 터져서 죽는겨.”
꼬장꼬장하기로 이름난 작은 이모부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씁새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려. 인자 너두 낼모레면 칠순인디, 길게 살라문 담배부텀 끊어.”
작은 이모까지 나서며 말했다.
“냅둬유. 그러고 담배가 터져서 죽은 게 아니구, 전자담배가 터져서 죽은겨유.”
“엉덩이나 방댕이나. 우쨌든 터졌잖여.”
작은 이모부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자네는 안적두 낚시 댕기는가?”
방으로 들어와 앉기가 무섭게 작은 이모부가 물었다.
“왜유? 취미가 그건디 우쩌겄어유? 그냥 시간 나문 한 번 댕겨오는거지유.”
씁새가 뾰루퉁해서 대답했다.
“거 조심혀야 혀. 낚싯배 뒤집히서 여럿이 죽었다드만. 그 우험시런 걸 뭐 헐라고 허는겨?”
“그라문 이모부는 왜 운전해유? 낚싯배 사고는 우쩌다가 한 번 있는 것이고, 교통사고는 뉴스 틀문 나오드만. 그 위험시런 운전을 왜 해유?”
“야는 뭔 소리를 허는겨? 그라니께 운전허문서두 우험시러운디, 낚시까정 허문 더 우험시럽잖여? 운전허문서 낚시두 허고 담배두 피문 엄칭이 우험시럽지. 암만!”
무논리의 대가다운 작은 이모부였다.
“우험시런 운전허문서, 더 우험시런 낚시를 허고, 더욱더 우험시런 담배를 태우잖여? 우험시런 게 시 가지(세 가지)여.”
“담배가 우험시러워? 건강에 나쁘다는디, 그게 우험시럽기까정 한겨?”
씁새의 어머니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저기 외국서 담배가 터져서 죽었대유. 허다허다 인자는 담배두 터지내벼? 그게 폭탄이여. 쾅쾅 터져서 사람이 죽어유.”
“그거이 담배가 아니구유, 전자담배여유. 기계로 피우는 담배. 기계가 터진 것이여유. 안 그러냐 홍기야?”
씁새가 외조카 녀석에게 물었다.
“저는 모르겠는데요? 저는 담배를 안 피우니까….”
외조카 녀석이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니는 그게 뭐여? 낼 모레면 장개 갈 녀석이 외국물 먹은 존슨이여, 뭐여? 머리칼은 노랗게 물들이고, 그 팔등에 문신은 또 뭔 짓거리여? 여자애덜처럼 귀걸이는 또 뭔 짓이여? 접때 보니께 워떤 놈은 코뚜레를 혔드만, 뭔 지랄이여. 지가 최진사댁 누렁이여, 뭐여? 워낭소리여?”
잔뜩 화가 난 씁새가 외조카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왜 엄한 얘를 잡는겨?”
작은 이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요즘 애덜이 그렇잖여유. 머리카락에 온갖 물들이구, 쇳덩이 주렁주렁 매달구 댕기구, 몸뚱아리가 도화지여? 해괴시런 그림이나 그려놓고 댕기고.”
씁새가 지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는 니는? 열심히 낚시 댕기문서 메루치(멸치) 쪼가리 하나 원제 줘봤어? 낚시 댕긴대매? 괴기는 열심히 잡아서 친적들헌티 나눠줘 봤어? 메루치 꽁다리 하나 먹어봤으문 말도 안 혀.”
작은 이모가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마시며 말했다.
“메루치 잡으러 댕기는 거 아녀유.”
“얘기가 그렇다는겨. 메루치 잡으러 댕기문 그게 낚시꾼이여? 어부지.”
작은 이모부가 나서며 말했다.
“그려. 그 텔레비전서 막 허드만. 무신 도시어부 뭐 허는거 보니께 엄칭이 큰 놈두 잡아내드만. 그라문 혼자 그거 다 먹덜 못허겄드만. 뭔 괴기 비늘이라두 귀경을 시켜줘 봤어?”
작은 이모가 남편의 말에 힘을 실어주듯 따지기 시작했다.
“친척지간에 그라는거 아녀. 그 비싼, 그거…”
“도미!”
“그려, 도미. 그런 거 막 잡아내드만. 그라문 뭘 나눠주고 그라는 게 있어야 친척이지. 언니는 얘가 잡은 괴기 드셔봤우?”
작은 이모부와 맞장구치며 떠들던 작은 이모가 이번엔 씁새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뭐… 가끔 주꾸미허구 농어허구 택배루 보내주든디… 얘가 그려두 낚시는 곧잘 허는개벼.”
씁새의 어머니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거봐! 그라문 우리두 좀 보내줘야 허는 거 아녀? 니네 엄니허고 나허고 형제라곤 인자 둘 뿐인디.”
작은 이모가 눈에 독기까지 띠며 말했다.
“그게 그런 게 아녀유! 노바닥 간다고 노바닥 괴기 잡는 것두 아니구유. 워디 누구 줄 만큼 잡아내는 것두 아녀유. 그러고 아까 이모부가 그랬잖여유. 우험시런 낚시 댕긴다고. 그리 우험시런 낚시 댕기지 말라드만.”
씁새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헤이… 자네는 우찌 그리 말허는겨? 우험시럽지만 조심히 댕기라는 것이지.”
작은 이모부가 큼큼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어쩌라고?”“그… 쫌… 잡으문 보내주고 뭐, 그러란 거여.”
“시상에 담배두 터져서 뒤져유. 이게 폭탄이여. 쾅쾅 터져서 죽어. 낚싯배두 뒤집어져서 죽어. 근디, 뭐 어쩌라구유?”
“담배는 쫌 그려. 터지니께 끊어. 낚시는 우험시런께 조심히 댕겨. 안전에 유의허고,”
작은 이모부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니는 대구리가 그게 뭐여? 노랗게 물들이고. 귓때기가 철근이루 도배를 혀서 찢어지겄다. 사내새끼가 뭔 귀걸이를 허고 댕기는겨? 니놈 친구 중에두 워낭소리 있냐?”
씁새가 다시 외조카에게 말을 돌렸다.
“왜 자꾸 엄한 애를 잡는겨? 요새 애들은 이런 게 개성이구 유행이여.”
작은 이모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려. 자네는 낚시 댕기문서 괴기 한놈 보내주덜 안 허문서 왜 애를 잡는겨?”
“괴기가 바다에 깔렸는가유? 우쩌다가 좀 잡는 거지유. 노바닥 잽히는게 아니라니께유?”
씁새가 답답하다는 듯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혀. 이것들은 이모 조카란 것들이 만나면 쌈박질이여. 어여 상 차리고 점심이나 먹어.”
씁새의 어머님이 일어서며 말했다. 뒤따라 씁새의 아내도 어머님을 따라 일어서며 웃고 있었다. 문득, 작년의 설날에도, 그리고 작년의 추석에도 이번과 똑같은 이야기로 투닥거린 기억이 떠올랐다. 씁새와 작은 이모와의 나이 차이가 겨우 다섯 살. 이렇게 만나면 투닥거리지만, 어쩌면 호이장의 말대로 이것도 복인지 모른다. 몇 년 지나면 이런 풍경도 사라질 것이란 생각에 씁새의 마음이 서글퍼졌고, 다시 한 번 작은 이모와 투닥거리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끝)